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미스터리
J.M. 에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단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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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셜록 미스터리>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한 경의와 애정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도 셜록 홈즈를 연구하는 10인의 홈스학자들, 셜록 홈즈와 외모가 닮은 러스트레이드 경감(p.21)이다. 따라서 셜록 홈즈의 팬이라면, 작품에 숨겨진 위트나 풍자를 더 깊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셜록 홈즈를 한 번도 읽지 않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셜록 미스터리>를 읽는 데 지장은 없다. 나 역시도 어릴 때 아동용 홈즈를 읽은 기억밖에 없다.

 

포세이돈 소방위와 플리포 소방사가 긴급 출동한다. 이들의 임무는 '눈사태로 매몰된 베이커 스트리트 호텔에 가서, 홈즈학회 참석차 투석했던 10인의 대학교수를 구출'(p.16)하는 거다. 호텔 지배인 루이지 리가텔리와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합류하고, 다 함께 호텔로 진입한다. 이들은 난장판이 된 호텔에서 충격적인 뭔가를 발견하는데...

 

<셜록 미스터리>는 일종의 액자식 구성이다. 러스트레이드 경감과 포세이돈 소방위 일행은 현장에서 발견된 기록을 읽고 있다. (액자 바깥 이야기) 이들이 읽는 기록은 1)신문기자(오드리 마르무쟁)가 남긴 기록과 2)교수들이 보낸 편지와 메모 등으로, 고립되었던 4일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액자 속 이야기) 비중은 20 : 80 정도로 액자 속 이야기가 핵심이다. 따라서, 초반 맹활약을 기대했던 러스트레이드 경감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10명의 교수들은 소르본 대학에서 새롭게 신설되는 홈즈학과의 정교수 자리를 노리고 있다. 임명권자이자, 학회 주최자인 보보교수의 눈에 들기 위해 애쓰며. 그러던 중, 홈스학자들이 하나둘 의문의 사고를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호텔은 고립된다. 4일간 이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솔직히, 작품 속 풍자나 위트가 가슴에 와 닿진 않았다. 원인은 작가의 역량이 부족한 것도,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한 지식부족도 아니다. 문화차이다. 이건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다른 프랑스권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도 느꼈던 거다. 풍자나 위트는 굉장히 압축적이기에, 이를 제대로 느끼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셜록 미스터리>의 구성은 놀라웠다. 오드리 마르무쟁의 기록이나, 교수들의 편지가 7,8페이지 내외로 짧게 짧게 이어진다. (한 페이지로 간략하게 등장하는 메모도 있다.) 그런데도 이야기의 흐름이 전혀 끊기지 않고, 기록과 편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대단하다. 이런 구성력은 쉽게 선보일 수 있는 게 아니다. (구성만 놓고 보면,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도 비슷하다. 단, 편지와 기록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 사건의 진실은 러스트레이드 경감의 명쾌한 추리로 밝혀진 듯(p.359) 보이나, 끝부분에 새로운 의혹이 제시(p.381)된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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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탐정들
정명섭.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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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녁 먹기 전 한 꼭지만 읽으려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중간에서 멈출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 CSI마냥 사건을 해결하는 명탐정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결국, 저녁은 9시쯤에야 먹을 수 있었다.

 

2.

 

<조선의 명탐정들>은 냉철하고 과학적인 추리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낸, 조선의 탐정 이야기다. 탐정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탐정'이었던 건 아니고, 오늘날 탐정처럼 사건을 해결했다는 의미에서의 탐정이다. 그래서, 세종대왕, 정조, 연산군이나 하급관리였던 선비들도 명탐정으로 등장한다. 얼마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TV프로그램 [별순검]은 조선 말기(거의 일제강점기 직전) 이야기이며, '별순검'이란 특정 집단의 활약상이었던 데 반해, <조선의 명탐정들>은 조선시대를 총망라하고 있고, 훨씬 다양한 인물들, 훨씬 다양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별순검]에 환호했던 분이라면, <조선의 명탐정들>에는 거의 찬양, 경배를 바치지 않을까?

 

3.

 

13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인물로는 16명의 명탐정이 등장한다. 전부 재미있었지만, 소개하고 싶은 건, 조선 최고의 명탐정 '정약용'의 활약상이다. 정약용은 곡산 부사나 형조참의의 직에서 여러 사건을 해결(p.202)했는데, 이런 기록을 [흠흠신서]에 남겨두었다. 실학자답게 과학적으로 사건을 해결했던 그는, 역시 조선 최고의 명탐정이었다. 한 사례를 보자.

