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 스피어
김언희 지음 / 해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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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 이름이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네이버북스 미스터리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로맨스 소설에서 상당히 유명한 작가다. 인터넷 서점 평점도 좋다. 뭐 이 분야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다. 아직은. 이런 사실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화엄사상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뛰어넘는 매직 스피어란 물건이었다. SF장르를 좋아하기에 이 분야를 화엄사상과 어떻게 연결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나의 지식이 화엄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아는 선 정도에서 멈췄다. 하지만 몇 가지 타임루프 설정은 새로웠고, 의문을 던져주었다.

 

프롤로그가 상당히 긴 편이다. 도입부의 장면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많은 소설 등에서 본 듯하기 때문이다. “왜……왔어, 나를…… 네 생에서 지우라, 했잖아” 이 문장도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문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결코 자신의 생에서 지울 수 없는 하나의 강력한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장현도는 수많은 삶을 살게 되고 성공 가능성이 아주 낮은 시도를 반복한다. 이 소설은 이 반복되는 시도와 이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사랑과 그 속에서 풀어내는 미스터리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부만 놓고 보면 가끔 날아오는 카카오페이지의 로맨스 소설과 비슷하다. 강 기자가 아이돌이었던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 장현도를 만나러 오고, 그의 바뀐 기를 알아채고, 화엄일승법계도의 영묘함을 느끼는 그 상황들 말이다. 그리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을 뉴스에서 보고 장현도를 찾아갔다가 그가 남긴 기록을 받는다. 실제 이야기는 바로 장현도가 남긴 기록에서 시작한다. 수많이 반복되었던 그의 삶과 열정과 결코 꺾이지 않았던 의지와 사랑 이야기 말이다. 그 중심에는 공바라가 있고, 매직스피어가 있다.

 

장현도. 창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이 임신 사실을 알고 자신의 삶을 바꾼다. 장현도는 이 사실 때문인지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전국 성정 0.1%의 엄청난 성적이다. 이런 그에게 한 여자가 영혼까지 파고든다. 공바라. 전교 일등에 잘 생기고 춤까지 잘 추는 그와 특이하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 공바라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는 동기들은 없다. 하지만 항상 가장 먼저 등교하던 그보다 먼저 와 있던 바라는 어느 순간 그의 영혼에 각인된다. 그리고 바라의 죽음은 삶의 방향을 바꾼다. 서울대 대신 감옥으로. 이 상황을 바꾼 것은 한 통의 메일이다. 그곳에서 바라의 흔적을 보고, 그녀가 남긴 유산을 받는다. 그 유산이 바로 매직 스피어다. 이 기계를 통해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그는 바라의 죽음을 멈추려고 한다. 언제나 실패다. 이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결국 찾게 되는 것은 바라와 그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다. SF가 어느 순간 미스터리로 넘어간다. 하지만 가장 큰 설정은 타임루프다. 보통의 타임루프라면 자신만 변한 것을 알 텐데 이 소설에서는 이 변화를 바로 아는 사람이 세 명이나 등장한다. 그들은 장현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다. 그의 김 변호사와 김 변호사를 만나게 해준 최 형사와 위조범이자 그의 제자인 천식 등이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처음에는 낯선 설정이지만 반복되는 상황을 보면 이 설정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화엄사상과 양자물리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매직 스피어. 이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있고, 장현도는 이 기계를 이용한다. 불교의 이론으로 보면 공바라에 대한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교의 법문을 소설 속에 넣고, 양자물리학을 설명하면서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설정을 만든다. 이 설정이 이 소설을 지탱하는 바탕이다. 장현도의 반복되는 새로운 삶에 대한 설명이다. 한 부분만 놓고 보면 무협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다. 반복되는 새로운 삶도 이미 몇 번이나 소설이나 영화로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낯선 장면과 설정을 잘 버무려 내어 한 인간의 사랑과 의지를 풀어내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뛰어난 가독성도 같이. 다른 작품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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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의 길을 걷다 - 동화 같은 여행 에세이
이금이 외 지음 / 책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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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 문학 작가 다섯 명이 발트3국을 여행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이렇게 세 나라다. 이 에세이의 작가들도 말했듯이 발칸반도의 나라와 자주 헷갈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도를 찾아보니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 쌓여있어 우리나라처럼 외세의 침입과 압제를 많이 받았다. 아니 시간만 놓고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를 추월한다. 이런 시기들이 그 나라의 유적으로, 전설로, 시로, 행동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그들이 어떻게 이 압제의 잔재들을 없앴을까 하는 의문으로 흘러간다. 당연히 이 책 속에는 나오지 않는다.

