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들지 않는다 -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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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가면서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입사해서 처음 먹었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그라졌다. 현실이라는 변명의 벽 뒤로 나를 숨기고, 타협이 최선이라고 믿으면서 조금씩 젊음을 잃어가고 있다. 내가 홀로 현실의 문제를 말하면 주변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현실의 경험만을 내세워 반격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자신도 이들처럼 변하고 있다. 어떤 때는 이들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나보다 나은 수많은 사람들의 책과 통찰을 통해 조심씩 자신을 찾아가려고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이것을 가지고 주변에 말하면 그들은 사소한 한 가지로 모든 것을 뒤덮으려고 한다. 나의 자립한 젊음은 점점 소모되어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생각했던 몇 가지가 이미 누군가를 통해 정리된 것을 보고 반가웠다. 모든 이야기에 절대적인 공감을 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마루야마 겐지는 자립한 젊음을 단순한 육체적 젊음이나 세포의 건강함, 신체 기능의 탁월함이 아니라 육체는 늙었어도 정신의 젊음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질이며 특권이라고 말하고, 이런 인간의 특성이 진정한 젊음의 근원이라는 신념으로 이 글을 썼다. 그리고 그 척도로 자신에 대한 의존도라고 말한다. 타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결연한 삶이 아니면 생명이 그토록 빛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족, 직장, 지배자들에게 길들지 마라’고 하고, 자신 안의 의존을 떨어내고, 자기 안에서 자신을 구제할 힘을 찾고, 지배받지도 지배하지도 마라고 주장한다.

 

가장 먼저 길들지 말아야 할 것은 가족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고 길든다. 엄마의 사랑이라는 관념 속에 묻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미화되고 왜곡된 모습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저자가 하나씩 예를 들면서 우리가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의 가면을 하나씩 벗겨낼 때 그 정확한 표현에 놀란다. 어느 부분은 내가 이미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좀더 구체적이고 논리적이면서 냉정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불편한 순간도 많다. 이것을 마주 볼 자신도 마음도 없는 사람들은 무턱대고 이것을 공격할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길들었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군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는 무사도는 주체성을 방기하고 굴종에서 기쁨을 느끼는, 자립과는 거리가 먼 마조히즘의 전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미학으로 여기는 것은 유치하고 뒤틀린 싸구려 작태에 불과하다.”(38쪽) 이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가 학창 시절 배웠던 선비정신이니 군사부일체니 하는 유교 이념이 얼마나 사람을 길들이는 것인지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것이 자신의 의지라는 착각에 의한 것임을 알 때, 혹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미 길들여져 있다.

 

현실에서 직장은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길들여 온 삶을 산 사람에게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가족보다 더 큰, 최강의 적으로 직장인이라는 신분에 대한 의존이라고 말한다. 최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해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지금 서울대를 나와 봐야 마름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재벌들은 이들을 하인처럼 생각하고 대우하는데 자신이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이들이 그렇게 대접하지 않는다. 단지 무수히 많은 하인 중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앉아 호가호위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자영업이 쉬운 일은 아니다. 농업도. 하지만 의존적이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의 정치와도 딱 맞는 문장이 있다. “국가를 지배하고 주무르는 패거리들은 자신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자를 국적으로 매도하려 한다. 때로는 매국노라는 오명을 덮어씌워 그 입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이 공금을 후리는 국적이고 개인적인 출세를 위해 대국에 굽실거리는 매국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면서 애국자인 척하는 악당이기 때문이다.” (107쪽) 너무나도 우리의 현실과 딱 맞아 이 책이 예언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2010년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말이다.

