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등에 베이다 -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
이로 지음, 박진영 사진 / 이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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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한 책이다.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책등에 베이다니 그게 가능할까? 물론 이것은 저자의 수사다. 뻔한 과장이다. 하지만 저자의 글에 귀를 기울이면 이것이 꼭 과장된 수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말한 책등이 서점에서 나를 매혹시켰던 수많은 책등을 떠올려준다. 표지와 제목과 저자와 출판사 이름 등이 함께 어우러져 책에 대한 열망과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지금은 이 열정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연소한 것은 아니다. 자주 서점에 가지 않음으로 인한 일시적인 휴식기다.

 

분명 저자는 책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책이 주인은 아니다. 이 책에 실린 스물다섯 권의 책들은 저자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물론 책 속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부분도 많다. 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부분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을 베고 지나간 책등에 대한 추억과 이해 등에 집중한다. 그래서 읽다 보면 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자주 만난다. 처음에는 이것을 보고 뭐지?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어떤 점에서 신선하고 재밌다. 곱씹어 생각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그냥 웃으면서 지나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실제 책 속에는 책등 사진이 없다. 책등이란 외양에 매달리면 저자가 보여주는 작품과 단상의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추억 뒤에 자리 잡은 깊은 이해와 사유는 어느 순간 번뜩이는 재치를 보여준다. 그가 지어낸 콩트는 간결하지만 재밌다. 현실을 뛰어넘었지만 그 속 깊은 곳에는 변함없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눈감고 귀 닫고 있으면서 놓친 것들이다. “우리 무조건 행복하자고 외치는 불행에 대하여. 가족의 고통을 촬영하는 환희에 대하여.”(171쪽) 말할 때 가장 슬픈 노래의 세계를 살짝 엿본 느낌이다.

 

에세이는 태생적으로 개인의 추억과 기억과 감상을 먹고 산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 간결한 책은 독특함이 많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기존에 읽은 문장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도 서평을 많이 써다보니 어느 때는 그대로 붙여넣기한 느낌을 주는 문장이나 단어가 그대로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가 걸러낸 문장과 이야기는 책과 어우러져 새로운 재미와 감각으로 다가온다. 살짝 비튼 곳에서는 웃게 된다. 마지막 장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했을 때 “글을 쓰기보다 누군가의 글을 옮겨 적는 일을 잘하면 어떻게 해야 하죠?”(219쪽)라고 되물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 나온 답 중 하나가 필경사와 인용의 창고다. 띠지에 나오는 한 번도 인용된 적이 없는 문장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각각의 분량이 다르다. 문장은 간결하다. 인용도 적지 않다. 빠르게 읽힌다. 긴 호흡의 글보다 짧은 글을 선호하는 저자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웠던 것은 ‘낭독’에 대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책은 눈으로 읽고 소리는 사라졌다. 가끔 의미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 소리 내어 읽어본다. 몇 번 그렇게 읽다보면 문장이 분해되고 그 의미가 새롭게 이해된다. “이 문장들은 이제 나와 함께 합니다!”(95쪽)란 선포에 공감한다. 이 짧은 책이 매력있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글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가끔 무작정 펼쳐서 아무 곳이나 한 번 읽어보면 어떨까 궁금하다. 물론 이것은 이 책에 대한 기억이 좀더 흐려진 후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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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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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후보로 오른다는 토마스 핀천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모두 다섯 편이 실려 있는데 이 중에서 네 편은 대학 다닐 때 쓴 것이고, 마지막 한 편은 작가로 데뷔한 후 발표한 글이다. 이 단편집이 나온 것은 작가 데뷔 후 쓴 <은밀한 통합>(1964년)이 나온 지 20년이 지난 1984년이다. 재미난 점은 이 단편집에 작가 서문을 일반 작가의 서문과 완전히 다르게 썼다는 것이다. 습작 시절의 작품에 대한 그의 감상과 비평이 아주 신랄하고 자세하게 나와 있다. 그 어떤 평론가로 이보다 더 잘 쓸 수 없지 않을까 할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을 읽고 난 후 소설을 읽으니 더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이 더 복잡하게 꼬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전적으로 나의 탓이다. 개인적으로 단편들을 모두 읽은 후 이 서문 읽기를 권하고 싶다.

