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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코의 날
미코 림미넨 지음, 박여명 옮김 / 리오북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 본 사람은 혼자 누군가에게 말하는 자신을 가끔 발견한다. 그 대상은 꼭 누구라고 집어서 말할 수 없다. 누군가와 말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이 소설 속 화자 이르마는 그래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벨을 울렸고, 자신의 마케팅 조사원이라고 속이고 사람들을 만난다. 이 방문과 만남은 자신이 계획한 일이 아니고 우발적인 일이다.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나 보니 제대로 된 질문도 할 수 없고, 그 질문에 제대로 답도 할 수 없다. 이런 그녀를 보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어리숙하고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행동에 나는 관찰자로 뒤로 빠지게 되었다.
화자가 주인공이지만 나는 그녀의 행동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이성이 왜? 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느끼는 불안,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 외로움 등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보여줄 때는 더욱 그랬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때면, 걱정이 미래를 불안하게 인식할 때면 이런 관찰자의 시선은 더욱 강해진다.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으니 읽는 속도는 조금 더뎠다. 그녀가 길을 잃고 헤맬 때는 어느 정도는 짜증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50대 여성의 외로움과 두려움과 불안감 등이 만들어낸 총체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르마는 비슷한 이름의 이르야에게 계속 집착한다. 소설의 시작도 이르야 이야기다. 그녀의 첫 접촉이 그녀였고, 그녀의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이의 집을 두드려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도 모르는 질문을 던지고, 이 난관을 어렵게 헤쳐나가는 순간을 처음 볼 때는 하나의 멋진 이벤트가 될 것이란 추측을 했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에서 미국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본 점점 매끈해지는 방문과 대화를 예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외로움과 방문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을 내세워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우리가 핀란드를 인식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방송국 다큐멘터리다. 다큐의 경우는 핀란드의 복지와 교육과 경제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다.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대부분이다. 이런 인식은 책을 통해 다른 핀란드를 만날 때 혼란을 느끼게 한다. 사회 전체는 아주 좋게 굴려가지만 그 내부의 속사정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읽을 때면 같은 사람이고 누구나 같은 고민과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받쳐주는지가 다를 뿐이다. 물론 이 차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아주 어마어마한 차이다.
답답하고 불안하고 꼬이는 상황 속에서 하나의 의문이 있다. 화자의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아들과 엄마의 전화 대화를 들으면 서로 딴 이야기만 한다. 낯설다. 나이가 더 들어서 제대로 말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데도 이들의 대화는 일방통행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는 노력을 그렇게 기울이지 않는다. 이르마가 낯선 집을 방문했을 때 조금이나마 성장한 것은 질문지를 새롭게 만들고, 사람들의 반응을 조금 더 눈여겨보는 정도다. 하지만 이 방문은 확대되지 않고, 몇 곳에서 머문다. 자신의 행동이 신문에 나온 후부터는 불안해한다. 보통 이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그만둬야 하는데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한다. 이 돌발적이고 우발적인 행동이 더욱 관찰자로 만들고, 나의 이성은 왜? 라는 질문을 더 던진다.
그녀가 바라는 바람이 마지막 문장에 나온다. “그저 우리 모두가 함께이면 좋겠다고, 함께. 모두가 모두에게 친절하면 좋겠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내게는 그것이 가능해 보였다.” 소설 속 이 모두는 그녀가 만난 사람들이지만 사회 전체로 확장해석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방문이 많은 불안과 두려움을 지나왔지만 그녀 속에 희망의 씨앗을 남겼다고 봐도 될 것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된 화자의 심리와 행동을 이성이 아닌 따뜻한 감성으로 다시 읽는다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