 

다섯 작가 중 이름을 제대로 아는 작가는 한 명도 없다. 작품을 보니 그래도 낯선 작품명을 가진 작가는 이금이 작가다. 워낙 어린이청소년 문학에 관심이 없다 보니 더 그렇다. 모두가 작가이다 보니 문장은 잘 정리되어 있다.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여행지를 둘러보는 방식도 다르다. 이것을 비교할 수 있는 곳은 후기인 작가의 말에서 이 다섯 명이 다시 모여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명을 말하고, 그곳에서 산 물건을 말할 때 그곳을 여행했던 기억과 추억들이 활짝 피어난다. 이 경험은 누군가와 같이 좋은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목차를 보면서 가장 먼저 착각한 것은 작가들의 글이 몇 사람에게 편중되었다는 것이다. 몇 사람 이름이 연속으로 나오면서 착시를 일으킨 것이다. 실제는 다섯 명의 작가가 각각 세 편의 글을 썼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글을 써지는 않고 한 나라만 쓴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다섯 명이 각자 한 나라에 대한 글을 썼다면 그들이 느낌 감상을 조금은 더 다양하고 새롭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한 작가가 한 나라에 대해서만 쓰고, 다른 작가의 간단한 감상을 끝에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괜히 한 번 트집을 잡아본다.

 

나라의 위치를 착각한 덕분에 그 나라의 날씨나 풍경을 꽤 잘못 이해했다. 누군가가 코발트빛깔을 발트와 연결한 것처럼. 각 나라의 이야기로 들어가면 그곳의 풍경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역사와 전설 등이 어우러져 풀려나온다. 에스토니아 민족 시인 크리스티안 야아크 페터르손 이야기는 작품보다 그 작품을 쓴 언어와 문법 등을 더 부각한 듯하여 아쉽다. 차이콥스키의 사연을 여기서 만날 것은 생각도 못했고, 그가 앉았던 의자를 새롭게 만들면서 악보를 새겼다는 사실은 재미있었다. 표지의 사진에 담긴 에피소드는 욕망의 충돌이 만들어낸 재밌는 이야기다.

 

여행을 “특별한 곳으로의 탈출이 아니라 잃어버린 일상으로의 초대”라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여행에서 자주 느끼는 감상이기 때문이다. 이 공감은 이 작가들의 글에서도 자주 나온다. 여행의 바쁜 일정 속에서 낯설고 신기한 것에 먼저 눈길이 가지만 결국 마주하는 것을 일상이다. 이때 나의 삶을 돌아보고, 잊고 있던 수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만난 하나의 에피소드가 한국의 어딘가로 이어지고, 그 나라의 비극적 역사가 한국 근현대사 연결된다. 그리고 국경을 차로 건넜을 때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나라의 경계가 새롭게 다가온다. 외국 국경에서 국경놀이를 한다는 여행자들이 순간 떠올랐다.

 