 

자립한 젊음은 나이와 상관없다. 이것을 나이와 연결한다면 이미 자신이 자립한 젊음을 포기한 것이다. 저자도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담배, 술, 복권, 도박, 인터넷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안일하게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질타한다. 의존을 버리고 자립하라고 말한다. 맞다. 여기서 ‘그런데’라는 단어를 나도 모르게 사용하려고 한다. 현실의 안주를 위해 비겁한 변명만 늘어놓는다. 스스로 결정하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이 책은 나에게 현실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 자립한 젊음을 찾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고 힘써야겠다.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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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라는 아이
라라 윌리엄슨 지음, 김안나 옮김 / 나무옆의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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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는 열한 살 영국 소년이다. 아빠는 바람이 나서 4년 전 집을 나갔다. 그 후 엄마와 누나와 함께 산다. 먹은 것을 토해내는 애완견 찰스 스캘리본즈도 있다. 엄마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다. 빅 데이브 아저씨다. 그의 팔뚝에는 ‘캐롤라인 1973’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이 문신이 아빠의 바람 때문에 상처입는 누나 닌자 그레이스가 아저씨를 의심하고 공격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것은 많은 사건을 만들어낸다. 어린 소년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에 분명한 한계를 둔 채 호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느 날 호프는 TV에서 아빠를 본다. 4년 전 집을 나간 아빠다. 유명한 방송인이 되었지만 호프는 아빠를 만날 수 없다. 아빠도 그를 찾아오지 않는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는 아빠가 남기고 간 셜록 홈즈의 책에서 배운 작전을 세운다. 그 이전에 메일도 보내지만 회신이 없다. 몰래 집을 찾아갔을 때는 다른 아이가 호프를 스토커로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아빠의 무반응, 무대응이다. 읽으면서 혹시 아빠를 너무나도 그리워하는 호프가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엄마와 누나의 말들이 사실임을 알려준다.

 

호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풀리다보니 솔직히 갑갑한 부분이 많다. 열한 살이란 나이가 나의 머릿속에서 분명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어디까지 그 말과 행동을 납득해야할지 의문이 생겼다. 학교 수업 분위기도 우리와 너무 달라 어색했다. 특히 호프가 찰스 스캘리본즈와 함께 밤에 산책을 나갔다가 태권도 도복을 파자마로 착각하는 부분이나 친구와 대화를 할 때 보여주는 행동들이 더 그랬다. 내가 너무 열한 살을 높게 잡은 것일까? 하지만 그만큼 순수한 호프를 만날 수 있다. 그 아이가 본 세계를 어른의 높이가 아닌 아이의 높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 최고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호프는 희망도 많고 오해도 많다. 친구 조가 준 성인의 물건으로 자신이 적은 열 가지 소원 리스트만 봐도 그렇다. 이 소원 중 가장 바라는 것은 역시 아빠다. 말도 되지 않는 소원도 있다. 그 시절 소년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꿈꾸었던 소원도 있다. 이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호프의 몇 가지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그와 누나가 오해한 것이 있다. 진실을 보기보다 선입견과 감정에 휘둘린 결과다. 솔직한 감정은 뒤로 숨겨진 채 저열한 감정이 마음을 지배한다. 진실이 눈앞에 있어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그들의 엄마다. 재미있는 해프닝도 물론 일어난다.

 

