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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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작년부터 이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두 편 모두 나의 이해 수준을 넘었다. 이번 수상작의 경우 솔직히 말해 읽는데 힘이 들었다. 화자들이 알파벳 B, D, X, Y, Z 등으로 표기되어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기 전에는 누군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본명이 아닌 익명으로 등장한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각난 파편들이다. 하나의 분명한 사건을 다루면서 뚜렷한 실체를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읽는 동안은 뭐지? 하는 기분이 더 강했다. 마지막에 와서야 이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났다. 불친절한 소설이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D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처음 이 문장을 읽을 때만 해도 이 사라진 사람들을 찾는 과정을 다루고 있겠구나, 하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 그녀가 가진 과거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면서 한 편의 멋진 스릴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 소개에 스파이 소설이란 부분이 있어 더 기대했는지 모른다. 물론 스파이 소설이지만 스파이 소설이 아니라는 평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부분에서 기대를 접지 못한 것은 이어서 등장한 기억을 잃는 남자와 자신이 스파이라고 말하는 X, Y의 등장 때문이다.

 

15년 동안의 기억을 잃은 남자가 X다.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기억의 빈 공간을 발견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빈 공간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루거나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파고들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관심이 없다. 다시 깨어난 후 스파이로 변신하고, 현재의 자신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지시를 받은 스파이 Y가 있다. 과거를 조작해 대학 동기라는 거짓말로 그에게 다가왔다. 진짜 스파이인 Y는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담당한다. 스파이 세계와 X와 소설가 Z 등을 이어주는 존재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듯한 Z가 보여준 몇 가지는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재미난 부분은 Z가 문학에 사용하는 혁명이란 단어가 이 세계에서는 금기시 되어 있다. 이 부분이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면서 그 시대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여기에 Y의 상사인 B가 등장하여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스파이 세계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가 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이 소설이 마지막에 보여주는 패자의 길이 바로 그 길이다. 바위에 계란 던지기 같은 노력이다. 그렇다고 이것을 거창하게 포장하지도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는다.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스파이들이 등장하지만 일반적인 스파이 소설이 아니다. 발달한 문명은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시 도구를 피해 다녀야 한다. 정보는 통제되고, 통제된 정보는 개인의 삶을 조금씩 지배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한다. 그 변화가 끝난 후에는 너무 익숙해져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런 세계에 혁명이라니. 얼마나 위험하고 불순한가.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스파이의 삶에서 물음은 필요 없다. 시대가 변하면서 더 강해진 통제수단이다. 달아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서는 답답하다. 은퇴한 스파이가 헌책방 주인으로 등장했을 때 여유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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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로 숨 쉬고 싶은 그대에게 - 직장인의 어깨를 다독인 51편의 시 배달
김기택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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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시인 김기택을 잘 모른다. 그의 시를 한두 편 정도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을 테지만 이름은 조금 낯설다. 몇 명의 시인을 제외하면 사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시인의 첫 산문집을 선택한 것은 시인의 산문집이란 것과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의자고행을’이라고 사무원을 표현한 시 때문이었다. 실제 이 문장을 읽을 때 나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고 느꼈다. 시인이 우리의 삶을, 사물을 어떻게 보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51편의 시는 시인이 2010년 5월부터 1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임명한 문학 집배원이었던 때 즐겨 읽거나 좋아하는 시에 짤막한 감상을 붙여 보낸 것들이다. 물론 이 산문집이 나오면서 새롭게 ‘감상에다가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체험적 시론, 삶에 대한 이런저런 잡생각들을’덧붙였다. 덕분에 한 편의 시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의 경험을 떠올려주는 이야기도 있고, 나의 이해를 넘어선 시들도 가끔 보였다. 하지만 이런 시와 산문의 결합은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한 카페에서 시를 올리고 여기에 짧은 감상을 덧붙였던 기획이 살짝 떠올라 그립기도 했다.