리투아니아는 한때 발트3국 중 가장 큰 나라였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다. 나폴레옹과 연결되는 빌뉴스의 백골은 권력자의 욕망이 그 나라 백성들에게 어떤 악영향으로 드러나는지 잘 보여준다. 이런 역사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십자가 언덕이다. 크고 작은 셀 수 없이 수많은 십자가가 꽂여 있는 그 언덕의 풍경은 아주 놀랍다. 그들의 삶과 열망이 그 어떤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았다는 표식이기도 하다. 나라가 무너지는 와중에 나타난 진정한 리더의 존재는 그가 죽었을 때 더 빛을 발한다. 다시 우리 역사와 겹쳐진다. 그리고 이 책 속에 나온 건물들 중 어느 하나도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이 높이가 한국의 고층건물과 대비된다. 분량과 달리 이리저리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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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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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범인에게 고한다> 시리즈 2부다. 어둠의 신기루란 부제가 달려 있다.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고, 전작에서 보여준 극장형 사건이란 점이 먼저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보이스피싱과 유괴 사업의 결합이란 부분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전작의 자극적인 연쇄살인과 달리 이번에는 지능형 범죄다. 지능형 범죄를 다루다보니 범죄자들의 비중이 전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이 늘어난 비중은 왜 이들이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경찰의 수사를 막기 위해 어떤 장치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서 어느 정도는 이 범죄자들에게 공감하는 부분도 생긴다.

 

도모키는 운이 나빠 범죄세계로 빠졌다. 단순히 이것을 운만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회사가 제품 관리 문제로 입사 취소를 요청하게 된 것은 운이 바빴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장래의 성장을 보고 선택했기에 더욱 그렇다. 그 다음은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좋은 직장은 지나갔다. 바텐더로 열심히 일하지만 범죄의 손길은 그와 같은 사람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 보이스피싱이다. 동생 선배 폭력배의 알선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 풀렸다. 개그의 소재가 되었던 그런 촌스러운 일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순식간에 처리한다. 이곳에서 아와노라는 사건 설계자를 만난다.

 

아와노는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 도모키의 작업장을 급습한 경찰의 낌새를 알고 전화로 메시지를 남긴다. Rest in peace. 이 약자는 RIP다. 립맨이란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아와노의 메시지를 받고 이상한 낌새를 COS 도모키 형제는 어렵지만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아와노는 그를 가만히 둘 생각이 없다. 그가 일하는 바에 와서 새로운 범죄 계획을 털어놓고, 그가 가담할 것을 요구한다. 그 사업이 바로 유괴 사업이다. 그는 이전에 실패했던 사례를 연구해서 이번 사업은 새로운 범죄의 기원을 열 것이라 주장한다. 이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중남미의 유괴 납치 등이다.

 

아와노의 아이디어는 놀라운 부분이 있다. 우발적인 복수나 개인의 유괴가 아닌 철저하게 사전 조사하고 분업화한 것이다. 상상력까지 덧붙여진 계획은 빈틈을 찾기 어렵다. 첫 유괴는 가볍게 성공하고 두 번째 유괴를 진행한다. 기발한 상상력과 대담함은 실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소설의 재미도 바로 이 부분에서 생긴다. 이 기발한 작전을 경찰이 어떻게 깨트릴지, 그 과정에 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혹시 실패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등. 그리고 이 사건을 마키시마 경사가 담당한다. 전작에 비하면 그의 분량이 많이 줄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경찰 내부의 알력과 문제점이 짧지만 강렬하게 드러난다.

 

유괴 사건의 핵심은 돈을 받는 것이다. 납치보다 문제는 돈의 수령이다.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도 이 부분이다. 돈을 받지 못해 인질을 죽이거나 이 과정에 체포된다. 보통 경찰들이 쫙 깔린 상황에서 돈을 받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와노는 이 과정을 아주 새롭게 멋지게 만들었다. 만화적 상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만 충분히 가능해보인다. 이런 과정을 더욱 매끄럽게 하는 인물들이 도모키 형제다. 폭력배 출신 동생과 달리 형 도모키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평범한 사람의 역할을 아주 잘한다. 기본적으로 말투나 행동이 폭력배들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범죄자에게 공감하는 부분도 바로 이 도모키 때문이다.

