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귀영 옮김 / 콤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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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다 미쓰요의 단편 여섯 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주로 그녀의 장편만 읽다가 단편집을 읽으니 조금 색다른 느낌이다. 각각 분량이 조금씩 다른데 하나로 이어지는 주제가 있다. 바로 또 다른 인생이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화자들은 모두 현재와 다른 삶을 꿈꾼다. 현재의 삶이 불만 가득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환상 혹은 기대에서 비롯했다. 사실 결혼한 사람들 누구나 한 번 이상씩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만약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과연 그 삶이 행복한 것일까? 어떻게 보면 평행우주의 한 장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는 순간도 있다.

 

주제와 가장 비슷한 제목을 가진 작품이 <또 하나의 인생>이다. 부부가 불륜커플과 함께 산토리니로 여행을 갔다. 이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중심에 놓고, 화자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을 꿈꾼다. 늘 함께 한 남편의 부재를 기뻐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나’는 이 사실에 놀란다.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 감정이 꿈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륜커플의 격앙된 감정은 잔잔하고 마냥 행복할 것 같은 여행에 변화를 불러온다.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 또 하나의 인생보다 이 커플이 싸운 이유와 그 결말이 더 궁금해진다.

 

<달이 웃는다>는 아내의 불륜과 이혼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작품이다. 아내가 바라는 이혼을 계속 거부하다가 자신의 감정을 깨닫는다. 그러다 한 여성택시운전사를 만나면서 자기 인생의 변곡점 중 하나를 회상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예쁜 여경찰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한 말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 말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아내의 이혼 요구를 줄기차게 거절하고 아내를 괴롭혔던 그의 집착이 끊어진 것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의 선택이 그 당시 아이의 공감을 불러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도 무사 태평>은 쫓기는 삶을 사는 한 여자를 보여준다. 블로그 순위를 위해 매일 자신의 글을 올린다. 대부분 자신이 요리한 음식이나 산 음식이다. 그녀의 현재는 결코 자신이 바란 삶이 아니다. 결혼까지 생각한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자신을 찼고, 이 때문에 현재의 남편을 만나 아이를 낳고 산다. 평범한 주부다. 하지만 블로그가 그녀를 조금 특이하게 만든다. 쿨할 것 같았던 인생이 현재의 불만으로 과거의 집착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결코 가보지 못한 삶을 자꾸 생각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런 삶에서 딸은 그녀의 감정 깊은 곳을 건드린다. 가끔 블로그 때문에 화를 내지만 말이다. 과거를 현재에 와서 확인하는 순간 그 과거는 조금씩 날아간다. 그녀가 친구에게 말했던 말처럼.

 

