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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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삼체>가 번역되어 출간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촌스러운 표지에 중국 SF란 소개글이 나의 관심을 완전히 접게 만들었다. 중국의 유명한 작가란 설명이 있었지만 홍보는 어디까지나 홍보라고 생각했다. 이런 와중에 인상에 강하게 남은 것은 역설적으로 표지다. 가끔 이 책에 대한 좋은 평가를 보았지만 중국 SF영화의 인상이 남아 있어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다 놀라운 소식을 보았다. 2015년 휴고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때 그냥 촌스러운 표지를 가진 못 믿을 중국 SF소설이 신데렐라처럼 변했다. 그렇게 <삼체>를 고이 사셔 모셔두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삼체>를 찾아 먼저 읽으려고 했다. 3부작의 2권부터 읽기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더미에서 1권을 꺼내기가 귀찮았다. 2권이 700쪽이 넘는 것을 생각하면서 1권도 이 정도 분량이라는 짐작을 한 탓에 더 귀찮았다. 그냥 읽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느린 전개와 지극히 중국적인 설정이 눈에 거슬리고, 1권의 내용을 모르다 보니 생기는 정체를 겪었다. 피곤한 몸상태도 한몫했다. 이 거대한 설정과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교차하면서 머릿속에 하나씩 쌓아가다 보니 쉬운 독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가다가 어느 순간 빠져들었다. 속도가 붙고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해졌다.

 

이 소설의 설정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삼체의 세계에서 온 지자들이다. 지구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이 지자는 인류의 과학이 진보하는 것을 막고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알 수 없는 것은 딱 하나다. 사람의 생각이다. 생각은 그 사람 고유의 것이다. 모든 것이 투명한 지자들에게 사람들이 가진 속임수는 아주 낯선 것이다. 이미 삼체 세계에서 지구를 향해 함대가 출발하였다. 400년이 지나면 지구에 도착하여 멸망으로 이끌 수 있다. 이 예정된 종말을 피하기 위해 인류는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바로 면벽 프로젝트다. 4명의 면벽자를 선택하여 다가올 삼체 함대에 대항하려고 한다. UN은 이들을 위해 무한대에 가까운 지원을 한다. 4명의 면벽자가 공표되는 순간 이 프로젝트는 시행되었다.

 

4명의 면벽자 중 뤄지가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다른 세 명도 자신의 역할을 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에 더 가깝다. 그들은 기초 과학의 발전이 한계 지어진 세계 속에서 선진 우주 문명의 함대와 싸워야 한다. 당연히 패배주의와 종말의 공포가 세계를 지배한다. 면벽자들은 하나의 희망이다. 세계의 거대한 자본이 이들을 지원한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기존 과학을 기초로 해야 하는 한계가 분명하다. 한계가 주어진 상태에서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옆에서 지켜보는 지자까지 있다. 여기에 지자를 추종하는 무리 ETO까지 있다. 이들은 면벽자를 저지하기 위한 파벽자를 보낸다.

 

이 거대한 설정 중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왜 뤄지가 면벽자로 뽑혔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놓친 것이 아니라면 충분한 설명이 없다. 그리고 지자는 뤄지를 죽이려고 한다. ETO가 저격을 하지만 방탄복 때문에 산다. 1편에 나왔다는 스창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뤄지가 우주사회학이란 학문을 만들지만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지자들이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를 죽일 이유가 없어 보인다. 뭐 면벽자로 뽑힌 것 자체가 의문이지만. 물론 다른 세 명은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이 거대한 자본으로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반격을 준비하지만 파벽자들을 만나면서 그 숨겨진 의도는 간파된다. 알 수 없는 사람은 뤄지가 유일하다. 사실 이 메시아적 설정이 눈에 살짝 거슬렸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과학 지식은 아주 큰 힘을 발휘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아서 클라크의 작품이 연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는 과도한 상상을 자제한다. 대표적인 것이 삼체의 함대가 지구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함대의 비행 속도가 광속에 가깝다면 몇 년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 400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 설정이 인류에게 절망과 동시에 희망을 안겨준다. 희망은 가끔 착각을 불러와 현실 인식을 방해한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이 부분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냉혹하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현실적인 모습 뒤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희망을 남겨둔다.

