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때 천사였다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카린 지에벨의 책은 처음이다. 워낙 이곳저곳에서 이 작가의 책과 서평을 보았기에 한두 권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산 책 중에서도 당연히 한두 권 정도는 있었다. 이 작가의 소설인줄 알고 있던 책의 작가를 찾아보니 다른 작가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나의 기억은 점점 퇴색해지고 부정확해지고 있다. 검색을 좀 더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다시 확인하지 않으면 이런 현상은 점점 많아질 것 같다. 왜 이런 글로 시작하냐고? 그것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딘가에서 본 듯한 설정과 전개 때문이다. 단순히 로드무비 때문만은 아니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란 사실이 먼저 유혹했지만 여기에 더 눈길을 끈 것이 하나 있다. 그녀의 평소 작품과 달리 이번에는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는 책소개다. 사실 이 부분은 거의 책 후반부에 잠시 다루어진다. 로드무비 형식을 따라 진행되다 보니 다양한 프랑스 지역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회문제라는 것이 하나의 작은 소재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또 이것이 사건의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주요 장치도 아니다. 현실의 한 면을 있는 그대로 아주 짧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기대와 달라 조금 아쉽다.

 

잘 나가는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 프랑수아 다뱅은 어느 날 뇌종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술도 완치도 불가능하다. 방사능 치료를 하면 조금 더 사는 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봐야 겨우 두세 달 정도다. 이 충격적인 사실이 그로 하여금 일탈하게 만든다. 차를 몰고 지방으로 달려간다. 그러다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한 남자를 태운다. 폴이다. 폴은 리옹으로 가려고 한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던 프랑수아는 그와 같이 간다. 자신의 죽음만을 의식하던 그이기에 폴의 행동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폴이 마음만 먹으면 프랑수아의 돈과 차를 쉽게 훔쳐서 달아날 수 있다. 이때만 해도 폴을 단순한 도둑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한 프랑수아다. 그런데 뇌종양이라니. 아내에게 연락도 하지 않는다. 폴과의 동행도 아주 우발적이다. 이야기의 초반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리옹에서 평범한 로드무비가 액션으로 변한다. 폴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작가는 이 폴의 정체를 단숨에 밝히지 않는다. 도망치는 와중에 하나씩 그 정체를 흘린다. 왜 쫓기는지도. 그렇게 드러나는 정체는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놀랍다.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의 직업 때문이다. 그렇다고 폴의 정체를 두고 깊이 있는 고뇌나 갈등이 크게 대두되지는 않는다.

 

로드무비가 액션으로 본격적으로 바뀌는 것은 프랑수아가 자신의 위치를 아내에게 말한 후부터다. 이 사실을 폴의 적이 알게 되고, 그들이 머무는 집을 그들이 찾아온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희생자가 생긴다. 평범한 변호사인 프랑수아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갈등한다. 순간적으로 떠난다. 폴과의 동행을 통해 잊고 있던 삶의 다른 면을 발견하고 즐기는 그이기에 이 잠깐 동안의 이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곧 죽을 몸이란 사실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삶의 의지를 남용하지 않아서 좋았다. 가끔 곧 죽을 텐데 하면서 너무 쉽게 변하는 사람을 보면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섬세한 심리 묘사는 힘을 느끼게 만든다.

 

로드무비에 액션을 더하고, 나이 차이가 큰 두 남자의 강한 우정 혹은 부자의 정을 곁들였다. 낯익은 설정과 전개는 후반부로 가면서 속도감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폴의 과거와 새로운 삶에 대한 욕구가 액션과 버무려진다. 잔혹한 살인은 거침없이 진행된다. 첫 시작과 너무 달라진 마무리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이 바로 사회문제다. 유럽의 여러 나라가 자신들의 산업폐기물을 아프리카에 버린 사건 말이다. 이 문제점에 대한 작가의 결론은 아주 현실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암시는 폴의 새로운 등장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삶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인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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