<주방 도라>는 아내와 이혼한 후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 이름이다. 우연히 방문한 것처럼 가서 그녀의 삶을 염탐한다. 이 과정에 그는 만약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이란 가정을 수없이 한다. 직설적으로 물어볼 수 없어 여자사람 친구를 데리고 가서 정보를 더 얻는다. 역시 정공법으로 다가갈 생각은 없다. 그가 이혼하게 된 과정을 봐도 마찬가지다. 도망다니다가 이혼당했다. 옛 여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없었던 그가 다시 잘 될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보이지 않지만 그의 노력여하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표제작 <평범>은 평범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유명인이 된 동창생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둘은 친했고, 한 남자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일이다. 그러다 유명인이 된 친구를 잡지와 방송에서 보게 되었고, 트위터로 소식을 얻는다. 그러다 유명인인 하루카가 그녀를 만나러 오겠다고 한다. 아이없는 그녀가 남편 몰래 그녀를 만난다. 그런데 하루카의 목적이 그녀를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하루카의 특별해 보이는 삶이 자신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루카가 “아주아주 평범한 게 불행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라는 말을 하는 순간에.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는 읽으면서 평행우주론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10년 버스사고로 아들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이다. 그녀는 이 사고 이후 자신의 삶을 두 개로 분리한다. 현실의 그녀와 그녀가 바라고 꿈꾸는 또 다른 삶으로. 현실은 10년 전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후회하고, 또 다른 나는 아주 평범한 엄마의 삶을 자세하게 그려낸다. 만약이란 가정이 얼마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 만약을 버릴 때 삶은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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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씽크_오래된 생각의 귀환
스티븐 풀 지음, 김태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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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의 귀환’이란 부제를 출판사에서 붙였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의 놀라운 역사 정도로 직역할 수 있을 것이다. <리씽크>란 제목에서 나오듯이 이 책은 과거의 이론이나 생각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현재에 발전시킨 것들을 다룬다. 저자는 “재고와 재발견의 기술은 권위, 지식, 판단, 옳고 그림 그리고 생각 자체의 절차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위한 자료를 하나씩 풀어서 보여준다. 부제가 지닌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명제, 반명제, 예측의 3부로 나누었다. 사실 이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모르겠다. 모르는 것은 넘어가고, 아는 것만 본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하지만 이 저자가 들려주는 과학에 대한 이론들은 쉽지 않다. 그냥 전체적인 개요는 알겠는데 세부적으로 과학에 들어가면 나의 한계가 금방 드러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 그대로다. 그리고 몇몇 이야기는 나에게도 그렇게 낯설지 않다. 이런 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이미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손을 씻는 이야기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것이 그 당시 의사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이 의사들의 반대가 과학의 발전을 도왔다는 것이다. 반대를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 이유가 명확해지고 과학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블랙박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효과가 분명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행동이나 과학을 풀어낸다. 블랙박스를 해석하는 것이 당시 과학으로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재 혹은 미래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정을 모른다고 결과를 무시하는 행동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블랙박스 이론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과거에 무시되었거나 한계가 분명했던 이론과 과학이 새로운 과학 등의 발전과 다른 아이디어에 의해 다시 조명 받는 일이 생긴다. 실제 이런 사례들을 엮어서 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하나로 엮어서 풀어내려고 한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 부분이 광고 문구에 따르면 통섭의 천재라는 말에 부합할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흔히 말한다. 맞는 말이다.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것도 과거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책에서 ‘기마대의 부할’이란 유쾌한 제목을 붙인 장도 실제 읽어 보면 별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대륙에서 특공대가 말을 타고 옮겨 다녔다는 것이다. 당연히 현대의 최신장비들을 지니고 말이다. 이처럼 상황과 현실에 맞게 기존의 아이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유연한 사고와 지식과 경험이 왜 현장에서 필요한지 잘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범신론과 좀비 아이디어의 부할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다. 특히 좀비 아이디어 부분은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몇 가지 선입견에 그대로 적용된다. 비과학적이고 사실과 너무나도 다른 정보가 감정에 호소하고, 아니면 말고 같은 말로 왜곡하면서 지속된다. 저자는 이것과 과거의 이론의 문제를 다르게 분류하고 있다. 아니 이런 것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과학과 이론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낙수효과를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좀비 아이디어다. 우리 주변을 떠돌고 다니는 수많은 이론 아닌 이론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범신론은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저문 이론이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와 과학의 발전 등이 엮이면서 이 이론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론이 그렇게 낯설지 않다. 아마 여기저기에서 본 내용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곤마리 정리법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일본 만화나 영화나 소설 등에 익숙한 나에게 낯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용성 측면에서 틀린 아이디어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상기시켜준다고 할 때 고개를 끄덕였다. 틀렸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행동하거나 실험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시대와 과학의 발전에 의해 바뀔 수 있다.

 

개인적으로 눈길을 많이 끈 부분은 기본소득과 우생학이다. 최근에 자주 나오는 기본소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을 ‘사회배당’이란 말로 바꾸니 새로운 가능성이 조금 보인다. 인종대청소의 원인 중 하나였던 우생학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원래 학문이 의도했던 것과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을 가지고 전체를 매도하는 나쁜 습관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라는 문장은 곱씹으면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말의 남용에 대한 버트런드 러셀의 답변은 더욱 그렇다. 이런 리씽크의 힘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일단 알아야 한다. 모른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조금 힘들게 읽었지만 차분히 내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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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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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작가다. 그렇다고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유레루>라는 영화가 나온 것을 알고 있고, 이 영화 시나리오를 소설로 각색한 것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작품도 영화 포스트를 먼저 보았다. 표지를 보았을 때 나의 눈에 먼저 들어온 배우는 후카츠 에리다. 한때 아주 즐겨보았던 일본 드라마의 여주인공이었던 그녀였기에 눈에 확 띈 것이다. 사치오 역의 배우는 검색해서 큰 화면으로 보니 생각한 배우와 다른 인물이다. 물론 안면 있는 배우다. 최근 몇 년 일본 드라마를 보지 않았고, 영화도 잘 보지 않아 낯선 배우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책을 펼쳐 읽고 난 후 이런 생각들은 사라졌다.