 

한 여성(안 소사)이 어떤 남자(민성주)를 잔인하게 살해하고는, 관아로 찾아간다. "제 남편(최주변)이 민성주의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원수를 갚고자 민성주를 죽이고 자수하러 왔습니다."(p.206 일부수정) 효와 충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조선이었기에, 안 소사를 도리어 남편의 원수를 갚은 열녀라 칭하고 석방(p.207)한다.

 

하지만, 정약용은 의문을 품는다. 1) 안 소사는 자신의 남편이 민성주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주장하나, 민성주가 최주변에게 입힌 상처는 둘이 장난치다 생긴 것으로 아주 경미한 것이었다는 점. 2) 안 소사는 남편이 민성주에게 여러 군데 찔려서 사망했다고 했지만, 최주변의 상처는 크기와 아문 상태가 모두 다른 것으로 한번에 난 상처가 아닌 점. 3) 남편이 한 달동안 시름시름 앓았다고 주장했던, 안 소사의 말이 사실이 아니었고, 당사자인 최주변이 민성주를 고발하고나 죄를 묻지 않은 점 등. 의심스러운 게 한둘이 아니었다. 결국, 명탐정 정약용은 사건의 숨겨진 충격적 진실을 밝혀내는데...

 

4.

 

조선시대 활용되었던 수사기법들도 인상적이었다. 그 중, 독살 여부를 판명하는 방법(p.121)을 보자. 1) 조각수(쥐엄나무를 끓여서 우려낸 물)로 씻어낸 은비녀를 입 안에 넣고 종이로 막은 다음, 꺼내서 변색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청흑색으로 변하면 독살이 의심되었다. 2) 흰 밥을 피살자의 입 안에 넣고 종이로 막았다가, 몇 시간 후에 빼서 닭에게 먹인다. 닭이 밥을 먹고 죽으면 독살로 봤다. 또한, 독이 몸 안으로 들어갔을 경우를 대비, 항문도 같은 방법으로 검사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 시체검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p.240)도 있다. 기본적으로 피살자의 시신은 조사관을 바꿔서 세 차례에 걸쳐 조사를 진행(p.223)했다고 한다. 거기다 사체의 외상을 꼼꼼히 확인하여, 칼에 찔리거나 멍든 흔적이 있으면 자로 상처의 크기와 넓이를 쟀고, 대꼬챙이를 이용해서 상처의 깊이도 쟀다. 이런 기록들은 전부 그림과 함께 꼼꼼히 기록되었다.

 

5.

 

각 챕터 끝부분에는 조선 명탐정과 비슷한 활약을 했던, 서양 추리소설 속 탐정 이야기가 나온다. 예를 들어, '이의형처럼 가족들 간의 은밀한 비밀을 파헤친 탐정은?'이라 문제제기하고, 로스 맥도널드가 탄생시킨 '루 아처'를 소개하는 식이다. 추리소설의 간략한 서평으로 읽을 수도 있고, 탐정 캐릭터 분석으로도 볼 수 있다. 몰랐던 탐정들도 있고, 상당히 괜찮았다.

 

또한, 삽화와 기발한 표지도 훌륭하다. 삽화는 위에서 이야기한 서양 추리소설 속 탐정 이야기에 실려 있는데, 주로 서양 탐정과 조선 탐정을 대비해 그렸다. 짙은 자주색과 검정색의 조합이 좋고 선이 강렬하다. <조선의 명탐정들>의 표지는 근래 본 표지 중 가장 기발하고 독창적이었다. 멀리서 보면, 정말 신문 1면을 접어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품격을 한 차원 높여준 부분.

 

6.

