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기발한 우연학 입문
빈스 에버트 지음, 장윤경 옮김 / 지식너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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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에서는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 말을 뒤집는다. 우연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 우연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네 개의 파트로 나누어 설명한다. 개인의 삶, 일과 성공, 학문, 미래 등이다. 미시적으로 본다면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맞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혹은 전 우주적으로 본다면 어떨까? 아마도 우연보다는 누군가에게 일어날 일이 결국 그 사람에게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개인에게는 분명 우연이 작용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원제목은 이렇게 길지 않다. <unberechenbar>라는 원제목의 독일어를 번역하니 ‘계산할 수 없는’ 혹은 ‘예측할 수 없는’ 이란 형용사로 설명되어 있다. 이 짧은 제목이 이렇게 변한 것은 최근에 많이 팔린 책의 제목을 따라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제목은 원래의 저자가 의도한 것과 조금은 다른 식으로 변했다. 우연을 계산할 수 없는 것으로 대체 가능한가 하는 의문도 생기면서 말이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대는 앞에서 말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란 책과 나의 생각이 맞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복잡한 현상을 우리가 설명할 수 없기에 ‘우연’이란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학이란 학문이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 책의 앞의 두 장은 원제목에 나온 계산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계획한대로 잘 되지 않는 우리의 삶을 개인과 일로 풀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삶과 일에서 수많은 계획을 세운다. 저자도 말했지만 수많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매년 새로운 예측을 쏟아낸다. 그런데 그 중에서 제대로 맞은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뒤에는 다시 언론이 그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진다. 책 속에서 종말론을 믿는 신도의 예와 닮아 있다. 한 번 생긴 권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익숙하고 유명한 이름은 인용하는 사람에게 아주 편한 존재다. 그 결과를 다시 검토하는 일이 없는 언론에서는 특히.

 

일상에서 만남은 우연인 경우가 많다.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로 볼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 순간만은 우연일 것이다. 운명적 만남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소설 등도 바로 이 우연을 극대화시켜 표현한다. 건강은 어떨까? 아이는 또? 이 부분에서는 우연보다 저자의 원제목인 ‘예측할 수 없는’ 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우리는 수없이 생각하고 살면서 바꾼다. 계산한 대로 세상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수학 공식대로 삶이 흘러간다면, 미래가 개인별로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단순할까? 우연한 발견이나 발명이나 만남도 역시 정해진 것이라는 의미일 테니.

 

학문에서 우연은 준비한 자에게만 온다고 말한다. 기회가 늘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과 똑같다. 사실이다. 과학사에서 실수나 착각 등의 우연으로 발견한 놀라운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예측한대로, 계획한대로 되지 않아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 과학이고 발전이다. 고집스러운 사람들이 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뇌가 우연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앞에서 내가 주장한 것도 이것의 연장선일지 모르겠다. 최소한 아주 미시적인 부분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현생 인류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로 지식의 전달과 변화에 대한 빠른 적응을 말하는데 동의한다.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전문가의 예측은 그냥 예측일 뿐이다. 빅 데이터의 분석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늘 합리적으로 살지도 않는다. 늘 동일한 패턴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변하기도 한다. 이때는 우연보다는 ‘계산할 수 없는’이란 표현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 책 속에서 천재성에 대한 연령별 인용이 나오는데 우리의 억압적인 교육 방식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사고의 틀이 고정된 후에 우리가 가지는 선입견은 무서울 정도다. 재미처럼 나온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읽은 소설 한 대목을 떠올려주었다.