 

이 단편집 이전에 단 한 번도 핀천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브이>를 헌책방에 구입했지만 그 두툼한 분량에 압도되어 팽개쳤다가 지금은 어디에 놓아두었는지도 잘 모른다. 이번 단편집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아마 그때 <브이>를 펼쳤다면 읽다가 중간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문장이 어렵다거나 내용과 구성이 복잡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왠지 그의 글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뭔가 때문이다. 그 뭔가를 잘 모르니 작가 서문의 이미지에 끌려 다니면서 엉뚱한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러니 소설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다음에 좀더 느린 속도로 여유있게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슬비>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지 파악하는 것이 힘들었고, <로우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앤트로피>는 두 층 사이에 벌어지는 상황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언더 더 로즈>는 시대를 잘못 파악하면서 완전히 딴 길로 빠져버렸다. <은밀한 통합>도 역시 잘못된 오독으로 엉뚱한 생각만 하면서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다. 이런 오독과 착각은 어느 한 순간 잘못된 길로 생각이 빠지면서 시작되었다. 어떤 부분은 작가의 서문을 읽고 예상보다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오만에서 비롯했다.

 

핀천에 대한 평가 중 ‘싸이버펑크 SF문학의 선조로 인정받는 소설가’란 부분에 솔직히 끌린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사실 그런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 나의 오독이나 싸이버펑크에 대한 이해 부족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집에 있는 <브이>나 아직 사지 못한 <제49호 품목의 경매> 등을 모두 읽은 후에는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핀천이 샐린저처럼 은둔 작가란 사실은 아주 낯설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샐린저의 소설에 아직도 빠지지 못하고 있는데 핀천도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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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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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이후 오랜만에 작가의 책을 읽었다. 한때 유행했던 <은교>를 읽지 않고 영화로만 보았는데 이번 작품과 같이 놓고 해설하는 글이 보인다. 읽지 않은 작품을 영화로 봤다고 두 작품을 연결해서 이야기를 풀어낼 능력이 솔직히 나에게는 없다. 뭐 책을 봤다고 별로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제대로 표현하는데 부족하겠지만 ‘소소’와 ‘풍경’에 방점을 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세 남녀의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이야기도 같이.

 

이 소설의 목차를 유심하게 보면 참 많은 것을 말한다. 프롤로그에서 작가의 얼굴을, 그 다음은 혼자에서 둘로, 셋으로 숫자가 늘어난다. 이 늘어난 숫자는 ‘참’과 ‘더’와 ‘진짜’로 감정이 변하는 것을 같이 표현한다. 에필로그에서 물의 기원을 말할 때 왠지 모르게 예전 작가의 다른 소설 제목이었던 <물의 나라>가 떠올랐다. 물론 이 소설을 읽지는 않았다. 이 숫자와 감정의 상승은 책을 읽기 전에는 사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첫 번째 장이 끝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 ㄱ이 함께 하면서 느꼈을 감정들이 조금씩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야기는 작가가 한 제자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시멘트로 뜬 데스마스크 보셨어요?”라고 묻는다. 그녀는 00학번 ㄱ이다. 이 전화 한 통이 과거 기억 한 자락을 건져 올렸고 그녀를 찾아가게 된다.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은 소소다. 그녀는 선인장의 가시에 대해 말한다. 그녀가 차도 중앙선에서 어쩌지 못하고 불안할 때 차를 멈춰 세우고 차장 밖으로 쓰윽 손을 내밀고 건너라고 말한 교수의 손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 기억들이 그에게 전화를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고 온 후 ‘소소한 풍경’이란 단어를 쓴다. 그 후 세 남녀의 기묘한 동거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ㄱ은 가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오빠는 자신이 바라던 꽃을 따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고, 부모님은 무면허 부잣집 아들의 폭주를 피하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이런 상처를 안고 대학을 다니던 그녀에게 한 남자와 우연한 만남이 이어진다. 이 인연은 한 순진한 소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사랑에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졸업 후 결혼한다. 하지만 이 결혼은 잘못된 결합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생활을 한 그들이 서로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결혼한 것이다. 특히 ㄱ은 보았지만 못 본 척했다. 그 결과는 이혼이다. 이혼 후 돌아온 곳이 바로 소소 시다. 그 중 구소소라 불리는 곳이다.

