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제국 미스트본 1
브랜던 샌더슨 지음, 송경아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미스트본 시리즈 1권이다. 아주 두툼하다. 848쪽이다.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하는데 모두 읽은 지금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하다. 아마존에 들어가 2부인 <승천의 우물>에 대한 평을 살짝 읽었는데 대체로 좋은 평이다. 별 네 개 반이다. 물론 나쁜 평도 가끔 보인다. 쪽수를 먼저 이야기했으니 한 마디 더 하자. 최근에 이렇게 두툼한 책이 많이 나온다. 분권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비록 들고 다니며 읽기 힘들기는 했지만. 2부의 분량을 확인하니 1부보다 더 두툼하다. 과연 한 권으로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정통 판타지라고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 <반지의 제왕>에서 본 것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현대 판타지물을 가상의 세계 속에 녹여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주인공의 능력 때문이다. 금속을 태워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설정인데 이 능력이 너무 빨리 발전한다. 빠른 것에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무협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실제로 여주인공 빈이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고 하나씩 지식을 터득하는 과정은 무협 속 장면을 연상시킨다. 능력이 아니라 가르침에 대한 부분 말이다.

 

세계의 구세주였던 로드 룰러가 절대권력을 천 년 동안 행사하는 세계를 다룬다. 무려 천 년 동안이나 로드 룰러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지배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그는 귀족과 오블리게이터라는 공증인을 만들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심문관이라는 괴물도 만들었다. 이 세계는 귀족과 빈민이자 노예인 스카로 이루어져 있다. 로드 룰러는 귀족과 스카의 결합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귀족과 스카의 혼혈이 생기면 무조건 죽인다. 이 소설의 설정 중 하나는 바로 스카를 보는 귀족들의 시선과 로드 룰러의 천년 지배에 지친 스카들의 대립이다.

 

빈은 스카다. 하지만 귀족 혼혈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만 아는 채 할 수 없다. 만약 아는 채 한다면 바로 죽는다. 기득권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 때문이다. 빈은 최하층에서 겨우 생존을 유지한 채 살고 있다. 도둑의 두목 밑에서 폭력에 휘둘리지만 목숨만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한 미스트본을 만난다. 바로 켈시어다. 누구도 살아 돌아온 적이 없었던 하스신의 갱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의 생존은 하나의 전설이다. 그가 갱에 가기 전에는 미스트본이 아니었다. 아내의 죽음이 그를 미스트본으로 이끌었다. 여기서는 ‘끊어졌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주 큰 고통 뒤에 오는 현상이다. 초능력의 각성하는 계기는 바로 이 ‘끊어짐’이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로맨서라는 존재를 알아야 한다. 알로맨서는 각각 하나의 금속을 태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이것을 알로맨시라고 한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철, 강철, 주석, 백랍, 아연, 황동, 구리, 청동 등을 태워 각 금속 고유의 능력을 발휘한다. 보통은 하나의 능력만 가지지만 특별한 존재는 늘 존재한다. 이 모든 능력을 가진 사람을 미스트본이라고 한다. 이 미스트본은 귀하지만 아주 희귀한 존재는 아니다. 귀족들이 최소한 한두 명 정도의 미스트본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미스트본의 싸움과 활약을 보여줄 때 그 화려함이 극대화된다. 이 미스트본도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으면 그 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다. 켈시어도, 빈도 모두 훈련을 받았다.

 

이야기는 두 사람의 시점으로 대부분 처리된다. 바로 하스신의 생존자인 켈시어와 도둑 소녀 빈이다. 천년 동안 고착화된 마지막 제국에서 누구도 로드 룰러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그의 권위는 강해진다. 이 제국을 뒤흔들 계획을 세우는 인물이 있다. 바로 켈시어다. 지배계급인 귀족과 피지배계급인 스카로 고정된 이 세계에 혁명의 바람을 불어넣으려고 한다. 하스신의 갱에 갇히기 전에도 그는 아주 뛰어난 도둑이었지만 미스트본이 된 지금은 더욱 대담해지고 유능해졌다. 반란을 위해 동료를 모으고, 스카들을 반란군으로 키운다. 이 계획을 직관적으로 보면 아주 허술하다.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순간순간 계획을 조정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빈은 불쌍한 아이다. 오빠가 스카들의 배신을 말한 것을 철석 같이 믿는다. 자신을 눈에 띄지 않게 숨기고, 언제나 달아나려고 준비한다. 처음에 켈시어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켈시어와 그의 동료를 만나면서 우정과 동료애를 배운다. 귀족들의 정보를 얻기 위한 스파이가 되어서는 사랑하는 남자도 만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바로 빈과 엘란드의 연애담이다. 너무 흔하고 뻔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이 설정 때문에 빈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사랑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더구나 그들은 아직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십대다.