 

분량만 놓고 봐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하드 SF의 모습을 보여주는 와중에 인류에 대한 냉혹한 모습을 기본으로 깔아놓는다. 대표적인 것인 도피주의에 대한 각국의 반응이다. 내가 살지 못하면 너도 죽는다는 발상이다. 생존을 위해 인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냉정한 판단도 나온다. 이런 부분이 나올 때 작가가 세계를 보는 시각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뤄지를 최후의 희망으로 남겨둔 것은 조금 과한 설정이 아닌가 한다. 작가의 작품 중에 한 편도 그런 것을 보면 영웅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부작 중 겨우 한 권이자 2권만 읽은 상태에서 이 시리즈를 온전히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로 과학에 정통하면서 거대한 규모를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은 대단하다. 예전에 기대했던 한국 SF 작가들의 부진을 생각하면 중국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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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만찬
올렌 슈타인하우어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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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원제목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제목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것은 2006년 빈 공항 테러 사건 이후 서로 사랑했던 두 연인이 6년 만에 만나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심리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일 때문에 갑자기 헤어진 전 여자 친구를 만나러 온 헨리의 로맨스 정도로 생각했다. 그가 보여준 셀리아에 대한 감정과 표현들이 살짝 나의 이성을 흐려놓았다. 물론 이 만남이 단순한 과거의 추억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업무가 주된 것이다. 하지만 감정은 언제나 어떻게 튈지 모른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헨리와 셀리아가 번갈아서 화자로 등장하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같이 화자가 된다. 헨리가 현재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셀리아는 과거 속에서 현재로 넘어온다. 모든 사건은 바로 이 과거 속에 있다. 바로 2006년 빈 공항에서 있었던 이슬람 과격단체의 비행기 납치 사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건으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이 죽었다. 이것이 헨리와 셀리아 모두에게 강한 트라우마가 된다. 특히 셀리아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고, 일을 그만두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아주 건조하게 풀어낸다. 이 건조함 속에 진실은 단편적으로 표현되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이어간다.

 

헨리가 갑자기 셀리아를 찾아온 것은 2006년 빈 공항 사건 당시 있었던 미 대사관 내부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다. 납치된 비행기 속에는 정보 요원이 있어 문자로 정보를 보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이 생방송을 하는 상황에서 특수부대가 작전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이 단체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이 과장에 작가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설정이나 어떤 액션도 넣지 않았다. 실제 상황이란 점을 제외하면 일상적인 삶의 풍경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실제 무대와 그 뒤에서 벌어지는 정보전은 조금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6년 만의 재회는 약속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에서 벌어진다. 셀리아가 선택한 식당이다. 오랜만에 만난 두 연인은 가벼운 이야기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일상적인 모습이다. 이 모습 뒤에는 서로 다른 숨겨진 의도가 있다. 솔직히 후반부로 가기 전까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 사이사이에 현재의 삶이 드러나고, 옛 감정이 흘러나온다. 여기에 휩쓸리면 작가가 살짝 풀어놓은 함정에 빠진다. 특히 헨리의 감정에 빠지면 더 심하다. 나는 그의 손길과 추억에 빠졌다. 그러다 예상하지 못한 문장을 읽고 놀랐다. 뭐지?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나, 하고. 이것은 작은 시작일 뿐이었다.

 

셀리아는 현재 두 아이의 엄마다. 그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 당연히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진실은 그녀만이 안다. 이야기 후반부는 바로 이것에 대한 설명이자 이 소설의 백미다. 그녀가 발견한 한 통의 전화가 모든 것의 시발점이다. 이 전화 때문에 연인과 직장을 떠나야했다. 이 한 통의 전화가 빈 공항 사건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127명의 죽음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평생 이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한다. 꿈속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이 상황과 연결되는 일도 일어난다. 이렇게 진실은 잔혹하고 무자비하게 다가온다. 사랑의 이름을 가지고.

 

무슬림과 테러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이것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실제 중요한 것은 약속 레스토랑에서 만난 두 남녀의 심리전이다. 현재와 과거는 어느 순간 만나게 되고, 진실은 이 둘의 충돌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각자가 가진 패를 숨겨놓고 싸우는 둘의 모습은 그냥 평범하기만 하다. 그래서 마지막이 더 인상적이다. 제목 그대로 배신의 만찬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잘 짜인 구성 속에서 스파이의 직업과 인간의 본성 중 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연출할지 궁금하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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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아마레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6
문형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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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순결한 사랑 이야기가 관능적인 사랑의 형식과 결합해 새롭게 구성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글을 읽고 이 책의 구성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이해는 나의 한계 밖이었다. 관능적인 경험이 과거의 순결한 사랑 이야기 기억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두 개의 이야기를 무리하게 연관시키지 않고 사랑의 두 극단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설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더 쉬울까? 이 소설이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보여준 변화는 나에게 그만큼 낯설었다.