호프의 희망은 소설 끝까지 아빠다. 그의 실제 생활을 사로잡는 것도 아빠다.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아빠, 어릴 때 좋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아빠, 하지만 그 곁으로 다가갈 수도 연락도 없는 아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호프의 좌절을 볼 때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매정하게 굴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흔히 외국 소설에서 늘 보던 부모의 모습이 아니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든 모양이다. 이 생략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홈즈라면 이것을 풀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그렇게 몰입하지 못했다. 눈 높이 문제도 있고, 설명되지 않은 이유들이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열한 살 소년이 보여준 오해와 그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 재밌게 다가왔다고 해도 왠지 모르게 집중할 수 없었다. 상황과 장면이 머릿속에서 제대로 이미지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로 사람을 괴롭히는 누나를 닌자 그레이스로 부르거나 임신 테스트기와 엽산으로 소동을 만드는 등의 설정과 전개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흔하게 보는 할리우드 식 가족 이야기가 아니란 점에서 놀랍고 흥미로웠다. 열한 살 소년이 꿈꾸는 희망이 비록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해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마지막 성장은 조금 납득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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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수호자 바스탄 3부작 1
돌로레스 레돈도 지음, 남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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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거의 다 낯설지만 바스크 지방의 엘리손도는 특히 그렇다. 바스크 지방도 분리주의 운동 때문에 겨우 알고 있지 정확한 구분은 하지 못한다. 이 소설 속에서 바스크 지방 언어를 배우기 위한 학교가 잠시 나오는데 스페인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낯설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도시가 나올 때면 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 잡기가 어렵다. 이 소설처럼 장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영화로 만들어지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엘리손도에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나바라 주 특수수사대 여형사 아마이아 살라사르가 현장으로 파견된다. 이때만 해도 이것이 연쇄살인사건이란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다른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고, 다른 시체에 대한 정보가 나오면서 확실하고 분명해진다. 경찰서장은 아마이아를 반장으로 임명하고 사건을 해결하기 바란다. 엘리손도는 아마이아의 고향이다. 그런데 이 고향은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 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녀를 따스하게 맞이하는 언니들과 고모가 있지만 그녀의 잠재되어 있던 공포를 일깨울 수 있는 기억도 함께 머물고 있다. 범인을 찾는 일과 함께 그녀는 자신의 과거 공포와도 마주해야 한다.

 

작가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갈등을 억지로 만들지 않는다. 아마이아와 언니들과의 대화와 갈등 등은 다른 집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갈등 속에 감춰져 있던 사실들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소녀들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연쇄살인이 분명해지고, 단서가 쉽게 밝혀지지 않을 때 아마이아의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아픔과 공포가 하나씩 깨어난다. 왜 자신이 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지 알려줄 때 이 소설을 지탱하는 하나의 줄거리에 조금씩 빠져든다. 그리고 그 갈등이 사실보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에 의해 왜곡되고 뒤틀릴 때 현실의 또 다른 모습을 본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역시 소녀들의 죽음이다. 누가, 왜 죽였는가 하는 것부터 그녀들의 시체와 그 주변에 놓아두고 꾸며놓은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까지. 이것을 둘러싼 신화적 고고학적 해석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신화와 전설 속 생명체 바사하운의 존재를 던져놓고 이런저런 가능성을 타진하는 설정은 판타지와 과학의 경계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녀들이 죽었다는 것이고, 과연 누가 이런 참혹한 짓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소녀들의 숨겨진 과거가 드러나면서 다양한 가능성이 파악되지만 그것이 모든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대신에 이야기 중간 중간에 하나씩 단서를 던져놓는다. 이 대목을 읽을 때면 왜 조사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연쇄살인을 다루지만 영미권 소설과 다른 모습을 몇 가지 보여준다. 일단 언론이 이 소설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사람들이 말로 소식을 얻었다고 하지만 언론의 압박을 받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수사에 참여하는 인원들이 많지 않고 그 과정을 그렇게 긴박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일본 영화나 소설이라면 수사본부가 차려지고 수많은 형사들이 현장을 뛰어다닐 텐데 겨우 몇 명만이 움직일 뿐이다. 단서를 구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탐문수사나 용의자와의 대화 등이 상당히 많이 절제되어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아마이아의 개인과 가족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반면에 그녀가 FBI에서 연쇄살인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미국 이외 지역의 형사들에게 가끔 등장하는 설정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청소년의 미래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사회는 실패한 사회이다.” 란 것이다. 겨우 몇 명의 소녀가 죽었는데 이런 문장이 나온다. 그럼 우리 사회는 어떤가. 수학여행 중 차가운 물 속에서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갔던 그 청소년들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이 사회 말이다. 소설은 살인자를 찾아서 경찰들이 힘들게 뛰어다니지만 우리는 그 누구도 이것을 정확하게 파헤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겹다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잊으라고 강요한다. 아마이아 형사가 어릴 때 생긴 트라우마로 어떤 공포와 함께 살았는지 보여줄 때 그 가족들이 느꼈고. 느끼고, 느낄 아픔과 고통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최근 경찰들의 살인범을 잡는 방식이 점점 과학적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학 이면에는 이성을 넘어선 무언가가 작동한다. 형사의 감이라는 표현으로 강조될 때 어떨 때는 수긍하지만 어느 순간은 억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이야기를 알고 있을 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럼 현실은 어떨까? 아마이아는 이것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수없이 사진과 자료를 읽고 본다. 현장도 다녀온다. 유사한 것과 다른 것을 찾고 기억과 무의식 속에 담아둔다. 이 무수한 정보들이 형사의 감이란 형태로 드러난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이것이 제대로 작용한다. 과학은 이것을 증명해줄 뿐이다. 속도감 있게 읽히는 다른 스릴러에 비해 조금 느슨한 느낌이 있지만 다음 편에 대한 기대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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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버리스트 모중석 스릴러 클럽 37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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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간의 역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의 결과를 인과의 사슬에 따라 시간을 거슬러간다. 그리고 그 마지막 종착점은 이 모든 이야기의 거대한 설정을 드러내고, 반전에 반전으로 이어진다. 다시 앞장으로 넘어와서 마지막 장이자 첫 장의 이야기를 되짚어본다. 하나씩 맞아 들어가는 이야기와 설정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만약 이 소설을 거꾸로 읽는다면 어떨까? 색다른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어울리는 것은 역시 시간을 거슬러가는 것이다. 거기서 작가가 보통의 소설보다 더 공을 들인 설정과 반전들에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마지막 챕터 36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가브리엘라와 샘의 대화, 제목인 옥토버리스트의 존재, 가브리엘라의 딸 세라의 납치범 조셉의 등장 등은 분명한 결과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마무리한다. 다른 소설이라면 이 마지막 챕터에서 모든 것이 풀리겠지만 이 소설은 첫 챕터로 가야만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이 소설은 시간을 조금씩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앞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알려주면서. 그리고 이 대화나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려주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역순이 호기심을 더 품게 만든다. 과연 조셉의 총구가 겨냥한 인물은 누굴까 하고.

