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에게 부모란 존재는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임에도 그 사랑이 너무나 크며 또한 끊임없기 때문에 그 사랑을 쉽사리 잊기가 쉬우며 일면 그 사랑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 존재이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인해 현재의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이들은 자신의 노력과 훈련으로 오늘의 자기를 만들어왔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가정의 의미가 상당수 무너져 버린 현실에서는 부모의 사랑에 대한 자각은 소원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때에 부모의 사랑을 몸서리치게 느낄 수 있는 책이 바로 조창인의 소설인 <가시고기>이다.

'가시고기'는 민물고기의 이름이다. 암컷은 알을 낳은 후 어디론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수컷이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주위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알들의 부화를 지킨다. 이런 아빠 가시고기의 노고로 깨어나게 되는 새끼 가시고기들은 그들이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아빠 가시고기의 품을 떠나게 된다. 또 다시 홀로 남게 되는 아빠 가시고기는 암벽 틈에 머리를 박고 죽게 된다는 슬픈 생애를 타고나는 물고기이다.

이와 같이 본서인 <가시고기>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전개된다. 자신의 꿈을 찾아 다른 남자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 버린 아내. 되에 외로이 남게 된 아빠는 백혈병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을 홀로 간병한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아이의 소생만을 갈망하며 자신의 모든 것은 한켠에 치워두고서 말이다.

아이는 결국 골수이식을 통해 생명의 끈을 잡게 되지만, 이와는 반대로 아빠는 간암으로 생명이 꺼져간다. 마치, 아빠의 생명을 담보로 아이의 생명이 연장되기라도 하였다는 듯이 말이다. 아빠는 이런 자신의 생명이 꺼져 감을 아이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아이를 프랑스의 엄마에게로 떠나보낸다. 가지 않기 위해 울부짖는 아이를 눈물을 짓 삼킨 채, 거짓된 위엄과 과장된 화를 드러내며......

본서는 아이와 아빠의 입장에서의 사건을 교차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서로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뿐이지만, 서로를 향한 온전한 의지와 사랑을 두 주인공의 시각에서 각각 읽어 나간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깊은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하지만, 이런 행복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회복과 함께 깨어진다. 한 쪽에선 생명의 소생이, 다른 한 쪽에선 생명의 소멸이 진행되는 것이다.

본서는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또한 현재의 나의 효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가정의 의미가 상당히 무너져 내린 요즈음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끈끈하며 강한 사랑을 느껴보며, 그 사랑을 회복하길 기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 - 도요새 문고 1
한상훈 지음, NHK위성방송 '생명의묵시록' 제작팀 엮음, WWF Japan 감수 / 도요새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본서를 읽으면서 계속하여 떠오르는 질문이 바로 위의 질문이었다. 본서는 이 지구상에서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91종의 동물들에 대한 짧은 글들의 모음이다. 수가 줄어든 것뿐이 아니라 종 자체가 없어져 버린, 그래서 이제는 사진이나 그림, 또는 그들을 절멸시킨 요인 중 하나인 박제로만 볼 수 있는 이들 동물들은 대부분, 아니 모두 인간들의 빗나간 욕망들에 의한 희생물이었다.

많은 조류들은 단지 그들의 깃털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멸종당하였다. 하와이 왕의 외투를 장식하기 위해 8만 마리의 카고시 흑벌새 깃털이 채집되었다는 부분에서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한 벌의 외투를 위해 8만 마리의 새들의 깃털이 채집되었다니! 그럼에도 이들 원주민들은 그나마 낫다. 이 경우 8만 마리의 흑벌새 깃털이 채집되긴 하였어도 그들의 생명은 빼앗지 않았다 한다. 문제는 서구인들의 문명이라는 표지 안에 숨겨진 오만하고 광폭한 악마성이다. 그들은 단지 유행 때문에 많은 아름다운 조류들의 깃털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생명까지 아울러 빼앗았다.

모피를 얻기 위한 동물들의 살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원주민들도 역시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들을 사냥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위한 것으로써 동물들의 번식률에 상응하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자칭 문명인들인 서구인들이다. 그들은 허례와 사치를 위해 무수히 많은 동물의 목숨을 말살했다. 또한 그들은 재미로 동물들의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했다.

그들에게는 단 한 점의 죄의식조차 없었음이 더욱 큰 문제이다. 비록 동물이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그들은 원주민들에게조차 그런 관점이었으므로 어쩌면 그러한 결과는 당연하다). 반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동물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에 있어 뚜렷한 제한이 있었으며, 그러한 행위에 대한 속죄의식까지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원주민들과 서구인들의 차이이다. 과연 어느 쪽이 진정한 문명인인가?

