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양이 7 - 민폐 삼형제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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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민폐 3형제다. 그리고 새로운 식구가 또 늘었다. 길고양이 그레이다. 이 책 앞부분의 에피소드들은 이 민폐 3형제가 벌이는 행동들이다. 식탐에 관한 에피소드와 열심히 뛰어노는 고양이들과 시바 견의 모습은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재미있다. 평화로운 집안에서 작은 분란을 일으키지만 그것이 결코 과한 모습은 아니다. 물론 마담 북슬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이 3형제가 도와준다고 하는 것들 대부분은 민폐다. 하지만 그 모습이 귀엽다. 짧은 에피소드 속에서는 이전 이야기 속에서 간단하게 처리된 이들의 활동이 집중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앞부분은 조금 낯설기도 하다.

 

새 식구 그레이를 처음 만난 것은 두식이다. 자기가 엄마라고 생각하는 고양이와 닮았다. 친근하게 다가가는데 두식이를 공격한다. 겁 많은 두식은 물러난다. 이 길고양이의 기세에 완전히 눌린 것이다. 이 모습은 이번 권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지만 작은 사건을 통해 아주 조금 가까워진다. 그 거리를 좁히는 과정 속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로 이어진다. 그레이의 입양과 그레이가 친근감을 가지는 사람과 적대감을 가지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은 아버지가 유일하다. 아마 두식이와 함께 산책을 한 것 때문이 아닐까?

 

반가운 장면도 하나 있다. 할아버지 내복씨가 자는데 콩알과 팥알과 두식이가 뛰어든 것이다. 그러다 깬 그가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강을 건널 뻔했다는 말을 한다. 민폐 3형제 때문에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것을 그만두게 된 것이다. 이러니 내복씨가 이 반려동물들을 더욱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그가 아주 아끼는 가발 위에서 놀던 고양이를 다루는 모습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런 사랑들이 이 책 곳곳에 나타난다. 집안 사람들이 반려동물들의 방해로 문제가 생겨도 화를 내지 않고 다시 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이 장면들은 현실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점점 늘어나는 새 식구와 이야기들은 처음에 느낀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갈까 하는 의문을 충분히 지웠다. 오히려 등장하는 동물이 많아짐으로써 더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인간과 두식이의 견해 차이는 피상적으로 드러난 모습 너머의 사실을 알려준다. 고양이와 두식이의 인식 차이도 마찬가지다. 그레이를 두고 벌어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다음에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기대하게 만든다. 단순화된 그림 속에 각각의 동물들에게 강한 개성을 부여한 후 보여주는 이 에세이는 깊은 애정과 오랜 관찰이 없다면 탄생할 수 없는 작품이다. 언제나처럼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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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 집시 - 두근거리는 삶을 살아라
나호.마호 지음, 변은숙 옮김 / 연금술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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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삶이라! 중년을 넘어가는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두근거리는 삶이 찾아오지만 가지고 있는 것과 환경 등이 이 삶을 좇게 만들지 않는다. 아주 두꺼운 현실이다. 나 같은 중늙은이들이 늘 하는 말은 ‘10년만 젊었어도’ 같은 나이 탓이다. 냉정하게 나 자신에게 10년만 젊었어도 이런 두근거림을 좇아갔을까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분명히 ‘아니다’이다. 일시적으로 두근거림을 좇아갈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좇는 것은 실제로 아주 힘든 선택이다. 수많은 여행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두근거림과 열정을 발견하지만 그 이후의 불안 역시 엿보았기 때문이다.

 

나호와 마호는 어떨까? 이 둘은 쌍둥이 자매다. 책 속 대부분의 이야기는 마호의 것이다. 마호는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다른 학교에 또 다니지만 이 또한 만족스럽지 않다.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남자 친구도 있었지만 그녀가 선택한 삶을 살기로 한 순간 헤어진다. 이런 마호의 삶은 우리가 흔히 보는 안정적이고, 차근차근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과 분명히 다르다. 알바도 하지만 수중에 돈은 없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없다. 이런 그녀에게 우연이 이어진다. <연금술사>란 책이다. 이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선택한 첫 배낭여행지가 페루다.