 

첫 시작을 여는 암스테르담 아마레 카페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능적이고 철학적인 문장으로 표현되었다. 퇴폐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장면들이 나온다. 하지만 작가는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문장으로 이 장면을 난해하게 만든다. 인간이 가진 본능 중 하나를 극단으로 밀어붙여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대목들을 읽을 때 난해하고 힘들었다. 얼마나 에로틱한 장면들이 나올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물론 에로 소설 같은 장면들이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장 순수한 청춘의 사랑 이야기라니. 그것도 고전적인 주제인 병자와의 사랑 이야기다.

 

암스테르담을 무대로 국제 금융과 관능적인 사랑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는데 귀국 비행기에서 열병을 앓으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10년 동안 잠들어 있던 하나의 기억을 떠오른 것이다. 플로라 서인애와 유스토 한수명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일기장이다. 플로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인간의 힘으로 그 병을 나을 수 없다는 판단에 신의 도움으로 병을 낫고자 신학대학에 들어간 유스토의 사랑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화자는 이 두 연인의 증인으로 이들이 만남이 있던 곳에 함께 있었다. 플로라의 병은 진통제가 없다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다. 유스토를 만나기 위해 많은 양의 약을 먹고 온다. 그녀를 잠식하는 병의 무거움도, 두려움도 그와의 만남이 주는 행복을 막을 수 없다.

 

이 둘의 한계가 분명한 사랑 이야기는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 이어진다. 신부가 되고자 신학 대학에 간 유스토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플로라의 사랑은 한시적이다. 물론 모든 사랑이 한시적이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세기의 사랑으로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그 순수함과 열정을 놓고 본다면 말이다. 이들의 사랑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의 반응은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작가는 이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처리한다. 짧은 분량의 소설에서 이 부분을 깊이 있게 다루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통속적인 면도 있다.

 

취향을 많이 탈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맞지 않다. 현학적인 글을 좋아하지만 살짝 겉만 맴돌다가 머문듯한 분위기다. 그리고 플로라가 유스토에게 쓴 편지의 어투 등은 낡았다. 이 소설이 80년대에 나왔다면 그녀의 편지에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르지만 2000년대에 쓰기에는 너무 옛말투다. 미스터리로 풀어낼 수 있었던 플로라의 일기장에 대한 의문도 너무 쉽게 풀린 것도 약간 힘을 빠지게 한다. 현실적일 수 있지만 다른 장치들을 감안하면 설명이 부족하다. 특히 김일영의 이야기 부분에서. 쿼크의 여섯 가지 종류에서 따온 제목도 나의 이해를 넘어선다. 소설 속에 이 부분에 대한 해설을 내가 놓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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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고백과 거짓말 로망 컬렉션 Roman Collection 7
이지영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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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환상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남자에 대한 사랑 이야기다. 이 엇갈림은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사랑했던 남편의 몰락에도 그녀의 대응은 아주 수동적이다. 한 번도 한국으로 나가서 현재의 남편을 만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중국에 남아 남편의 연락을 기다리기만 한다. 어쩌면 그녀는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 바로 그녀가 품고 있는 기대와 옛사랑의 추억에 대한 파괴였다. 제3자가 보기에는 너무나도 뻔한 현실인데.

 