 

이전에 문학 집배원에서 온 글들을 그냥 대충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정독하는 경우도 있지만 웹으로 오게 되면 그냥 대충 보고 삭제한다. 시의 경우는 왠지 모르게 더 집중이 되지 않는다. 아직 아날로그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그리고 51편의 시와 시인들 중에서 낯익은 시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늘 이런 시 모음집을 읽으면 낯선 시인들을 만난다. 그러다 몇 명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물론 휘발성 기억은 며칠 가지 못한다. 반면에 오래전 멋모르고 읽었던 시인들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당연히 이런 시인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많은 시집을 생각하면 조급증이 생기기도 한다.

 

나에게 시는 참 어렵다. 얼마 전에 읽은 시인의 산문집 한 권으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는데 이번에 다시 그 자신감이 사라졌다. 날림으로 읽고, 대충 공부한 탓이다. 이 산문집을 사계절로 편집되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탄력의 통쾌함, 나의 세상의 중심이다, 사랑에는 기교가 필요하다, 난폭한 슬픔 길들이기 등으로 작은 제목을 정했다. 읽기 편한 것이 봄이라면 겨울의 시는 무심코 읽다가 시인의 해석을 읽고 다시 보면서 그 난폭함에 놀란다. 정제된 단어와 문장이 만들어낸 시어들은 왜 시인들이 사물을 다르게 보는지 잘 보여준다. 박주택의 <국경>, 장경린의 <퀵 서비스>, 유홍준의 <가족사진>, 정철훈의 <병사들은 왜 어머니의 심장을 쏘는가> 등이 특히 그렇다.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면 이면우의 <거미>가 떠오른다. 지독한 외로움이라고 저자는 말했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나이듦이다. 거미가 지은 집을 두로 나이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떠올랐다. 몇몇 시는 나의 오독인지 모르겠지만 시인의 해석과 달랐다. 경험의 차이 탓일까? 아니면 제대로 읽지 않은 탓일까?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나의 시 세계도 조금은 넓혀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정병근의 <물방울, 송곳>은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물방울이 오랫동안 송곳 역할만 했다고 생각한 나에게 ‘자신의 고통을 떨어지기 직전의 물방울에 담았다’고 했을 때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회사원으로 일하며 시를 쓴다는 것의 어려움을 말한 에피소드 중 영수증과 돈에도 시어들을 적었다는 부분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제는 메모지를 들고 다닌다고 하지만 출퇴근길에 떠오른 시상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잘 드러났다. 물론 이것으로 한 편의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갈고 다듬어 한 편의 시로 만들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날에 뚝딱 시를 읊던 시인과 퇴고의 고사가 떠올랐다. 시와 산문의 결합은 왠지 모르게 산문에 더 눈길이 간다. 시를 좋아하고 쉽게 이해한다면 다르겠지만 나처럼 이해의 폭이 좁은 사람에게는 산문이 더 쉽다. 산문으로 시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저자의 감상이 나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조금 난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편집은 시를 쉽게 접하게 만든다. 시인이 쓴 산문집이라면 더욱 더 반갑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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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골사람 - 일상이 낭만이 되는 우연수집가의 어반 컨추리 라이프
우연수집가 글.사진 / 미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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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수집가란 블로거를 잘 모른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홍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사는 사람의 이야기란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어디지? 하고 생각했다. 읽으면서 김포라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가까운 곳에 이렇게 멋진 집이 이렇게 저렴하게 나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김포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다. 가끔 지나간다. 그런데 요즘 고층 아파트만 도로에서 보인다. 물론 내가 잘 다니지 않는 길에는 저자가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곳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으로 올 때까지만 해도 ‘나도 한 번!’ 하고 살짝 꿈꿨다. 하지만 이 집의 계약이 끝나고 재개발이 된다는 사실을 읽고는 참으로 아쉬워했다. 뭐 좀 더 발품을 팔면 비슷한 곳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게으름이 이것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도시골사람. 이 단어는 저자가 만들어낸 조어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요즘처럼 대부분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고,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저자처럼 자영업을 하거나 프리랜스가 아니라면 더욱 어렵다. 직장인에게 이런 곳에 살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의지와 열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도시의 일상에 찌들려 살아간다면 한 번쯤은 고려할 만한 삶이다. 물론 살면서 잘했다는 생각과 내가 미쳤지, 라는 생각이 수없이 교차할 것이다. 그러다 대부분은 떠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응해서 산다면 이 책의 저자처럼 많은 것을 자연에서, 삶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름처럼 저자가 김포에 내려와 살게 된 것은 우연이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후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차로 홍대 15분이지만 그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버스는 빙 돌아 한참 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을 그는 아주 충실하게 사용했다. 글 속에 나온 것처럼 대부분 사람들은 게임이나 카톡 같은 것으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이전에 출퇴근 전철을 타면 책을 꺼내 읽었는데 요즘은 운전을 하면서 팟캐스트를 주로 듣다 보니 나의 시간이 많이 사라졌다. 출퇴근 시간이 짧아졌고, 생각할 여유도 많이 사라졌다. 이런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사용한다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하는 물음에 하나의 모범 답안 같다.

