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 - 도요새 문고 1
한상훈 지음, NHK위성방송 '생명의묵시록' 제작팀 엮음, WWF Japan 감수 / 도요새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본서를 읽으면서 계속하여 떠오르는 질문이 바로 위의 질문이었다. 본서는 이 지구상에서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91종의 동물들에 대한 짧은 글들의 모음이다. 수가 줄어든 것뿐이 아니라 종 자체가 없어져 버린, 그래서 이제는 사진이나 그림, 또는 그들을 절멸시킨 요인 중 하나인 박제로만 볼 수 있는 이들 동물들은 대부분, 아니 모두 인간들의 빗나간 욕망들에 의한 희생물이었다.

많은 조류들은 단지 그들의 깃털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멸종당하였다. 하와이 왕의 외투를 장식하기 위해 8만 마리의 카고시 흑벌새 깃털이 채집되었다는 부분에서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한 벌의 외투를 위해 8만 마리의 새들의 깃털이 채집되었다니! 그럼에도 이들 원주민들은 그나마 낫다. 이 경우 8만 마리의 흑벌새 깃털이 채집되긴 하였어도 그들의 생명은 빼앗지 않았다 한다. 문제는 서구인들의 문명이라는 표지 안에 숨겨진 오만하고 광폭한 악마성이다. 그들은 단지 유행 때문에 많은 아름다운 조류들의 깃털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생명까지 아울러 빼앗았다.

모피를 얻기 위한 동물들의 살육 역시 마찬가지이다. 원주민들도 역시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들을 사냥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위한 것으로써 동물들의 번식률에 상응하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자칭 문명인들인 서구인들이다. 그들은 허례와 사치를 위해 무수히 많은 동물의 목숨을 말살했다. 또한 그들은 재미로 동물들의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했다.

그들에게는 단 한 점의 죄의식조차 없었음이 더욱 큰 문제이다. 비록 동물이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그들은 원주민들에게조차 그런 관점이었으므로 어쩌면 그러한 결과는 당연하다). 반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동물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에 있어 뚜렷한 제한이 있었으며, 그러한 행위에 대한 속죄의식까지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원주민들과 서구인들의 차이이다. 과연 어느 쪽이 진정한 문명인인가?

본서를 읽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과연 우리의 교육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란 물음이었다. 우리는 '신사의 나라 영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식의 교육을 통해 그들 서구의 나라들을 높게 인식하였으며, 그들의 문화가 뛰어난 것이라 배워왔고, 그들의 팽창주의를 일면 동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은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목숨을 멸절하였으며, 그들을 마치 도구처럼 부렸으며, 아울러 그 대지들을 약탈하였는가를 알려주는 말이다.

어찌 이러한 죄악이 팽창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정당화되고 교육되어질 수 있단 말인가? 어찌 그들의 잔혹성이 한낮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예절이라는 허울 속에 감추어 질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예절을 동경하는 교육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교육을 통해 어찌 제대로 된 인격이 형성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교육 가운데 성장한 세대들이 어찌 생명을 귀하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왜 이러한 사실들을 가르치지 않는가?

본서 전반에서 그들의 악마성이 드러남을 독자들은 간과하지 말기를 바란다. 아울러서 그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의 자신은 어떠한가 반추해보며,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바란다. 환경 문제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욕망의 절제와 모든 생명의 존중임을 깨닫기 바란다. 서구인들이 가졌던 다른 생명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함은 환경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적임을 자각하길 바란다.

모든 생명체는 상호간의 영향 없이 생활할 수 없다. 이 지구상의 동식물들이 죽어 사라진다면 결국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 역시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할 때 환경을 생각치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며, 타인을 향한 살인행위임을 독자들이 깨닫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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