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몰락 - 이재용(JY) 시대를 생각한다
심정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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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삼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삼성이 보여주는 행동들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잠시 나온 하청업체의 이익을 낮춰 자신들의 이익을 만든 것과 한국 소비자들을 봉으로 생각하는 것과 제대로 된 세금을 내지 않고 편법 상속을 한 것 등 때문이다. 삼성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제 삼성은 한국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성장했다. 주가나 이익 등을 감안하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 그리고 이 경제 효과를 바탕으로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는 여론 조작을 끊임없이 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고,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이건희 이후의 삼성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다.

 

이건희에 대한 평가는 많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이병철의 후광으로 성공했다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다. 나도 한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다른 재벌의 2세들을 생각하면 단순히 이병철의 유산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건희 회장의 엄청난 판단 착오에 대한 사례도 많다. 그 중 하나가 퀄컴이고, 다른 하나는 삼성자동차다. 휴대폰 시장을 생각하면 퀄컴을 인수하지 않은 것은 최대의 실수다. 경영학과 실패 사례로 자주 언급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그럼 삼성자동차는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의견을 펼친다. 삼성에 대해 상당히 냉정하고 비판적인 글을 써다가도 삼성자동차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 이렇게 흥분할까? 그것은 저자가 삼성자동차에 경력직으로 입사해서 열심히 일했던 적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삼성그룹의 자동차 사업 포기를 정권의 압력도 아니고 처음부터 잘못 기획된 사업 경쟁력 저화와 이학수 그룹 비서실장의 협박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때 자동차 사업을 포기하고 삼성전자에 집중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을 인정하지만 대만 폭스콘 이야기에서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계속 유지해왔다면 오늘날 전자와 자동차가 결합하는 글로벌 흐름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21쪽)란 주장을 펼친다. 이 당시 만약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삼성이 망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것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얼마 전 삼성자동차 관련 소송에서 이건희와 삼성의 패소(6000억 배상)가 최종 결정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삼성을 굉장히 우호적으로 본다.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삼성 홍보팀의 시각이 이 책 곳곳에 나온다. 성균관대학과 함께 엮어 공기업적 마인드란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기업 이미지 쇄신과 절세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물론 성대가 삼성을 재단으로 두면서 위상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나 70년대 성대 땅을 팔아먹은 후 퇴출당한 적이 있다는 소문을 생각하면 결코 좋게만 보이지 않는다. 또 재단의 힘으로 학자들을 언론 이미지 작업에 동원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이것은 저자도 삼성이 여론 조성 작업의 사전적 조치로는 논리 개발이 필수적이고, 교수들을 용역이나 세미나와 초청 강사로 초대해 필진으로 활용한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제목에서도 알려주듯이 가장 냉철하고 비판적인 부분은 역시 이재용의 후계 승계를 둘러싼 분석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나오는 수많은 기사 인용과 저자의 분석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의 이전 사업들이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건희 회장 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재산 증여 과정에서 비롯한 편법 및 불법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달리 이부진의 사업 성공은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작년에 있었던 삼성SDS 상장을 분석한 글은 이재용의 삼성그룹 지배를 위한 하나의 포석이란 것을 잘 설명한다. 또 이건희 회장이 식물인간일 경우라고 하면서 이후에 벌어질 상황들을 가정하는데 이 상황이 오래되어도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도 올해 중 정식 사망 보도가 나오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삼성자동차 관련 글만 제외하면 이 책에 실린 분석들은 상당히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다. 가끔 최태원 SK회장의 딸이 해군장교 입대한 것을 두고 “딸을 보아 최 회장 그만 풀어주라”라는 댓글을 달았다는 황당한 글이 나오는데 이것을 보면 그가 어떤 입장에서 이 글을 썼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여론 조성 작업(정확하게 표현하면 여론 조작)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글을 보면서 분명한 한계도 느꼈다. 그렇지만 삼성이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공했는지, 그 과정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알려줄 때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잘 몰랐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망하길 바라지 않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노키아가 힘을 잃은 필란드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보았을 때 결코 한국 경제가 망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이번에 가졌다. 왜냐고? 삼성의 수많은 인재들이 보여준 저력이 다른 업체나 다른 인재들에 의해 다시 발휘될 것이란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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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콘크리트
마치다 요우 글.그림 / 조은세상(북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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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의 단편 만화가 실려 있다. 분량도 제각각이다. 표제작은 <밤과 콘크리트>인데 제17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부분 신인상 수상작은 <여름방학의 마을>이다. 개인적으로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은 <발포주>다. 가장 긴 분량에 쉽게 몰입하지 못한 작품은 <푸른 사이다>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인상을 남긴 작품들이 이 단편집에 실려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거나 반전처럼 마무리된다.

