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 나를 깨워줘
루쓰하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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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책 속에 나오는 사진들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중국 청년이 쓴 에세이란 것이다. 가끔 중국 문호들이 쓴 에세이를 읽은 적은 있지만 한 번도 청춘이 쓴 글은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현재 중국 청년들의 삶과 생각을 살짝 들여다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게 크게 성공한 것 같지 않다. 성공을 외치지 못하는 것은 좀 더 다양한 인물들의 낯설고 폭넓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어딘가에 읽은 것 같은 이야기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많은 에세이를 읽은 경험 탓인지도 모르겠다.

 

우정, 사랑, 청춘 등을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하나씩 풀어낸다. 전체 이야기 속에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크게 눈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추측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중국과 멜버른을 오가는 삶을 사는 것 같은데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그의 글 속에서 단서를 찾아 추론해야 한다. 빈곤한 학창 생활을 말하는데 호주까지 유학을 갈 정도면 집이 부유한 편이다. 집에서 도움을 얼마나 받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 그의 글과 생활을 비교하면 약간의 괴리감이 생길 때도 있지만 부모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인물이 아님을 알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인다.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는 모양이다. 경제적 문화적 환경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열정과 순정 등은 읽는 동안 답답함과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를 위해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줄 때 요즘 한국에서 아주 귀해진 순정을 발견한다. 그래서 약간 구식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누가 이런 순정을 싫어할까. 누군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굴복하여 다른 연인을 만난다. 옛 연인을 잊지 못해 방황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이런 사랑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뭐 이런 사랑도 영화로 이미 만난 적이 있지만.

 

저자의 글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편집과 번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보기 힘든 단어 등이 글 속에 나온다. 너무 한국적으로 번역해 낯설게 느껴졌다. 대표적으로 당장 떠오르는 단어는 삼팔선이다. 한국 학생도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가 중국 에세이에 등장했다. 내 나이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어떨까? 의문이다. 이런 몇 가지 단어들을 제외하면 문장은 매끄럽다. 톡톡 튀는 문장도 가끔 보인다. 전체적으로 쾌활한 글로 가득한 에세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는 것은 짧은 문장과 저자의 이야기 솜씨 때문이다.

 

20대 후반. 같은 나이대의 한국 청년들과는 다른 나이다. 스펙과 군대 등으로 이제 갓 세상에 나온 한국 청년들과 이미 많은 경험을 한 중국 청년들은 차이가 벌어진다. 이 차이가 가끔은 낯설게 다가온다. 같은 나이지만 다른 경력 탓이다. 몇 번의 실패를 겪어도 그들의 나이는 한국의 사회 초년생보다 적다. 세상은 이들에게 더 많은 성장의 기회를 준다. 이 부분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중년의 나에게는 심각하게 다가온다. 청춘이 세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한국의 청년들은 어떠한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중년보다는 청년들이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몇몇 이야기에서는 지나간 나의 청춘이 순간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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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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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지나간 여름의 기억을 다룬 소설이다. 일본 원제는 다른 것인데 번역하면서 책 내용과 맞춘 것 같다. 64회 요미우리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지만 간단한 책 소개만으로 그 매력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제목이나 수상작이란 정보는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띠지도 겉장도 없는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었고, 단단하고 분명한 문체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뒤늦은 나이에 소설을 썼다고 하지만 이런 단단한 문장은 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무라이 설계사무소 사람들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건축설계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소설에는 흔히 보게 되는 내부 인물 사이의 갈등이나 극적인 상황을 위한 인위적인 설정이 없다. 다만 무라이 설계사무소 직원들이 무라이와 함께 기타아사마 아오쿠리 마을의 여름 별장에 와 일을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풀어낼 뿐이다. 이들이 함께 여름 별장에 온 것은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경합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더운 도쿄보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이곳이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번거로운 고객의 만남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설계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소설의 많은 부분들이 설계와 관련되어 있다.