 

공연을 많이 하는 저자가 쓴 책이고, 유머를 곳곳에 넣어 생각보다 쉽게 읽었다. 덕분에 곳곳에서 실소를 풋! 하고 몇 번이나 날렸다. 그 유머가 나와 맞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우연학이란 제목 때문에 원래의 가치가 조금 사라진 것 같다. 저자는 우연보다는 우리가 계산한대로 되지 않는 삶과 미래와 일들을 말하고 싶어한 것 같은데 말이다. 이 표현의 차이를 하나로 뭉뚱그린다면 그 의미가 많이 왜곡될 것이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대중적인 자연과학 분야 글을 쓰는 작가 한 명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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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1
정영문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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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문보다 번역가 정영문에 더 익숙하다. 집 책장을 뒤져보면 정영문의 소설 한두 권 이상이 나오겠지만 그가 번역한 소설은 최소한 그보다 몇 배는 될 것이다. 나의 한국 소설 사랑이 90년대 중반에 거의 끝나면서 몇 사람의 작가를 제외하면 번역된 소설에 집중한 탓도 있다. 수없이 사들인 책들 중에 혹은 읽은 책들 중에 번역 정영문이란 이름이 각인된 것은 그만큼 다른 번역자와 달리 나쁘지 않은 번역을 한 덕분일 것이다. 한때 김연수가 번역했다는 이유로 책을 산 적도 있으니 번역자에 대한 나의 호불호는 어떤 때는 집착과도 같다. 뭐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면서 이런 편식은 꽤 많이 사라졌지만.

 

<하품>이란 작품은 신작이 아니다. 출판사에서 기존에 출간된 중편소설을 새롭게 기획해서 낸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중편이란 설명과 책을 받았을 때 판형과 편집을 봤을 때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처음 초판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묘한 언어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미로 속에 빠진 듯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곱씹으면서 읽었지만 나의 회색뇌세포는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명사와 동사, 동사의 어미변화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는 이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겨우 서막일 뿐이다.

 

소설은 한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읽다가 포기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상되었다. 나와 그의 대화가 진행되는데 이들은 거의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시점에서 말하고, 그가 말하는 것을 듣는 방식이다. 당연히 나의 심리 묘사는 좀더 세밀하고 길지만 그의 심리 묘사는 짧고 추측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둘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과 방식이다. 어떤 부분에서 그들이 누군가를 죽였다고 말할 때 청부살인자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또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들의 현재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도 자세한 설명은 사라지고 지리멸렬한 일상만 쏟아낼 뿐이다.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이 두 사람의 나이도 알 수 없다. 적지 않은 나이인 것은 분명한데 홀로 살고 있다는 것 외에는 어떤 정보도 없다. 그냥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 뿐이다. 그 수다를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일치하여 놀란다. 감정과 행동의 차이가 작은 행동으로 사라지거나 순식간에 감정의 표현이 변화는 장면은 어떤 것이 진심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리고 문장으로 표현되는 이성과 감정은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다. 집중해서 읽어야 겨우 따라갈 수 있다.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문장의 끝에 ‘내가 말했다’ 혹은 ‘그가 말했다’를 읽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려면 앞의 문장을 다시 한 번 더 읽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이런 점에서 번거롭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보니 생각이 어떤 지점에서 멈출 때가 많다.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이 둘의 이상한 친분 관계를 보다 보면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몇 개의 장면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주장을 목소리 높여 말하던 때, 서로가 자기 말만 하던 때, 억지로 함께 그 시간을 보내야만 하던 때 등의 수많은 장면들 말이다. 이런 장면들에 담긴 감정의 변화는 상황에 따라 쉽게 달라진다. 그렇다고 전체적인 감정이 변할 정도는 보통 아니다. 비루해 보이는 이 둘의 대화 속에서 나의 모습을 더 많이 보았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내 삶이 비루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비루해 보이는 이들의 대화가 우리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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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2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소설가보다 번역가 !
 
에타와 오토와 러셀과 제임스
엠마 후퍼 지음, 노진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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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면 여든세 살이 되는 에타는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남겨 놓고 집을 떠난다. 그녀의 떠남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이 교차하는 시간은 더 먼 과거에서 가까운 과거로, 현재는 새로운 현재로 이어진다. 그 시간 속에 세 인물의 삶이 조금씩 녹아든다. 바로 에타와 오토와 러셀이다. 제임스는 처음 읽었을 때는 에타가 짝사랑했고, 언니를 임신시킨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제임스는 에타의 여행동반자로 사람이 아니라 코요테다. 사람들이 개라고 생각할 정도다. 이 소설 속에서 에타와 제임스는 상당한 기간 같이 다니고 대화를 나눈다. 비현실적인 장면이지만 이 교감에는 눈길이 절로 간다.

