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코 세상에 순종할 수 없다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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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는 두 번째 만난다. 언제부터인가 산문집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이외수의 산문집은 손이 잘 나가지 않았다. 보통의 산문집과 다른 편집이라 쉽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읽다보면 그 의미심장한 내용 때문에 자주 숨을 고르게 된다. 이때마다 속도가 더디게 흘러간다. 그런데 이 더딘 흐름이 좋다. 이번 산문집은 쓰다가 찢어버린 원고지 종이더미를 뒤져 찾아낸 미발표 시, 그림,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중에서 이 시대 청춘들과 공유하고 싶은 글을 정리하고, 최근에 집필한 산문 등을 모았다. 당연히 그의 이전 삶이 녹아 있다. 글 쓴 시기를 제대로 표기해주지 않아서 내용으로만 그 당시 이외수의 삶을 추측해야 한다. 조금 아쉬운 편집이다. 쓰다가 찢어버린 원고지를 생각하면 당연할 수 있지만.

 

사랑, 춘천, 가난, 문학, 낭만, 여자, 청춘, 예술, 종교 등에 대한 그의 단상을 모아놓았다. 그냥 얼핏 읽으면 꼰대의 말처럼 다가오는 것도 있지만 조금만 음미하면 풍자가 엿보이는 글들로 가득하다. 그가 겪어야 했던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과 현실과의 괴리는 최근에 대중적으로 변신한 그의 모습이 아닌 소설 한 편을 위해 골방에 자신을 가둔 채 글을 썼던 그 시절의 이외수를 자연스럽게 떠올려주었다. 그 치열한 문장과의 대결은 담배로 이어졌고, 몸은 꼬챙이처럼 마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처음 그가 텔레비전 예능에 나왔을 때 너무나도 낯설었다. 내가 읽은 소설이나 그에 대한 정보와 엄청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기 마련이다. 자주 보니 그의 이런 모습도 반갑고 재미있다.

 

모두 열 꼭지로 나누었지만 제목만 보고는 그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어떤 짧은 산문은 두 번이나 나오는데 활자의 크기 차이인지 눈으로 보이는 길이가 다르다. 내용도 어떤 것은 한 줄로 끝나고, 어떤 것은 몇 쪽을 채운다.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역시 한 줄이다. 그가 경험했던 것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자는 난해하다. 그 어떤 현대 시인의 난해시보다 더 난해하다.”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아는 척해도 결국 자기 여자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요즈음은 소크라테스보다는 돼지 쪽이 더 인기가 있다.”라는 말처럼 현실을 그대로 요약해서 들려주기도 쉽지 않다. 읽으면서 ‘나는?’이란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춘천에 대한 애정, 젊은 날의 고생, 변한 세태 등이 곳곳에 나온다. 자살에 대한 충동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 같다. 젊을 때 나 자신도 자살 생각을 해보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깊은 허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던 그를 세상 밖으로 건져올린 사람이 누굴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의 아내였을까? 아니면 다른 누구? 술집에서 안주값이 없어 소주에 김치를 몇 번이나 시켜 먹다가 더 이상 리필이 되지 않은 사연은 처절하다. 구질구질하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다. 그의 요청에 회 안주를 포장해준 횟집 주인이 있는 것이다. 그의 이십 대 이야기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깡소주에 새우깡 안주로 집에서 혹은 야외에서 먹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술집이란 공간이 그들을 어떻게 끌어당겼는지 생각하면 짠하다.

 

그의 단상은 정제된 문장을 통해, 시를 통해, 짧은 이야기를 통해 계속 나온다. 세상과 손을 잡고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면 좀더 편안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싸웠다. 세상과 타협하려는 자신과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실제 삶을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글 속에 드러나는 치열함과 고민과 고뇌는 나의 가슴 한 곳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묵직함이란. 현실 세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나올 때면 반갑고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이 과거 속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희망을 말하며 ‘우리도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이다’고 했을 때 그가 겪었던 어둠과 암흑에 조용한 빛 한 자락이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코 세상에 순종하고 방황만 할 수는 없다. 나도 살아가야 할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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