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시대 - 인문.사회 담론의 전성기를 수놓은 진보 논객 총정리
노정태 지음 / 반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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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논객 아홉 명 중 유일하게 읽지 않는 작가가 김규항이다. 씨네21에서 그의 글을 읽어봤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 중 읽은 것은 없다. 그렇다고 다른 작가들의 책들을 많이 있었느냐 물으면 그 답은 아니다, 다. 비교적 많이 읽은 작가라면 역시 강준만이고, 그 다음은 박노자다. 진중권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은 느낌인데 찾아보니 사 놓고 그냥 두었지 읽은 책은 두 세 권 정도다. 박노자보다 못하다. 오히려 우석훈보다 적다. 유시민이나 김어준, 고종석, 홍세화 등도 읽은 책은 딱 한 권씩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낯익고 출간되면 가끔 사는 작가들이다. 이 낯익음이 바로 이 책의 저자로 하여금 그들을 논객이라고 부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는 이 아홉 명을 논객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나에게 논객으로 다가온 사람은 여섯 명이다.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박노자, 우석훈, 김어준 등이다. 그럼 나머지 세 명은 뭘까? 이름은 알지만 그들이 일으킨 대중적인 논쟁이나 인지도가 앞의 여섯 명보다 약한 논객들이다. 홍세화의 출세작인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가 내세운 프랑스의 똘레랑스라는 개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다고 하지만 대중에게 그는 논객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의 진중권이나 김어준과는 시대와 상황을 달리한다고 해도 강준만이나 박노자와 비교해도 역시 사람들에게 주는 임팩트가 약하다.

 

고종석의 경우 먼저 다가온 것은 역시 소설이다.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게 된 것은 그의 작품이 아니라 헌책방에서 고종석을 좋아하는 아저씨들의 대화를 듣고 한 후다. 그 이후 인터넷 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니 기자, 작가의 이력이 보였다. 그 후 간단한 에세이 한 권을 읽었는데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문장이 좋다고 하지만 역시 문장의 힘을 알 정도의 능력이 없는 나에게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저자도 말했듯이 그는 대중적이지 않다. 그런데 왜 진보 논객으로 그를 올려놓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가장 많이 읽은 강준만은 90년대 나의 책읽기에 큰 변화를 준 인물이다. 인물과 사상사 책이라면 일단 사놓고 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사놓은 책 중 읽은 것은 <김대중 죽이기>와 <노무현 죽이기> 등이 있고, 몇 권의 다른 책들도 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그의 책을 읽었다. 참 많은 책이 출간되었는데 나의 취향과 맞는지 술술 잘 읽혔다. 그를 통해 나 역시 조선일보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게 되었다. 한 명의 정치인을 어떻게 언론이 죽였다 살렸다 하는지 그 이면을 살짝 엿보게 되었다. 이후 다른 진보 저자들에게 조금씩 나의 지분이 빼앗겼지만 여전히 그의 글은 관심의 대상이다.

 

어디에도 없는 남자, 박노자. 그의 책을 읽고 놀랐다. 그의 해박함과 깊이에 감탄하고, 그가 소련 출신이란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초기에 읽은 것이 대부분인데 신문 사설을 모아놓은 것들이다. 이방인이지만 한국으로 귀화한 그의 시선을 통해 본 한국의 모습은 결코 우리가 이전까지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이었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차이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는 이 부분을 새롭게 보게 만들고, 우리의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지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그의 책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진중권과 유시민은 책으로 유명해진 듯하지만 실제 읽은 것을 보면 언론을 통해 친숙해졌다. 진중권의 책 중 미학에 대한 책만 겨우 두세 권 읽었고, 다른 책들은 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 논객이란 이름을 붙여준 것은 언론이나 시사대담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너무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시민도 마찬가지다. 100분 토론의 사회자로, 엄청난 말빨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토론자로 먼저 다가왔다. 김어준 역시 한때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었던 ‘나는 꼼수다’가 없었다면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지 못했을 것이다. 우석훈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88만원 세대>다. 세대 분석은 좋았지만 그 이후를 풀어내는 힘이 약했다. 오히려 ‘나는 꼽사리다’가 그를 더 친숙하게 만들고 논쟁을 불러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사기 열전을 참고해 논객 열전 식으로 기획한 것이다. 그런데 참고로 한 것이 그들의 출판물이다. 책이다. 물론 그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트위터도 인용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을 바탕으로 한다. 이 방법은 저자의 주관적인 책읽기를 통해 글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아홉 명이 그의 취향이자 그에게 영향을 끼친 논객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그의 글이 상당히 날카롭고 분석적이고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방향에서 이 논객들을 본다고 해도 그가 가진 철학과 정당성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곳곳에 흘러나오는 그의 정치색은 이 논객들을 어떤 시선에서 보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반갑고 재미있었고 어떤 순간은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또 다른 시각을 가진 저자가 이들에 대한 논객 시대를 쓴다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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