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은 필요 없다
베른하르트 아이히너 지음, 송소민 옮김 / 책뜨락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작가 소개글 중에 나의 시선을 잡아 끈 게 있다. 바로 이 작품을 쓰기 위해 6개월 동안 장의사에서 보조원으로 일했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작품의 소재를 위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등의 취재를 하는 경우는 많다. 물론 자신의 전직을 이용해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많다. 하지만 이 작가처럼 직원으로 일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보통의 짧은 기간 동안의 경험만 쌓고 그만두기 때문이다. 이렇게 먼저 한 점을 딴 후 <덱스터>와 <킬 빌>에 대한 글이 나를 사로 잡았다. 특히 <덱스터>는 소설 속에도 잠시 나오지만 내가 예상한 잔혹한 복수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블룸은 고아다. 양부모에게 입양되었다. 이 부모가 바라는 것은 자신들의 장의사를 물려받는 것이다. 어린 블룸을 양부모는 아주 혹독하게 키운다. 열 살도 되지 아이를 염하는 곳에 데리고 들어가서 일에 익숙해지길 바란다. 보통의 시체도 무서운데 찢기고 너덜너덜해진 시체까지 참석하게 만든다. 어린 아이가 무서워 내는 말은 쉽게 묵살된다. 이런 양부모와 함께 여행을 간 그녀가 그들이 바란 도움을 거절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이들은 물에 빠져 죽고, 그녀는 양부모의 장의사를 물려받는다. 더불어 가장 사랑하는 남자 친구인 마르크를 만나고, 둘은 결혼까지 한다.

 

8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블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형사인 마르크는 좋은 아빠이고, 시아버지는 그녀의 아이들을 잘 돌봐준다. 평온한 가정이다. 이 가족에 한 명 더 덧붙여진다면 레자가 있다. 그는 보스니아 사람이다. 인종 대학살의 와중에 살아남았다. 현금인출기를 털려고 하다가 마르크에게 잡혔지만 그의 사정을 들은 마르크가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 후 레자는 브룸의 가장 훌륭한 조수가 된다. 사업은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은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 이런 평온한 가족에게 무시무시한 사건이 생긴다. 바로 마르크가 뺑소니차에 치여 죽은 것이다. 범죄의 냄새가 강하게 난다.

 

마르크는 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다. 둔야란 여자가 신고한 것이다. 다른 경찰이 거절한 것이지만 그는 강한 범죄의 냄새를 맡았다. 둔야를 만나 자신이 다시 조사하겠다고 한다. 그녀와 만나 그녀가 겪었던 사건의 세부적인 이야기를 듣고 녹음한다. 이 녹음을 브룸이 마르크의 유물을 정리하다가 발견한다. 단순한 뺑소니 사건에서 타살의 흔적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하지만 분명한 증거가 없다. 둔야를 찾는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트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얼굴은 모르지만 수없이 들은 목소리라 금방 안다.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녀가 겪었던 참혹한 강간과 무지막지한 폭력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제 둔야가 말한 다섯 명의 남자를 찾아 복수를 하려고 한다.

 

여자 장의사가 품은 살의는 너무나도 강렬하고 잔혹하다. 첫 번째 용의자를 찾아낸다. 작은 실수를 하지만 무사히 처리한다. 장의사는 시체를 처리하는데 최상의 직업이다. 자신의 화장터를 가지고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시체들이 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시체들은 그녀가 처리한 시체 토막을 분산해서 숨기기에 딱 맞다. 비록 처음 하는 일이라 무게를 감안하지 못한 잘못이 있지만 말이다. 이 실수들은 다음 용의자를 찾아서 처리하는데 좋은 본보기가 된다. 물론 이것이 항상 그녀가 바라는 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브룸은 잔혹한 복수극을 펼치지만 덱스터처럼 훈련을 받지 않았다. 이 차이는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거기에 여자다. 무거운 시체를 옮기기도 쉽지 않다. 만약에 그녀가 실수를 해서 체포라도 된다면 그녀의 두 아이는 부모 모두를 잃게 된다. 이런 두려움은 쉴새 없이 그녀를 덮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녀는 나머지 악한들을 찾아낸다. 어쩌면 운이 좋다고 해야 할 것이다. 너무 쉽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그리고 그녀가 반전처럼 심어놓은 마지막 악당은 결코 바라지 않은 인물이다. 이 부분은 조금 아쉽다. 너무 안일한 설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문장이 참 간결하다. 짧은 호흡으로 끊어 읽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건조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속도감을 높인다. 장면을 짧게 끊어 더 쉽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사이사이에 마르크와의 추억을 넣어 그녀의 감정을 노출시킨다. 이 추억의 삽입은 그녀가 흔들릴 때, 외로울 때, 두려울 때 마음을 다잡게 만든다. 복수의 여신이 되어 악당들을 난도질하는데 주저함이 없게 만든다. 미스터리를 자주 읽는 독자의 눈에는 허점이 많이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덱스터처럼 시리즈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더 강해진 모습으로. 악당들은 결코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죽인 마르크의 아내가 얼마나 무서운 여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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