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자 매드 픽션 클럽
카린 포숨 지음, 최필원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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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소설이다. 이미 카린 포숨에 대한 예찬을 수없이 보았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글이 가끔 보여 마음을 비웠는데 읽으면서 빨려 들어갔다. 그 흔한 살인사건이나 피가 튀는 장면을 앞에 늘어놓지 않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그녀의 글솜씨에 반했다. 이미 그녀의 소설을 몇 권 사놓았지만 늘 보아온 호평보다 몇몇의 평이한 평에 더 눈길이 갔던 순간 때문에 읽는 것을 뒤로 미루었었다.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물론 그 사이 나의 취향이 변한 것도 있겠지만 역자가 말한 그녀의 이전 번역본을 머릿속에서 떠올려본 것은 사실이다.

 

아기는 집 뒤편에 놓인 유모차에서 곤히 자고, 엄마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든다. 엄마는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면 금방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 남편이 돌아온다. 힐끔 본 유모차에 어떤 변화도 없다. 애정이 돈독한 부부는 사랑을 나누고, 식사를 한다. 그 동안 아기는 밖에서 조용히 잔다. 잠시 자신들의 감정에 취해 아기를 잊었다. 이 감정에 놀라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아기가 피범벅이다. 비명을 지르고, 병원으로 급히 차를 몰고 간다. 아이에게는 이상이 없다. 누군가 아주 심한 장난을 친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악의에 찬 장난이 이어진다.

 

이 장난은 악의로 가득하다. 살아 있는 한 할머니의 부고 기사를 내거나 루게릭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 집으로 장례식장 차를 보낸다. 한 엄마에게는 딸이 오토바이를 몰다 큰 사고가 났다고 전화를 건다. 이런 장난들은 한 소년이 유심하게 관찰한 후 악의로 재미로 저지른 행동이다. 보통 이런 장난을 치면 사람들이 잊고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그들의 불안한 심리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그려내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하나의 장난이 그들의 삶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집은 당연히 가장 먼저 사고가 난 집이다. 이들 부부는 이 장난으로 인해 자신들 속에 내재해 있던 공격성과 불안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 소설 최고의 매력은 바로 이런 부분들에 있다.

 

이 모든 장난을 친 소년의 이름은 요뉘 베스코브다. 그는 홀어머니와 함께 산다. 그녀는 술에 찌들어 있고, 아이를 잘 돌보지 않는다. 소년은 늘 불만에 차 있고,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그의 가장 큰 불만 대상은 엄마다. 엄마를 죽이는 장면을 상상한다. 이런 소년에게 평화와 안정을 주는 존재가 있다. 할아버지다. 그는 할아버지 집에 가서 머물기를 좋아한다. 노년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살기 힘들지만 손자의 방문을 좋아한다. 어쩌면 할아버지의 존재가 이 소년이 더욱 엇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있는지 모른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 이것이 가식적이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콘라드 세예르가 이 사건을 맡는다. 악의에 찬 사건을 조사하지만 아직 명확한 증거가 발견된 것은 없다. 그리고 사건이 연속적으로 벌어진다고 해도 시간의 간격이 짧지 않다. 세예르는 프랑크라는 개와 둘이 살고 있다. 수많은 탐정소설에서 본 모습과 전혀 다른 경찰의 모습으로 사건에 한 발씩 다가간다. 살인사건이라면 대대적인 인력 동원이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악의에 찬 심한 장난일 뿐이다. 요뉘가 장난 칠 상대를 찾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면 세예르는 그를 조용히 뒤쫓는 역할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심한 장면인데 작가는 이들의 심리 묘사와 감정의 흐름을 멋지게 잡아내어 표현하면서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든다.

 

그냥 이렇게 장난을 치다 끝났다면 아주 평범한 심리 스릴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아이의 죽음과

