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1
정영문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가 정영문보다 번역가 정영문에 더 익숙하다. 집 책장을 뒤져보면 정영문의 소설 한두 권 이상이 나오겠지만 그가 번역한 소설은 최소한 그보다 몇 배는 될 것이다. 나의 한국 소설 사랑이 90년대 중반에 거의 끝나면서 몇 사람의 작가를 제외하면 번역된 소설에 집중한 탓도 있다. 수없이 사들인 책들 중에 혹은 읽은 책들 중에 번역 정영문이란 이름이 각인된 것은 그만큼 다른 번역자와 달리 나쁘지 않은 번역을 한 덕분일 것이다. 한때 김연수가 번역했다는 이유로 책을 산 적도 있으니 번역자에 대한 나의 호불호는 어떤 때는 집착과도 같다. 뭐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면서 이런 편식은 꽤 많이 사라졌지만.

 

<하품>이란 작품은 신작이 아니다. 출판사에서 기존에 출간된 중편소설을 새롭게 기획해서 낸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중편이란 설명과 책을 받았을 때 판형과 편집을 봤을 때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처음 초판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묘한 언어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미로 속에 빠진 듯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곱씹으면서 읽었지만 나의 회색뇌세포는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명사와 동사, 동사의 어미변화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는 이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겨우 서막일 뿐이다.

 

소설은 한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읽다가 포기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상되었다. 나와 그의 대화가 진행되는데 이들은 거의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이야기는 나의 시점에서 말하고, 그가 말하는 것을 듣는 방식이다. 당연히 나의 심리 묘사는 좀더 세밀하고 길지만 그의 심리 묘사는 짧고 추측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 둘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과 방식이다. 어떤 부분에서 그들이 누군가를 죽였다고 말할 때 청부살인자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또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들의 현재 삶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도 자세한 설명은 사라지고 지리멸렬한 일상만 쏟아낼 뿐이다.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이 두 사람의 나이도 알 수 없다. 적지 않은 나이인 것은 분명한데 홀로 살고 있다는 것 외에는 어떤 정보도 없다. 그냥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 뿐이다. 그 수다를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일치하여 놀란다. 감정과 행동의 차이가 작은 행동으로 사라지거나 순식간에 감정의 표현이 변화는 장면은 어떤 것이 진심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그리고 문장으로 표현되는 이성과 감정은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다. 집중해서 읽어야 겨우 따라갈 수 있다.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문장의 끝에 ‘내가 말했다’ 혹은 ‘그가 말했다’를 읽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려면 앞의 문장을 다시 한 번 더 읽어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이런 점에서 번거롭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 아니다 보니 생각이 어떤 지점에서 멈출 때가 많다.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이 둘의 이상한 친분 관계를 보다 보면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몇 개의 장면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주장을 목소리 높여 말하던 때, 서로가 자기 말만 하던 때, 억지로 함께 그 시간을 보내야만 하던 때 등의 수많은 장면들 말이다. 이런 장면들에 담긴 감정의 변화는 상황에 따라 쉽게 달라진다. 그렇다고 전체적인 감정이 변할 정도는 보통 아니다. 비루해 보이는 이 둘의 대화 속에서 나의 모습을 더 많이 보았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내 삶이 비루하다는 것일까? 아니면 비루해 보이는 이들의 대화가 우리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7-06-2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소설가보다 번역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