 

남편에게 받은 상처를 혼자 살면서 둘이 하나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혼자 사니 참 좋아’다. 이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가 ㄴ이다. 그녀가 볼 때 ㄴ은 자살할 것처럼 보였다. 그를 살릴 생각을 하고 집을 들인다. 다음 날 내 보낼 생각이었는데 그가 마당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이렇게 둘이 살게 된다. 남녀가 둘이 살다보니 생기는 일이 있다. ㄱ은 그것을 ‘섹스’가 아니라 ‘덩어리’라고 부른다. 그 이후 ㄴ은 우물을 판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스스로 풍경이 된’것 같다.

 

둘의 생활에 또 한 명이 참여한다. 그녀는 ㄷ이다. 세놓는 곳을 찾다가 ㄴ처럼 그들과 함께 산다. 둘이 셋으로 변하고 이때의 느낌은 ‘셋이 사니 진짜 좋아’로 발전한다. 3은 가장 안정적인 숫자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다. ㄴ은 80년 광주에서 아버지와 형을 잃고, ㄷ은 탈북자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살고 있다. 이런 세 명이 사는 풍경에서 ㄱ은 ㄷ을 여자로 느끼지 못한다. 생물학적 성별로 보면 분명히 여자지만 이 셋이 덩어리지면서 성의 구별이 사라진 것이다. 기존 도덕관에서 이들을 보면 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은 덩어리진 상태에서 서로의 가시와 상처를 핥아주고 안아준다. 그러니 진짜 좋을 수밖에.

 

안정적일 것 같은 이 세 명의 생활에 파국이 생긴 것은 ㄴ이 판 우물에 ㄴ이 떨어져 죽으면서부터다. 첫 장면에 나온 시멘트로 된 데스마스크도 바로 ㄴ이다. 두 번째 장에서 화자로 ㄴ이 등장한 것은 바로 ㄱ의 기억과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의 기억과 추억을 하나씩 풀어낸다. 아버지와 형이 죽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 또한 평생 마음의 짐을 안고 산다. 이 짐을 내려놓을 기회를 노렸는데 우물이 그 기회를 제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밴드의 기타를 쳤다는 사실은 단 한 번도 밖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도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것이다. ㄱ이 ㄴ의 손에 굳은살이 박힌 것을 보고 오해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장에서 ㄷ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난다. 그녀 또한 결코 평탄하지 않다. ㄴ이 죽은 후 5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결국 머물고 있는 곳이 바닷가 티켓 다방이다. 그녀가 번 돈은 같이 탈북한 엄마와 그녀를 겁탈한 양아버지에게 들어간다. 탈북자의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그녀 엄마가 보여준 섬뜩하고 끈질긴 살인을 보여줄 때 인간의 새로운 바닥을 보게 된다. 이제 세 명이 살면서 같이 누렸던 ‘진짜 좋아’의 기쁨은 사라졌다. 그들이 함께 누린 비밀은 이제 작가에 의해 밖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 비밀은 은밀하지 않다. 구소소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풍경 속 사람들은 치열하고 은밀하고 즐겁고 기쁘고 아픈 삶을 살지만 밖에서 그들을 보는 사람에게는 평화롭고 아주 소소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제목은 반어적이다. 구소소를 생각하면 또한 은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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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의 일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혜영 옮김 / 오후세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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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출간된 기노시타 한타의 소설이다. 이번 작품도 역시 재밌다. 그리고 이전 작품처럼 연극 무대를 보는 느낌이다. 현재의 시간을 먼저 보여준 후 이 사건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서로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평범하지만 잘 짜인 구성으로 반전과 반전을 펼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작가의 장기가 아주 잘 발휘되었다. 개성 강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상황을 꼬고, 반전을 연속으로 펼치면서 다른 반전은 또 없나 찾게 된다.