 

각 금속을 태우면서 생기는 능력을 아주 자세하게 분류했다. 미스트본의 능력과 차별되는 전문가의 능력은 새로운 재미를 준다. 이 부분이 앞에서 말한 무협의 한 장면과 닮았다. 매일 떨어지는 재와 꽃의 색을 모르는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혁명의 기운은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하지만 이 거대한 물결은 단숨에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전체를 뒤덮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아주 종교적인 장치를 이용했다. 뒤로 가면서 더욱 속도감 있게 읽힌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덧붙여 다음 이야기의 암시도 같이 나온다. 더 두툼할 다음 이야기를 벌써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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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강, 꽃, 달, 밤 - 당시 낭송, 천 년의 시를 읊다
지영재 편역 / 을유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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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唐詩)에 관심이 많았다. 한창 무협에 빠졌을 때 작가들은 작품 속에 당시 한두 편 정도는 늘 넣었다. 한자의 한국음은 대충 읽을 수 있었지만 모르는 몇 단어와 번역 상의 문제로 작가의 해석을 따라갔다. 학창 시절에는 한문 수업을 들으면서 당시를 몇 편 해석한 적도 있었다. 문고판 당시집을 샀지만 한국 시인의 시도 읽지 않던 시절이라 몇 편 힘겹게 읽다가 그만 두었다. 이런 이력들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시인과 제목들은 어딘가에 한두 번 이상은 본적 있다. 그만큼 유명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당시의 일곱 형식으로 먼저 나누었다.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고시, 칠언고시, 악부 등이다. 모두 52수가 실려 있는데 각 시는 나라 소리 읽기, 한자새김, 어휘 풀이, 번역, 역주, 간체자와 한어 병음 자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 소리 읽기는 한자의 한국 음을 말하는 것인데 저자는 당시 운율의 3요소인 평측, 분구, 압운을 각 시마다 표시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사극 드라마 등에서 시를 읽던 모습을 떠올리는 생각보다 쉬웠다. 몇 편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서 들은 엉터리 ‘~하고’같은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이것은 또 한어 병음 자모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엉터리 중국 발음으로 읽으면서 괜한 만족감을 느낀다.

 

형식으로 나누고, 모르는 한자와 해석에 먼저 눈길을 주다 보니 당시의 매력을 잘 느끼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괜한 트집일 수도 있는데 시의 번역도 왠지 이전에 알고 있는 것과 다르거나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몇몇 있었다. 학자의 번역이라 그런가, 아니면 번역의 다양성 탓인가. 아니면 나의 공부 부족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뿌듯하게 만드는 것은 지명 등이 나왔을 때 장소라는 것을 알고, 이 시를 읽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기억하지 못함으로 인한 아쉬움이 금방 찾아왔지만.

 

