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삼체>가 번역되어 출간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촌스러운 표지에 중국 SF란 소개글이 나의 관심을 완전히 접게 만들었다. 중국의 유명한 작가란 설명이 있었지만 홍보는 어디까지나 홍보라고 생각했다. 이런 와중에 인상에 강하게 남은 것은 역설적으로 표지다. 가끔 이 책에 대한 좋은 평가를 보았지만 중국 SF영화의 인상이 남아 있어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다 놀라운 소식을 보았다. 2015년 휴고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때 그냥 촌스러운 표지를 가진 못 믿을 중국 SF소설이 신데렐라처럼 변했다. 그렇게 <삼체>를 고이 사셔 모셔두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삼체>를 찾아 먼저 읽으려고 했다. 3부작의 2권부터 읽기를 그렇게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더미에서 1권을 꺼내기가 귀찮았다. 2권이 700쪽이 넘는 것을 생각하면서 1권도 이 정도 분량이라는 짐작을 한 탓에 더 귀찮았다. 그냥 읽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느린 전개와 지극히 중국적인 설정이 눈에 거슬리고, 1권의 내용을 모르다 보니 생기는 정체를 겪었다. 피곤한 몸상태도 한몫했다. 이 거대한 설정과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교차하면서 머릿속에 하나씩 쌓아가다 보니 쉬운 독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가다가 어느 순간 빠져들었다. 속도가 붙고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 궁금해졌다.

 

이 소설의 설정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삼체의 세계에서 온 지자들이다. 지구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이 지자는 인류의 과학이 진보하는 것을 막고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알 수 없는 것은 딱 하나다. 사람의 생각이다. 생각은 그 사람 고유의 것이다. 모든 것이 투명한 지자들에게 사람들이 가진 속임수는 아주 낯선 것이다. 이미 삼체 세계에서 지구를 향해 함대가 출발하였다. 400년이 지나면 지구에 도착하여 멸망으로 이끌 수 있다. 이 예정된 종말을 피하기 위해 인류는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바로 면벽 프로젝트다. 4명의 면벽자를 선택하여 다가올 삼체 함대에 대항하려고 한다. UN은 이들을 위해 무한대에 가까운 지원을 한다. 4명의 면벽자가 공표되는 순간 이 프로젝트는 시행되었다.

 

4명의 면벽자 중 뤄지가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다른 세 명도 자신의 역할을 하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에 더 가깝다. 그들은 기초 과학의 발전이 한계 지어진 세계 속에서 선진 우주 문명의 함대와 싸워야 한다. 당연히 패배주의와 종말의 공포가 세계를 지배한다. 면벽자들은 하나의 희망이다. 세계의 거대한 자본이 이들을 지원한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기존 과학을 기초로 해야 하는 한계가 분명하다. 한계가 주어진 상태에서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을 옆에서 지켜보는 지자까지 있다. 여기에 지자를 추종하는 무리 ETO까지 있다. 이들은 면벽자를 저지하기 위한 파벽자를 보낸다.

 

이 거대한 설정 중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왜 뤄지가 면벽자로 뽑혔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놓친 것이 아니라면 충분한 설명이 없다. 그리고 지자는 뤄지를 죽이려고 한다. ETO가 저격을 하지만 방탄복 때문에 산다. 1편에 나왔다는 스창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뤄지가 우주사회학이란 학문을 만들지만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지자들이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를 죽일 이유가 없어 보인다. 뭐 면벽자로 뽑힌 것 자체가 의문이지만. 물론 다른 세 명은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이들이 거대한 자본으로 자신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반격을 준비하지만 파벽자들을 만나면서 그 숨겨진 의도는 간파된다. 알 수 없는 사람은 뤄지가 유일하다. 사실 이 메시아적 설정이 눈에 살짝 거슬렸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과학 지식은 아주 큰 힘을 발휘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아서 클라크의 작품이 연상되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는 과도한 상상을 자제한다. 대표적인 것이 삼체의 함대가 지구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함대의 비행 속도가 광속에 가깝다면 몇 년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 400년의 시간이 걸린다. 이 설정이 인류에게 절망과 동시에 희망을 안겨준다. 희망은 가끔 착각을 불러와 현실 인식을 방해한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이 부분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냉혹하고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현실적인 모습 뒤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희망을 남겨둔다.

 

분량만 놓고 봐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하드 SF의 모습을 보여주는 와중에 인류에 대한 냉혹한 모습을 기본으로 깔아놓는다. 대표적인 것인 도피주의에 대한 각국의 반응이다. 내가 살지 못하면 너도 죽는다는 발상이다. 생존을 위해 인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냉정한 판단도 나온다. 이런 부분이 나올 때 작가가 세계를 보는 시각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뤄지를 최후의 희망으로 남겨둔 것은 조금 과한 설정이 아닌가 한다. 작가의 작품 중에 한 편도 그런 것을 보면 영웅에 대한 환상이 조금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부작 중 겨우 한 권이자 2권만 읽은 상태에서 이 시리즈를 온전히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정도로 과학에 정통하면서 거대한 규모를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은 대단하다. 예전에 기대했던 한국 SF 작가들의 부진을 생각하면 중국이 부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