 

옥토버리스트의 정확한 정체는 무얼까? 왜 이렇게 죽음을 몰고 다닐까? 이 의문과 함께 가브리엘라와 대니얼의 행동이 역순으로 나타난다. 이 둘이 처음 만난 것은 이틀 전 금요일 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둘은 세라를 구하기 위해 함께 다닌다. 위험한 인물 조셉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여기에 가브리엘라를 뒤따라 다니는 두 명의 형사까지 등장한다. 가브리엘라의 상사가 어떤 사고를 벌인 모양이다. 금융 사기인데 정확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어느 순간 이들은 이 둘을 미행하는데 실패한다. 뭔가 조금씩 이상한 점이 드러난다. 보이는 것 이외의 다른 면이 살짝 촉을 건드린다. 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그렇게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인은 계속 벌어진다. 그런데 이 살인들이 아무 의미없는 것이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의미가 있고 계획된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바로 이 소설의 첫 챕터이자 마지막 장면이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서사를 바꿨지만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디버의 특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 서사의 표현 방식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앞에 벌어진 사건과 대사와 행동들이 하나씩 분명한 이유와 의미를 밝혀준다. 이런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다시 앞으로 가서 행동과 대사를 다시 읽게 된다. 엄청나게 빠르게 읽히지만 잠시 잠시 멈춰 앞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지금 방금 읽은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가볍게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반전에 반전으로 이어진다. 가브리엘라와 대니얼의 동행은 불안하지만 그 어떤 이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읽으면서 계속해서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조셉의 총구가 겨냥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읽으면서 자꾸 변한다. 이 둘 중 한 명이 조셉과 짠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은 행동과 말을 통해 조금씩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이 추론이 쉽지 않다. 나는 완전히 빗나갔다. 하나는 맞췄지만 가장 중요한 반전을 놓쳤다. 이런 시간의 역순을 서사로 풀어내면서 감탄하는 것은 참 오랜만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이다. <메멘토>의 경우 조금 졸았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은 반전 중 최고의 설정이자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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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발견 -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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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시인 안도현보다 소설 <연어>의 작가로 더 익숙하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시 절필을 선언했다는 것을 이번에 정확하게 인식했다. 시 절필에 대한 소식을 어딘가에 듣고 잊었을 수도 있기에 이런 표현을 쓴다. 절필 내용을 검색하니 많은 반대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이 시 절필 선언한 것을 가지고 논설에서까지 왈가왈부할 사연인가 싶기도 하다. 아마도 그의 이력 중 문재인 선거본부에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름값이 여당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불쾌하게 다가간 모양이다. 이들 덕분에 내가 이 사연을 좀더 쉽게 찾았으니 역설적인 상황이다.