 

<밤과 콘크리트>는 어! 하는 순간 끝났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건축가가 술 취한 동료를 데리고 온 남자를 자신의 집에 재우면서 생긴 일을 간략하게 그렸다. 디테일을 생략한 그림은 간결한 대화로 이어지고, 짧고 우발적 만남으로 인한 대화는 평범한 세계를 비일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밤과 새벽의 시간과 숙면을 조용히 연결하는데 그 고요함에 나 자신도 그냥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건물이 말을 하고 잠을 잔다는 남자의 말은 늦은 밤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몇 가지 소리들로 생각이 이어진다.

 

<여름방학의 마을>은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산에 올라간 세 남녀가 2차 대전 당시 비행기와 늙은 조종사를 발견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단순히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라면 순간적인 감상에 빠질 텐데 sf적인 물건이나 설정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바뀐다. 우정과 바람을 다루는데 그 사이에 사랑이 살짝 자리 잡고 있다. 풋풋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면서 읽는데 어느 순간 다시 한 번 분위기가 바뀐다. 현실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채우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여름방학의 마을이었나?라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나의 방학을 기억 속에서 뒤지고 있었다.

 

<푸른 사이다>는 보면서 계속 하나의 가능성을 예측했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다.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 옥상에 앉아 있던 남자와 아이의 관계가 중심에 있다. 너무 다른 판타지에서 결론을 끌고 온 모양이다.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옥상의 남자는 항상 옥상에서 밖을 본다. 소녀는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 속에 빠져 어른이 되는 것을 무서워하고 거부한다. 그 소녀에게 가장 중요한 친구이자 세계는 시마 씨다. 마지막으로 가면 이 비밀이 밝혀지는데 솔직히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깨닫지 못했다.

 

몇 쪽 되지 않는 만화가 <발포주>다. 열아홉 살에 감동받았던 그 말, ‘음악을 만드는 건 내 전부야’가 어른이 된 후 다시 만난 친구의 ‘그런 것도 했었지...’로 바뀐다. 이 변화가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그때는 서로가 진심이었다. 삶 속에 파묻힌 청춘의 열정과 패기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공원에서 다시 그 친구와 한 잔의 술을 먹는 장면은 몇 쪽 되지 않는 만화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아마 나의 삶도 이것과 별로 다른 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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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 - 몽테뉴와 함께하는 마흔 번의 철학 산책
앙투안 콩파뇽 지음, 장소미 옮김 / 책세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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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와 함께 하는 마흔 번의 철학 산책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만약 이 부제가 없었다면 소설로 착각했을 것이다. 몽테뉴하면 자동적으로 <수상록>이 떠오른다. 학창시절 이 둘을 같이 암기한 덕분이다. 그리고 대학 때 이 책을 한 번 읽었다. 정말, 단지 읽었을 뿐이다. 그 당시 왜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흔한 번역 탓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매번 5분 정도 분량으로 라디오 방송한 것을 책으로 내었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이다. 혹시 그때 몰랐던 <수상록>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마흔 개의 소재를 다루었다. 중복되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몽테뉴의 글을 인용하고 그것을 풀어서 설명해준다. 단순히 해석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그 글에 관련된 배경 지식도 같이 알려준다. 그래서 각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많은 분량이 아니다보니 상대적으로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내가 몽테뉴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수상록>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게 만든다. 고향집 어딘가에 있을 옛날의 그 책 말이다. 아니면 다시 한 권을 사던가.

 

첫 글이 ‘참여’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서재 속에 은둔한 한가한 사람으로 묘사했던 그를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공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른 이야기 속에서 그가 정치와 종교 등에서 어떤 생각을 가졌고, 행동을 했는지 알려주는 시작점이다.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조금 평이한 부분도 있지만 그 시대를 감안하면 상당히 진보적인 대목도 곳곳에서 보인다. 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은 개인적으로 나의 철학이나 생각과도 비슷하다. 비록 나 자신이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리고 몽테뉴의 아버지가 라틴어를 가르치기 위해 어떤 교육을 했는지 보여줄 때 환경의 중요성을 배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불어로 글을 쓴 것이 그 당시에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대 지식인들 대부분이 라틴어로 글을 썼다는 사실에 비추어서 더욱 더.

