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암자기행 - 고요한 자유의 순간으로 들어가다
김종길 지음 / 미래의창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살면서 지리산을 세 번 갔다. 두 번은 대학생 때였고, 마지막 한 번은 작년 회사 워크숍이었다. 대학생이었던 그때는 한참 지리산 종주가 유행처럼 퍼졌던 때다. 고등학교 동창은 지리산 종주를 하고 왔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힘들어 보였는데 그래도 왠지 모르게 부러웠다. 세 번의 지리산 행에서 천왕봉을 한 번 올라갔고, 절은 딱 한 번 다녀왔다. 절을 간 것은 작년에 화엄사가 처음이다. 그럼 나머지 한 번은 무얼까? 그냥 백무동 계곡에서 놀다가 왔을 뿐이다. 원래 계획은 그곳에서 천왕봉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는데.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펼친 책의 내용은 나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지리산을 문학적으로, 사상적으로, 역사적으로 다루고 있다. 여섯 꼭지로 나누어 22곳의 암자를 기록했는데 단 한 곳도 가본 적이 없다. 법계사라면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올라가면서 잠시 스쳐지나갔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른 암자들은 어디선가 이름은 들은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곳들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낯설었다. 다만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은 이전에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이 사진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가! 암자의 이름은 기억조차 못하지만 그 기둥은 이렇게 강하게 뇌리 속에 남았다.

 

22곳 중 현재 존재하는 곳은 20곳이다. 이 중에서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몇 되지 않는다. 사실은 모든 암자를 둘러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몇 곳만 추린 것이다. 그곳들은 금대암, 구층암, 불일암 등이다. 공통점은 모두 경치다. 구층암의 경우는 사진의 이미지 확인 목적이 더 강하다. 다른 곳들의 경우 경치가 나빠서가 아닌 작가의 수사에 약간 놀아난 부분도 있다. 백장암의 다불유시는 재미난 작명과 그곳에서의 볼 일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렇게 이 책에 등장하는 암자들은 각각 하나씩 나를 유혹하는 매력 포인트가 있다.

 

하나의 암자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간단하다. 어떻게 그곳을 갔는지, 그곳에서 있었던 간단 에피소드 하나 혹은 둘. 암자의 역사 이야기 등이 같이 엮여 있다. 역사 부분으로 넘어가면 정확한 자료가 없어 전설 등을 바탕으로 꾸민 것도 적지 않다. 현실 속에서는 가깝게는 빨치산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의병들에 대한 기록도 보인다. 비록 지나온 시간들이지만 하나의 산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리산을 먼저 다녀간 선조들의 기록도 같이 다룬다. 낯익은 이름들이 자주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다니다가 조금씩 바뀐 길의 풍경을 경험한다. 이것이 아쉬움을 더 한다. 올라가는 길이 잘 관리되어 있어 불편함은 줄었지만 그 절을 오를 때 느낀 운치나 자연스런 투박함은 사라졌다. 매끄럽게 잘 관리된 절의 풍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자가 편리해졌지만 옛 정취가 사라졌다는 표현을 쓸 때 공감했다. 이런 공감들은 문학적으로 사상적으로 다룬 글을 읽을 때 더 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다룬 부분을 읽을 때면 학창 시절 읽었던 빨치산과 지리산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민중의 산이라고 불렸던 그 역사의 한 장면이다. 당장 갈 수는 없지만 지리산을 떠올리면 이 책 속 암자들 중 한 곳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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