 

에타가 떠난 후 남겨진 사람은 오토와 러셀이다. 오토는 남편이고, 러셀은 옆 농장의 주인이다. 하지만 더 먼 과거로 돌아가보면 오토와 러셀이 어떻게 만났는지, 이 둘이 어떤 관계인지 천천히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오토와 러셀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모르는 옆 농장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트랙터를 타고 사고 난 그 순간 말이다. 이렇게 러셀은 오토 네 집안으로 스며들고, 둘은 절친한 우정을 쌓는다. 이 둘이 헤어진 순간은 오토가 군입대해서 유럽의 전쟁터로 파견된 그때뿐이다.

 

소설 속에는 정확한 시대를 알려주는 연도가 나오지 않는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1930년대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오토가 경험한 전쟁은 제2차 대전일 것이다. 이 시대는 많은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많이 죽던 시절이다. 오토 네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더욱. 대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앞부분의 몇 장면은 지금의 우리를 생각하면 아주 비현실적이다. 가끔 옛날 사진을 볼 때면 이 시간들이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온다. 오토와 러셀이 다닌 학교의 풍경도 그랬다. 에타와 오토와 러셀을 묶어준 것도 바로 이 학교다. 에타가 선생으로 온 것이다.

 

과거가 이들의 흔적으로 강하게 드러낸다면 현재는 늙은 두 노인의 새로운 삶을 보여준다. 에타는 도보로 특별한 목적지 없는 긴 여행을 떠나고, 오토는 에타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에타의 레시피대로 음식을 해먹는다. 이 둘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은 러셀이다. 하지만 러셀이 그녀에게 갔을 때 에타는 집으로 돌아갈 의지가 없다. 러셀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고, 에타는 계속 걷는다. 이 도보여행이 언론을 타면서 그녀의 인기가 올라간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 계속 떠올랐다. 이 여행 도중에 그녀는 자신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적어놓는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장면이다.

 

오토는 음식을 해먹다가 어느 날 러셀의 집앞에 서 있는 사슴을 발견한다. 이때부터 에타가 나온 신문으로 사슴을 만든다. 에타와 러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사슴은 완성된다. 다른 동물들도 만든다. 그 대상은 점점 많아진다. 그가 아내와 친구를 위해 만든 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이 작품만은 위한 전시회를 열겠다는 사람까지 나타난다. 비가 와서 이 작품들이 훼손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랬다. 아주 현실적인 작품이라면 잘 보관되었으면 좋겠다고.

 

학교에서 이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쟁은, 편지는 둘을 묶어주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오토의 글을 교정보기 위해서였지만 어느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유럽의 전쟁은 젊은이들의 열정과 정의를 부채질했다. 그들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몰랐다. 전사 통지는 수많은 가족을 비탄으로 몰아넣고, 전쟁에 뛰어든 군인들로 하여금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만들었다. 때로는 누군가의 운명과 관계를 비틀게 만들기도 한다. 이야기가 뒤로 가면서 이 부분이 더욱 부각된다.

 

소설 구성의 놀라운 점은 어느 특정 시점까지 이야기한 후 끝맺은 것이다. 그 후와 현재의 시간을 비워놓았다. 이후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상상력으로 채워놓거나 보여준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대화는 별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덕분에 앞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고생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후반부에 가면서 에타가 오토와 헷갈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무슨 반전이 펼쳐지는 것일까? 하고 기대했다. 이런 깜짝 놀라는 장면을 빼도 힘든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의 삶이 주는 강한 인상은 그대로 남는다. 마지막 장면은 몇 번을 앞뒤로 넘기면서 그 여운에 빠져든다. 긴 세월을 산 세 노인의 삶을 세밀하게 적어나가지 않고 빈곳으로 남겨두었기에 그 여운은 더 강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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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퀴엠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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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콜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시리즈 중 여덟 번째 작품이다. 첫 작품이 <몽키스 레인코트>라고 하는데 아직 읽지 않았다. 아마 이 시리즈가 순서대로 나왔다면 첫 권부터 읽었을 테지만 현재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작품이 몇 권 나왔다. 다행이 두 권은 읽었다. 이 시리즈는 현재까지 모두 열세 권이 나왔다고 한다. 예전에 마이클 코넬리의 시리즈가 나오길 바랐는데 그대로 된 것을 감안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나의 희망이다. 그리고 엘비스 콜의 동료인 조 파이크 시리즈도 있다고 하니 기다리는 즐거움이 두 배다. 이것 역시 나올 때 이야기지만.

