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김정범 지음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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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음반을 사지 않고 있다. 음원을 구해 듣거나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집을 둘러봐도 CD플레이가 음악을 듣기 위한 곳에 놓여 있지 않다. 예전에 산 수많은 CD는 어딘가에 처박혀 있고, 카세트테이프는 꽤 많이 버렸다. 실제 어디에 놓아두었는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에 앨범을 몇 장 넣어두었지만 듣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음악이 조금씩 내 곁을 떠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음악을 조금씩 멀리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차에서 MP3로 음악을 듣고는 했는데 말이다.

 

삶은 변한다. 취향도 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추억을 떠올려주는 앨범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푸디토리움이나 푸딩이라는 밴드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인디밴드 이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클래식이나 재즈의 경우는 이제는 고전이 된 경우를 빼면 거의 아는 이름이 없다. 한동안 가요만 줄기장창 들어 그래미상을 수상한 가수의 노래도 몰랐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어떤 가수의 노래를 요즘 즐겨듣는다고 하면 그때서야 찾아서 듣는 정도였다. 지금도 그래미에는 별관심이 없다. TV를 잘 보지 않는 내가 지나가다 음악경연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외국 가요를 듣고 좋은데 하면 이미 그 음악은 세계적으로 유행한 뒤였다.

 

저자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음반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위에서 말했듯이 모르는 음악가와 음반이 대부분이다. 영화 OST의 경우는 영화를 봤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워낙 유명한 OST의 경우 사기도 하고 듣기도 했지만 영화 음악을 감독한 저자처럼 크게 몰입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처럼 음악을 잘 알지도 못한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느낀 감성과 이해의 폭 등이 부러울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곡은 유튜브를 찾아서 들었다. 그의 말에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덕분에 폰 속에 있던 음반 하나도 같이 들었다. 오랜만에 음반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은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주 가끔 듣는 음악은 한정적이다. 학창시절 주말에 FM라디오에서 나오는 클래식을 듣고 비몽사몽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시절은 이제 사라졌다. 가끔 이 시기를 아련하게 그리워한다. 저자가 과거의 기억을 불러와 추억하는 글을 보면 음악은 기억과도 맞물려 있다. 재즈를 알고 싶어 몇 장의 앨범을 사서 그냥 틀어놓고 들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도대체 몰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모른다. 그때의 습관인지 이 책에 나오는 앨범 몇몇은 시간내서 듣고 싶다. 그의 설명이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플레이리스트의 숫자가 늘어났다.

 

다양한 앨범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나처럼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나 음악을 더 알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다. 실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속에 녹여 내었기에 참고할 부분도 상당히 많다. 저자 자신이 영화 음악 감독을 했다는 사실은 무심코 듣던 영화 음악을 다른 방향에서 돌아보게 만든다. 악기와 연주에 대한 설명은 쉽게 가슴에 와 닿지 않지만 그가 느낀 놀라움과 감정들은 쉽게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남미의 음악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와 설명했다는 점이다. 다른 곳에서 브라질 음악에 대한 설명을 조금 들은 적 있지만 이처럼 활자로 된 음악 이야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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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고향 - 한국미술 작가가 사랑한 장소와 시대
임종업 지음 / 소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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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지 며칠이 지났다. 저자의 들어가는 글을 읽고 장소란 곳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공간이 장소로 변하는 순간을 “‘나’가 그곳에 있어 경험될 때”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공간과 장소를 구분했다. 물론 공간과 장소라는 말뜻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경험이란 단어를 사용해서 공간에 이미지를 덧씌운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는 “장소는 경험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열두 곳의 장소는 작가만의 장소가 아니다. 이미 저자도 그곳에서 작품과 관련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독자의 한 명인 나도 이 책을 통해 그 장소를 간접적으로 느끼고 생각했다.

 

일단 하나를 고백하자. 나는 한국 미술을 거의, 아니 전혀 모른다. 학교 교과서에 나온 화가나 언론이나 책을 통해 만난 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면 아주 낯설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화가나 조각가들의 이름을 대부분 몰랐다. 어쩌다 이름이나 작품 때문에 알게 된 몇 명을 제외한다고 해도 삼분의 일이 되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책 속에 나오는 그림들이 낯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놀라고 감탄했다. 내가 흔히 본 그림과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들과 그들이 사랑했던 장소에 빠져들었다.

