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도시 속 인형들 2 안전가옥 오리지널 30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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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오리지널 30권이다.

예상하지 못한 <모래도시 속 인형들>의 후속작이다.

1년 6개월만에 후속작이 나왔는데 3부작도 있다고 하니 더 기대된다.

나의 저질 기억력이 이전 이야기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재미는 그대로임을 안다.

샌드박스 시리즈이고, 연작 소설 형태인데 작가의 실험이 다양하게 들어 있다.

이전 작품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고, 3부에서 어느 정도 결말이 날 것 같다.

이미 작가와 편집자가 3부를 예고하고 있으니 그냥 기다리면 된다.

완결로 나아가는 중간에 있지만 각각의 단편들이 주는 재미는 변함없다.


읽다 보면 이전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생략된 내용들은 전편을 떠올리면서 조금씩 채워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는 존재를 쫓고 다가간다.

이 과정에 작가의 만들어낸 세계관이 하나씩 드러나고 메타버스의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게임이나 이런 쪽에 문외한인 나는 기존 영화 등의 이미지를 불러와 이해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메타버스와 해킹 등을 이용해 사건을 불러온다.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곳을 파고들어 틈을 벌리고 문제를 일으킨다.

<집행인의 귀한 칼날>은 게임 아이템을 이용한 범죄 이야기이자 부의 불평등 문제를 보여준다.


<힐다, 그리고 100만 가지 알고리즘들>은 난해하다.

AI들이 풀어내는 수많은 대화와 기호, 아주 짧은 시간은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나열 속에 황당한 인물을 등장시켜 살짝 고개를 기웃거린다.

유치하고 황당한 설정과 장면들은 알고리즘들의 대화와 엮여 생각하지 못한 재미로 마무리된다.

<셋이 모이면>은 한국인의 부동산 욕망을 그대로 담은 이야기다.

재개발을 둘러싼 각각의 이해가 충돌하고, 이 사이를 악당이 파고든다.

제목대로 다른 문양 셋이 모이면 스마트팜이 폭발한다.

사람들이 손목이 날아가는 위험이 생기지만 부의 욕망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복원 요법>은 평택에서 조금 더 확장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부산에서 올라온 두 아이들의 이야기는 미래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두 아이의 영원한 사랑, 아이들의 장기를 매매하는 악당.

이 아이들이 가지고 온 구형 스마트폰 등이 기괴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세컨드 유니버스>는 앞의 나온 사건의 배후와 연결된다.

이 사건의 배후에 존재하는 인물과 정체가 불명확한 존재의 등장.

모든 사건과 이어주는 이름 하나 여울.

발단한 과학과 메타버스 등이 어떻게 상류층의 오락으로 변하는지 보여준다.

그들의 삶에서 마약보다 더 강력한 자극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줄 때 놀랄 수밖에 없다.

이 단편에서 점점 더 어두운 배후의 실체에 한 발 더 다가가는 느낌이다.


에필로그를 읽기 전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에필로그가 다른 이야기의 예고편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 바벨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대 기술로는 분명히 불가능한 구조물의 모습은 쉽게 머릿속에 구현되지 않는다.

이런 장면과 상황에 대한 설명은 이 소설의 큰 재미 중 하나다.

그리고 이전에 본 많은 SF, 판타지 소설의 장면들이 읽는 내내 머릿속을 오갔다.

시간이 되면 3부가 나오기 전 다른 장편 한두 권 정도는 더 읽고 싶다.

매력적인 이 작가의 세계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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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앤 그리핀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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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중반까지도 그렇게 나의 심금을 울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감정을 건드리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한 노인이 호텔 바에서 읊조리는 자신의 삶에 이렇게 감동할 줄은 몰랐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의 삶과 비교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다.

잠시 숨을 멈추고 과거의 한 순간을 떠올리거나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본다.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과연 어떤 과거를 떠올릴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특별했던 다섯 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의 삶에 대한 것이다.

다섯 명은 그의 형 토니, 제대로 태어나지 못한 탈 몰리, 우울증을 앓은 처제 노린.

어렵고 힘들게 낳고 품에서 떠나보낸 아들 케빈, 마지막으로 그의 아내 세이디.

