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앤 그리핀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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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중반까지도 그렇게 나의 심금을 울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감정을 건드리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한 노인이 호텔 바에서 읊조리는 자신의 삶에 이렇게 감동할 줄은 몰랐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의 삶과 비교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다.

잠시 숨을 멈추고 과거의 한 순간을 떠올리거나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본다.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과연 어떤 과거를 떠올릴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특별했던 다섯 명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의 삶에 대한 것이다.

다섯 명은 그의 형 토니, 제대로 태어나지 못한 탈 몰리, 우울증을 앓은 처제 노린.

어렵고 힘들게 낳고 품에서 떠나보낸 아들 케빈, 마지막으로 그의 아내 세이디.

아들과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다.

어린 시절 그의 영웅 같았던 형 토니와 처제 노린은 예상 외의 인물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두 사람을 연결해주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인 호텔과 바의 의미도.

무심코 읽고 지나간 이야기들이 뒤로 가면서 서로 엮이면서 의미를 품어낸다.


아일랜드인의 힘든 삶은 잘 알려져 있다.

모리스의 삶도 쉽지 않았다.

지주 돌러드의 성에 가족의 생계를 기대야 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지주의 폭력도 묵묵히 견뎌내야 하고, 아픈 아들의 병간호도 지주의 요청에 멈추야 한다.

그러다 우연히 모리스 앞에 떨어진 금화 하나.

이 금화가 불러온 사건은 결코 적지 않다.

모리스가 이 집에 대해 가지는 반감과 분노와 엮여 있다.

그리고 이 금화는 처제 노린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반짝이는 동전이다.

나중에 이 금화의 가치와 의미를 알고 그가 얼마나 불안해했던가.


평범한 한 소년이 어떻게 지역의 부유한 노인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토니의 죽음 이후 돌러드의 집을 나와 자신들만의 목장을 꿈꾸었다.

그 과정에는 미국으로 이민 가는 마을 사람들의 땅을 헐값에 매수한 것도 있다.

그의 매수 과정은 조금의 주저함도 인정사정없었다.

이렇게 그는 돌러드의 땅마저 조금씩 조금씩 사들인다.

그가 과거를 추억하는 레인스퍼드 하우스 호텔은 한때 돌러드의 집이었다.

돌러드의 손자 사위가 이 집을 호텔로 개조했고, 그 딸 에밀리가 호텔의 수익을 내었다.

이 과정에 모리스의 자본이 투자되었다.

에밀리의 삶도 알게 모르게 모리스의 삶과 엮였고, 이것은 다른 이야기와 이어진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당연히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다섯 번의 건배와 다섯 잔의 술과 다섯 인물에 대한 기억들.

단순한 회상처럼 보이지만 뒤로 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든다.

이런 반전도 재미있지만 가장 울림을 주는 것은 그의 삶에 큰 울림을 준 이야기들이다.

슬프고 그립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 말이다.

한없이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이지만 작가는 그 무게를 거의 느끼지 않게 풀어낸다.

이야기 곳곳에 담긴 부모의 마음, 상실감, 그리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

왠지 모르게 갑자기 흑맥주와 위스키 한 잔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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