 

화려한 상황이나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전편처럼 엄청나게 몰입하게 만든다.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켜 상황의 변주를 일으키고, 기존 인물들은 반갑게 느끼게 만든다. 치밀하게 짜인 계획에 맞춰 범죄자와 피해자와 경찰들이 행동한다. 작은 파탄이 없다면 그냥 그대로 끝날 수밖에 없다. 경찰은 혹시 놓친 것이 있는지 조사하고, 범죄자는 계획이 깨어질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한다. 피해자는 혹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까봐 전전긍긍한다. 이때부터 장면과 상황의 설명을 위해 각각 다른 분량으로 진행된다. 무게의 추는 범죄자와 경찰로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암시한다. 어떤 범죄와 결과가 나올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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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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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심연> 이후 두 번째로 읽는 배철현 교수의 책이다. 이전 책이 자신의 사색을 담아내었다면 이번에는 우주와 인간의 역사에 대한 거대한 여정을 풀어놓았다. 빅뱅에서부터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등장까지. 이 위대하고 거대한 여정은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위대한 혁신의 원동력은 이타심이었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책 속에 담긴 수많은 과학과 고고학과 종교의 분야는 아주 광범위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도 많았지만 새롭게 알게 된 지식도 상당하다. 파편적이고 단편적이었던 정보가 좀더 세밀해졌다.

 

이타심. 이 영적인 유전자와 대척점에 서 있는 용어가 그 유명한 이기적 유전자다. 처음 이타심이란 단어를 깨내어 놓았을 때 내심 기대한 것은 이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분명하고 명확한 공격이었다. 배려와 이타심 등이 어떻게 이기적 유전자와 다른지 긴 우주와 지구의 역사 속에서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깊이에까지 저자는 나아가지 않았다. 나쁘게 표현하면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반론을 펼칠 수 있는 근거나 지식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면 내가 저자의 의도를 오독한 것일 수 있다.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주 방대한 정보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잘 정리했다.

 

인간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언제부터 인간이었는지 묻고 우리가 누구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끝난다. 이 과정 속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과학의 지식은 ‘일시적’이며 ‘가변적’이다.”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 이 사실을 끄집어낸 것은 그가 설명해주는 수많은 과학적 발견과 정의와 지식들이 미래에는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허블망원경만 알고 있는 나에게 다른 우주망원경이 있음을 알려주고, 더 정밀하고 거대한 망원경을 통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주 흥미로운 도입부다. 개인적으로 기존 지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였다.

 

현대 물리학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아인슈타인 이야기로 시작하여 새로운 우주학을 거친 후 다시 과거의 찰스 다윈으로 돌아간 것은 제목처럼 인간의 위대한 여정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다윈의 이론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고 다시 간 곳은 바로 고고학과 신화와 과학이다. 고고학적 발견과 발굴과 추론은 현생 인류가 언제부터 나타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사실 이것을 몰라도 우리가 사는데 아무 지장없다. 하지만 우리를 알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위대한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사이에 저자의 풍부한 지식을 녹여내어 딱딱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재밌게 유지한다.

 