아들과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다.

어린 시절 그의 영웅 같았던 형 토니와 처제 노린은 예상 외의 인물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인 호텔과 바의 의미도.

무심코 읽고 지나간 이야기들이 뒤로 가면서 서로 엮이면서 의미를 품어낸다.


아일랜드인의 힘든 삶은 잘 알려져 있다.

모리스의 삶도 쉽지 않았다.

지주 돌러드의 성에 가족의 생계를 기대야 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지주의 폭력도 묵묵히 견뎌내야 하고, 아픈 아들의 병간호도 지주의 요청에 멈추야 한다.

그러다 우연히 모리스 앞에 떨어진 금화 하나.

이 금화가 불러온 사건은 결코 적지 않다.

모리스가 이 집에 대해 가지는 반감과 분노와 엮여 있다.

그리고 이 금화는 처제 노린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반짝이는 동전이다.

나중에 이 금화의 가치와 의미를 알고 그가 얼마나 불안해했던가.


평범한 한 소년이 어떻게 지역의 부유한 노인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토니의 죽음 이후 돌러드의 집을 나와 자신들만의 목장을 꿈꾸었다.

그 과정에는 미국으로 이민 가는 마을 사람들의 땅을 헐값에 매수한 것도 있다.

그의 매수 과정은 조금의 주저함도 인정사정없었다.

이렇게 그는 돌러드의 땅마저 조금씩 조금씩 사들인다.

그가 과거를 추억하는 레인스퍼드 하우스 호텔은 한때 돌러드의 집이었다.

돌러드의 손자 사위가 이 집을 호텔로 개조했고, 그 딸 에밀리가 호텔의 수익을 내었다.

이 과정에 모리스의 자본이 투자되었다.

에밀리의 삶도 알게 모르게 모리스의 삶과 엮였고, 이것은 다른 이야기와 이어진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당연히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다섯 번의 건배와 다섯 잔의 술과 다섯 인물에 대한 기억들.

단순한 회상처럼 보이지만 뒤로 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든다.

이런 반전도 재미있지만 가장 울림을 주는 것은 그의 삶에 큰 울림을 준 이야기들이다.

슬프고 그립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 말이다.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작가는 그 무게를 거의 느끼지 않게 풀어낸다.

이야기 곳곳에 담긴 부모의 마음, 상실감, 그리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

왠지 모르게 갑자기 흑맥주와 위스키 한 잔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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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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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존 윌크스 부스라는 이름은 낯설다.

이 이름 대신 링컨 대통령 암살범으로 바꾸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국사에 이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중요하기에 알고 있다.

특별히 이 암살범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도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가라면 이 사건과 인물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소재다.

그가 왜 이런 살인을 저지르고, 어떤 심리 상태였는지, 음모론을 덧붙여 파헤치는 것 등 말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그런 길을 따라가지 않고 그의 가족들에 눈길을 준다.

자료가 풍부한 두 사람뿐만 아니라 자료가 거의 없는 누나에게로.

덕분에 그 시대의 풍경을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있었지만 살짝 지루한 부분도 있다.


존 윌크스 부스가 직접 화자로 나오는 경우가 이 소설에는 없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그의 누나들 로절리, 에이시아와 형 에드윈이다.

에이시아와 에드윈의 경우는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만 로절리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읽으면서 가족의 굴레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 로절리에 눈길이 많이 갔는데 예상외의 정보다.

자신보다 위의 형제들이 모두 죽은 후 그녀는 선택의 영역이 점점 좁혀진다.

아래로 계속해서 동생들이 태어나고, 기회는 다른 형제들에게 넘어간다.

그녀에 있던 유일한 로맨스는 남자의 신분과 부모의 반대로 끝난다.

그녀의 삶을 보면서 한국의 대가족에 자신의 삶을 빼앗긴 누나들이 떠올랐다.

작가의 상상력과 그 시대를 엮어 풀어낸 로절리의 이야기는 뒤로 가면서 분량과 힘이 줄어든다.


에드윈.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고 아버지처럼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에드윈을 목수로 만들고 싶다.