 

차량 사고로 아내를 잃은 유명 소설가 이야기다. 이렇게 간단히 적고 나니 별로 쓸 말이 없다. 아내를 지독히 사랑했다면 그 상실감을 절절하게 풀어내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내가 사고로 죽던 밤에 애인과 집에서 섹스를 나누고 있었다. 사고 처리 과정에서도 그는 결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만 인식하지 그 이상의 뭔가를 느끼지 못한다. 유명 소설가에 뛰어난 외모를 가진 탓에 방송에 자주 출연했다. 아내가 죽었는데도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남자의 감정이 변한다. 낯설고 불안하다. 하지만 그 섬세한 묘사와 진행 때문에 강하게 몰입한다.

 

‘나’의 본명은 가누가사 사치오다. 이 이름은 실제 히로시마 카프의 유명 선수와 같다. 아버지가 이 이름을 지을 때 그 선수가 유명했던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자라면서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야구를 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 글을 쓰겠다고 했지만 잡지사의 편집부 중 한 명일뿐이었다. 이런 그에게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사람이 대학 신입생 동기였다가 자퇴한 후 미용사가 된 나쓰코다. 그녀의 오랜 지원 끝에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사치오라는 이름을 싫어해 필명을 쓰무라 케이라 지었다. 대외적으로 본명은 한 번도 알린 적이 없다. 그녀는 그를 늘 사치오라고 부른다.

 

나쓰코는 사치오의 글을 좋아한다. 좋은 점만 칭찬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그녀는 일 년에 한 번 친구 유코와 여행을 간다. 여행 가는 도중에 사고로 죽었다. 소설의 전반부는 사치오와 나쓰코의 이야기지만 중반부터는 사치오와 유코의 가족 이야기다. 아내가 죽었을 때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남자가 유코의 남편인 요이치의 연락을 받고 만나면서 생활과 생각과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요이치의 아들과 딸의 관심을 끌려고 하고, 어느 순간 그 집에 조금씩 동화된다. 이 과정이 왠지 불안하다. 그가 살아온 순간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속적으로 아이를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매니저의 독백은 아주 날카롭고 현실적이다.

 

이 소설은 모두 ‘나’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나’는 사치오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요이치도, 나쓰코도, 그의 정부도 모두 포함된다. 이 일인칭 시점은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사치오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시선은 현실의 일부만을 포착할 뿐이다. 하지만 그 일부 속에 전체의 감정이 담겨 있다. 어떻게 보면 평이한 모습들이지만 영화를 소설로 만든 덕분인지, 아니면 작가의 능력 덕분인지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연상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홀로 된 사치오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이 불안감이 파국으로 이끌지, 아니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유려하고 섬세하게 감정을 다루는 문장은 영화라는 이미지를 통해 나에게 지속적으로 다가왔다. 절제된 감정 뒤에 숨겨진 불안감과 외로움은 그냥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상실 뒤에 조금씩 그를 잠식한다. 그러다 발견한 아내의 문자 메시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내의 삶.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과 작고 소중한 깨달음과 관계. 절제된 감정이 어느 순간 폭발할 때, 이것을 어리둥절해할 때,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지막 문장에서 드러난 감정을 볼 때 나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소설을 보면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참으로 오랜만에 했고,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불쑥 솟아났다. 아주 긴 변명의 끝에 드러난 진실은 아주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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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제국 미스트본 1
브랜던 샌더슨 지음, 송경아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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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스트본 시리즈 1권이다. 아주 두툼하다. 848쪽이다.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하는데 모두 읽은 지금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하다. 아마존에 들어가 2부인 <승천의 우물>에 대한 평을 살짝 읽었는데 대체로 좋은 평이다. 별 네 개 반이다. 물론 나쁜 평도 가끔 보인다. 쪽수를 먼저 이야기했으니 한 마디 더 하자. 최근에 이렇게 두툼한 책이 많이 나온다. 분권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비록 들고 다니며 읽기 힘들기는 했지만. 2부의 분량을 확인하니 1부보다 더 두툼하다. 과연 한 권으로 나올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정통 판타지라고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조금 다르다. <반지의 제왕>에서 본 것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 현대 판타지물을 가상의 세계 속에 녹여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주인공의 능력 때문이다. 금속을 태워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설정인데 이 능력이 너무 빨리 발전한다. 빠른 것에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무협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실제로 여주인공 빈이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고 하나씩 지식을 터득하는 과정은 무협 속 장면을 연상시킨다. 능력이 아니라 가르침에 대한 부분 말이다.