 

제목 <삼분의 일>은 세 명의 은행 강도가 2억 엔을 훔친 후 분배하기로 약속한 몫이다. 그런데 이 분배가 쉽지 않다. 나누기로 한 것을 두고 서로 티격태격한다. 단순히 운전만 한 고지마의 몫을 낮춰야 한다고 슈지가 주장한다. 겐도 여기도 동조한다. 흔히 보는 갱 영화처럼 분배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경찰차 소리가 들린다. 슈가 밖을 보기 위해 나간다. 이때 고지가 겐에게 이등분을 제안한다. 슈지를 죽여서 둘이서 1억 엔씩 갖자고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다음에 벌어질 상황을 예상한다. 하지만 작가는 나의 예상을 산산조각낸다.

 

은행 강도 후 그들이 모인 곳은 슈지와 고지마가 일하는 카바쿠라 허니버니다. 슈지는 점장이고, 고지마는 웨이터다. 겐은 손님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세 명의 남자들이 은행 강도를 위해 모이기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슈지는 경마에, 고지마는 도박에 중독되어 있고, 겐은 사업이 부도직전이다. 모두 돈이 궁한 상태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빚이 있다고 은행을 털지는 않는다. 이런 은행 강도가 왜 벌어지게 되었는지 슈지의 실수와 마리아의 등장으로 조금씩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카바쿠라 허니버니의 시간과 교차하는 과거를 통해 이 은행 강도 뒤에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씩 벗겨낸다. 하나의 반전 뒤에 숨겨진 하나의 사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배신의 연속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배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수도 같이 풀린다. 카바쿠라 허니버니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이 무대 속에 나온 세 명의 배우들의 연극을 보는 느낌을 주는데 이것을 실제 의도적인 연출의 결과다. 작가가 노골적으로 이런 식으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뒤에 드러나는 사실을 볼 때 그들은 연출가의 노련한 연출에 의해 자신들의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물론 여기에 다시 반전이 펼쳐진다. 반면에 카바쿠라 이외의 장면들은 이 연출된 장면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또 다른 반전을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무대 위 세 명의 강도가 속고 속이는 역할을 맡아 멋진 연기를 보여준다면 이들 뒤에서 상황을 꾸미고 연출하는 역할을 맡는 사람들은 각자가 바라는 마무리를 예상하면서 피날레를 기다린다. 그런데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그들의 연출에 반기를 든 것이다. 만약 조금만 실수해도 아주 끔찍한 보복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무대 뒤 연출가 역할을 맡은 두 명의 악당은 아주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70 노구의 시부가키 다미코는 한니발의 역겹고 두려운 악의와 공포를 부분적으로 아주 잘 재현한다. 보면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이런 개성 강한 인물들이 어떻게 보면 평범한 세 남자를 극한까지 몰고 간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수도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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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슈라라봉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3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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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메 마나부. 두 권의 소설을 읽었지만 아직은 이 작가에 대해 잘 모르겠다. 모리미 도미히코가 첫 작품을 읽고 우와~ 했다면 이 작가는 세 권을 읽은 지금도 뭔가 확 끌어당기는 힘이 약하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이 이후 점점 취향과 멀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마나부는 책 읽는 날의 컨디션에 따라 바뀌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도미히코의 소설은 비채에서 나온 작품이 정점을 찍었다면 마나부는 아직 그 정점을 유보한 상태다. <사슴남자>를 읽고 난 후 결정이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사이 다른 작품이 짠~ 하고 나타날지도 모르지만.

