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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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존 윌크스 부스라는 이름은 낯설다.

이 이름 대신 링컨 대통령 암살범으로 바꾸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국사에 이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하고 중요하기에 알고 있다.

특별히 이 암살범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도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가라면 이 사건과 인물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소재다.

그가 왜 이런 살인을 저지르고, 어떤 심리 상태였는지, 음모론을 덧붙여 파헤치는 것 등 말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그런 길을 따라가지 않고 그의 가족들에 눈길을 준다.

자료가 풍부한 두 사람뿐만 아니라 자료가 거의 없는 누나에게로.

덕분에 그 시대의 풍경을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있었지만 살짝 지루한 부분도 있다.


존 윌크스 부스가 직접 화자로 나오는 경우가 이 소설에는 없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그의 누나들 로절리, 에이시아와 형 에드윈이다.

에이시아와 에드윈의 경우는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만 로절리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읽으면서 가족의 굴레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 로절리에 눈길이 많이 갔는데 예상외의 정보다.

자신보다 위의 형제들이 모두 죽은 후 그녀는 선택의 영역이 점점 좁혀진다.

아래로 계속해서 동생들이 태어나고, 기회는 다른 형제들에게 넘어간다.

그녀에 있던 유일한 로맨스는 남자의 신분과 부모의 반대로 끝난다.

그녀의 삶을 보면서 한국의 대가족에 자신의 삶을 빼앗긴 누나들이 떠올랐다.

작가의 상상력과 그 시대를 엮어 풀어낸 로절리의 이야기는 뒤로 가면서 분량과 힘이 줄어든다.


에드윈.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고 아버지처럼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에드윈을 목수로 만들고 싶다.

아버지 부스는 유명한 셰익스피어 배우이고, 가끔 광기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연극이 흥행에 성공해 집에 많은 돈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지만 자주 집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다.

아버지의 기행에 대한 이야기 대부분은 로절리의 이야기 속에서 흘러나온다.

절점 나이가 든 아버지를 돌보고 기행을 막기 위해 에드윈이 여행에 따라간다.

어린 소년인 에드윈은 연극에 대한 열정이 있지만 아버지는 연극을 시킬 마음이 없다.

이때 일어난 몇 가지 에피소드와 사건들이 에드윈을 배우의 길을 가게 한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항상 아버지의 연기와 비교 대상이 된다.


에이시아는 엄마의 미모를 물려 받았다.

존 윌크스 부스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자 가족이다.

그녀의 시선은 부스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곳으로 가 있다.

언니 로절리를 얕보고, 오빠 에드윈과의 관계도 그렇게 좋지 않다.

존을 제외하면 그녀의 사이가 특별히 좋은 가족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는 한 대가족의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을 더 잘 드러낸다.

세상에 나가 살아보지 못했기에 아직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그 순수함은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그녀의 화려한 외모 때문에 많은 구애를 받지만 선택은 한정적이다.


존 윌크스 부스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지만 그의 행동까지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로절리, 에드윈, 에이시아의 이야기 속에 그의 행적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던 부분은 노예제도를 둘러싼 논쟁과 진영이다.

미국 역사에 밝지 못하다 보니 명확하게 풀어낸 부분이 아니면 헷갈려 한다.

미국 지리를 잘 모르다 보니 어떤 주가 노예제도 찬성주인지도 잘 모른다.

후반부에 속도가 붙을 때 아는 내용이 나와 더 가속도가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존과 에드윈의 비교, 둘의 다른 행적 등은 자주 눈에 띄었다.

역사에 남은 암살범 가족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풀어내니 전혀 다른 느낌이다.


단순히 부스 가족만 보여주지 않고 시간 순으로 링컨의 행적도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 과정과 부스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란히 나아간다.

정해진 파국으로 나아가는 과정과 그 사이에 있었던 풍성한 이야기들.

부스 가족 개개인의 삶과 그 시대 연극판의 모습까지.

전쟁이 끝난 다음 있었던 몇 가지 느슨한 상황과 암살 시도의 결합은 비극으로 변했다.

이 사건으로 부스 집안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는데 공감할 수밖에 없다.

역사 소설이라고 하지만 어떤 대목을 읽을 때는 역사 다큐를 보는 느낌이었다.

묵직하고 복잡한 이야기와 감정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회오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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