 

화자인 사카니시 도우루는 건축학과를 졸업한 신입이다. 그가 존경하는 건축가가 바로 무라이 슌스케다.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무라이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신입을 몇 년째 뽑지 않고 있다. 그런 곳에 자신의 설계도면을 제출하고 뽑아달라고 요청한다. 합격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회사의 신입들은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무라이 설계사무소처럼 뛰어난 건축가들이 있는 곳은 특히. 열정과 노력이 있는 신입이라면 배움의 속도는 빠르다. 자신이 존경하는 건축가가 있는 곳이라면 더욱 더. 그가 무라이 건축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그가 건축한 교회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부분을 읽을 때 그의 존경과 감탄 등이 그대로 전해졌다.

 

프로젝트가 있다 보니 이것이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여름 별장에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이야기하지만 가장 큰 이벤트는 역시 국립현대도서관 설계다. 단순히 건축물만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건물 속에 들어가는 가구와 동선과 바람의 흐름 등도 고려해야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다녔던 몇 개의 도서관들을 떠올려보지만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인터넷에 올라온 외국의 도서관 모습을 볼 때면 놀란다. ! 하나 다른 것이 있다.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지혜의 숲이다. 물론 효율적인가 하고 묻는다면 약간의 의문 부호를 남기고 싶다.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합숙을 하면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모습은 비전문가가 봐도 멋지다. 자신이 맡은 바를 최선을 다하면서 묵묵히 일하는 그들을 보면 어떤 때는 약간 답답해 보이지만 그들이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개선할 부분과 고려할 부분을 말할 때 그 간단한 도면 뒤에 어떤 일들이 있는지 알게 된다. 작가는 이 상황을 넣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건축가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준다. 그리고 젊은 남녀를 등장시켜 이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같이 다룬다. 한 여름의 무더위를 피한 곳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로맨스 말이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어느 한 곳으로 쏠리지 않았다. 변화의 바람을 살짝 넣어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면서 원래의 목적을 잊지 않고 있다. 일과 사랑과 열정이 잘 짜인 구성 속에서 단단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평생 가슴속에 품을 수 있는 일을 경험한 그곳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견고하게 다룰 수 있다는 부분에 박수를 보낸다. 큰 굴곡은 없지만 상황과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몰입도를 높인다. 역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견고한 문장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면서 남기는 여운이 새로운 이미지를 전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다룬 건축물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것도 참 오랜만이다. <마천루>와 다른 이야기인데 건축가를 다루고 있어서인지 문득 그 소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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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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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웹툰을 잘 보지 않는다. 시간도 부족하고, 매주 기다려서 볼 여유도 거의 없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많이 놓쳤다. 가끔 이 웹툰들이 책으로 나오면 읽고는 하지만 예전같은 열정은 많이 사라졌다. 이런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는 작품들은 나에게 와 닿는다. 그 중 한 편이 <신과 함께>다. 집에 쌓여 있는 수많은 만화와 소설 등을 감안하면 읽을 순번이 뒤에 있는 책인데 회사 동료가 책을 샀다고 한다. 빌려달라고 하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책을 받았을 때 당혹감이란... 이미 다른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시간 내어 읽자는 생각을 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3일만에 끝을 보았다.

 

일단 재밌다. 불교의 지옥을 단계적으로 설명하는 와중에 현실에서는 저승차사들이 달아난 원귀를 쫓는다는 설정이다. 저승과 이승을 교차하는 구성인데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현실 문제와 엮이면서 감성을 자극한다. 저승의 변호사 진기한과 저승차사 강림도령 등이 해결사 역할을 하는데 이 둘의 일 처리 방식은 다르다. 진기한은 준비가 철저하고 이성적이라면 강림도령은 감성적이다. 진기한이 변호하는 인물인 소시민 김자홍은 우리사회에서 자주 보게 되는 약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로 하여금 각 단계의 지옥을 벗어나 환생의 문으로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각 단계와 과정이 재밌게 표현되었다. 아주 오래전 석가탄신일에 방송하고는 했던 영화가 떠오를 정도다.

 

강림도령과 원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비극적인 한국의 현실을 비튼다. 왜 원귀가 되었는지 설명할 때 분노한다. 군의 수많은 의문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장교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사건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과거와 현실은 아직도 현재 진행중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성과 감정이 충돌했다. 그 장교를 아주 처참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감정과 월권행위에 대한 주저 때문이다. 그리고 자식을 군에 보낸 어머니의 모습은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아주 감상적인 연출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이기에 그렇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것은 원귀의 반응이다.

