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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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나의 대표작이라 하겠습니다"란 한마디는 이 책에 대한 구구절절한 수식을 무색케 한다. '요시다 슈이치가 느낀 만족감과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읽는내내 저 궁금증을 떠올렸다. 하지만 알았다. 저건 해명 불가능한 의문이란 걸. 무리한 생각이었단 걸.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이라곤 <캐러멜 팝콘>, <첫사랑 온천>밖에 읽지 않은 내가, '대표작 맞나, 어떤 점에서 그럴까'를 따지는 것은 오버다. 그냥 부담없이 읽어나갔다. 저자의 자신감을 믿기로 했다.

<악인>을 읽으며 사실 힘들었다. 요즘 복잡한 심경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뭐낙 많은 사람들이 불쑥불쑥 등장해서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등장인물 이름을 노트에 적어가며 읽었다. 요시노, 사리, 마코, 마쓰오, 노리오, 미치요, 유이치, 고키, 하야시, 히후미, 미쓰요 등등 정신이 없다. 중심사건은 이러하다. 생명보험회사에 근무하는 21세의 이시바시 요시노가 누군가에게 교살당한 뒤, 미쓰세 고개에 유기된다. 요시노는 동료들과 헤어진 후, 히가시 공원으로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 뒤 연락이 두절됐다. 그녀가 만나기로 했던 남자친구(인 것으로 추정되는), 마쓰오 게이고는 행방불명상태다. 요시노의 죽음의 비밀은 무엇일까?

초반, 요시노의 직장동료 사리와 마코의 진술이 중심이다. 마코는 '요시노와 마리 사이가 안좋았다는 것, 그녀에게 문자친구가 많았다는 것'등을 진술한다. 간접적으로 그려지는 요시노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장이 바뀌고 유이치가 부각된다. 성실하게 일하지만 말도 없고 속을 통 알 수 없는 유이치. 그런 그가 사랑했던 창녀 미호와의 어설픈 애정행각. 미쓰요와의 만남, 그녀의 일상등. 일련의 서술을 통해 유이치가 사건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역시'였지만, 단순히 '누가 살인을 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마쓰오의 행각을 고려하면 말이다.

지금 한문장 한문장 쓰기가 무척 힘들다. 2007년 최대 화제작, 신문잡지 서평담당자가 뽑은 최고의 책 1위라지만,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추리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기엔 미약하고, 심리와 애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마땅치 않다. <악인>, 요시다 슈이치는 자신의 대표작이라 했지만, 내겐 그저 평범한 준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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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버린 여인들 - 實錄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
손경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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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몇 분만에 수강신청이 마감되는 인기많은 교양강의를 듣는 것 같다'는 생각. 전공이 아니라 깊이 파고들 수 없지만, 흥미로운 주제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그런 교양강의 말이다. 저자가 '한국역사 속의 여성'을 강의하면서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서술해서 그럴까? 아무튼, 부담없이, 흥미롭게 읽었다.

<조선이 버린 여인들>은 지배질서에 희생된 여성 33명의 이야기다. 꼭지당 10페이지 정도 분량이며, 중간중간 '깊이 읽기'를 통해 깊이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소개한다.

'배다른 남매를 결혼시키려 한 소근'(p.60) 소근은 아들 '어연'을 데리고 임수산에게 첩으로 들어온다. 임수산은 곧 병으로 본처가 낳은 딸 복비만을 남긴채 죽는다. 문제가 발생했다. 어연이 복비에게 욕정을 느낀 것이다. 이를 알아챈 소근은 아들이 애태우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음모를 꾸민다. 결국 복비를 강간하는 이들 모자. 한편, 복비와 혼담이 오가던 박아생은 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관아에 고소한다. 사건은 왕이 직접 처결하는 문제로 확대된다.