 

김포에 내려와 넓은 텃밭을 가꾸며 사는 그의 일상은 여유롭다. 새로운 동거인과 낯선 공간에서의 삶은 불안감을 주지만 그는 의외로 잘 지낸다. 읽으면서 주변 친구들이 생각보다 자주, 혹은 많이 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친구 중에 이런 집에 산다면 생각보다 자주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배우자와 친구의 양해가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친구의 두 딸이 생각보다 잘 노는 것을 보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예전에 후배 아이들이 아주 재밌게 자기들끼리 노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상을 블로그나 SNS에 올린 글을 가볍게 적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뒤로 가면서 자신의 철학을 조금씩 녹여내는 모습을 보고 바뀌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편안한 방식의 삶을 버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려는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불안하고 무모해 보이지만 그의 현재는 분명히 나의 현재와 미래보다 알차고 재미있어 보인다. 그의 생각들이 하나씩 흘러나올 때 휙휙 넘어가던 이야기들이 집중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주 깊은 곳으로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새롭게 배울 수 있는 것이었다.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 세계를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늘 쫓기는 듯한 삶을 사는 나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주었다.

 

가볍게 읽기 좋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이 사진작가가 찍은 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이야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다만 사진 밑에 쓴 글자들의 색깔이 노안 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늦은 밤 형광등에 반사된 글자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쉬운 부분이다. 솔직히 그는 성공한 사람이다. 파워블로거에 연예인을 몇 명 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비록 그 돈이 엄청난 부가 아니고 늘 엑셀로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수준일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의 열정과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몇몇 부분에서는 개인적으로 과장된 것처럼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유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배우고 움직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소한 즐거움과 재미가 많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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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스패로우 3 - 배반의 궁전 버티고 시리즈
제이슨 매튜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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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치열한 첩보전이 다시 시작했다. 이 시리즈가 이렇게 빨리 나올 것이라고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반가웠다. 이전 작품이 도미니카의 스파이 성장기에 가깝다면 이번은 실전이다. 속고 속이고, 함정에 만들고 그 함정 위를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가는 스파이들의 모습은 읽는 내내 긴장감을 준다. 전편이 도미니카가 CIA 편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차분히 보여주었다면 이번은 더 강렬한 모습으로 그것을 정당화시킨다. 그리고 스파이 초보에서 권력의 핵심으로 더 다가간다. 비록 그 과정은 불안과 공포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지만.