 

솔직히 말해 이야기의 전개나 설정은 그렇게 신선하지 않다. 오히려 낯익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된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가 경찰 드라마 작가였다는 것도 하나일 것이고, 이런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친숙한 설정과 전개로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충격적인 반전을 이용해서 독자와의 두뇌싸움을 벌이지 않는다. 꼬고 비트는 설정도 특별히 없다. 있다면 강한 캐릭터를 가진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과 현실적인 수사와 경찰 내부의 문제 등이다. 작가는 이렇게 흔한 혹은 빤한 재료를 가지고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좋은 작가들이 자주 보여주는 능력이다.

 

엘비스 콜은 탐정이다. 세계 최고를 외치고, 스스로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속된 말로 자뻑과 유머의 경계를 오고 간다. 이런 외형적인 모습은 그의 진실된 능력을 숨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늘 숨겨진 모습을 경계하라고 말하지만. 소설의 도입부는 화산재가 날리는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지만 진짜 재미는 애인인 루시의 이삿짐에서 생긴다. 여친의 소파를 여러번 옮기면서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동료 조 파이크에게서 전화가 온다. 아는 사람의 딸 카렌 가르시아가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납치, 혹은 유괴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실제는 다 큰 성인 여성이다.

 

자수성가한 거부 프랭크는 경찰에게 연락해서 딸의 실종을 말했지만 어른 여성이 사라진 것 가지고 바로 수사에 바로 착수하지 않는다. 이에 불만을 품은 그가 탐정 일을 하는 조에게 연락한 것이다. 조는 그가 사위로 삼고 싶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수사는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카렌의 시체 발견으로 상황이 바뀐다. 이제는 누가 죽였는지 살인자를 찾아야 한다. 도시의 강력한 후원자인 프랭크는 엘비스 콜과 조 파이크가 수사 과정에 참여하길 바란다. 신고 후 바로 수사에 들어가지 않는 탓에 경찰이 또 무언가를 숨길 수 있거나 그 내용을 전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거대한 부는 이제 경찰 수뇌부를 움직이게 만든다.

 

조는 경찰 살인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실제 그의 동료가 수사 중에 죽었다. 이번 이야기에서 조 파이크의 과거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그 범위를 확장한다. 선글라스 뒤편에 아주 파란 눈동자를 숨기고 다니는 이유도 같이 나온다. 그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한 사람의 성장기에 가정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지, 그 영향력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개인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 수 있디. 조의 경우는 좋은 쪽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아주 무서운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보여준다. 어떻게 폭발할지 알 수 없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리면서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이 시리즈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보니 소설 속에서 시점의 변화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엘비스의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이 교차하는데 이것도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경찰은 엘비스 일행에게 중요한 정보를 숨기고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프랭크가 걱정한 그대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연쇄살인범의 소행이란 것을 안 순간 분위기가 바뀐다. 적당한 만큼 숨겨야 한다. 이것이 엘비스와 조에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들은 더 돌아가야 하고, 사건의 핵심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능력은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쇄살인범의 존재와 그 이유에 대한 부분을 그렇게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는다. 샘의 아들이란 살인자가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 후 더욱 그렇다. 프로파일링으로 예측한 대상자가 나타나지만 잘못된 분석이다. 프로파일링의 환상을 단숨에 깨트린다. 엘비스의 수사는 여형사 돌런과 함께 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동시에 돌런이 엘비스에게 끌린다. 감정이 뒤섞이면서 관계가 꼬인다. 사건의 수사는 더디다. 언제나 그렇듯이 수사는 천천히 하나씩 조사하는 과정에 그 윤곽이 드러난다. 과거를 연결하고, 그 연결고리를 하나씩 들여다볼 때 드러난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중간에 보여준 문장들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개성 강한 캐릭터의 등장인물들은 그 재미를 배가시킨다. 시간이 나면 가지고 있는 이 시리즈를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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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너를 잃었는가 미드나잇 스릴러
제니 블랙허스트 지음, 박지선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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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우울증의 무서움을 안게 꽤 오래되었다. 주변 사람들의 직접적 경험보다 그들이 들은 이야기가 먼저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조금 더 생각하고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씩 공감되었다. 이런 공감은 친구의 아내와 책을 통해 점점 깊어졌다. 그래서 언론에서 유아 살인이나 구타 등이 나오면 ‘왜 그렇게 했을까?’에 더 눈길을 준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하면서 안타까움을 내뱉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것을 머릿속에 담고 소설을 읽었다. 그녀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고.