아버지 부스는 유명한 셰익스피어 배우이고, 가끔 광기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연극이 흥행에 성공해 집에 많은 돈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자주 집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다.

아버지의 기행에 대한 이야기 대부분은 로절리의 이야기 속에서 흘러나온다.

절점 나이가 든 아버지를 돌보고 기행을 막기 위해 에드윈이 여행에 따라간다.

어린 소년인 에드윈은 연극에 대한 열정이 있지만 아버지는 연극을 시킬 마음이 없다.

이때 일어난 몇 가지 에피소드와 사건들이 에드윈을 배우의 길을 가게 한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항상 아버지의 연기와 비교 대상이 된다.


에이시아는 엄마의 미모를 물려 받았다.

존 윌크스 부스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자 가족이다.

그녀의 시선은 부스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곳으로 가 있다.

언니 로절리를 얕보고, 오빠 에드윈과의 관계도 그렇게 좋지 않다.

존을 제외하면 그녀의 사이가 특별히 좋은 가족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는 한 대가족의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을 더 잘 드러낸다.

세상에 나가 살아보지 못했기에 아직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순수함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그녀의 화려한 외모 때문에 많은 구애를 받지만 선택은 한정적이다.


존 윌크스 부스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지만 그의 행동까지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로절리, 에드윈, 에이시아의 이야기 속에 그의 행적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던 부분은 노예제도를 둘러싼 논쟁과 진영이다.

미국 역사에 밝지 못하다 보니 명확하게 풀어낸 부분이 아니면 헷갈려 한다.

미국 지리를 잘 모르다 보니 어떤 주가 노예제도 찬성주인지도 잘 모른다.

후반부에 속도가 붙을 때 아는 내용이 나와 더 가속도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존과 에드윈의 비교, 둘의 다른 행적 등은 자주 눈에 띄었다.

역사에 남은 암살범 가족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니 전혀 다른 느낌이다.


단순히 부스 가족만 보여주지 않고 시간 순으로 링컨의 행적도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 과정과 부스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란히 나아간다.

정해진 파국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그 사이에 있었던 풍성한 이야기들.

부스 가족 개개인의 삶과 그 시대 연극판의 모습까지.

전쟁이 끝난 다음 있었던 몇 가지 느슨한 상황과 암살 시도의 결합은 비극으로 변했다.

이 사건으로 부스 집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데 공감할 수밖에 없다.

역사 소설이라고 하지만 어떤 대목을 읽을 때는 역사 다큐를 보는 느낌이었다.

묵직하고 복잡한 이야기와 감정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회오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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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품
커스틴 첸 지음, 유혜인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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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짝퉁 시장의 한 면을 제대로 보여준다.

진품과 차이가 없는 모조품이 어떻게 사업이 되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짝퉁과 차원이 다른 모조품의 세계다.

실제 중국이나 베트남 여행을 가면 아주 다양한 짝퉁들이 시장에서 팔린다.

그냥 모양만 흉내낸 제품이 있는가 하면 진품과 구별이 불가능한 모조품도 있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제품은 바로 이런 모조품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시장이 생기게 되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확실하게 돈벌이는 된다.

그리고 진품들이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리는지도 알 수 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여성 위니와 에이바는 모두 중국계 미국인이다.

둘은 스탠퍼드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위니는 정확한 사유없이 대학을 자퇴해 떠났고, 에이바는 변호사가 되었다.

20년이 지난 후 위니가 우연을 가장한 채 에이바를 찾아온다.

에이바는 변호사 일을 그만 둔 후 아들 헨리를 잡애서 키우고 있다.

물론 혼자서 아이를 돌보지 않고, 마리아라는 도우미가 있다.

우연한 만남과 위니가 들고 있는 값비싼 백은 에이바를 자극하기 충분하다.

위니는 에이바를 자신의 사업에 끌어들이기 위해 모조품을 반품해 수익을 얻는 사업을 보여준다.

그럼 매장에서 산 진품은 어디에 있을까?

이베이에서 정품보다 5% 싼 가격에 바로 팔려나간다.

진품과 모조품의 가격 차이와 미국의 쉬운 반품 정책에 기댄 사업이다.