본서를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과연 우리의 교육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란 물음이었다. 우리는 '신사의 나라 영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식의 교육을 통해 그들 서구의 나라들을 높게 인식하였으며, 그들의 문화가 뛰어난 것이라 배워왔고, 그들의 팽창주의를 일면 동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은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목숨을 멸절하였으며, 그들을 마치 도구처럼 부렸으며, 아울러 그 대지들을 약탈하였는가를 알려주는 말이다.

어찌 이러한 죄악이 팽창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정당화되고 교육되어질 수 있단 말인가? 어찌 그들의 잔혹성이 한낮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예절이라는 허울 속에 감추어 질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예절을 동경하는 교육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교육을 통해 어찌 제대로 된 인격이 형성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교육 가운데 성장한 세대들이 어찌 생명을 귀하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왜 이러한 사실들을 가르치지 않는가?

본서 전반에서 그들의 악마성이 드러남을 독자들은 간과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울러서 그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의 자신은 어떠한가 반추해보며,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란다. 환경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욕망의 절제와 모든 생명의 존중임을 깨닫기 바란다. 서구인들이 가졌던 다른 생명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함은 환경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적임을 자각하길 바란다.

모든 생명체는 상호간의 영향 없이 생활할 수 없다. 이 지구상의 동식물들이 죽어 사라진다면 결국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 역시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할 때 환경을 생각치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며, 타인을 향한 살인행위임을 독자들이 깨닫기를 기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풍경
원성 글.그림 / 이레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고적한 산자락에 바람결에 실려오는 청아한 풍경의 소리처럼 맑고 싱그러운 느낌과 한편으론 고즈넉하고 외로우면서도 따사로운 그리움과 한없는 정겨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 바로 원성 스님의 <풍경>이다.

본서는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출가'는 어머니의 서원에 의해 여린 나이로 수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스님의 외로움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수 없는 눈물과 서글픔 등이 면면히 흐른다. 자신은 잊었다 자위하지만 문득문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오를 때면 자연 속에서 이를 애써 잊기 위해 몸부림쳤을, 하지만 그러한 적적한 자연 속의 삶이었기에 더욱 그리움에 몸서리쳤을 애틋한 동자승의 모습. 또한 자신을 외면한 듯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분노도, 서글픔도, 목놓아 울음까지도 오히려 어머니에 대한 이해와 연민의 정으로 승화시키는 동자승의 모습은 글들 전반에 흐르는 여리고 작지만 외로움과 더불어 산사의 포근하고 따사로움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2부 '산사에서'는 행자시절 힘에 버거운 모습들과 이런 버거움 속에서도 도반들(함께 수행의 길을 걷는 동반자)간에 느끼는 우정과 치기, 그리고 차 향기에 묻어나는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도도히 흐른다. 이곳 2부에서는 함께함의 필요성을 생각케 한다. 감당하기 힘든 수행 가운데에서도 도반들간의 끈끈한 보살핌과 우정으로 인해, 오히려 여유로움과 정을 찾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 이는 각박한 현대사회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우리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을 전하면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도전을 준다.

또한 3부 '깨달음을 찾아서'에서는 마냥 치기스럽기만 하던 동자승에서 어느새 차츰 깨달음의 사유를 하게 되는 성숙하고 원숙해진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1부에서 일면 느낄 수도 있는 암울한 분위기는 이곳에 이르러서는 깨달음과 희망의 분위기로 전환되며, 동자승은 자아성찰에 눈을 뜨게 된다.

마지막 4부 '열린 마음으로의 삶'에서는 여태껏 책의 전반부에 흐르던 애틋하고 풋풋한 동자승의 모습은 간 곳 없고 마치 득도한 스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곳 4부의 글들은 좋은 글들이지만 마치 세상의 모든 것에 득도한 고승의 깨달음을 차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여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커다란 양복을 입고 있듯이 '풍경'이라는 제목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부분인 듯하다.

원성 스님의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각 페이지마다 실려있는 원성 스님의 그림들이다. 슬픈 듯한 눈망울, 그리고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을 소유한 동자승 그림들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한다. 이들 동자승 그림들로 인해 그의 글들은 살아 우리의 가슴에 스며든다. 눈물이 고여 있는 눈망울조차도, 외로움에 떨고 있는 모습조차도 그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맑고 순수하다. 세상의 때가 묻어 있지 않다. 이러한 순수함은 바로 원성 스님 자신이 세속의 때에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맑고 청아한 풍경소리가 우리 영혼을 깨끗하게 해주듯 원성 스님의 글과 그림들은 우리의 심신을 맑게 해주며, 세상을 더욱 밝고 아름답게 여기도록 한다. 많은 분들이 원성 스님의 '풍경'을 통하여 맑은 마음과 세상을 밝게 보는 눈을 가지시길 기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교개혁사
유스토 L.곤잘레스 지음, 서영일 옮김 / 은성 / 199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중세시대의 종교개혁이란 말에 대해서 모르는 신앙인들은 없다. 아니, 불신자들조차 종교개혁에 대해서, 그리고 루터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작 종교개혁에 대해 자세히 또는 정확히 알고 있는 신앙인들 역시 드물다. 그러면서 신자들은 그들의 작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성경공부를 할 때 어떤 사상이 루터가 주장했다든지, 칼빈이 주장한 사상이라고 하면, 여과 없이 그냥 믿고 따르게 되는 맹종을 보인다. 이는 바꿔 말하면 개신교인들에게 있어 종교개혁 사건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개신교도들에게 중요한 사건인 종교개혁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서적이 바로 후스토 L. 곤잘레스의 <종교개혁사>이다.

