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타와 오토와 러셀과 제임스
엠마 후퍼 지음, 노진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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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면 여든세 살이 되는 에타는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남겨 놓고 집을 떠난다. 그녀의 떠남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면서. 이 교차하는 시간은 더 먼 과거에서 가까운 과거로, 현재는 새로운 현재로 이어진다. 그 시간 속에 세 인물의 삶이 조금씩 녹아든다. 바로 에타와 오토와 러셀이다. 제임스는 처음 읽었을 때는 에타가 짝사랑했고, 언니를 임신시킨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제임스는 에타의 여행동반자로 사람이 아니라 코요테다. 사람들이 개라고 생각할 정도다. 이 소설 속에서 에타와 제임스는 상당한 기간 같이 다니고 대화를 나눈다. 비현실적인 장면이지만 이 교감에는 눈길이 절로 간다.

 

에타가 떠난 후 남겨진 사람은 오토와 러셀이다. 오토는 남편이고, 러셀은 옆 농장의 주인이다. 하지만 더 먼 과거로 돌아가보면 오토와 러셀이 어떻게 만났는지, 이 둘이 어떤 관계인지 천천히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오토와 러셀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다. 모르는 옆 농장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트랙터를 타고 사고 난 그 순간 말이다. 이렇게 러셀은 오토 네 집안으로 스며들고, 둘은 절친한 우정을 쌓는다. 이 둘이 헤어진 순간은 오토가 군입대해서 유럽의 전쟁터로 파견된 그때뿐이다.

 

소설 속에는 정확한 시대를 알려주는 연도가 나오지 않는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1930년대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오토가 경험한 전쟁은 제2차 대전일 것이다. 이 시대는 많은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많이 죽던 시절이다. 오토 네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더욱. 대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앞부분의 몇 장면은 지금의 우리를 생각하면 아주 비현실적이다. 가끔 옛날 사진을 볼 때면 이 시간들이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온다. 오토와 러셀이 다닌 학교의 풍경도 그랬다. 에타와 오토와 러셀을 묶어준 것도 바로 이 학교다. 에타가 선생으로 온 것이다.

 

과거가 이들의 흔적으로 강하게 드러낸다면 현재는 늙은 두 노인의 새로운 삶을 보여준다. 에타는 도보로 특별한 목적지 없는 긴 여행을 떠나고, 오토는 에타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에타의 레시피대로 음식을 해먹는다. 이 둘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인 것은 러셀이다. 하지만 러셀이 그녀에게 갔을 때 에타는 집으로 돌아갈 의지가 없다. 러셀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고, 에타는 계속 걷는다. 이 도보여행이 언론을 타면서 그녀의 인기가 올라간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 계속 떠올랐다. 이 여행 도중에 그녀는 자신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적어놓는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장면이다.

 

오토는 음식을 해먹다가 어느 날 러셀의 집앞에 서 있는 사슴을 발견한다. 이때부터 에타가 나온 신문으로 사슴을 만든다. 에타와 러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사슴은 완성된다. 다른 동물들도 만든다. 그 대상은 점점 많아진다. 그가 아내와 친구를 위해 만든 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이 작품만은 위한 전시회를 열겠다는 사람까지 나타난다. 비가 와서 이 작품들이 훼손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랬다. 아주 현실적인 작품이라면 잘 보관되었으면 좋겠다고.

 

학교에서 이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쟁은, 편지는 둘을 묶어주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오토의 글을 교정보기 위해서였지만 어느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유럽의 전쟁은 젊은이들의 열정과 정의를 부채질했다. 그들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몰랐다. 전사 통지는 수많은 가족을 비탄으로 몰아넣고, 전쟁에 뛰어든 군인들로 하여금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만들었다. 때로는 누군가의 운명과 관계를 비틀게 만들기도 한다. 이야기가 뒤로 가면서 이 부분이 더욱 부각된다.

 

소설 구성의 놀라운 점은 어느 특정 시점까지 이야기한 후 끝맺은 것이다. 그 후와 현재의 시간을 비워놓았다. 이후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상상력으로 채워놓거나 보여준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대화는 별도 인용부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덕분에 앞부분을 읽을 때는 조금 고생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후반부에 가면서 에타가 오토와 헷갈리는 대목이 나오는데 무슨 반전이 펼쳐지는 것일까? 하고 기대했다. 이런 깜짝 놀라는 장면을 빼도 힘든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의 삶이 주는 강한 인상은 그대로 남는다. 마지막 장면은 몇 번을 앞뒤로 넘기면서 그 여운에 빠져든다. 긴 세월을 산 세 노인의 삶을 세밀하게 적어나가지 않고 빈곳으로 남겨두었기에 그 여운은 더 강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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