많은 정보들이 산처럼 쌓여 있고, 저자의 잘 정리된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정도 인간의 삶을 그려볼 수 있다. 새롭게 연구된 결과들이 기존 지식과 충돌을 일으킬 때 “진리란 원래부터 존재하던 어떤 것이 아니라 숙고와 연구를 통해 그 당시까지 자신이 믿고 있던 어떤 것”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농업에 대해 농업이 인간의 삶을 바꾼 것이 아니라 인류의 ‘상상력과 의지’가 농업을 발견한 원동력이라고 할 때는 고개를 잠시 갸웃했지만 수긍하게 되었다. 마지막 장의 인간들은 모두 상상력과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상상력과 호기심이 얼마나 우리 삶에서 큰 역할을 하는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고고학적 발견과 발굴 이야기는 교과서와 기존의 지식을 정말 많이 새롭게 만들어준다. 알타미라 벽화하면 하나의 그림만 떠오르는데 이 보다 훨씬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쇼베 동굴 벽화는 처음 알았다. 새롭게 발굴된 고대 유적은 이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 유적들이 의미하는 바를 해석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말하는 “종교 이전에 종교적 인간이 있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음미해본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이종교배가 가능했다는 주장은 또 다른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과학적 발견들을 단정적인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했다’와 ‘했을 것이다’의 차이는 너무 크다. 이런 문장을 쓴 것이 앞에서 말한 오늘의 과학과 지식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독자의 이해와 가독성을 돕기 위해서라면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너무 트집을 잡는다는 느낌도 있지만 이 어감의 차이가 조금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쓴 후 새로운 인류의 기원설이 나왔는데 이 부분도 반영한 것은 칭찬할만하다. 전체적으로 잘 정리되었고, 설명도 잘 했지만 그가 주장하는 이타심을 보여주는 데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대로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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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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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심리 스릴러다. 그것도 아주 잘 짠 스릴러다. 소개글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다른 남편의 물리적 폭력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폭력은 그 대상에게 공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공포는 사람의 의지를 잠식하고, 점점 나약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가정 폭력을 다룬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보여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다르다. 물리적으로 흔적이 남는 폭력은 행사하지 않는다. 강하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자신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을 때 감금과 굶주림과 만남을 제약하는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구성은 현재와 과거, 이렇게 둘로 나누었다. 과거는 점점 현재와 가까워진다. 이 시점의 이동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 이 두 시점은 잭과 그레이스 부부의 삶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잘 생기고 뛰어난 변호사인 잭과 동생 밀리가 다운증후군인 그레이스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 만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등. 남들이 볼 때 너무나도 완벽해 보이는 이 부부의 숨겨진 삶을 그레이스의 시선으로 하나씩 풀어낸다. 그리고 왜 그레이스가 잭을 떠나지 못하는지도 같이. 사실 이 부분이 없다면 이 소설의 긴장감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레이스에게 동생인 밀리는 아주 특별하다. 다운증후군을 알고는 부모들이 밀리를 입양 보내고 싶어했다. 그녀는 반대하고 자신이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삶은 밀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밀리가 놀이공원에서 혼자 춤추었을 때 잭이 나와 같이 춘 것은 그녀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날 이전에도 잭의 외모를 보고 힐끔거렸을 정도로 그는 잘 생겼다. 여동생까지 좋아해주니 이 보다 더한 축복이 없다. 둘은 아주 가까워졌고 6개월 만에 결혼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뉴질랜드 이민의 속도를 높였다. 이때만 해도 그레이스는 앞으로 펼쳐질 신혼의 달콤함에 취해 있었다. 결혼식 당일까지 말이다.

 

잭은 사이코패스다. 하지만 완벽한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다. 자신들의 삶이 아주 완벽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잭은 그레이스를 공포 속으로 밀어넣는다. 이 공포의 냄새는 그를 흥분시킨다. 어릴 때 아버지가 엄마를 지하실에 가두었을 때 그는 공포의 향기에 취했다. 이후 삶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지만 그가 태국에 가서 하는 일은 이것과 관계 있다. 그가 결혼한 후 태국으로 간 것도 이 연장선에 있는 일이다. 이곳에서 그는 그레이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그가 필요할 때 그 향기를 맡는다. 그레이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공포는 바로 밀리다.

 

남에게는 완벽한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집안에서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서 공포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킨다. 그레이스가 몇 번 저항을 하지만 실패한다. 그 대가는 참혹하다. 오직 공포만을 위한 지하실에 갇혀 지내야 한다. 먹을 것도 없어 어떤 날은 며칠을 굶어야 했다. 그녀가 작은 실수만 해도 매주 만나던 밀리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잭은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그녀가 실수하게 만들고, 이것을 핑계로 그녀를 괴롭혀 공포의 향기를 마신다. 이 상황을 독자가 납득하게 만들기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저항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저항들이지만 너무나도 쉽게 깨진다.

 

잭은 완벽한 부부를 연기하면서 이웃들의 관심이나 의심을 피한다. 그레이스가 작은 저항을 하려고 하면 밀착해서 겁을 준다. 집밖에서는 항상 옆에 붙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얻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약간의 변수만 만들어도 화를 낸다. 그리고 공포가 따라온다. 실제 그가 그레이스와 결혼한 이유는 밀리다. 지하실에 빨간 방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밀리가 자신들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잭의 밀착 감시를 막고, 작은 틈을 찾아내어 그를 공격해야 한다. 두 시점이 뒤바뀌는 그 순간 이 일은 벌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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