소설의 구성은 에이바의 자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이바가 어떻게 이 사업에 끼어들게 되었는지, 끼어든 후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자신이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후 시간순으로 말한다.

이 과정은 자신의 불행하고 힘든 육아도 같이 풀어낸다.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위니가 요구하는 것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더 부각시킨다.

읽다 보면 에이바에게 거리를 두면서도 그녀의 행동에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그녀가 중국에서 겪게 되는 일들은 이 이해를 조금 더 굳건하게 한다.

하지만 읽는 내내 우리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었다는 것을 놓친다.

그것은 이 모든 이야기가 교차 검증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모조품만을 다루는 소설이 아니다.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중국 학생들의 아이비리그 입시 부정과 미국 병원 장기이식 수술 순서 비리도 같이 나온다.

좋은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부모들의 처절한 노력이 나오는데 결코 낯설지 않다.

에이바의 마지막 정신적 마지노선을 무너트리는데 유치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리가 있지만 좋은 변호사를 구해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문제들은 에이바가 저지른 잘못을 살짝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위니는 에이바를 설득하기 위해 명품업체들의 폭리를 부각시킨다.

단순하게 에이바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중반 이후 다른 사실을 마주하면서 또 놀란다.

진품과 모조품의 모호한 경계, 모조품의 한계를 부각시키는 항공기 사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우리의 뒤틀린 욕망도 같이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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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이발소 - 소심하고 찌질한 손님들 대환영입니다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정미애 옮김 / 리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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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한 이상의 재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읽으면서 기대한 장면은 마지막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유쾌하고 언제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가 튈지 모른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독립적인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설정일 수도 있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연히 가게 된 이발소의 주인은 과연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일까?

단순한 실수 혹은 서툰 이발 솜씨?

주로 오는 손님들은 이런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안마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히게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거절을 잘 못하는 직장 여성, 기억 상실에 걸린 남자, 취업에 나선 취업준비생.

항상 고개를 숙이는 회사원, 집에 든 도둑 때문에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는 여성, 은퇴한 할아버지 등.

이들이 화자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 사람이 화자로 관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평소 가던 미용실 등이 문을 닫아 우연히 이 이발소에 들어간다.

여성 이발사가 자신의 가정사에 대한 수다를 떨고, 마사지를 받다가 잠든다.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너무나도 바뀐 자신들의 눈썹이나 머리 모양에 놀란다.

하지만 이 변화가 그들 마음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눈썹이나 머리 모양은 사람의 인상을 쉽게 바꾼다.

바뀐 모습에 그냥 적응하고 다음에 이 이발소에 오지 않으면 이야기가 거기서 끝이다.

하지만 이들은 바뀐 외모가 그들 마음에 변화를 불러오고, 행동으로 이어간다.

첫 이야기는 눈썹으로 인상을 바꾸고, 바뀐 인상의 힘을 경험하게 한다.

단순히 외모가 바뀐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자존감을 높여준다.

이 자존감은 없던 것이 생긴 것이 아니라 억눌려 있던 것이 튀어나온 것이다.

항상 고개만 숙이던 직장인이 산행에서 자신의 숨겨진 지식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 변화는 거대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조금씩 쌓였던 것의 전환점이 된다.

황당한 듯한 설정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재밌어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물론 기억상실에 걸린 남자의 이야기는 오해에서 시작한다.

이상한 이발소에서 야쿠자처럼 머리를 깎으면서 더 오해한다.

이런 오해가 그의 새로운 삶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홀로 사는 여성의 두려움을 극대화한 후 강인한 여성으로 변화를 다룬 이야기도 있다.

강한 여성으로 변하는데 가장 노력한 것은 그 여성 자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그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보다 더 완성형에 가깝다.

이와 비슷한 완성형이 한 소녀의 눈으로 본 할아버지의 변화를 다룬 이야기다.

스님 같은 머리에 스님 옷을 닮은 옷을 입은 할아버지의 변화 이야기다.

이 단편에서 변한 것은 단순히 할아버지만이 아니란 것이다.

모두 읽은 후 이 수상한 이발소의 정체와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욕망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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