 

세 번의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 이야기는 페루로 떠나기 전 일본과 페루 여행이다. 솔직히 말해 떠나기 전 그녀의 삶은 시시했다. 하지만 이 책 곳곳에 깔려 있는 신비주의적 분위기는 유지된다. 이 신비가 폭발하는 곳은 당연히 페루다. 그곳에서 마호는 성스러운 진실을 경험한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 경험은 환각이자 착각이자 자기몰입이다. 이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기존과 다른 삶을 살게 하는 힘을 준다. 여행은 길어지고, 이 경험은 공유된다. 그리고 자매는 스스로를 어스 집시라고 부르고, 적은 돈으로 긴 여행을 시작한다.

 

처음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몇 장의 사진과 인생의 경험을 새롭게 하는 여행기 정도였다. 일본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길게 다룰지도 몰랐다. 실제로 마호가 페루가 가서 경험한 것들은 아주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행 준비도 제대로 한 적이 없고, 인맥이 없었다면 그냥 좌절하고 돌아왔을 수준이기 때문이다. 많은 장기 배낭여행자들이 자신들의 경험 끝에 늘 주의 주는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몸으로 부딪혀 해결해야하는 순간도 있지만 계속적인 행운을 바라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두근거림과 표지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이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비현실적이다.

 

내가 비현실적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관점이다.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고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준비하고, 부딪혀야 한다. 어떻게 보면 저자는 이 부분을 누락했다. 자신의 경험에 매몰되어, 신비로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살짝 뺀 것인지도 모른다. 두 쌍둥이가 같은 꿈을 꾼다거나 표지가 맞거나 하는 것들에 더 집중한 것 같다. 살짝 기대한 여행지의 정보는 다 빠져 있다.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서의 연장선이다. 에세이 느낌보다 뒤로 가면 소설의 느낌이 더 강해진다. 좋게 말하면 가독성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뭔가 첨가 혹은 누락된 이야기다.

 

오래 전 한국에서 <연금술사>가 대히트를 쳤을 때 나는 재미없었다. 취향과 맞지 않았고,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잠언의 나열은 진부한 언어의 유희일뿐이다. 만약 그 경험을 본인이 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마호가 경험한 것은 다른 모습이다. 이 다름을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두근거림을 좇고자 한다면 마호처럼 자신만의 표지를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그 표지에 대한 확신과 노력과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마호처럼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자세는 기본이다. 결국 다시 자신의 발견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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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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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작심하고 쓴 시에 대한 책이다. 은유에 대해 이보다 더 자세하게 쓴 책이 있을까? 현재까지는 모르겠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다. 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 보니 읽는 시나마 좀더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집을 읽을 때 쉽게 다가오는 시들도 있지만 무슨 말인지 통 이해할 수 없는 시가 더 많았다. 시어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중 몇 가지를 잡아낼 때도 있지만 아주 파편적이다. 이때마다 학창시절의 수업을 원망한다. 왜 좀 더 시에 대해 더 많이 알려주지 않았나 하고.

 

학창시절 배운 시는 암기였다. 은유를 이해하게 만들기보다 시험을 위해 외우는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감상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졸업 후 우연히 그 시들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그 지독한 감성에 놀랐던 것을 떠올리면 그 시절 그것들을 누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조지훈의 <승무>보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더 좋은 시라고 했을 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도 시라는 것을 단어 그 이상으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읽고 그렇게 놀랐던 것도 나의 굳은 생각들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나의 시에 대한 공부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는다. 그보다 먼저 시인들, 시집에 대해 너무 몰랐다.

 

책을 읽다가 은유에 대해 멋지게 설명하는 장면들을 만난다. 밑줄치고 외우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좋은 시와 나쁜 시에 대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서정시의 의미를 되새긴다. 하지만 다 읽은 지금도 머릿속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직 은유에 대해, 시에 대해, 시인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재가 아닌 허상의 세계라고 했을 때, 말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말을 버려 의미의 부재에 이르게 한다고 했을 때 시에 한 발짝 다가간 듯한 착각을 한다. 이런 착각은 이 책을 몇 번씩 곱씹고 체화하는 하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탓이다. 안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그 의미를 풀어내지 않은 탓이다. 시인이 휘트먼의 <풀잎>을 몇 개월 동안 읽고 있다고 한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

 

시가 우리 삶을 축약하고 이미지화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은유로 표현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리를 형상화해서 보여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재 세계가 아닌 허상을 통해 세계를, 현실을 드려내준다고 했을 때 좀 더 시에 다가갔다. 거울의 이미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장르소설이나 영화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생각할 때 상상력이 지닌 힘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려운 시를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하는 문제는 아직도 나에게 남겨진 문제지만 좀 더 읽고 좀 더 분석하고 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면 살짝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아직은 더 많은 노력과 열정이 필요한 분야다.