 

마나부의 다른 소설처럼 이 작품의 등장인물도 초능력을 사용한다.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 호가 한복판에 자리 잡은 시가 현의 작은 도시 이와바시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히노데 가문이다. 히노데 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을 이용해 장사로 큰 돈을 벌어 이전 번주의 성을 샀다. 이 이와바시리 성에서 히노데 가의 종주 가족이 살고 있다. 히노데 가문의 능력자들은 이 성에 와서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수련한다. 이 능력이 모든 히노데 가문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점점 그 능력자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주인공 히노데 료스케는 사실 가문의 능력을 거부한다. 이런 능력이 평범한 삶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문의 결정에 따라 성에 와서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니게 된다. 그런데 그와 함께 다닐 종가의 아들 단주로가 아주 괴팍하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아주 잘 사용한다. 너무 잘 사용해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건드리면 무시무시한 복수가 벌어진다. 그를 뚱보라고 부른 상급생을 농구대에 매달아 놓고 벌집을 풀어놓을 정도는 소소한 것이고, 예전에는 집 둘레에 해자를 팔 정도였다. 그의 집안과 그의 성격을 아는 동급생이라면 누구도 감히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런 가문에도 적수는 있다. 바로 나쓰메 가문이다. 이 집안도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능력은 물체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는 능력의 실체는 시간을 다루는 것이다. 이 가문의 장남 히로미도 료스케와 같은 반이 된다. 앙숙인 두 가문의 아이들이 같은 반이 된 것이다. 이 두 가문은 서로의 능력이 발휘될 때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이 소리를 듣고 서로를 방어한다. 그런데 이 두 가문의 능력은 바로 비와 호 주변에서만 발현된다. 이 능력자들이 이 호수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히노데 가문은 승승장구하고, 나쓰메 가문은 점점 몰락하고 있다.

 

이 세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주로는 료스케를 부하라 부르고, 료스케는 자신도 모르게 부하처럼 행동한다. 꽃미남인 히로미는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만 뚱뚱한 단주로 뿐만 아니라 료스케도 어떤 관심을 받지 못한다. 물론 시선을 끄는 것은 있다. 단주로와 료스케의 빨간 교복이다. 보통의 학교라면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이 도시의 히노데 가문이라면 가능하다. 이렇게 세 명은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얽히고설키게 된다. 그 틈새를 파고드는 여학생이 있는데 바로 교장의 딸이자 예전 번주였던 선조를 가지고 있는 나쓰메다. 단주로가 그녀의 재능을 사랑하고, 그녀도 같이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단주로는 나쓰메를 바라보고, 나쓰메는 히로미를 바라보는 관계가 형성된다.

 

단순히 이들만의 관계가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니다. 이들에게 공동의 적이 등장한다. 그는 바로 이전 번주의 후손인 교장이다. 그는 이 두 집안의 능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단주로의 아버지와 히로미의 아버지를 식물인간 같은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현대 의학으로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다. 이들을 되돌릴 수 있는 존재는 교장 밖에 없다. 교장이 바라는 것은 이 두 가문이 비와 호를 떠나는 것이다. 비와 호를 떠난다는 것은 바로 능력을 잃는다는 의미다. 앙숙인 집안 사이의 웃기고 황당한 대결이 어느 순간 무시무시한 생사의 결투로 바뀐다.

 

적지 않은 분량이다. 다양하고 재미난 캐릭터가 더 있다. 남들의 마음을 읽고 쉽게 조종하다 자신의 평화를 잃은 그레이트 기요코나 료스케의 스승이 되는 총총 씨나 단주로 등의 등하굣길을 담당하는 겐 영감 등이 바로 이들이다. 등장의 분량은 각각 다르지만 읽다보면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인 슈라라봉이 어떻게 나왔는지 보여주는 장면을 볼 때 착각을 했는데 이 기묘한 발음이 어떤 느낌인지 알려줄 때 빵~하고 터진다. 허식적인 설명이 사라지고 솔직한 표현은 자리한 곳은 금방 납득이 간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다시 표지의 안팎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먼저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세 남자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중요한 인물들이나 물건 등이 같이 보인다. 가끔 표지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표지가 그렇다. 그리고 아쉬운 점 하나로 꼽자면 영화로 나왔다는 사실과 그레이트 기요코 역이 후카다 교코란 것을 알고 배우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라 왠지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옛날 후카다 교코의 연기를 본 사람이라면 조금 공감하지 않을까? 앞부분은 조금 집중하지 못했지만 중반 이후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몰입해서 읽었다. 역시 구성보다 캐릭터가 더 강한 소설이라 유쾌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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