 

49재와 지옥을 연결해서 풀어낸 이야기는 한 편의 게임처럼 다루었다. 진기한 변호사가 주도한 각 단계별 지옥 넘어가기는 말도 되지 않는 장면들로 이어진다. 어느 순간은 헛웃음이 나온다. 뭐지? 하고. 그런데 단계를 지날수록 이 남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발설지옥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과 염라대왕의 반응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그리고 염라대왕이 강림도령과 진기한 변호사를 묶어서 표현한 말은 이 둘이 이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둘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한데 이 시리즈 중에 있을지 모르겠다.

 

기본적인 틀은 불교의 윤회와 업이다. 지옥은 윤회와 업을 이야기적으로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착하게 살지 않으면 이런 지옥에 갇힌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할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옥은 독사지옥이다. 왜 그곳이 지옥인지 알려주는 대왕의 말과 한 컷의 장면이 모든 것을 말한다. 저승의 모습을 현대의 도구들로 표현한 것은 재미난 설정들이다. 패러디와 풍자는 이 만화의 느낌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크게 복잡한 설정도 아니고, 그렇게 낯선 설정도 아닌데 멋진 캐릭터와 잘 짜인 연출로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 책을 빌려준 직원에게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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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암자기행 - 고요한 자유의 순간으로 들어가다
김종길 지음 / 미래의창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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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지리산을 세 번 갔다. 두 번은 대학생 때였고, 마지막 한 번은 작년 회사 워크숍이었다. 대학생이었던 그때는 한참 지리산 종주가 유행처럼 퍼졌던 때다. 고등학교 동창은 지리산 종주를 하고 왔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힘들어 보였는데 그래도 왠지 모르게 부러웠다. 세 번의 지리산 행에서 천왕봉을 한 번 올라갔고, 절은 딱 한 번 다녀왔다. 절을 간 것은 작년에 화엄사가 처음이다. 그럼 나머지 한 번은 무얼까? 그냥 백무동 계곡에서 놀다가 왔을 뿐이다. 원래 계획은 그곳에서 천왕봉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는데.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펼친 책의 내용은 나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지리산을 문학적으로, 사상적으로, 역사적으로 다루고 있다. 여섯 꼭지로 나누어 22곳의 암자를 기록했는데 단 한 곳도 가본 적이 없다. 법계사라면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올라가면서 잠시 스쳐지나갔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른 암자들은 어디선가 이름은 들은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곳들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낯설었다. 다만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은 이전에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이 사진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암자의 이름은 기억조차 못하지만 그 기둥은 이렇게 강하게 뇌리 속에 남았다.

 

22곳 중 현재 존재하는 곳은 20곳이다. 이 중에서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몇 되지 않는다. 사실은 모든 암자를 둘러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몇 곳만 추린 것이다. 그곳들은 금대암, 구층암, 불일암 등이다. 공통점은 모두 경치다. 구층암의 경우는 사진의 이미지 확인 목적이 더 강하다. 다른 곳들의 경우 경치가 나빠서가 아닌 작가의 수사에 약간 놀아난 부분도 있다. 백장암의 다불유시는 재미난 작명과 그곳에서의 볼 일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렇게 이 책에 등장하는 암자들은 각각 하나씩 나를 유혹하는 매력 포인트가 있다.

 