 

세계의 구세주였던 로드 룰러가 절대권력을 천 년 동안 행사하는 세계를 다룬다. 무려 천 년 동안이나 로드 룰러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이 지배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그는 귀족과 오블리게이터라는 공증인을 만들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무리를 처단하기 위해 심문관이라는 괴물도 만들었다. 이 세계는 귀족과 빈민이자 노예인 스카로 이루어져 있다. 로드 룰러는 귀족과 스카의 결합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귀족과 스카의 혼혈이 생기면 무조건 죽인다. 이 소설의 설정 중 하나는 바로 스카를 보는 귀족들의 시선과 로드 룰러의 천년 지배에 지친 스카들의 대립이다.

 

빈은 스카다. 하지만 귀족 혼혈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만 아는 채 할 수 없다. 만약 아는 채 한다면 바로 죽는다. 기득권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 때문이다. 빈은 최하층에서 겨우 생존을 유지한 채 살고 있다. 도둑의 두목 밑에서 폭력에 휘둘리지만 목숨만은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한 미스트본을 만난다. 바로 켈시어다. 누구도 살아 돌아온 적이 없었던 하스신의 갱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의 생존은 하나의 전설이다. 그가 갱에 가기 전에는 미스트본이 아니었다. 아내의 죽음이 그를 미스트본으로 이끌었다. 여기서는 ‘끊어졌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주 큰 고통 뒤에 오는 현상이다. 초능력의 각성하는 계기는 바로 이 ‘끊어짐’이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로맨서라는 존재를 알아야 한다. 알로맨서는 각각 하나의 금속을 태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이것을 알로맨시라고 한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철, 강철, 주석, 백랍, 아연, 황동, 구리, 청동 등을 태워 각 금속 고유의 능력을 발휘한다. 보통은 하나의 능력만 가지지만 특별한 존재는 늘 존재한다. 이 모든 능력을 가진 사람을 미스트본이라고 한다. 이 미스트본은 귀하지만 아주 희귀한 존재는 아니다. 귀족들이 최소한 한두 명 정도의 미스트본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미스트본의 싸움과 활약을 보여줄 때 그 화려함이 극대화된다. 이 미스트본도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으면 그 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없다. 켈시어도, 빈도 모두 훈련을 받았다.

 

이야기는 두 사람의 시점으로 대부분 처리된다. 바로 하스신의 생존자인 켈시어와 도둑 소녀 빈이다. 천년 동안 고착화된 마지막 제국에서 누구도 로드 룰러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그의 권위는 강해진다. 이 제국을 뒤흔들 계획을 세우는 인물이 있다. 바로 켈시어다. 지배계급인 귀족과 피지배계급인 스카로 고정된 이 세계에 혁명의 바람을 불어넣으려고 한다. 하스신의 갱에 갇히기 전에도 그는 아주 뛰어난 도둑이었지만 미스트본이 된 지금은 더욱 대담해지고 유능해졌다. 반란을 위해 동료를 모으고, 스카들을 반란군으로 키운다. 이 계획을 직관적으로 보면 아주 허술하다.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순간순간 계획을 조정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빈은 불쌍한 아이다. 오빠가 스카들의 배신을 말한 것을 철석 같이 믿는다. 자신을 눈에 띄지 않게 숨기고, 언제나 달아나려고 준비한다. 처음에 켈시어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켈시어와 그의 동료를 만나면서 우정과 동료애를 배운다. 귀족들의 정보를 얻기 위한 스파이가 되어서는 사랑하는 남자도 만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바로 빈과 엘란드의 연애담이다. 너무 흔하고 뻔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이 설정 때문에 빈이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사랑은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더구나 그들은 아직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십대다.