당시의 형식에 대해 이전에는 잘 몰랐다. 악부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오언 어쩌고, 칠언 어쩌고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나누어져 있다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했다. 조금 더 공부하면 이 구분이 좀 더 쉬워질 것 같다. 목차를 보다 보면 유난히 많이 보이는 이름들이 있다. 바로 시선 이백과 시성 두보다. 이백은 여덟 편, 두보 아홉 편의 시가 책에 실려 있다. 52수의 당시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이 둘의 시가 당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을 읽다가 역자의 감상이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도 있었다. 경의중안선 월롱역을 보고 월롱이란 단어의 유래와 연결한 부분이다. 다른 역도 나중에 나오는데 분명하지 않은 사실을 감상과 엮어 풀어낸 것이 재미있는 상상이 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편집자들의 노력 부족일지도 모르겠다. 힘겹게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 괜한 트집을 잡아본다. 실제로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쉽게 읽을 수 없었다. 한자의 뜻과 시의 해석이 나누는 부분이 있고, 주어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한자를 안다고 시를 쉽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외우는 것이 요긴하다고 각 형식의 장마다 적어놓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자주 봐 한 문장 정도는 외우는 것이 적지 않지만 한국 시 한 편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나에게 당시 한 편을 전부 외우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외우는 문장이 늘어날 것 같다. 한국 시가 조금씩 나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처럼 당시도 자주 읊조리면 그 이미지가 조금씩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그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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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 그리고 아빠
나카가와 미도리 & 무라마츠 에리코 지음, 박규리 옮김 / 로크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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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추억이 소록소록 자랐다. 내가 아이였던 때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 여백 많은 그림 속의 행동과 대사는 그 추억을 되살려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어쩌면 이 추억들이 나만의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의 아이와 친구의 아이들과 조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차곡차곡 쌓였던 추억들이 이 한 편의 간결한 만화 에세이 속에서 튀어나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감할 문장들도 자주 눈에 들어왔다. 남자인 내가 이 정도라면 여자들은 어떨까? 마지막에 아빠도 살짝 넣어주었는데 이 또한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나의 아버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지만.

 

책을 펼치면 언제나 역자를 한 번 힐끔 본다. 박규리? 낯익다. 여자 아이돌그룹 ‘카라’의 멤버였던 그녀다. 잠깐 동안 예전에 있었던 번역자 논란이 잠시 떠올랐다. 동시에 ‘카라’의 일본 활동 등을 생각하고 책을 몇 쪽 넘기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몇몇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만 일본어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번역에 대한 나의 오만한 생각이 덧붙여진 것이다.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니 현재까지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더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이 생각은 바뀔 것이다.

 

가슴에 와 닿은 문장과 장면들이 많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해도 엄마가 아니면 안 되는 일상의 걸들.”, “아마 엄마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육아’ 같은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같은 문장은 정말 공감하게 만든다. 내가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강요된 모성에 휘둘려 이상적인 육아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나도 포함해서) 부모가 바라는 삶을 살지 않는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매일매일의 노력을 알아차리게 되었다.”란 글에서 일상이란 것의 무서움과 힘겨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재밌는 장면도 자주 보인다. 힐끔 보다가 놀라 본 장면 중 하나는 엄마가 화장실에 앉아 있고 밖에는 다른 사람들이 대기 중인데 아이가 “엄마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이의 순수함과 어른의 당혹감이 한 컷 속에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아빠가 아이와 놀면서 아이가 삽이 없다고, 벌레 책이 없다고 할 때 아내에게 “어디 있어?”라고 물을 때 ‘나도 그랬지’와 우리의 아버지들이 떠올랐다. 자신들이 물건을 정리하지 않으니 제대로 찾지도 못한다. 늘 놓아두는 곳에 두어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아빠들이 떠올랐다.

 

‘엄마와 나’과 원래 제목이고 ‘그리고 아빠’ 보너스다. 아빠인 나에게는 엄마와 나만 나와 살짝 불만이었는데 이 보너스로 불만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사진에도 영상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리고 계속 기억하고 싶은 엄마와 나의 많은 순간.”이란 문장을 읽으면서 옛 기억들 몇 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기억들은 추억이 되었고, 아련한 감정을 불러왔다. 잠시나마 추억에 빠져 감정의 늪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내 아이에게도 아주 많은,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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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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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 지에벨의 책은 처음이다. 워낙 이곳저곳에서 이 작가의 책과 서평을 보았기에 한두 권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산 책 중에서도 당연히 한두 권 정도는 있었다. 이 작가의 소설인줄 알고 있던 책의 작가를 찾아보니 다른 작가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나의 기억은 점점 퇴색해지고 부정확해지고 있다. 검색을 좀 더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이런 현상은 점점 많아질 것 같다. 왜 이런 글로 시작하냐고? 그것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딘가에서 본 듯한 설정과 전개 때문이다. 단순히 로드무비 때문만은 아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란 사실이 먼저 유혹했지만 여기에 더 눈길을 끈 것이 하나 있다. 그녀의 평소 작품과 달리 이번에는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책소개다. 사실 이 부분은 거의 책 후반부에 잠시 다루어진다. 로드무비 형식을 따라 진행되다 보니 다양한 프랑스 지역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문제라는 것이 하나의 작은 소재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또 이것이 사건의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주요 장치도 아니다. 현실의 한 면을 있는 그대로 아주 짧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기대와 달라 조금 아쉽다.