 

저녁밥도 잊고, 미친듯이 읽은 책이라 쉽게, '너무 재미있다'라고 말하기 꺼려진다. 뭔가 그 이상의 표현을 하고 싶다. 역사 속 숨겨진 사건사고과 명탐정의 활약상을 발굴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선보인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유명 작가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관심이 가져야 할 책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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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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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느낌은 'TV단막극 같네. 인물들도 개성 넘치고, 재밌다' 뭐 이런 거였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몽환적인 느낌이 강해지더니, 중후반에는 완전히 '실험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렸네요. 작가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나, 작품 초반의 느낌을 그대로 이어가길 원했다면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밤의 여행자>는 설정이 독특하고, 분위기 묘사가 탁월합니다. 특히 작가의 창조한 베트남의 섬 '므이'는, 꿈속에서 여행했던 곳 같이 미스터리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읽는 내내, 실제 베트남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주인공 '고요나'는 [정글]이란 회사의 여행 프로그래머입니다. 직장 내 위치가 위태위태하더니 퇴출위기에 몰리고, 상사인 김조광에게 성추행까지 당합니다. 결국, 사표(p.30)를 던지지만, 상사는 장기휴가를 권하며 겸사겸사 여행상품의 존폐를 결정하는 일을 맡깁니다. 그래서, 요나는 '므이'로 가게 됩니다.

 

요나가 '므이'에서 만난 사람 중, 특히 주목한 이는 [작가]와 [럭]입니다. [작가]는 므이에 머물며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놀랍게도 그의 시나리오는 소설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밤의 여행자> 자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소설 속 [작가]가 A란 인물이 사고를 당하는 걸로 설정하면, <밤의 여행자>의 내용이 시나리오처럼 바뀌는 거죠.

 

[럭]은 요나와 사랑에 빠지는 베트남 남자입니다. 둘의 연애감정은 여러모로 의아합니다. 관계진전이 급작스러워요. 그냥 남남처럼 지내가, 갑자기 100년 동안 절절한 사랑을 나눈 것처럼 행동(p.171,186)하니 어색할 수밖에요. 그리고, 요나는 [럭]을 위해 시나리오 변경을 요구(p.186)하는데, 그 때문에 변화된 결말(p.198 요나의 XX)이 마음에 안듭니다. p.198이후는 전혀 몰입할 수 없었어요.

 

다 읽고나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요나의 꿈일지도 몰라.' '므이도 사람들도, 벌어지는 사건들도 모두 몽롱하잖아.' 소설 속 요나 역시, 노란 트럭에 치인 여자를 보며 '그게 꿈인지 현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p.190)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꿈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므이'입니다.

 

<밤의 여행자>는 미스터리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훌륭한 작품입니다. 작가가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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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탐정들
정명섭.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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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탐정들> 표지 보세요.
멀리서 보면, 절대 책이라고 생각 못하겠죠?
그냥 신문이라고 생각할 듯ㅋㅋㅋ

근래 본 표지중에 가장 기발해요. 멋지다.

넓게 편 모습.
다시 봐도 혁신적인 표지네요.

16인의 조선 명탐정을 다룬 책이군요.
이런거 좋아함ㅋㅋㅋ

각 장을 여는 삽화입니다.
보라색과 검정색의 조합이 꽤 괜찮네요.

재밌는 건, 조선탐정이 곰방대를 물고 있다는 거ㅋㅋㅋ

속에 근사한 삽화가 가득해요.
검정색 선이 강조돼서 힘 있고 강렬한 느낌이 납니다.
삽화가님 대단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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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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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능이 끝나고 갈 대학이 정해졌다. 대학입학 때까지 긴 시간을 헌책방에서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당시엔 교과서가 아닌 책(소설)이 참 고팠다. 그 헌책방 골목은 주로 참고서 위주였다. 허나 일반 소설류를 취급하는 곳도 많았다. 부담 없이 쭈그리고 앉아, 책더미에 숨어서 이것저것 읽었다. 그때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와 존 그리샴의 책이다. 당시 <개미>는 예쁜 양장이 아니었고, 투박한 반양장이었다. (당시엔 양장본이 아주 드물었다.)

 

군대에 갔다. 일, 이등병 때는 책 읽는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상병 이후에는 시간이 좀 났다. 특히 자기 전, 당직사관 몰래 랜턴을 켜고 책을 읽었는데, 이게 정말 환상이다. 완벽하게 몰입해서 책을 읽고 싶다면, 군대에 가서 병장쯤 된 다음, 22시 이후 랜턴켜고 읽어보라ㅋㅋㅋ 아무튼, 이때 <개미> 1권을 다시 읽고, 나머지 권들을 전부 읽었다. <개미>는 군에 있을 때 읽은 모든 책 중, 단연 최고였다. 이처럼,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내 인생의 주요지점에서 나와 함께 했다. 그것도 최고로 멋진 기억으로.

 

2.