또 다른 죽음을 넣으면서 마지막 한 쪽에 강력한 반전을 펼친다. 미궁으로 빠질 수 있는 사건들 속에 하나의 정확한 증거를 남긴 것이다. 이것 또한 작가가 이야기 중에 지나가듯이 말한 것에 담겨 있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왜 수많은 거장들이 카린 포숨에 경탄하면서 추켜세웠는지 알게 된다. 일상 속에 늘 잠재되어 있던 공포와 악의를 이렇게 간결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표현하는 작가는 정말 흔하지 않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여운을 남기고, 잊고 있던 책더미 속 그녀의 다른 소설을 찾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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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를 든 철학자
알랭 기야르 지음, 이혜정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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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상이 두 번 빗나간 책이다. 한 번은 읽기 시작하면서, 또 한 번은 좀 더 읽으면서 변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책을 잘못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감옥과 철학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낯선 이름과 옮긴이의 주석이 읽기 어렵겠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끈기를 가지고 조금 더 읽으니 철학 소설처럼 다가왔던 이야기가 범죄 소설로 조금씩 바뀐다. 그렇다고 장르 소설처럼 확 바뀌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의 버릇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감옥을 무대로 한 철학자의 낯선 경험이자 모험이다.

 

라자르 빌랭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철학을 전파하는 장돌뱅이 철학자다. 그는 사회복지사업의 하나로 감옥의 죄수들에게 철학을 강의하는 일을 권유받는다. 일반 사람들에게 이 일이 쉬울 리 없다. 조금 고민하다 승낙한다. 첫 감옥 강의에서 세 명의 죄수를 두고 사랑에 대한 철학을 강의한다. 실제는 두 명만 참석했는데 한 명은 실신 일보 직전이 되고, 다른 한 명은 식은땀을 흘린다. 왜 사랑 이야기에 이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간수가 이들이 감옥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들은 불륜을 저지르는 아내를 죽인 남자와 창녀의 아랫배를 가위로 찌른 남자들이다. 끔찍해야 할 이 사연이 나올 때 살짝 웃음이 터졌다. 멋진 블랙유머이기 때문이다.

 

감옥으로 가는 철학자에게 리치올리가 봉투 하나를 전해준다. 이 봉투를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해달라고.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고 말한다. 당연히 이런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빌랭은 흰 봉투를 들고 감옥으로 들어간다.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떨린다. 불법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난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정도지만 그녀에게 매혹된다. 그녀의 이름은 레일라다. 물론 이때는 그녀를 자신처럼 사회복지사업을 위해 감옥에 온 음악선생 정도로만 생각했다. 첫 번째 임무를 잘 끝낸 그는 몇 번의 일을 처리한 후 처음 같은 두려움은 사라졌다. 익숙해진 것이다.

 

권투선수 출신 록키 등이 소개한 리치올리의 사업은 빌랭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한다. 빌랭은 봉투 안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배달부처럼 그냥 전해주기만 한다. 이런 그에게 이름조차 몰랐던 레일라의 존재는 강한 매혹의 대상이 된다. 이것을 리치올리에게 말하고, 다른 감옥에 강의를 갔다가 그녀를 다시 만난다. 그녀에게 빠진다. 이 우연이 정말 우연일까? 빌랭은 리치올리에게 그녀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총 쏘는 연습장에 간다. 총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총을 쏘게 한다. 이제 그는 그녀의 정체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 양심이 자신의 마음 한 곳에서 불쑥 솟아오른다. 양심이 배달부를 그만두고 싶어한다. 이런 일에 퇴직이 쉬울 리가 없다.

 

감옥에서 죄수들과 철학에 대해 토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감옥은 다양한 직업군이 있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려주는 인물들도 있다. 그러다 그가 낀 사업에 한 발을 담그려는 인물이 나온다. 리치올리는 그가 그만두는 것을 용납할 마음이 없다. 빌랭을 두고 두 조직이 싸운다. 하지만 언제나 일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풀린다. 모두가 좋아지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빌랭의 돈도 같이 쌓인다. 이 무슨 이상한 반전인가! 아니, 코미디인가! 철학자는 이제 범죄자가 되어서 감옥에 철학을 강의하러 간다. 이제 범죄자가 된 철학자의 대단한 활약이 펼쳐질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그것은 단지 나만의 기대다.