 

많은 시들과 시인들이 책 속에 나온다. 낯익은 이름도 많지만 낯선 시인도 적지 않다. 나의 시 세계가 어딘가에서 멈췄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로운 시인의 발견은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하지만 멈춘 그곳에서는 과거로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여러 작가의 글 속에서 시인들을 한 명씩 발견해내지만 그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낯선 시인들의 이름이 나왔을 때 반가웠다. 그들의 시를 이해하는 것은 둘째 문제다. 인식의 공간이 넓어졌다는 부분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현실에서 소장욕구만 높아진다는 문제로 넘어간다. 뭐 이것이 단순히 시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지만.

 

시는 은유다. 시는 머리만의 언어가 아니라 몸의 언어다. ‘몸은 세계와 대면하는 접혀 있음이다.’라고 할 때 그곳에는 과거의 시간들, 상처, 기억들이 숨어 있다. 열린 것만 생각했는데 접혀 있는 곳을 들여다봐야함을 깨닫는다. 전체가 아닌 일부라고 했을 때 그 작은 공간과 시간 속에 세상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을 살짝 엿본다. 이 책은 시를 해설하기도 한다. 시를 풀어내고 그 이미지를 눈앞에서 펼쳐 보여준다. 시인의 광범위하고 깊은 독서가 없었다면 이런 작업이 나올 수 없다. 내가 늘 장석주의 책을 읽으면서 감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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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원칙
제프 하우.조이 이토 지음, 이지연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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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경영 분야의 좁은 지식은 이 책의 두 저자에 대한 무지와도 이어져 있다. 이름만 놓고 보면 어딘가에 본 듯도 한데 실제 이들의 책을 읽은 적도, 이들에 대한 책도 읽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의 추천을 읽으면서 이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먼저 생각했다. 이 생각은 착각이다. 다시 보니 제목에 나온 아홉 가지 원칙들을 자신들의 작업에 적용하고, 지침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런 착각은 나에게 아주 훌륭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 기회는 내가 지금까지 잘 보지 못했고, 정리하지 못했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다시 정리하고 이해하고 잘 보도록 한 것이다.

 

아홉 가지 원칙은 권위보다 창발, 푸시보다 풀 전략, 지도보다 나침반, 안전보다 리스크, 순종보다 불복종, 이론보다 실제, 능력보다 다양성, 견고함보다 회복력, 대상보다 시스템 등이다. <나인>이란 책 제목도 바로 이 아홉 원칙에서 나왔다. 가장 먼저 창발이란 단어에서 낯섦은 느꼈다. 몇 년 전부터 자주 나오는 단어인데 아직 명확한 정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검색을 해도 바로 알 수 있는 정도의 정리가 없다. 저자는 창발을 “작은 것들(뉴런, 박테리아, 사람)이 다수가 되면서 개별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속성을 드러낼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창발 현상을 현재 과학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이 책의 목차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보다’라는 부사다. 권위, 푸시, 지도, 안전, 순종, 이론, 능력, 견고함, 대상 등은 현재 우리가 삶 속에서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정의들이다. 그런데 이것을 저자들은 반대되는 현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의 주제가 주어지면 간단한 설명이 나온 후 현재 과학계와 경영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여주면서 왜 ‘~보다’ 다른 것이 더 필요한지 보여준다. 이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안전보다 리스크’에서 말하는 바는 맹목적으로 리스크에 뛰어들라는 뜻이 아니라 혁신에 드는 비용이 줄어들면서 리스크의 본질도 바뀐다는 것을 제대로 알라는 뜻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지금과 나중 사이의 저울질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다. 쉽지 않은 판단이다.