하나의 암자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간단하다. 어떻게 그곳을 갔는지, 그곳에서 있었던 간단 에피소드 하나 혹은 둘. 암자의 역사 이야기 등이 같이 엮여 있다. 역사 부분으로 넘어가면 정확한 자료가 없어 전설 등을 바탕으로 꾸민 것도 적지 않다. 현실 속에서는 가깝게는 빨치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의병들에 대한 기록도 보인다. 비록 지나온 시간들이지만 하나의 산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리산을 먼저 다녀간 선조들의 기록도 같이 다룬다. 낯익은 이름들이 자주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다니다가 조금씩 바뀐 길의 풍경을 경험한다. 이것이 아쉬움을 더 한다. 올라가는 길이 잘 관리되어 있어 불편함은 줄었지만 그 절을 오를 때 느낀 운치나 자연스런 투박함은 사라졌다. 매끄럽게 잘 관리된 절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자가 편리해졌지만 옛 정취가 사라졌다는 표현을 쓸 때 공감했다. 이런 공감들은 문학적으로 사상적으로 다룬 글을 읽을 때 더 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다룬 부분을 읽을 때면 학창 시절 읽었던 빨치산과 지리산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민중의 산이라고 불렸던 그 역사의 한 장면이다. 당장 갈 수는 없지만 지리산을 떠올리면 이 책 속 암자들 중 한 곳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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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코의 날
미코 림미넨 지음, 박여명 옮김 / 리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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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외로움에 빠져 본 사람은 혼자 누군가에게 말하는 자신을 가끔 발견한다. 그 대상은 꼭 누구라고 집어서 말할 수 없다. 누군가와 말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이 소설 속 화자 이르마는 그래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벨을 울렸고, 자신의 마케팅 조사원이라고 속이고 사람들을 만난다. 이 방문과 만남은 자신이 계획한 일이 아니고 우발적인 일이다. 우발적으로 한 행동이나 보니 제대로 된 질문도 할 수 없고, 그 질문에 제대로 답도 할 수 없다. 이런 그녀를 보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어리숙하고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행동에 나는 관찰자로 뒤로 빠지게 되었다.

 

화자가 주인공이지만 나는 그녀의 행동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이성이 왜? 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느끼는 불안,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 외로움 등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보여줄 때는 더욱 그랬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때면, 걱정이 미래를 불안하게 인식할 때면 이런 관찰자의 시선은 더욱 강해진다.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으니 읽는 속도는 조금 더뎠다. 그녀가 길을 잃고 헤맬 때는 어느 정도는 짜증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50대 여성의 외로움과 두려움과 불안감 등이 만들어낸 총체적인 현상일 뿐이다.

 

이르마는 비슷한 이름의 이르야에게 계속 집착한다. 소설의 시작도 이르야 이야기다. 그녀의 첫 접촉이 그녀였고, 그녀의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이의 집을 두드려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도 모르는 질문을 던지고, 이 난관을 어렵게 헤쳐나가는 순간을 처음 볼 때는 하나의 멋진 이벤트가 될 것이란 추측을 했다. 어쩌면 그녀의 행동에서 미국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본 점점 매끈해지는 방문과 대화를 예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외로움과 방문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아주 평범한 사람을 내세워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우리가 핀란드를 인식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방송국 다큐멘터리다. 다큐의 경우는 핀란드의 복지와 교육과 경제에 대부분 집중되어 있다.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대부분이다. 이런 인식은 책을 통해 다른 핀란드를 만날 때 혼란을 느끼게 한다. 사회 전체는 아주 좋게 굴려가지만 그 내부의 속사정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과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읽을 때면 같은 사람이고 누구나 같은 고민과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받쳐주는지가 다를 뿐이다. 물론 이 차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아주 어마어마한 차이다.

 

답답하고 불안하고 꼬이는 상황 속에서 하나의 의문이 있다. 화자의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아들과 엄마의 전화 대화를 들으면 서로 딴 이야기만 한다. 낯설다. 나이가 더 들어서 제대로 말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데도 이들의 대화는 일방통행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는 노력을 그렇게 기울이지 않는다. 이르마가 낯선 집을 방문했을 때 조금이나마 성장한 것은 질문지를 새롭게 만들고, 사람들의 반응을 조금 더 눈여겨보는 정도다. 하지만 이 방문은 확대되지 않고, 몇 곳에서 머문다. 자신의 행동이 신문에 나온 후부터는 불안해한다. 보통 이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그만둬야 하는데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한다. 이 돌발적이고 우발적인 행동이 더욱 관찰자로 만들고, 나의 이성은 왜? 라는 질문을 더 던진다.

 

그녀가 바라는 바람이 마지막 문장에 나온다. “그저 우리 모두가 함께이면 좋겠다고, 함께. 모두가 모두에게 친절하면 좋겠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내게는 그것이 가능해 보였다.” 소설 속 이 모두는 그녀가 만난 사람들이지만 사회 전체로 확장해석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방문이 많은 불안과 두려움을 지나왔지만 그녀 속에 희망의 씨앗을 남겼다고 봐도 될 것이다.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된 화자의 심리와 행동을 이성이 아닌 따뜻한 감성으로 다시 읽는다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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