 

이 소설을 범죄소설로 볼 수 없는 것은 철학자의 물이 가득 든 강의들과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과 그 시대상의 한 단면들 때문이다. 그 유명한 프렌치커넥션 뿐만 아니라 프랑스가 아프리카 식민지에 저지른 잘못까지 모두 다루고 있다. 각 개인의 사연들을 길지 않은 분량에 요약해서 들려주는데 이때 프랑스 골목의 이면이 살짝 드러난다. 솔직히 철학 강의는 지적허영이 있는 내가 봐도 조금 재미없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의 사연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좀 더 이 부분을 음미할 수 있다면 더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반반 정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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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치
로렌조 카르카테라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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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하고 끔찍한 적을 통쾌하게 깨부순다. 이 적들은 예상을 초월한다. 작가는 이 악당들에 대한 묘사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읽으면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금방 사라졌다. 수많은 인간들의 잔혹한 취미나 기호에 대해 읽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적나라한 적은 많지 않았다. 이런 적들을 그냥 둔다는 것은 독자인 나에게도 용납되지 않는다. 사형 제도를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여준 보복과 응징은 고개를 끄덕이고 통쾌함을 주었다. 그 뒤에 남는 것은 물론 씁쓸함과 세상의 무서움이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여섯 명의 경찰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부머, 데드아이, 제르니모, 핀스, 콜롬보 부인, 짐 목사 등이다. 이들은 경찰 각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들의 활약은 사고 등으로 인해 중단된다. 부상 정도가 심해 정상적인 경찰 활동을 할 수 없다. 명예퇴직한 후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한다. 이런 그들을 하나로 불러 모으는 사건이 생긴다. 마약범 루시아를 잡는 일이다. 물론 이들은 현재 경찰이 아니다. 2부는 바로 루시아로 이어지는 과정이자 부머와 데드아이가 다시 재결합하게 되는 사건을 다룬다. 프롤로그에 다루어진 열두 살 소녀의 실종 사건이다. 부모가 여행을 간 사이 뉴욕에 오빠와 놀러왔다가 사라진 제니퍼 수색이다. 제니퍼의 아버지가 부머에게 찾아달라고 요청했고, 부머는 아직도 몸속에서 끓고 있는 경찰의 피로 인해 수사를 시작한다.

 

뼈 속까지 경찰인 이들에게 일상의 고요함은 쉽게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머와 데드아이가 제니퍼를 찾기 위해 움직인 것도, 루시아를 처단하기 위해 동료를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도청 전문가 핀스를 제외하면 모두 현장에서 뛰었고, 각 분야에서 최고였다. 이런 인물들이 그냥 하루를 보내거나 도어맨이나 보험판매인 등으로 사는 것은 죽는 것보다 오히려 못한 일일 수 있다. 그리고 강한 동료애는 자신들이 잃어버렸던 감정을 다시금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직을 아파치라고 부르고, 경찰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바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여야만 하는 경찰을 넘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는 것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82년이다. 1997년에 출간되었는데 왜 그 시절을 무대로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슬리퍼스>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시대이자 새로운 변화가 불어오던 시기였기 때문일까? 이런 의문이 먼저 생긴다. 그리고 여섯 명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어두운 이면이 강하게 부각된다. 어느 정도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을 부상으로 몰고 간 사건들은 한국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끔찍했던 지존파 사건이나 다른 연쇄살인 등을 생각하면 꼭 그렇게 단정지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세 가지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먼저 열두 살 제니퍼를 강간하고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녀를 끔찍한 수집가에게 넘기려고 한 것이다. 신체 일부를 집에 장식하고 진열하는 악당에게 말이다. 여기에 또 하나가 더해진다. 아기를 이용한 마약 거래다. 아기를 죽인 후 그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마약을 넣어서 전달하고 다시 돈을 채워 가져오는 거래 방식이다. 이 거래를 루시아가 고안한 것이다. 그녀의 마약 거래가 더 활성화될수록 더 많은 아기가 필요해진다. 정말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이다. 이런 악당을 그냥 조용하게 감옥에 가둬둔다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이다. 이런 엄청난 악당들과 아파치는 싸워야 한다.

 

경찰과 FBI에서 정보를 얻어 몰래 활동을 하려고 하는데 경찰 내부의 배신자가 이들의 정체를 알려준다. 이들은 이제 어둠 속이 아닌 밝은 곳에 드러난 상태다. 적들에게 노출되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최악의 상황이다.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들은 잔혹하고 끔찍한 적을 통쾌하게 깨부순다. 많은 희생을 치룬 후에. 후속편 <체이스>가 발표되었다고 하니 기대해본다. 뼈 속까지 경찰이었지만 그 한계를 벗어던진 이들이 과연 어떤 활약을 다시 보여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한 쪽에 32줄의 촘촘한 편집이 요즘 같은 시기에 낯설고, 읽기 약간 어려운 점도 있지만 그들이 활약에 몰입하는 순간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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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마리아
다니엘라 크리엔 지음, 이유림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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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분단되어 있던 독일이 하나로 합쳐지던 여름의 이야기다. 주인공 마리아는 브렌델 농장에서 산다. 왜 이 농장에서 사는 걸까? 읽으면서 답은 찾지 못했다. 마리아는 이 집 다락방에서 남자 친구 요하네스와 함께 머문다. 열여섯의 소녀가 동거를 하는 것이다. 그 나라 분위기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특이한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이 낯설다. 마리아가 요하네스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랑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녀는 사랑으로 단정짓지 않았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낌새가 이상했다. 왜 이런 표현을 한 것일까 하고.