 

각 금속을 태우면서 생기는 능력을 아주 자세하게 분류했다. 미스트본의 능력과 차별되는 전문가의 능력은 새로운 재미를 준다. 이 부분이 앞에서 말한 무협의 한 장면과 닮았다. 매일 떨어지는 재와 꽃의 색을 모르는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혁명의 기운은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하지만 이 거대한 물결은 단숨에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전체를 뒤덮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아주 종교적인 장치를 이용했다. 뒤로 가면서 더욱 속도감 있게 읽힌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덧붙여 다음 이야기의 암시도 같이 나온다. 더 두툼할 다음 이야기를 벌써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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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강, 꽃, 달, 밤 - 당시 낭송, 천 년의 시를 읊다
지영재 편역 / 을유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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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唐詩)에 관심이 많았다. 한창 무협에 빠졌을 때 작가들은 작품 속에 당시 한두 편 정도는 늘 넣었다. 한자의 한국음은 대충 읽을 수 있었지만 모르는 몇 단어와 번역 상의 문제로 작가의 해석을 따라갔다. 학창 시절에는 한문 수업을 들으면서 당시를 몇 편 해석한 적도 있었다. 문고판 당시집을 샀지만 한국 시인의 시도 읽지 않던 시절이라 몇 편 힘겹게 읽다가 그만 두었다. 이런 이력들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시인과 제목들은 어딘가에 한두 번 이상은 본적 있다. 그만큼 유명한 작품들이 실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당시의 일곱 형식으로 먼저 나누었다. 오언절구, 칠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율시, 오언고시, 칠언고시, 악부 등이다. 모두 52수가 실려 있는데 각 시는 나라 소리 읽기, 한자새김, 어휘 풀이, 번역, 역주, 간체자와 한어 병음 자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 소리 읽기는 한자의 한국 음을 말하는 것인데 저자는 당시 운율의 3요소인 평측, 분구, 압운을 각 시마다 표시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사극 드라마 등에서 시를 읽던 모습을 떠올리는 생각보다 쉬웠다. 몇 편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서 들은 엉터리 ‘~하고’같은 추임새를 넣고 있었다. 이것은 또 한어 병음 자모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엉터리 중국 발음으로 읽으면서 괜한 만족감을 느낀다.

 

형식으로 나누고, 모르는 한자와 해석에 먼저 눈길을 주다 보니 당시의 매력을 잘 느끼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괜한 트집일 수도 있는데 시의 번역도 왠지 이전에 알고 있는 것과 다르거나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몇몇 있었다. 학자의 번역이라 그런가, 아니면 번역의 다양성 탓인가. 아니면 나의 공부 부족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뿌듯하게 만드는 것은 지명 등이 나왔을 때 장소라는 것을 알고, 이 시를 읽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기억하지 못함으로 인한 아쉬움이 금방 찾아왔지만.

 

당시의 형식에 대해 이전에는 잘 몰랐다. 악부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오언 어쩌고, 칠언 어쩌고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나누어져 있다는 것은 잘 인식하지 못했다. 조금 더 공부하면 이 구분이 좀 더 쉬워질 것 같다. 목차를 보다 보면 유난히 많이 보이는 이름들이 있다. 바로 시선 이백과 시성 두보다. 이백은 여덟 편, 두보 아홉 편의 시가 책에 실려 있다. 52수의 당시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이 둘의 시가 당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일 것이다.

 

책을 읽다가 역자의 감상이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도 있었다. 경의중안선 월롱역을 보고 월롱이란 단어의 유래와 연결한 부분이다. 다른 역도 나중에 나오는데 분명하지 않은 사실을 감상과 엮어 풀어낸 것이 재미있는 상상이 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조금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편집자들의 노력 부족일지도 모르겠다. 힘겹게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인지 괜한 트집을 잡아본다. 실제로 많은 분량이 아니지만 쉽게 읽을 수 없었다. 한자의 뜻과 시의 해석이 나누는 부분이 있고, 주어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한자를 안다고 시를 쉽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외우는 것이 요긴하다고 각 형식의 장마다 적어놓았지만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자주 봐 한 문장 정도는 외우는 것이 적지 않지만 한국 시 한 편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나에게 당시 한 편을 전부 외우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자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외우는 문장이 늘어날 것 같다. 한국 시가 조금씩 나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처럼 당시도 자주 읊조리면 그 이미지가 조금씩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그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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