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의 대국민 보고서
고상만 지음 / 돌베개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준하란 이름만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 가끔 읽은 역사서에 그 이름이 나왔지만 그렇게 비중이 높지 않았다. 그러다 이 이름을 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나는 꼼수다>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다루었을 때였다. 출퇴근길에 들었는데 박정희 독재자 시절의 한 단면을 잘 알 수 있었다. 한때 박정희는 영웅으로 인식되었다. 그가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후 국장을 치르던 그때 외할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이 이미지는 한동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것이 사라진 것은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의 악행이 하나씩 드러나면서였다.

 

지금도 그의 이런 악행을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결단으로 이해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집안 어른들을 만난다. 답답하다. 못 먹고 살 때, 한 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던지 하려고 했던 우리의 부모 세대는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보다 대통령 덕분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해방 후 친일 세력이 그대로 남아 정권과 경제를 휘어잡았던 것을 감안하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훌륭한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장준하다. <사상계>란 잡지 발행인으로 알고 있었던 그다.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그 시대 감히 박정희에게 돌직구를 날리고 감옥도 참 많이 다녀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책은 <나꼼수>의 내용과 상당 부분 겹친다. 방송이 어떻게 보면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방송에서 해주지 못한 이야기를 많이 다룬다. 방송이란 한계 속에서 요약해서 들려줄 수밖에 없었던 것을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도 같이 알려준다. 의문사진상위원회 조사관으로 이 죽음을 조사했던 고상만 조사관의 기록들이 국가기록원 2074년까지 자료 비공개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관계자들이 모두 죽고, 그 기억이 희미해진 후 공개하겠다는 의도다. 이 자료가 누군가에게 엄청난 위험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결정을 내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가에서 외부인사를 뽑아서 조사한 자료임을 감안한다면.

 

장준하의 죽음은 분명한 타살이다. 무덤이 비로 무너진 후 이장하면서 발견한 두개골의 흔적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이 타살이라고 했을까.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활동 당시 장준하의 시체를 통한 검안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정확한 조사를 방해할 세력이 두려워 시체 발굴을 하지 않았다. 거의 30년이 다 된 시간이 흘렀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조사관이 자료를 관계 기관에 요청했을 때 제대로 온 것이 없고, 자료가 없다는 회신이 온 것을 보면 말이다. 최근에 이 자료가 70년간 비공개 자료로 묶였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포천 약사봉에서 추락사했다는 날짜는 1975년 8월 17일이다. 그가 자발적으로 등산을 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위험한 길을 같이 내려오면서 추락하는 것을 봤다는 김용환의 증언은 허술하기 그지없다. 가장 큰 의문은 산에서 굴러떨어진 사람의 옷이나 같이 가지고 있던 용품들이 너무 깨끗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면서 최근에 국정원이 보여준 허술한 작전들이 떠올랐다. 기록을 삭제하고 자살했다는 국정원 직원의 차가 다르다거나 호텔에 잠입해서 외국정부 정보를 빼려다가 잡힌 것 등이 먼저 생각난다. 이런 전통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하면 너무 나간 것일까? 뭐 그 덕분에 한 항일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장준하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면을 파고들게 되었다.

 

단순히 장준하 의문사만 다루지는 않는다. 저자가 경험했던 몇 가지 의문사도 같이 다루고 있다. 다른 방송에서 이미 본 것이지만 국방부와 국정원의 지독한 정보 폐쇄나 왜곡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자아낸다. 일제 강점기 당시 서로 상반되는 행동을 보인 장준하와 박정희의 간략한 개인사를 앞에 넣었다. 이 작업은 장준하가 왜 이런 죽음으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박근혜를 둘러싸고 있었던 최태민 목사와의 스캔들도 당시 비서실장의 기록을 통해 명확하게 말한다. 언론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이것만으로 엄청난 뉴스가 되었을 텐데 그냥 넘어갔다.

 

“우리 사회는 껄끄러운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역사는 그런 문제들을 맡아주는 전당포가 아니다.”(13쪽)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한 말이다. 현재의 시간들이 바로 역사임을 부정하고, 이 문제를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세력이 늘 하는 변명이다. 자신들이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동안에는 이 문제를 무시하고 숨기고 왜곡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이 자료의 70년간 비공개 결정이다. 덕분에 이 책이 나와 진실의 일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그 이유를 책 뒷부분에 적었다. 너무나도 분명한 타살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장준하 의문사 외에도 우리 사회는 수많은 의문사들이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군부대로 가면 이 의문사는 더 많아진다. 너무나도 빤한 것도 그들은 숨기고 왜곡하고 모른 채 한다. 관료적으로 굳어진 조직이 얼마나 문제인지 잘 알려준다. 장준하 의문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느끼고, 너무나도 분명한 자료에 이제는 해결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았다. 답답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언제 이런 의문사들이 깨끗하고 정확하게 온 국민에게 알려질까? 아주 먼 훗날의 일처럼 다가온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자. 잊지 말자. 모든 것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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