 

서문에서 저자들은 우리 시대를 정의하는 세 가지 상황을 설명한다. 비대칭성, 복잡성, 불확실성 등이다. 이 책의 아홉 원칙은 이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빚어내고 또 어떻게 그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관한 청사진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의문을 품었지만 읽으면서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었다. 그 첫 시작은 기술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술은 도구에 불과하고 인간의 아이디어로 생명을 불어넣어야 쓸모가 있다는 사례들이다. 이런 사례들의 조사는 이 책의 저술 목적과 잘 맞아떨어졌다. 저자들이 조사원 치아 에버스의 다년간 노고에 감사하고 거의 공동 저자처럼 말하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었다. 교육과 학습을 분리해서 정의한 것도 아주 명확했다. 하향식 교육과 달리 학습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공부다. 학습 방법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생각을 조직화하고, 표현하고, 공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고등 수학을 배우면 서 얻게 될 ‘추상적인 생각을 실용적인 것에 적용하는 방법을 뇌에게 가르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 현실에서 필요하지도 않는 수학보다 이것이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단순히 대입만을 위해 더 어려운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한국 학생들에게는 더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넘겨보면서 느낀 점은 정말 많은 조사가 하나의 원칙을 설명하기 위해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원칙을 설명하는 방식도 유려하게 진행되었다. 새로운 과학 지식은 낯설고 그 과학이 만들어낼 미래도 불확실하지만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다. 몇몇 부분에서 아직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도 보이고, 너무 원칙에 맞춘 듯한 조사만 나열되어 살짝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성공원칙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분명히 하지만 이 미래를 더 나은 방식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 원칙들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고민을 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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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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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저자는 자신의 조상을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 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고 말한다. 이런 부류를 부르는 말이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래시 등이지만 저자는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하나의 단어 속에 서로 다른 의미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은 이 단어가 가리키는 집단의 해석과도 맞닿아 있다. 외부자와 내부자의 시선은 이렇게 다르다.

 

이 책은 밴스의 자서전이자 힐빌리 사회, 문화, 경제 보고서다. 그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고, 떠났는지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데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알고 있던 미국의 모습이 상당 부분 깨진다. 영화나 소설 등에 나온 이상한 백인들의 모습이 밴스의 할모와 할보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마약에 절어 지내는 사람들 속에 자신의 엄마를 본다는 현실을 이렇게 적은 글을 만난 것도 처음이다. 이 낯선 모습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물론 기준은 내가 알고 있는 미국 중산층 백인의 삶이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복지정책에 기대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불편한 사실이다. 복지정책을 확대하려고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될 현실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도시는 가정의 평화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이 도시들은 퇴락했다. 다른 도시에 비해 이혼과 재혼의 비율이 현저히 높다. 부모가 마약을 하지 않으면 자식들이 마약을 한다. 평균 수명도 낮다. 실제로 밴스의 엄마도 마약을 하고, 몇 번의 결혼을 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그는 행복을 느꼈는데 이것은 바로 할모와 할보 덕분이다. 이 두 분이 자식들은 제대로 키우지 못했지만 손자들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키운 것이다.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낀 공간’을 제공 받은 덕분이다. 기회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주 평범한 가정인데 이곳에서는 흔한 풍경이 아니다.

 

저자가 힐빌리 문화 속에서 살 때 보여준 일상은 도시 하층민이나 저개발국가의 도시 빈민과 상당히 닮아 있다. 꿈은 꾸지만 그 꿈을 이루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없다. “나는 우리 힐빌리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지독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아이들 돌보기, 아이들이 세상에 맞서게 하는 일,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일삼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할 만큼 강한가? 하고 물으며 이 강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지적한다. 솔직히 말해 이 부분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이다. 강한 허세를 피우는 것은 쉽지만 강한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은 진짜 강한 사람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 중 하나는 그가 해병대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번 돈을 너무 쉽게 낭비하고,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란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의 의미도 이때 처음 알았다. 능력 부족과 무능력을 구분한 것도 이곳이다.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이 백인 노동 계층에서 가장 변화시키고 싶은 부분이라고 할 때 무력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아주 잘 표현했다. 한두 번의 시도와 대충의 최선으로 쉽게 말하는 자신의 결정이 아니다. 해병대는 진짜 세계를 그에게 보여줬다.

 

해병대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예일의 로스쿨도 당연히 가지 못했다. 예일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봤다. 인맥의 고마움도 무서움도 같이 배운다. 여자 친구를 통해 분노를 절제해야 하는 것을 배우고, 자신에게 온 기회를 감사해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 그가 어떤 노력을 기우렸는지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적은 잠과 많은 일로 돈을 벌고 그 남은 시간은 열심히 공부했다. 아메리카 드림의 실현이다. 실제로 이런 벽을 돌파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그가 본 복지정책의 문제점은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면이 적지 않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같이 놓고 봐야한다. 이 부분은 빠져 있다. 힐빌리의 문화, 그곳을 벗어난 한 청년의 삶은 그의 기록보다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냉철하고 현실적으로 사회의 단면을 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책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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