 

소설의 무대가 되는 곳은 서독이 아닌 동독의 한 시골이다. 이 당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비밀경찰 슈타지가 생활 곳곳에 스며있었다. 누군가 조금만 실수를 해도 비밀경찰이 이들을 데리고 사라진다. 이것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이다. 일상의 흐름 속에 평화로운 시골 농장의 풍경과 삶이 있다면 이 이면에는 슈타지에 의해 뒤흔들렸던 삶도 있다. 전체주의의 강요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지며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것은 이제 과거다.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거대한 변화의 폭풍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아니 알 수 없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으니. 이 흐름 속에 한 소녀가 사랑을 알게 된다. 제목처럼 그 여름, 마리아의 사랑 이야기다.

 

작가는 왜? 라는 물음 대신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리아가 왜? 브렌델 농장에 살게 되었는지 보다 살고 있는 현재를, 갑작스럽게 헤너에게 끌린 마리의 심리를 그려낼 때도 왜? 라는 물음보다 그 감정과 그 모습을 표현하는데 더 노력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열여섯 살 소녀의 순수하고 강렬한 사랑이 우리 앞에 드러난다. 이때 헤너의 나이는 마흔이다. 이들의 불안하고 관능적인 사랑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한 편의 소설이 있다. <롤리타>다. 아직 읽지 못한 소설이지만 줄거리를 알고 있다 보니 이 둘의 나이 차이가 연상 작용을 한 모양이다. 언젠가 <롤리타>를 읽게 되면 이 소설이 떠오를지 궁금하다.

 

마리아의 부모는 이혼했다. 아빠는 그녀보다 겨우 세 살 더 많은 러시아 여자와 재혼했다. 엄마와 살면서 모녀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지 않고 브렌델 농장에서 학교도 가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 그녀의 손에는 한 권의 소설이 들려 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다. 이 소설의 내용과 현실의 삶은 대비되는 부분이 있다. 마리아의 감정과 현실을 표현하는데 이 소설의 일부가 인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더 정확하게 알려면 원작과 대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워낙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다보니 소설 속 내용만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녀가 소설 속 여자들 중 솔직하고 열정적인 창녀 그루센카를 더 좋아한다고 한 것처럼.

 

사춘기 소녀의 혼란스럽고 열정적인 사랑 이야기와 통일되는 과정 속에 있는 독일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옮겨가는 와중에 밀려들어오는 풍요와 가치관의 혼란은 마리아와 헤너의 갑작스런 관계의 변화와 불안하고 격정적인 감정과 맞닿아 있다. 변화는 진행되고 작가는 이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브렌델 농장의 가장 지크프리트가 더 커지고 생산적인 농장을 열정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모습은 동시에 마리아와 헤너의 관계도 돌발적인 관계가 아닌 일상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이때 마리아는 이 관계를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려고 욕심을 낸다. 이성적 판단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열정에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비극이 생긴다. 독일은 통일되고, 마리아의 뜨겁고 화창한 여름은 이렇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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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10-0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상관도 없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표지에 나오는 사람의 무릎이 처음에는 엉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 햐~ 이게 무슨 사진이야????` 하고 조금 놀랐는데
자세히 보니 무릎이더군요....그럼 그렇지.. 조금 안도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지껄여서...ㅜㅜ

행인01 2015-10-07 17:48   좋아요 0 | URL
한 번도 엉덩이로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착시가 일어날 수도 있군요^^;
 