 

잘 나가는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 프랑수아 다뱅은 어느 날 뇌종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술도 완치도 불가능하다. 방사능 치료를 하면 조금 더 사는 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봐야 겨우 두세 달 정도다. 이 충격적인 사실이 그로 하여금 일탈하게 만든다. 차를 몰고 지방으로 달려간다. 그러다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한 남자를 태운다. 폴이다. 폴은 리옹으로 가려고 한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던 프랑수아는 그와 같이 간다. 자신의 죽음만을 의식하던 그이기에 폴의 행동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폴이 마음만 먹으면 프랑수아의 돈과 차를 쉽게 훔쳐서 달아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폴을 단순한 도둑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한 프랑수아다. 그런데 뇌종양이라니. 아내에게 연락도 하지 않는다. 폴과의 동행도 아주 우발적이다. 이야기의 초반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리옹에서 평범한 로드무비가 액션으로 변한다. 폴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작가는 이 폴의 정체를 단숨에 밝히지 않는다. 도망치는 와중에 하나씩 그 정체를 흘린다. 왜 쫓기는지도. 그렇게 드러나는 정체는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놀랍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의 직업 때문이다. 그렇다고 폴의 정체를 두고 깊이 있는 고뇌나 갈등이 크게 대두되지는 않는다.

 

로드무비가 액션으로 본격적으로 바뀌는 것은 프랑수아가 자신의 위치를 아내에게 말한 후부터다. 이 사실을 폴의 적이 알게 되고, 그들이 머무는 집을 그들이 찾아온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희생자가 생긴다. 평범한 변호사인 프랑수아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갈등한다. 순간적으로 떠난다. 폴과의 동행을 통해 잊고 있던 삶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즐기는 그이기에 이 잠깐 동안의 이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곧 죽을 몸이란 사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삶의 의지를 남용하지 않아서 좋았다. 가끔 곧 죽을 텐데 하면서 너무 쉽게 변하는 사람을 보면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섬세한 심리 묘사는 힘을 느끼게 만든다.

 

로드무비에 액션을 더하고, 나이 차이가 큰 두 남자의 강한 우정 혹은 부자의 정을 곁들였다. 낯익은 설정과 전개는 후반부로 가면서 속도감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폴의 과거와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가 액션과 버무려진다. 잔혹한 살인은 거침없이 진행된다. 첫 시작과 너무 달라진 마무리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이 바로 사회문제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자신들의 산업폐기물을 아프리카에 버린 사건 말이다. 이 문제점에 대한 작가의 결론은 아주 현실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암시는 폴의 새로운 등장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삶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인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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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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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이란 작가를 처음 인식한 작품은 <국가의 사생활>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때 쓴 리뷰를 읽으니 통일한국의 모습보다 장르소설에 대한 불만이 눈에 들어온다. 최소한 통일한국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다음으로 읽은 작품은 <밤의 첼로>였다. 역시 나의 평가는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부분보다 다른 곳에 눈길이 더 가면서 생긴 차이다. 하지만 이렇게 작가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쉽지 않다. 늘 읽은 작품도, 작가도 잊어먹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다시 기억하게 된 것은 역시 신경숙의 표절 시비다. 이때 두 문장을 보고 하늘 아래 새로운 문장이 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의도적인 것이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한두 작품이 아니라면?