 

그의 정치적 이력이 이 책 속에도 적지 않게 나온다. 그것이 불편한 사람은 사지도 말고 혹시 샀다면 던져버려도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시인이 발견한 여러 가지 것들을 놓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뭐 그렇게 한다고 삶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니 각자 알아서 하면 된다. 나의 경우로 말하면 몇 곳에서 그의 생각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 이 차이는 그가 살아온 삶과 나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것들이다. 하지만 대체로 그가 발견한 수많은 것들이 나의 생각을 좀더 유연하게 만들고, 마음을 풍요롭게 적신다.

 

작가의 말에서 시인에 대해 “시인은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원래 있던 것 중에 남들이 미처 찾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즉 시인은 발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발견하는 사람인 것이다.” 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근래 발견한 것들을 다섯 부분으로 나눠 풀어내었다. 그것은 생활, 기억, 사람, 맛, 숨의 발견이다. 이중에서 숨의 발견은 숲으로 잘못 읽기도 했다. 그 장에 등장하는 수많은 발견물들이 나무와 꽃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가장 많이 좌절한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 현실에서 나도 이 나무와 꽃들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이름은 한두 번 이상 들었지만 눈앞에 있다고 해도 그것을 알아챌 능력이 되지 않는다. 이때까지 죽은 공부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공감대가 가장 많이 형성된 것은 역시 생활과 기억의 발견이다. 시인이 발견한 수많은 물건과 기억들이 가슴 한 곳에 조용히 파고들어 잊고 있었던 느낌과 기억을 되살려주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필요가 없어서, 혹은 귀찮아서, 또는 무지해서 내버려둔 것들이 이 글을 통해 하나씩 새롭게 다가오면서 감정을 살짝 건드렸다. 잠자고 있던 이성도 살짝 깨웠다. 나의 생활이 얼마나 정체되어 있는지 이 글들이 하나씩 깨닫게 해주었다. 신문에 연재했던 글이다 보니 그 당시의 문제나 상황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여기서도 아는 만큼 보인다. 잊을 수 없는 아픈 사고가 나올 때면 잠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사람의 발견에서 낯선 이름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유명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 어떤 부분에서는 더 대단하다. 단지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연들도 많아 읽는 재미도 솔솔하다. 맛의 발견은 어딘가에서 본 듯하거나 들은 듯한 이야기가 많다. 최근에 음식에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팟캐스트를 자주 보고 듣다보니 그런 것 같다. 방송을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잘못 말한 것인지 조금 다르게 기억되는 것도 있다. 이 기억의 충돌이 나를 새로운 곳으로 인도할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가끔 이런 경험을 했으니.

 

우연인지 이 책을 읽는데 교육방송에서 게미란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봤다. ‘개미 있다’란 소재로 쓴 글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게미 있다’가 아니다. 방송 작가는 어디에서 ‘게미’란 단어를 찾았을까 궁금해졌다. 이런 사소한 발견들이 모여 있는 책이다. 시인의 글답게 시들도 많이 나온다.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어 쉽게 읽을 수 있다. 단숨에 읽어도 좋지만 몇 편씩 읽으면서 조금더 음미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 읽은 지금 아무 곳을 펼쳐도 좋은 이야기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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