페이크 픽션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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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을 동기로 쓴 소설이다. 이 비극적인 참사 사건만 놓고 이야기를 풀었다면 굉장히 무거운 소설이 되었을 텐데 여기에 황당한 설정을 과장되게 집어넣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과장된 설정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황 감독이란 존재에서 비롯한다. 그가 쓴 시나리오는 우디 앨런을 닮은 프로듀스와 후배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하고, 영화 출연만 오로지 기대하고 있던 동거하던 전직 배우이자 여자 친구 성숙과 헤어지기 싫어 사채업자에게 신장을 담보로 제공한다. 이때만 해도 이 사람 정말 재수가 없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본격적이 비극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그가 담보를 제공한 사채업자는 한때 영화 엑스트라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런 경험과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황 감독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 시나리오다. 사채업자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시대착오적이고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다. 이보다 더 문제는 제작비다. 2천만 원 빌린 돈에 이자까지 포함하여 2천4백만 원으로 영화를 찍어야 한다. 실제 이 돈은 이미 다 썼고 수중에는 한푼도 없다.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그에게 올 것은 장기 적출과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 대한 알고 싶지 않는 폭력이다. 영화가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고민과 고뇌와 불면의 밤을 거친 후 한 가지 대안을 찾는다. 바로 휴대폰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다.

 

촬영 장비를 마련했다고 끝이 아니다. 배우도 섭외해야 한다. 불쌍한 영화배우 지망생을 여러 명 면접보지만 그 누구 하나 마음에 더는 인물이 없다. 그러다 늘 시켜먹던 고수냉면 배달부가 놀라운 무술 실력을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삼룡이다. 이소룡, 성룡에 이어서 액션 스타가 될 것 같다고 치켜세우는 인물이다. 순진한 그는 할아버지 밑에서 무술을 익혔지만 자신을 숨긴 채 세상이 어지러우면 도울 생각만 하고 있다. 이 순진한 청년이 황 감독의 감언이설과 흉계에 의해 이전까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액션 영화에 발을 담근다. 리얼 액션이라고 부르는 것을 넘어서 진짜 싸움의 현장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실제 조폭들의 싸움 현장에 투입되어 싸우는데 삼룡이는 이것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황 감독은 아주 어렵고 힘들게 얻은 영화의 무대다.

 

사채업자는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담기를 바라고, 어느 순간 사채업자의 연인이 된 성숙은 여주인공이 되고 싶다. 이때부터 영화 제작은 두 상전을 모신 아주 어려운 제작환경 아래에서 진행된다. 이 과정 속에 작가는 영화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영화 이야기를 녹여내면서 순진한 삼룡이를 타락의 현장 속으로 밀어넣는 황 감독을 좀 더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 황당한 설정 속에서 비현실적인 존재감을 뽐내면서 인간미를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삼룡이다. 그의 무술은 실전적이고 효율적이라 이전에 나온 액션 장면과 차별된다. 최고의 액션 배우가 한참 꼬인 황 감독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도 같이 꼬인 것이다. 이 꼬임을 절정은 바로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이다.

 

이야기는 용산 철거민 참사가 있은 지 5년이 지난 현재와 그 사건이 있기까지의 과거를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그리고 현재 황 감독이 운영하던 만화방도 철거의 운명 아래 놓인다. 이 두 사건은 동일하다. 하지만 사건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더 큰 생존이 걸려 있던 용산 철거민은 처절하게 투쟁하였고, 황 감독은 그냥 무력하기만 하다. 이 대비되는 모습은 절박함의 차이일까? 아니면 자본이 법의 이름으로 가하는 폭력에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일까? 작가는 이 둘을 비교하지 않고 과거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본의 편에 선 공권력이 불러온 비극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 아주 잘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그들이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도 같이 보여준다. 이런 현실에 순간적으로 분노하지만 곧 둔감해지는 나 자신이 너무 쉽게 보인다. 무섭다. 문제는 이것도 순간일 뿐이다.

 

소설이 보여주는 과거가 암울한 것은 그 비극의 결말을 알기 때문이다. 황당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웃기고 즐겁고 재미있지만 그 이면에 깔린 아픔과 비극과 고통은 조용히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현재 시점에서 삼룡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여 그때의 복수를 하지만 이것은 잠시 동안의 통쾌함 그 이상이 아니다. 세상은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니 더 열약해졌다. 이런 세상에 황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기록하는 것이다. 영화를 위해 촬영한 것들을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황당했던 액션 영화가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로 변한다. 이 부조화를 독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사라지고 자본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재미와 사회 문제를 잘 조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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