 

종교 부분에서 그의 종교관이 나오지만 그의 종교에 대한 명확한 글은 없다. 이 책의 출간을 위해 교황청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비추면 놀랄 일이다. 여행을 찬미했는데 침대에서 죽기보다 말 위에서 죽고 싶어했다는 글을 읽을 때는 몽고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물론 이 둘은 다른 의미다. 개인적으로 여행에 대한 그의 단상들은 현대에서도 유효하다. 의사를 불신한 그의 신념은 신장결석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이어지고, 불과 20세기 초까지 방혈로 병을 고치려고 한 의사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떠올라 왜 그가 의사를 믿지 않았는지 이해되었다. 저자도 이 글에 수긍하면서 현대 의학은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살짝 삐딱해진 마음이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일부에서 마케팅과 결합한 의학이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곱씹으면서 몰입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이전에 읽을 때는 이런 노력이 부족했다. 사실 저자의 해석이 없었다면 놓쳤을 내용이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몽테뉴의 자유발랄하고 틀이 고정되지 않는 사상과 글을 감안할 때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몽테뉴 자체의 모순도 저자는 곳곳에서 집어낸다. 우정, 사랑보다 책을 더 높게 여긴 것은 역시 노년에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가 20~30대에 이 글을 썼다면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상록>은 한 번만 쓴 글이 아니다. 몇 차례의 내용 확장과 수정이 있었다. 판본의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뒷이야기는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다. 방대한 몽테뉴의 사유를 단번에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는 아직 나의 내공도 노력도 부족하다. 하지만 조그만 시작은 했다. 다시 읽어야 할 책이 한 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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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1970
유하 원작, 이언 각색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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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한 영화 <강남 1970>의 시나리오를 소설로 각색한 책이다. 유하는 이 영화로 <거리 3부작>을 완성했다고 말한다. 먼저 이 영화를 보고 온 여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재미있다고 한다. 책이 먼저 손에 들어온 관계로 영화 보기는 솔직히 살짝 뒤로 밀렸다. 어느 한쪽을 보고 난 후 그 이미지가 계속 남아 있는데 영화가 소설보다 더 심해 극장으로 발길을 쉽게 돌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속 장면들처럼 다가오는 것들이 많았다. 서사나 설명이 간략하게 다루어진 채 빠르게 이야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강남 형성기에 대한 소설만 놓고 본다면 황석영의 <강남몽>이 훨씬 잘 뛰어나다. 실제 한국의 역사와 조폭을 엮어 강한 시대성을 잘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책도 바로 <강남몽>이다. 무대와 주인공들의 역할이 조폭으로 설정된 부분이 많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황석영의 소설이 과연 어디까지 영향력을 끼쳤는지 솔직히 모르겠지만 강남 형성과 조폭의 연관성을 더 잘 알고 싶다면 <강남몽>을 추천하고 싶다. 그렇지 않고 영화를 본 후 그 느낌이나 더 세밀한 이야기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 소설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두 넝마지기 용기와 종대가 조폭의 하수인으로 일하다가 우연히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고, 강남 개발 사업에 엮이면서 다시 만나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는 구성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 시대 권력의 하수인이었을 뿐이다. 권력의 힘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다. 더 좋은 줄을 탄 후 성공을 꿈꾸지만 그 줄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조폭들의 힘겨루기와 폭력은 살인으로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배신은 또 다른 배신을 불러온다. 아차 하는 순간 등에 칼이 꽂힐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도 돈의 유혹은 너무 강하다.

 

종대 역은 이민호가, 용기는 김래원이 맡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배우들의 이미지는 그대로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이 둘은 고아원에서 만나 친형제처럼 살아간다. 넝마지기다. 이들의 운명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철거와 야당 정당대회를 공격할 폭력배 동원이다. 먹고 살기 위해 야당 정당대회를 공격한다. 이때 우유를 잘 못 먹은 용기가 화장실에 갔다가 쓰러져 다른 패거리 버스에 실려간다. 여기서 용기와 종대의 운명이 갈린다. 용기는 양기택 파로 가고, 종대는 남순철 파 중간보스 강길수의 집에 들어간다, 하지만 강길수 집에 암살자가 나타나면서 조폭으로 성장할 기회를 놓친다. 길수는 다리에 칼을 맞고, 보스 남순철은 죽는다. 조직은 깨어지고 길수는 세탁소 주인으로 변한다.