 

불국사와 박대성을 다룬 첫 장에서부터 놀랐다. 불국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사실들이 새롭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대성과 박대성을 약간 헛갈렸다. 최근에 이렇게 비슷한 이름을 만나면 맥을 못추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지만 진짜 놀란 것은 박대성의 그림이다. 작품 <현율>을 얼핏 보았을 때는 왠 숯을 이렇게 꽂아두었나 했는데 아니었다. 부감법을 통해 장소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왜 경주에 머물게 되었는가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최근에 들은 몇 가지 이론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한 해 지진으로 큰 고생을 한 것이 떠올랐는데 빠른 시간 안에 한 번 둘러보고 싶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겸재 정선의 인왕산은 그냥 지나가자. 판화가 오윤이 그린 지리산은 아주 친숙하다. 자주 본 그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그림의 주인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리고 역사 속의 지리산과 이 산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보여준다. 보는 동안 나의 경험이 겹쳐지면서 다양한 느낌을 불러왔다. 허씨 삼대의 진도는 솔직히 말해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아직 나의 감식안이 평범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서용선이 그린 영월의 모습은 너무 강렬하다. 단종애사의 이야기 탓일가? 강요배의 제주 그림에서 받은 스산함과 평화로움이 묘한 대조를 이루지만 <파도와 총석>은 감정이 마음껏 뛰어놀게 만든다.

 

황재형이 그린 태백은 광부로 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그림으로 표출되어 있다. <선탄부 권씨>를 보면서 삶의 슬픔이 가슴에 와 닿았다. 석탄으로 검게 된 얼굴에서 유난히 빛나는 눈동자는 나의 감정 깊은 곳을 건드렸다. 이것은 <아버지의 자리>에서도 느낀 감정이다. <광부 예수>는 무심코 봤다가 설명을 읽고 깜짝 놀랐다. 김기찬이 찍은 중림동 골목의 풍경은 추억을 불러왔다. 단순히 추억만 불어온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요즘은 골목에서나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보기 힘든데 이 당시는 아이들이 골목을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사진 속 아이들처럼 환하고 밝게 웃는 아이들을 보기도 쉽지 않다.

 

송창의 임진강 그림도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아직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아 생긴 부분이다. 하지만 쌀부대에 고향을 그린 이종구의 그림은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놀란다. 처음에는 사진처럼 정밀해서 놀라고, 그 다음에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면서다. 물론 두 번째의 경우는 대부분 실패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한 화가 전혁림의 통영은 표지에 나온다. 추상화에서 민화 같은 그림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역으로 보여줬는데 개인적으로 최근 그림들이 더 강렬하게 와 닿는다. 강렬한 코발트블루가 예상하지 못한 인상과 여운을 전달한다. 소나무를 소재로 작업하는 두 작가 김경인과 이길래는 이름보다 소나무 그림을 그리는 사람만 알고 있었다. 어느날 신문으로 기사를 한 번 본 적이 있기에 기억한다.

 

저자는 이렇게 열두 곳에서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그림 중 일부를 책 속에 넣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조금씩 갈리지만 그들이 정착한 그 공간이 그들의 경험과 결합하여 의미 있는 장소로 변한 것을 들여다보았다. 단순한 이야기만 넣었다면 재미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깊은 이해와 여운은 없었을 것이다. 이 한 권으로 내가 한국 미술가들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아주 멋진 작품들이 있음을 알았다. 재작년 미술관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감탄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그때의 감성이 되살아났다. 미술관에 조금 더 자주 다녀야겠다. 그리고 나의 장소는 어딘지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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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 -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로마사 이야기
박홍규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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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알고 있던 마키아벨리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뀐 것은 최근이다. 이전에는 책 속에서 몇 번이 말한 것처럼 악의 화신 같은 마키아벨리즘을 통해 그를 인식했다. <군주론>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기에 다른 곳에서 인용하거나 해석한 부분으로 그를 안 것이다. 이런 생각이 조금씩 바뀐 것은 몇 년 전부터 생긴 마키아벨리 읽기 열풍과 연결된다. 이때 정치학이나 경영학에서 인용한 것과 달리 우리가 알고 있던 마키아벨리와 다른 모습을 이야기한 저자들이 있었다. 솔직히 낯설었다. 기존 관념이 단숨에 바뀌기에는 흐른 시간이 길고, 그 시간만큼 수많은 학자 등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평가가 왜 생겼는지 궁금했다. 그 연장선에서 이 책을 선택했다.

 