 

엄마라는 말에 강요되는 수많은 의무와 책임은 육아에 전념하는 모든 엄마에게 무거운 짐이다. 아기와 행복하기만 하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기를 키워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힘들고, 힘들고, 힘들다. 독박육아라면 더욱. 그렇다고 이 엄마들이 아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의 고통과 힘겨움이 잠깐 폭발했을 뿐이다. 어떤 순간에는 조금 더 많이 더 심하겠지만. 수전 웹스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생후 12주 된 아들을 죽였다는 판결을 받는다. 산후우울증이란 진단 덕분에 일반 감옥보다는 치료감호소에 수감된다. 가석방으로 풀려났고, 이름을 바꾼 후 다른 삶을 살려고 한다. 이런 그녀에게 한 장의 사진이 전달되면서 상황이 뒤바뀐다.

 

딜런. 그녀의 아들 이름이다. 그녀에게 전달된 사진 뒤에 이 이름이 적혀있다. 누군가의 악의적인 장난일까? 그리고 계속해서 그녀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집에 누군가가 침입하고, 부서지고, 낙서한 흔적이 있다. 그녀의 가방에는 그녀의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가 들어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아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가 그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이때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기자라고 말하는 닉이다. 그녀의 절친인 캐시는 이 남자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닉이 쓴 기사를 검색한 그녀는 그의 도움을 받고 싶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실을 알고 싶다.

 

수전의 시점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과거의 시점에서 일어난 일들이 간단하게 중간중간 삽입된다. 빌리와 잭의 이야기다. 이 둘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우정을 쌓았는지 간단하게 보여준다. 수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이 둘을 만날 수밖에 없다. 내 경우에는 과연 수전의 시간 속에 등장하는 남자 중 누가 빌리와 잭인가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잭이 점점 더 악당으로 변했고, 이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들의 정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현실 속에서 마크와 닉이 가장 유력했다. 그러다 이야기의 방향이 조금씩 틀어진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작가는 중간까지 상당히 혼란스럽게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다. 잘 읽히지만 몇 가지 의문이 생기고, 상황들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순할 것 같았던 사건이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복잡해진다. 사진 속 아이가 진짜 딜런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그녀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누구며 왜 이런 행동을 할까 하고. 동시에 가장 수상한 남자인 닉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이어졌다. 범인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경우가 너무 많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닉의 외모에 빠진 수전의 모습은 조금 당혹스럽다. 단순한 호감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감정이 또 하나의 가능성을 암시하면서 상황을 어지럽힌다.

 

한 엄마의 산후우울증으로 인한 유아살인이라는 단순한 것 같았던 모습이 새로운 사실들로 인해 점점 복잡해진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기억은 재판 과정 속에서 나온 것과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보면서 충분한 설명이 빠진 것 같다. 거대한 상실과 충격이라고 하지만 치료감호소에 머무는 동안 충분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수전처럼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자료에 더 집중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진 충격적인 상황과 설명도 생략된 부분이 많아 추측과 이야기의 맥락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구성과 재미는 충분하지만 세부적인 부분이 조금 아쉽다고 해야 하나. 다음 작품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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