저자는 어렵지 않고 간단한 문장으로 종교개혁사를 풀어나간다. 따라서 이 책은 종교개혁에 대한 선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종교개혁에 대한 입문서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저자는 종교개혁에 대해 역사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종교개혁이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의 다섯 줄기라 할 수 있는 루터교의 뿌리인 루터, 장로교의 근원인 쯔빙글리와 칼빈, 성공회가 일어난 영국에서의 종교개혁(정치적인 개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과격파 종교개혁이었던 재세례파, 마지막으로 이들 종교개혁에 맞서 일어난(저자는 카톨릭의 반종교개혁은 개혁가들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개혁 필요성에 의해 카톨릭 내부적으로 자생한 종교개혁이라 보고 있다) 카톨릭의 종교개혁까지를 알기 쉬운 언어로 풀어나간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왜 개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으며, 개혁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성공했으며, 반면 개혁에 실패한 자들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를 살피게 된다. 우리가 종교개혁에 대하여 공부할 때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아는 것은 물론 중요하며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만 돌려버린다면 이는 무의미한 학습이 되고 만다. 종교개혁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계속되어야할 매우 중요한 물음이다.

이는 우리 모든 신자들이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항상 해야할 질문이며, 또한 그러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한 사상들이 무엇이었으며 그 사상은 우리의 신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역시 현 기독교인들이 숙지해야 할 과제이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전자(종교개혁의 동기와 진행과정, 결과)는 책에 잘 제시되어져 있지만, 후자(종교개혁가들의 사상)는 그리 잘 제시되어 있지 않은 점이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종교개혁에 대해서, 우리의 신앙의 뿌리에 대해서 알고자 하지만 접근방법을 몰라 시작하지 못하시는 분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하여, 현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종교개혁사건을 통해 항상 자신의 신앙에 도전이 되길 기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리산의 눈먼 벌치기
홍기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1996년 5월
평점 :
품절


본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된 소설로써 벌을 치는 한 눈 먼 사람의 이야기이다. 우리 신체의 어느 부위인들 덜 소중하겠느냐만은 우리의 두 눈은 신체에 없어서는 안될 기관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 눈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이 사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들에 만족하지 못하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함으로 인해 불평하고 이웃을 시기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본서 속의 주인공인 눈먼 벌치기는 그러한 우리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바로 자신의 행복임을 깨달으면서 살아간다. 어렸을 때(4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 사고로 인해 하반신 불구가 되어 눈먼 자신에게 의지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실 즈음 병에 걸려 시각을 완전히 상실한 자신, 오랜 세월 홀로 보내다 뒤늦게 얻은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아내의 돌연한 죽음. 어느 것 하나 긍정적으로 세상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조건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두 눈을 볼 수 있는 우리보다 오히려 더욱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물론 주인공 역시 자신의 그런 비관적이 현실로 인해 한때 자살을 시도하지만, 몸이 불편하여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아버지 때문에 자살을 포기하고, 그런 자신의 안타까운 현실에 솟구쳐 오르는 울화를 억누르기 위해 의미 없이 통나무에 구멍을 파서 벌통을 만든다. 이 우연의 산물인 벌통이 주인공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이듬해 봄, 이 통에 벌이 찾아옴으로 두 눈이 성한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벌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주인공은 모든 사물을 사심 없는 진정으로 대한다. 그런 그의 마음이 통하여 그가 치는 벌들은 자꾸 늘어나며, 그가 키우는 채소들은 언제나 싱그럽다. 모든 것을 진정으로 대하는 그에게 마을사람들도 벌치기의 일엔 자신의 일처럼 앞장선다. 하지만, 그러한 벌치기에게 가장 큰 위험은 역시 사람들이다. 벌치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벌치기의 약점을 이용해 그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많은 악제 속에서도 주인공은 여전히 세상을 밝게 바라보며, 아내가 남긴 세 자녀를 키워간다.

본서를 읽으면서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불공평하더라도 역시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임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아니, 사실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은 조건에서도 오히려 세상을 불평하며 어두운 눈으로 바라본 자신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눈이 멀었지만 오히려 성한 자보다 더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벌치기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살기를 기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