살고 싶다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군대 이야기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면 군대 내부의 부조리한 상황을 다룬 소설로 바로 다가온다. 어느 정도 맞다. 하지만 군대 내부 문제보다 오히려 다양한 인간 내면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예상한 장면이 나오지 않아 약간 어리둥절하다.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던진 내면의 절규이자 제목인 ‘살고 싶다’의 의미가 뒤로 가면서 더 강해진다. 아니 ‘살고 싶다’가 아니라 ‘살아라’로 바뀐다. 어두운 절망의 참혹한 터널을 지난 사람만이 이런 말이 지닌 무게를 견디면서 정확하게 내뱉을 수 있다. 바로 그곳에서 삶의 의지가 샘솟아 오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있던 그해 이필립 병장은 야간조 근무를 나갈 준비를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은 내뱉는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그리고 그가 복무하고 있는 군 이야기가 조금씩 나온다. 군대 병장이라면 이제 편해질 때도 되었는데 그는 자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군인이다. 그 원인은 바로 무릎 부상이다. 아픈 무릎 때문에 그는 정상적인 군 생활을 하지 못했다. 군인이라면 배우고 익혔어야 할 기술도, 전우애를 쌓을 시간도 없었다. 두 번의 국군통합병원 행이 만들어낸 기수 열외 상황이다. 얼마 전 전방에서 벌어진 총격과 탈영이 읽으면서 겹쳐 보인 것도 부대 내부에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임병과 탄약고 근무를 서는데 한 장교가 다가온다. 기무사 장교다. 그가 두 번이나 다녀온 병원에서 친했던 친구 선한이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말한다. 자살은 분명한데 그 이유를 몰라 이필립 병장이 가서 그 이유를 알아봐줬으면 한다. 아직도 좋지 않는 무릎과 함께 세 번째 입원을 위해 광주국군통합병원으로 간다. 낯익은 공간에 돌아오니 반가운 사람도 있지만 군병원 특수성에 의해 환자들 물갈이가 많이 되었다. 이런 상황과 분위기를 작가는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등장인물들을 한 명씩 소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순간적으로 누군가가 선한이의 자살에 관계가 있을 것이란 촉이 온다. 그런데 작가는 한 번 더 이것을 꼬아놓았다. 내면이 파괴된 사람과 고장난 사람을 등장시켜서.

 

이필립은 엄청난 독서가다. 활자 중독 수준이다. 그는 책읽기를 통해 인간 내면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경험을 한다. 그가 선택한 책이 추리소설이란 것은 이 소설의 얼개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군대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조금씩 부각시킨다. 먼저 건강한 병사와 아픈 병사의 구분을 외형적인 모습으로 판단하는 문제를 다룬다. 이 판단 오류는 철저한 계급사회이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군이란 특수성 때문에 더 쉽게 생긴다. 사회라면 병원의 진단서가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되겠지만 군에서는 이런 진찰도 쉽지 않다. MRI 하나 찍기 위한 대기 시간을 볼 때 그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단체 생활에서, 특히 징집된 군인들에게 병원에서 편하게 이병과 일병 생활을 한 상병이나 병장을 자신들의 집단원으로 인정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이 때문에 필립은 겉돌게 된다. 억지로 그 조직에서 선임이라고 뻐기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다. 아웃사이드였던 그의 친구인 선한도 마찬가지다. 정형외과병동에서 만나 마음이 맞았지만 완치와 상관없이 자대로 돌아간다. 군 병원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이 특수성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다. 각각 다른 부대와 군에서 온 그들이지만 계급은 존재한다. 병원 관리의 효율성 때문에 병실장이니 도우미니 하는 직책도 생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듯하지만 여기서도 권력이 발생한다.

 

계급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곳, 바로 군대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가 편한 부대에서 만난 최악의 선임이다. 사병이 편한 곳은 장교가 없는 곳이고, 장교가 없는 곳에서 병장은 최고의 권력을 가진다. 예전에 나보다 먼저 군에 간 친구가 끔찍한 경험을 말했다. 자신의 내부반에서 병장이 신병에게 성희롱 이상의 행동을 한 것이다. 내부반의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첫 휴가 나와서 엄청나게 술을 마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병장이 되어 말년 휴가를 왔을 때 이 기억이 흐려지고 빨리 제대해야지만 편한 곳으로 바뀐 것이다. 상황에 따라 기억이 왜곡되고 변하는 곳이 바로 군대다. 악의 사슬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발생한 군 사고를 생각하면 그렇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선한이가 자살한 이유를 알고 싶어 이필립 병장을 병원에 다시 입원시켰다. 그런데 이필립은 자신도 모르게 쓸모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탐정 역할을 한다. 또 한 명의 병사가 죽은 후, 그가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은 후 진실에 한 발씩 다가간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살짝 금이 가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고 외친 것도 마음에 생긴 금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병원에는 금이 아니라 완전히 파괴된 인물이 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고장난 사람도 있다. 한 인물은 두려움 때문에, 다른 인물은 재미 때문에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무서운 이야기다. 사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서, 특히 선한의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살짝 힘이 빠졌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더 풀어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아들이 죽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은 아들의 이야기 말이다. 두 달만에 썼다고 하기엔 놀라운 문장과 구성력을 보여준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