저자는 우리가 마키아벨리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군주론> 대신 <리비우스 강연>을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리비우스 강연>은 제목 그대로 로마 역사학자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 <도시가 세워지고부터> 1권~ 10권까지를 대상으로 쓴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로마사는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최근에 읽은 <만화 로마사 1,2> 덕분이다. <만화 로마사>를 먼저 읽지 않았다면 저자가 설명하는 바를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2장에서 리비우스 읽기를 했지만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어렵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로마 공화정을 추구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리비우스 강연>의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마키아벨리가 살던 당시 시대의 정치적 모습도 같이 보여준다. 조국 피렌체가 강한 나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책이 <군주론>이지만 후세들이 이 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마키아벨리의 로마 공화정 중심 원리는 왕권, 귀족, 평민이라는 사회 세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다. 흔히 알고 있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이 아니다. 또 충실한 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용병으로는 국가의 방어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력 사이의 견제와 균형에서 수평적 균형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인민의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더욱 강조했다는 부분은 놀랍다. 그의 정치사상을 인민의 참여에 의한 자유와 자치라고 말하고, 로마 공화정의 성공 원인도 이것에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민은 노예 등은 제외된다. 이런 시대적 한계는 저자도 분명히 인정하는 부분이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수많은 평가와 해석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철학자들도 적지 않다. 최근의 전문가들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들의 해석과 분석을 새롭게 해석한다. 목적에 맞게 원전을 바꾼 것도 있고, 이해 자체를 잘못했다고. 그리고 번역 출간된 책과 전문서적 중에서 번역의 잘못을 아주 여러 차례 지적한다. 여기에 원전에는 없는 내용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국 출판사들이 얼마나 자의적으로 편집하고 왜곡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저자와 다른 역자나 학자와의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할 대목도 적지 않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모든 책은 별것 아닌 상식에 불과하다. 악마도 천사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인민 정치라는 상식일 뿐이다.’라고까지 말한다. 당연히 그가 살던 시대에는 상식이 아니었다.

 

저자가 본 마키아벨리 사상의 핵심은 <군주론> 9장에 있다. “인민의 후원으로 군주가 된 사람은 인민을 자신의 지지자로 유지해야 하는데, 인민은 억압받지 않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일은 쉽다. 그리고 군주는 인민을 우호 세력으로 가지지 못하면 역경에 처했을 때 아무런 구제책이 없다는 것이다.” 로마 공화정에서 귀족들이 세습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약간의 모순이 있지만 그 시대의 한계 상황까지 저자가 부정하지는 않는다. 인종주의자이고 식민주의자였던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시대에 완벽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고, 그만한 민주주의자가 그의 시대에는 없었다고 하면서 추켜세운다.

 

이 책을 통해 마키아벨리의 다른 해석을 만났다. 기존의 인식 몇 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이전에 읽었던 로마사를 반추하는 기회도 되었다. 하지만 아직 <군주론>(저자는 <군주정>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을 한 번도 읽지 않았고, 그의 주장대로라면 올바른 번역본도 모르는 상태다. 집에 사놓은 예전 번역서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살짝 고민이다. 혼란스러운 요즘 한국 정치 현실을 생각하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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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늘
임재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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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다. 글을 쓴다는 단순한 일에 한정한다면 기자나 블로거들도 해당되겠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것은 소위 말하는 등단작가에 한정해서 말한다. 신춘문예나 문예잡지에 소설가로 등단하기 위한 작가 지망생들의 이야기도 같이 다루어진다. 한 명의 독자로써 요즘 솔직히 등단 작가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물론 문단 내에서는 다를 것이다. 가끔 다른 작가의 글에서 이런 것을 두고 말이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대우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굉장히 유명해진 김연수 작가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번역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이전에 수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글만으로 먹고 산 적이 거의 없었던 사실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잡지나 사보 등의 청탁이 없다면 알바라도 해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소설가가 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여기에 잘 팔리는 책을 써야 출판사에서 자주 의뢰를 한다. 단순히 대중의 기호에 영합한다고 잘 팔리는 것도 아니다. 어렵게 등단해 소설가가 된 재경이 영조의 결별 소식에 고민하고 여행을 떠난 것도 이 일의 연장선이다.

 

소설의 앞부분은 한 권의 소설이 어떻게 중고시장에서 취급되는지 잘 보여준다. 현실 그대로다. 2~3천 권의 중고책 가격은 불과 몇 백만 원이다. 물론 시간을 두고 한 권씩 팔고, 희귀본을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큰 돈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렵게 소설가가 되었지만 책은 잘 팔리지 않고, 연인은 결별을 선언한 상태에서 기억은 과거로 돌아간다. 소설가가 되고자 했던 열정의 시간들과 노력들. 그리고 뛰어난 한 명의 작가 선배, 한동수. 이 책의 제목도 그의 소설 제목에서 비롯되었다. 책을 팔고 손에 쥔 돈으로 한동수가 있는 하와이로 떠난다. 진짜 이야기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한다.

 

많은 작가들이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썼다. 소설가의 소명에 대해 주절주절 널어놓은 작가도 있고, 비루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했던 이야기도 있다. 이런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아니 진부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진부한 것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속에서 우리 삶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아니면 이 작품 속 몇 명처럼 변주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일까? 현실에 압도되어 소설을 버린 소설가를 만난 소설가의 이야기로만 읽기에는 한동수가 보여주는 삶이 너무 아이러니하다. 밥벌이의 어려움 혹은 지겨움이랄까.