 

시간이 흐른 후 두 주인공의 삶이 펼쳐진다. 용기는 양기택 파 중간보스로 성장하고, 종대는 창배와 함께 해결사 노릇을 한다. 그러다 만난 민 마담은 그들을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한다. 바로 정치권에서 은밀하게 꾸미고 있던 강남 개발 계획이다. 이 당시 땅투기는 극대화되는데 이들의 일부가 압구정 졸부와 오렌지족으로 발전한다. 이야기는 그들로 이어지지 않고 이 투기의 한 복판에서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 역할을 맡은 조폭들로 이어진다. 이 조폭들은 권력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다. 권력은 이들을 소모품으로 다룬다. 피가 튀고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와중에 배신은 조용히 은밀하게 벌어진다.

 

영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해서인지 굉장히 속도감 있게 읽힌다. 빠른 장면 전환과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은 몇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날 뿐이다. 두 형제의 우정도 자신의 삶 앞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 와중에도 사랑은 잔잔히 펼쳐진다. 종대의 순수한 사랑은 이 폭력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조용히 빛을 발한다. 용기의 사랑은 자주 보던 조폭영화의 한 장면이다. 너무 빠르게 변한 시대의 풍속 때문인지 아니면 영화에서 비롯한 한계 때문인지 풍성하고 농밀한 이야기는 생략되어 있다. 소설의 완성도를 바라고 읽기는 부족한 점이 많지만 영화를 보기 전이나 후에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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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옆집에서 살기 - 우리 가족의 행복한 독서 성장기
박은진.박진형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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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구청 도서관 등에서 책을 빌렸다. 차를 타고 매주 주말에 가야만 했는데 상당히 불편했다. 집근처에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도서관 바로 옆에 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고향집이 도서관까지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었다. 한때 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고는 했다. 하지만 도로를 가로 질러가야 하고, 대출 기한이 있다 보니 일정 기간을 제외하면 거의 빌려 읽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적이 더 많다. 학교 가는 길에 반납도 대출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과 함께 점점 늘어만 가는 책들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도서관 근처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 책을 만났다. 이 부부 저자들의 경험담이 나의 이전 아쉬움을 채워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은 맞았다. 그들이 도서관 바로 옆집에서 살면서 누리는 수많은 혜택이 나로 하여금 부러움을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부가 번갈아 가면서 쓴 글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두 아들을 어떻게 도서관을 좋아하게 만들었고, 자기 가족이 북밀리(bookmily)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그들의 직업이 곳곳에 드러난다.

 

두 부부가 모두 학교 선생이다. 친구 부부도 학교 선생이지만 이 부부처럼 살지 못한다. 친구는 같은 국어선생이기도 하다. 고3 담임도 여러 차례 맡았다. 그런데 이 친구의 아이들을 보면 이 부부가 보여주는 정성이, 노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베풀지만 그것은 제3자의 냉철한 시선으로 볼 때 돈으로 때우는 것이다. 비판을 자주 했지만 그것은 그냥 친한 친구의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실제 아이를 키우는데 얼마나 힘든지 모르는 나의 입장에서 이상적으로 말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친구 부부의 노력이 조금 부족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 저자 부부의 노력이 더 대단하게 다가온다. 자기반성과 절제와 개선을 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책과 친해지길 바라면서 도서관 옆집으로 이사왔다. 하지만 도서관 옆집으로 이사왔다고 해서 아이들이 도서관과 책에 친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부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바람으로 아이들에게 강요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법도 배웠고, 아이들이 시간을 절제하는 법도 배웠다. 그중 하나가 아이패드 등을 15분만 사용하게 규정을 만든 것이다. “규정은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느냐의 문제지, 그 시간은 정하기 나름이다. 오히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즐겁게 활용할지 고심하는 아이를 본다”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부모들의 솔선수범이다. 부모가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이들이 제대로 책과 도서관에 친해질 것인가.

 

책과 친해지길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속에는 공부 잘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책만 열심히 읽는 아이라면 부모가 좋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성적이 좋지 않고,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어떤 책을 주로 읽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학습만화만 읽으면서 일반 책들의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염려한다. 하지만 이런 염려도 부모들의 노력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부가 이런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우렸는지 보여준다. 어떤 부분에서는 한 편의 육아 교육서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의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도 궁금하지만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시선을 끈다. 현재까지 이들의 도서관 옆집에 살기는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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