주인공 수는 남편을 따라 중국에 왔다. 그녀는 남편에게 완전히 빠져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남편의 중국 직장 생활이 무난한 줄 알았는데 짝퉁의 밀수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많은 벌금은 부과되었고, 남편을 구제하기 위해 자산을 처분해서 돈을 모은다. 충분하지 않다. 이런 현실은 그녀의 생활을 더욱 곤궁하게 만든다. 남편은 한국으로 들어가 가끔 연락하면서 6년 동안 그녀를 기다리게 한다. 이 기다림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만남이 일어나고, 사건이 생기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부터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수는 생계를 위해 퀼트 공방을 열었다. 다행히 동네 한국 아줌마들의 참석과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는 상인들 덕분에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공방은 한국 아줌마들의 수다방이다. 이런 곳에 한 중국 여성이 나타난다. 쯔메이다. 그녀는 수에게 공방에서 머물 수 있는지 묻는다. 허락한다. 이때부터 운명의 수레바퀴는 굴러간다.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쯔메이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돌아본다. 삶은 언제나처럼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차이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도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감정이 어느 곳으로 튈지 알 수 없는 상황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쯔메이. 순진한 중국 여성이다. 그녀가 버스 사고로 죽은 300명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세월호가 떠올랐다. 의도적인 장치가 분명하다. 하지만 작가는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서 이 이야기를 확장하지 않는다. 다시 사랑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쯔메이가 칼에 찔리는 사건을 당한다. 누가 했는지 모른다. 몸이 불편한 그녀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수는 그녀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쯔메이는 한 남자에게 빠진다. 그가 바로 라신이다. 라신의 행동을 보면서 몇 가지 예상을 했는데 역시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다. 추리 소설의 설정에 너무 상황을 몰아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목처럼 거짓말과 사적인 고백이 가득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자신을 속이는 일이 벌어지고, 그 고백은 그 거짓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 모든 것이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니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쯔메이가 라신에게 빠졌을 때 보여준 행동을 냉철하게 비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것을 유추할 수 있다. 몇몇 장면을 제대로 읽지 않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도 눈에 들어온다. 제목을 몇 번 다시 읽다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접속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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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에 나를 깨워줘
루쓰하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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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책 속에 나오는 사진들이고, 다른 하나는 젊은 중국 청년이 쓴 에세이란 것이다. 가끔 중국 문호들이 쓴 에세이를 읽은 적은 있지만 한 번도 청춘이 쓴 글은 읽은 적이 없다. 그래서 현재 중국 청년들의 삶과 생각을 살짝 들여다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게 크게 성공한 것 같지 않다. 성공을 외치지 못하는 것은 좀 더 다양한 인물들의 낯설고 폭넓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어딘가에 읽은 것 같은 이야기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많은 에세이를 읽은 경험 탓인지도 모르겠다.

 

우정, 사랑, 청춘 등을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하나씩 풀어낸다. 전체 이야기 속에 중복되는 부분이 있지만 크게 눈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추측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중국과 멜버른을 오가는 삶을 사는 것 같은데 자세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그의 글 속에서 단서를 찾아 추론해야 한다. 빈곤한 학창 생활을 말하는데 호주까지 유학을 갈 정도면 집이 부유한 편이다. 집에서 도움을 얼마나 받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 그의 글과 생활을 비교하면 약간의 괴리감이 생길 때도 있지만 부모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인물이 아님을 알기에 금방 고개를 끄덕인다.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는 모양이다. 경제적 문화적 환경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열정과 순정 등은 읽는 동안 답답함과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를 위해 그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줄 때 요즘 한국에서 아주 귀해진 순정을 발견한다. 그래서 약간 구식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하지만 누가 이런 순정을 싫어할까. 누군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굴복하여 다른 연인을 만난다. 옛 연인을 잊지 못해 방황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이런 사랑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뭐 이런 사랑도 영화로 이미 만난 적이 있지만.

 

저자의 글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편집과 번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보기 힘든 단어 등이 글 속에 나온다. 너무 한국적으로 번역해 낯설게 느껴졌다. 대표적으로 당장 떠오르는 단어는 삼팔선이다. 한국 학생도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가 중국 에세이에 등장했다. 내 나이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지만 요즘 청소년들은 어떨까? 의문이다. 이런 몇 가지 단어들을 제외하면 문장은 매끄럽다. 톡톡 튀는 문장도 가끔 보인다. 전체적으로 쾌활한 글로 가득한 에세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 읽히는 것은 짧은 문장과 저자의 이야기 솜씨 때문이다.

 

20대 후반. 같은 나이대의 한국 청년들과는 다른 나이다. 스펙과 군대 등으로 이제 갓 세상에 나온 한국 청년들과 이미 많은 경험을 한 중국 청년들은 차이가 벌어진다. 이 차이가 가끔은 낯설게 다가온다. 같은 나이지만 다른 경력 탓이다. 몇 번의 실패를 겪어도 그들의 나이는 한국의 사회 초년생보다 적다. 세상은 이들에게 더 많은 성장의 기회를 준다. 이 부분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중년의 나에게는 심각하게 다가온다. 청춘이 세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한국의 청년들은 어떠한가.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중년보다는 청년들이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몇몇 이야기에서는 지나간 나의 청춘이 순간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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