 

전편에서 헤어진 도미니카와 네이트는 서로의 생존을 모른 채 지낸다. 도미니카는 새로운 임무를 받고 다시 러시아를 떠난다. 이번에는 이란의 핵 과학자다. 그를 포섭해서 이란의 핵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아내는 것이 주된 임무다. 스패로우인 우드란카를 이용해 섹스의 늪으로 빠트리고 동영상 등으로 그를 협박한다. 그가 가진 정보가 핵기술의 원천이거나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몰래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는 이란에게는 아주 중요한 기술이다. 만약 핵무기가 만들어지면 중동에 새로운 파란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미국에게는 아주 중요한 정보다. 물론 러시아에게도 마찬가지다.

 

도미니카의 승진이 반갑지 않은 인물이 있다. 상사인 주가노프다. 고문기술자 출신인 그는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바란다. 이런 그에게 내부의 두더지를 발견하고, 푸틴의 관심을 끄는 도미니카가 반가울 리가 없다. 전편에서도 그녀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보냈는데 이번에도 폭력배를 보낸다. 도미니카는 겨우 살아난다.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CIA 정보원으로 다시 활약하게 만든다. 그녀의 생존과 새로운 정보를 기다리고 있던 네이트와 그의 상사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스파이 활동이 시작하고, 서로 떨어져 있던 두 연인은 다시 만난다.

 

이들의 첫 공동 작업은 이란의 핵무기 기술에 대한 것이다. 푸틴은 이 정보를 가지고 장사를 하려고 한다. 정보는 곧 돈이다. 권력이다. 푸틴은 핵 기술자 관리는 도미니카에게 맡기고, 이란의 핵 원료 처리를 위한 장비 등의 거래는 주가노프에게 맡긴다. 도미니카가 더 많은 정보를 가져오면 올수록 주가노프의 입지는 약해진다. 비열하고 잔인한 그는 이란 정보원에게 배신자에 대한 정보를 흘린다. 도미니카의 승진을 막고, 이란 암살자들에게 죽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연인을 만나 행복감에 젖어 있던 이 둘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참극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둘을 잡기 위한 몰이가 시작한다. 쉽게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적도 이 부분에서 프로들이다. 힘든 탈출이 이어진다.

 

이번 작품에서는 CIA 내부에서도 배신자가 생긴다. 승진 누락에 불만을 품은 앙주빈이다. 고위직인 그는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돈이다. 도미니카와 러시아 장군의 이유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앙주빈의 등장은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 넣고, 내부 스파이는 어디에도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내부 첩자를 찾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 정보국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진다. 자신들의 배신자는 찾고, 자신의 정보원은 보호해야 한다. 앙주빈이 가진 정보는 미국 스파이에게 아주 치명적이다. 러시아도 최고의 스파이를 보내 그에게서 정보를 빼내려고 한다. 내부 첩자를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아주 잘 보여준다.

 

기존 인물들이 나와 반가웠다면 새로운 인물들이 이야기에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변함없는 관료와 적합하지 않은 인사로 인한 문제가 이어진다. 최고의 스파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인물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도 이런 관료들이다. 능력보다 정치를 통해 승진한 사람들. 이것이 CIA의 문제라면 러시아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을 승진시키면서 문제가 된다. 이런 인물이 푸틴이 바라는 것을 이룬다고 해도 더 높은 지위는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내부적 경쟁과 투쟁은 권력자들이 바라는 바이기는 하다.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문제지.

 

처음에는 약간 속도가 더뎠다. 이전 기억을 되살리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에 적응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방 빠져들기 시작했다. 액션이 주가 되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잘 짜인 구성과 상황만으로 긴장감을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는 도미니카가 스패로우에서 배운 기술을 이용해 정보를 빼낸다. 몸과 이성은 따로 논다. 그녀 곁에는 먼저 죽은 영혼들이 머물고 있다. 주가노프가 고문을 행하는 몇몇 장면은 아주 잔혹하다. 이전 작품과 달리 푸틴이 많이 등장한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독재와 권력형 비리의 정점을 보여준다. 정면이 아닌 어둠 속에서 정보를 가지고 상대방을 속이려는 두 집단의 대결은 냉전 이후 힘을 잃었던 스파이 소설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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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희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2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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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피처럼 붉다>를 읽고 조금 실망했었다. 그녀의 활약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 많은 것을 녹여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러다 다시 읽게 된 이 시리즈 2권은 전편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과 등장인물들을 통해 간결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시리즈란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별도로 읽어도 이해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는 내용이다. 실제로 전편의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기 전 이전 서평을 찾아본 정도에서 기억 몇 개를 살짝 떠올리는 정도일 뿐이다.