 

<제3인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선보인 기념작이다. 데뷔 20주년 기념작답게, <제3인류>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뭘까? ... 작가는 의도적으로 데뷔작 <개미>의 흔적을 곳곳에 뿌려두었다.

 

첫째, <개미>의 주인공, 에드몽 웰즈가 <제3인류>의 주인공 다비드 웰즈의 할아버지로 설정되었다. (에드몽 웰즈의 딸 '레티샤'도 다비드의 대사속에서 잠깐 등장한다.) 개미는 '소형화'의 한 상징으로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절대자 가이아(지구)는 개미를 자신의 파트너(?)로 점찍기(p.283)까지 한다. 둘째,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입체적 구성의 한 축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셋째, <개미>의 주요 테마였던 '소형화, 여성화, 긴밀한 연대'가 <제3인류>에서는 보다 극적으로 다뤄진다. 

 

3.

 

<제3인류>를 읽으며 감탄한 건, 현란하고도 입체적인 구성이다. 다비드 웰즈와 오르르 카메러의 메인스토리 사이사이, 1) 절대자 가이아(지구) 시점, 2)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3) 뉴스가 이어진다. 대충 껴맞춰진 구성이 아니다. 상당히 정교하다. 예를 들어, 오로르와 오비츠 대령의 대화속에 오로르의 증조부 '파울 카메러'가 언급(p.380)되는데, 바로 다음장에서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인물 '파울 카메러'를 이야기한다. 또한, '뉴스'에는 이란의 대규모 시위사태가 비중있게 다뤄지는데, 이게 바로 오비츠 대령이 연구를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이처럼 <제3인류>의 구성은 탄탄하며 놀랍고, 다양하며 입체적이다.

 

절대자 가이아(지구)의 시점부분은 <제3인류>의 커다란 특징이다. 작가는 지구에 의지를 부여하고, 살아있는 존재처럼 독백하는 가이아를 그려냈다. 가이아는 환경파괴를 일삼는 인간에 분노하며, 경고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탄생(지구의 역사)과 자기 위에서 살아가던 생명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특히 재밌는 건, 인간 탄생을 설명하는 부분(p.306)이다. 가이아는 충돌하는 행성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존재를 찾는다. 유력한 후보로 영장류를 떠올리지만, 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게 문제였다. 가이아는 한가지 묘안을 떠올린다. 영장류를 유인해 돼지와 교접시키는 거다. 가이아는 곧 지진을 일으켜 영장류와 흑맷돼지를 한곳에 가두었고, 둘은 교접하여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니, 이게 바로 인간이었다. 충격적이지 않을가?^^

 

4.

 

다비드와 오로르의 미묘한 관계 역시 <제3인류>의 매력 포인트다. 초반 등장했던 샤를 웰즈가 사라지고 나서, 다비드와 오로르는 번갈아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둘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채택되길 바라는 경쟁자이지만, 호감을 느끼는 동료이기도 하다. 다비드 웰즈는 피그미를 대상으로 인류의 '소형화'를 연구하고, 오로르 카메러는 '여성화'를 통해 방사능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방안을 연구한다. 이들은 오비츠 대령의 권유로 '어떤 연구'에 동참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소형화', '여성화'에 근접한 제3인류를 탄생시킬 수 있을까?

 

본문에는 자세히 소개하지 않았지만, 1) 피그미 전통인 '마조바 의식'을 통해 다비드가 경험한 전생체험(p.234), 2) 각기 터키와 콩고로 가 연구중이던 오로르와 다비드를 괴롭힌 엄청난 폭풍우와 식인 마냥개미, 3) 프랑스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경멸(p.106,290등), (경멸의 상징인물은 프랑스 대통령 '스타니슬라스 드루앵') 4) 가수 '더 도어스'의 음악 [디 엔드]의 상징성 등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데뷔 20주년 기념작, <제3인류>는 그 가치에 걸맞는 작품이다. 특히, 데뷔작 <개미>와 연계해 작품을 풀어갔다는 점이 놀랍다. <제3인류>야 말로, <개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등을 포괄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결정체다. 항상 내 인생의 주요지점에서 함께해줬던 그이기에, <제3인류>를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인생의 중요한 통로를 통과한 듯한 기분이다. 

 

 

 

 

 

* 스포일러 때문에, 호모 기간티스, 호모 메타모르포시스, ㄴㅅ인류에 대한 서술은 뺐습니다. 

* 페이지는 1권의 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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