 

재경이 하와이에서 만난 노숙자 피터의 모습은 강박의 새로운 모습이다. 표절에 대한 걱정에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국 문단에 있었던 표절 시비가 떠올랐다. 그리고 재경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때 그 낯선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한동수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몇 명의 소설가가 자신의 과거를 소설로 녹여내었다. 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그 극단까지 갔을까? 동수가 친구의 사연을 소설로 표현했을 때 주변 문인들은 욕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동수의 답변은 그것이 아니다였지만 진실은 그만 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정말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속에 쌓인 온갖 감정, 기억, 추억 등을 글로 풀어내야 하는 직업이 소설가다. 물론 상상력으로 이것을 표현하는 분야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소설가는 이런 직업이다. 앞에서 말한 끝까지 간다는 말은 어디까지 자신의 감정과 속내를 있는 그대로 파고들어 표현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구성과 문장도 좋아야 한다. 이것이 기본이다. 또 팔려야 한다. 팔리지 않는 작가의 작품을 어느 출판사에서 내주겠는가. 대형 출판사라면 독자의 관심이라도 끌겠지만 작은 출판사는 작가가 말했듯이 시선조차 끌지 못한다. 진부할 것 같은 소설가에 대한 소설이지만 현실과 잘 연결해서 풀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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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당의 표정
정민 엮고 지음 / 열림원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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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초판이 나온 후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책이다. 최근에 절판된 책들이 한두 권씩 다시 나오고 있다. 절판으로 그 책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저자의 새로운 책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조금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후자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선택했을 때 저자를 봤지 내용은 잘 보지 않았다. 인터넷서점으로 책 정보를 얻게 되면서 생긴 문제 중 하나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책 구성이 나의 예상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와당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단순히 서점 탓만 하기에 문제가 있는 것도 책 소개를 제대로 읽지 않은 나의 잘못이다.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었다.

 

와당은 우리말로는 수막새고, 수키와의 끝을 막음하는 장식이다. 기와라는 단어를 많이 듣고 사용했지 수막새나 와당이란 단어를 들은 기억은 없다.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분명히 기억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와당은 자주 봤다. 기와가 있는 곳이라면 늘 이 와당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와의 끝을 막고 있으니 멀리서 봐야 한다. 아니면 수리를 위해 내려놓은 것들을 봐야 하는데 이런 것에 눈길이 오래 머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저자도 말했듯이 삼국시대 이래 참으로 아름다운 와당 예술을 꽃 피웠지만 다양성에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기와집을 보면 기와 위에 올려놓은 장식들에 더 눈길이 갔다. 와당은 늘 같은 것이라고 치부하거나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와당들은 대부분 전국시대와 한나라 때 물건이다. 저자는 와당의 탁본을 보고 스쳐간 단상들을 적어놓았는데 이것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책의 구성도 4부분으로 나누었다. 반월형, 동물과 인간, 구름·꽃무늬, 길상문 등이다. 각 내용은 탁본을 왼쪽에 놓고 오른쪽에 와당을 보고 느낀 단상과 문양에 대한 설명을 같이 넣었다. 이 부분에 크게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낯설고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문양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15cm에서 21cm 내외 크기에 동물, 식물, 전설의 동물, 기원과 축원의 말 등을 넣었기 때문이다.

 

1부를 보면서 도철의 무늬에서 일본 만화에서 본 듯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런 이미지는 뒤로 가면서도 여러 번 반복된다. 전설의 사신수와 동물들을 형상화했고, 기하학적 문양도 나오기 때문이다. 4부 길상문에 가면 작은 와당 속에 한자를 적게는 한 자, 많게는 아홉 자까지 담았다. 이 때문에 생략된 획이 나오기도 한다. 실수인지 의도적인지 알 수 없는 뒤바뀐 글자도 있다. 그 글자를 알아볼 수 있는 와당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너무나도 장식적이라 한자를 대하는 외국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2부에서 동물과 인간을 그려내었는데 나의 해석과 저자의 해석을 비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3부의 무늬는 장식적으로 다가오다가 저자의 말처럼 접시 속 문양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미난 경험이다.

 

이 책은 탁본도 중요하지만 발굴된 장소와 시대도 중요하다.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나 바람 등이 이 와당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문양에서는 주술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무늬나 글자의 모양 때문이다. 이것 또한 이전에 본 책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늘 느끼는 감상이지만 아는 것이 적어 더 많은 것을 배우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이다. 다행이라면 저자의 감상으로 깊이를 조금 더한 정도랄까. 책 구성의 아쉬움도 하나 남긴다면 서문을 제외하고 오로지 단상으로 구성되어 독자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여백을 지식과 상상력을 채울 수 있는 장점이 있겠지만 초보자에게는 조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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