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과 콘크리트
마치다 요우 글.그림 / 조은세상(북두)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네 편의 단편 만화가 실려 있다. 분량도 제각각이다. 표제작은 <밤과 콘크리트>인데 제17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부분 신인상 수상작은 <여름방학의 마을>이다. 개인적으로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은 <발포주>다. 가장 긴 분량에 쉽게 몰입하지 못한 작품은 <푸른 사이다>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인상을 남긴 작품들이 이 단편집에 실려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거나 반전처럼 마무리된다.
<밤과 콘크리트>는 어! 하는 순간 끝났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건축가가 술 취한 동료를 데리고 온 남자를 자신의 집에 재우면서 생긴 일을 간략하게 그렸다. 디테일을 생략한 그림은 간결한 대화로 이어지고, 짧고 우발적 만남으로 인한 대화는 평범한 세계를 비일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밤과 새벽의 시간과 숙면을 조용히 연결하는데 그 고요함에 나 자신도 그냥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건물이 말을 하고 잠을 잔다는 남자의 말은 늦은 밤 아파트에서 들려오는 몇 가지 소리들로 생각이 이어진다.
<여름방학의 마을>은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산에 올라간 세 남녀가 2차 대전 당시 비행기와 늙은 조종사를 발견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단순히 추억을 되살리는 것이라면 순간적인 감상에 빠질 텐데 sf적인 물건이나 설정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분위기가 바뀐다. 우정과 바람을 다루는데 그 사이에 사랑이 살짝 자리 잡고 있다. 풋풋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하면서 읽는데 어느 순간 다시 한 번 분위기가 바뀐다. 현실이 무너지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채우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여름방학의 마을이었나?라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나의 방학을 기억 속에서 뒤지고 있었다.
<푸른 사이다>는 보면서 계속 하나의 가능성을 예측했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다.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 옥상에 앉아 있던 남자와 아이의 관계가 중심에 있다. 너무 다른 판타지에서 결론을 끌고 온 모양이다.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옥상의 남자는 항상 옥상에서 밖을 본다. 소녀는 자신이 만든 상상의 세계 속에 빠져 어른이 되는 것을 무서워하고 거부한다. 그 소녀에게 가장 중요한 친구이자 세계는 시마 씨다. 마지막으로 가면 이 비밀이 밝혀지는데 솔직히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깨닫지 못했다.
몇 쪽 되지 않는 만화가 <발포주>다. 열아홉 살에 감동받았던 그 말, ‘음악을 만드는 건 내 전부야’가 어른이 된 후 다시 만난 친구의 ‘그런 것도 했었지...’로 바뀐다. 이 변화가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그때는 서로가 진심이었다. 삶 속에 파묻힌 청춘의 열정과 패기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공원에서 다시 그 친구와 한 잔의 술을 먹는 장면은 몇 쪽 되지 않는 만화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아마 나의 삶도 이것과 별로 다른 점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