 

이 책 아주 두툼하다. 800쪽이 넘는다. 얇은 종이를 사용했다면 부피가 덜할 텐데 비채에서 늘 사용하는 용지다. 표지를 보면 왠 촌스러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이설집이라니. 그는 이설(異說)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나의 산문들이 그저 그럴듯한 산문이 아니라 그 누구의 무엇과도 비슷하기를 거부하는 이설(異說)이기를 바랐”다고. 그리고 “내가 작가로서 치러낸 내 청춘의 모든 백병전들에 대한 수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어떤 책들보다도 이 책을 사랑하고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1996년부터 2016년까지 긴 세월을 담고 있고, 그 글들 속에는 그의 삶과 철학과 문학관과 절망과 비아냥대는 일과 독설과 냉혹한 현실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책은 일곱 부로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5부 ‘토토는 생각한다’와 6부 시‘인 함성호 씨’가 없었다면 읽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7부의 ‘바다 위 밀봉유리병 속에서’는 5부와 6부를 생각하고 다가갔다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의 연장선 혹은 단서들이 나와 깜짝 놀라며 속도가 더뎌졌다. 처음에는 SNS 등에 올린 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글과 행동이 사뭇 다른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대표적인 것이 신경숙의 표절 시비를 두고 보여준 그의 인터뷰다. 날선 독설과 달리 그 사건이 불러온 파급효과가 그를 신중하게 만든 것 같다. 사건의 확대나 비약을 자제하려는 모습에서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4부 ‘참호에서의 책읽기’는 서평을 다룬다. 책은 그에게 동지이자 참호다. 많지 않은 서평이라 아쉽다. 읽었던 책에서는 다른 시각과 해설이라 재미있었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은 관심을 고조시켰다. 몇 권 더 사거나 다시 읽어야 할 책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의 <불구가 된 미국>에서 그가 말하는 몇 가지는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트럼프를 두고 다른 쪽에서 말한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 구분은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4년 동안의 미국이 과연 지난 8년 동안의 오바마 미국과 어떤 차이가 있을지 잘 지켜봐야 한다.

 

3부 ‘전장에서’는 눈길을 끄는 몇 편의 글이 있다. 일단 그의 작품을 둘러싼 인터뷰가 있고, 산문가 김수영에 대한 글이 있다. 인터뷰는 솔직히 말해 평범했다. 다른 작가들보다 조금 날이 선 듯한 표현이 보이지만. 김수영 전집 2권에 대한 그의 집착(?) 혹은 애정은 놀라울 정도다. 과연 나는 이런 적이 있었나, 하고 물어볼 정도다. 그의 문장에 대한 집착과 열정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 작품을 읽고 문장의 아름다움이란 것을 처음 깨달았다. 늘 다시 읽으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개인적으로 <국가의 사생활> 이탈리아판 서문은 너무나도 전형적인 모습이라 놀랐다. 신경숙의 표절을 둘러싼 이야기도 여기에 나온다.

 

2부 ‘광장에서’의 날선 글들은 자극적이다. 그는 묻는다. 보수, 진보, 중도, 국가, 민주주의, 지식인, 김구와 이승만, 20세기, 이념, 통일 대한민국, 인간, 신문맹인 등. 이 글들을 읽다 보면 그가 정치적으로 좌와 우 양쪽을 다 비판하는 양비론자처럼 보이지만 전체를 차분하게 읽다 보면 자신의 주장처럼 중도를 걷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하는 솔직함은 진영의 논리를 초월한다. 통섭과 융합에 대한 글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했던 그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작가도 말했듯이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유행을 쫓아 끄적였던 그 글들 말이다.

 

1부 ‘보리수 아래에서’는 1996년 10월에 쓴 스무 살 청춘에 대한 글로 시작한다. 이 긴 글의 시작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른 부에서는 7부의 글들과 이어지는 부분들이 많이 눈에 들어오지만 1부는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억이 희미해서 그런지, 아니면 시간적으로 더 앞서 있어서인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어려운 시간을 헤쳐나가는 과정 속의 모습은 나의 시간과 어느 부분 겹쳐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이 과도한 감정이입 혹은 끼워 맞추기 일수도 있다. 그리고 함성호의 발문을 읽으면서 시인이자 건축가인 그의 내공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이응준과 함성호의 시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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