 

이번 소설도 <흰 눈과 붉은 장미>란 동화를 변주해서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솔직히 이 동화 내용을 모른다. 관심이 생기면 나중에 찾아 읽어볼 예정이다. 그러니 이 부분은 넘어가자. 전편에서 죽을 수도 있었던 힘든 경험을 한 루미키가 이번에는 프라하에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이 위기의 시작은 그녀에게 다가와 ‘내가 네 언니인 것 같아’라고 젤렌카가 말하면서부터다. 스웨덴어로 이 말을 했고, 스웨덴어 때문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뻔한 출생의 비밀 이야기가 이어진다. 오래 전 아빠가 프라하에 와서 한 여자를 만났고, 임신한 것을 모른 채 떠났다는 이야기. 이 진부한 이야기가 아빠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순간 의심의 그림자가 조금씩 지워진다. 다음날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이 둘이 만날 장소와 시간은 젤렌카가 일방적으로 정한다. 루미키는 시간에 맞춰 그곳에 간다. 출생의 비밀을 듣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알려면 아빠에게 전화해서 확인하면 되는데 그녀는 이것을 주저한다. 젤렌카 엄마가 죽은 후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고, 그녀의 새로운 가족에 대해 알려준다. 그런데 이 가족이 문제다. 이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져 있지 않고, 하나의 믿음으로 이어져 있다. 이상한 컬트 종교단체다. 이 컬트 조직을 조사하는 한 명의 야심만만한 기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이르지다. 이 조사와 보도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냥 스쳐지나갈 인연이었을 이 둘이 연결되는 것은 컬트 종교단체의 내부고발자가 차에 치여 죽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는 시점도 바로 이 교통사고 소식을 들을 때다. 젤렌카의 말이 그녀의 기억을 정밀하게 되짚으면서 이르지와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얼핏 본 듯한데 이르자가 근무하는 방송국을 떠올린다. 대단한 기억력이다. 이때까지는 한 명의 관광객이었는데 이르자와 만나면서 그녀도 이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간다. 그와 만남이 새로운 변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그녀에게 킬러를 보낸다. 재빠른 행동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루미키의 기지와 행운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보통 액션 영화라면 멋진 액션으로 킬러를 제압하겠지만 그녀는 평범한 십대(?)일 뿐이다. 이후에도 그녀는 숨고 달아나고 또 달아나 킬러의 마수에서 벗어난다.

 

전편과 달리 이번 악당은 인간의 약한 심리를 노렸다. 이전에도 많았던 컬트 종교단체의 집단자살 문제를 다룬다. 물론 이 문제를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깊이 파고들어 분석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소재로 삼을 뿐이다. 이런 부분이 이 소설의 재미를 더 만들지 못하고 있다. 대신 빠르고 간결한 진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읽으면서 의문을 품게 되는 부분이 몇 있다. 하나는 앞에서 말한 이르지의 수첩을 기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에 음모를 꾸민 사람을 너무나도 일순간에 파악하는 것이다. 전자가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라면 가능하겠지만 후자는 충분한 정보가 쌓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갑가기 힘을 잃는다. 이어지는 군더더기 없는 마무리는 깔끔하다.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에 살을 붙여 상상하게 만든다. 이제 마지막 이야기로 가서 그녀를 계속 뒤흔드는 존재에게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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