강간당한 복비는 피해자다. 하지만, 조정관리들은 이상한 논리를 펼친다. "처음에는 비록 좇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스스로 좋아 잘 지냈으니 큰 죄입니다. 마땅히 사형으로 처단할 수밖에 없습니다."(p.67) 즉, 복비 역시 근친상간의 당사자이며 이를 거부하지 않았으니 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성들 모두 저런 해괴한 논리때문에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처럼 처벌당했다. '흥미롭게' 읽었다고 했지만, 읽는내내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았다.

'남편을 조롱하고 본처를 학대한 첩 경비'(p.211) 보통 본처가 첩을 학대하는데 이는 반대의 구조다. 남편 유완의 사랑을 등에 업은 경비는 안하무인이었다. 본처 홍씨를 종처럼 여기고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고 한다.(p.212참조) 첩을 사랑해 처를 내쫓는 것을 '기처'라고 하며, 가정내의 상하질서를 어지럽힌다 하여 엄한 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유완과 경비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사헌부의 탄핵으로 이들 문제는 왕에까지 전해진다. 결국, 경비는 변방관비가 되고, 유완은 먼지방에 부처된다.

'아들과 아버지가 함께 간통한 여인 파독'(p.297) 윤리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저런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니 의외였다. 천한 계집종 이었던 파독은 얼굴이 해맑고 아름다웠다 한다. 박저생은 그녀를 첩으로 삼았는데, 박저생의 아버지 박침 역시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는지 파독을 강간해 버린다.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강간하는 그야말로 어이없이 일이 벌어진 것. 하지만, 박저생은 반발할 수 없다. 박침이 파독을 자기 첩으로 삼아버린데다 아버지를 모함하면 십거지악에 걸려 자신이 처벌받는 상황인 것이다. 박침은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파독을 다시 얻을 수 있었다. 과연 이 사건은 어떻게 문제되고, 어떤 처벌을 받을까?

뭐낙 비슷한 포맷의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걱정도 했다. 하지만, <조선이 버린 여인들>엔 차별화된 뭔가가 있다. 이야기 말미에 약간의 문학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고, 관련 논문까지 바탕으로 한 '깊이읽기'도 좋았다.(p.50,51엔 당시 형벌을 도표로 설명하기도 한다) 소외되고 관심권 밖에 있던 여성들을 조명했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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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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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속의 치요>는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표지속 빨간 기모노('후리소데'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음)를 입은 여자아이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또한 '백수청년과 꼬마유령의 기묘한 동거'라는 설정도 끌렸다. 설정만으로도 재밌을거 같은 느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재미있게 읽었다. 유일하게 어긋난 건 이 책이 장편이 아닌 단편집이란거 정도.

직장을 그만둔 '다무라 게이타'가 쓰키가오카 맨션으로 이사하면서 기묘한 동거는 시작된다. 쓰키가오카 맨션은 작은 3층건물로, '벽은 여기저기 금이가고 거뭇거뭇하게 그을린 자국에다 그 추레함을 숨기듯 사방팔방으로 뻗은 담쟁이 덤굴로 덮혀 있는 곳'(p.13참조)이다. 외양부터 유령출몰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 게이타는 열악한 자금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니 어쩌면 운명적으로 이 곳을 선택했다.

게이타가 살게 된 방은 3층 한가운데인 302호, 우선 양 옆집에 인사부터 간다. 303호엔 미소녀 애니메이션 포스터와 '와세다대학 입시까지 앞으로 150일'이라고 붙여놓은 수험생인 듯한 음울한 남자, 301호엔 동남아계 외국인 요만씨가 살고 있다. 이 사람은 게이타에게 의문의 한마디를 던지는데, "그런데 당신, 큰일이야. 옆집은 부다의 까마르(악령의 방)야"(p.17) 약령이란 치요를 가리키는 걸까?

치요와의 만남은 코믹하다. 샤워하던 중 치요가 갑자기 나타나자, 게이타는 황급히 주전자로 사타구니를 가리고 줄행랑을 친다. 하하. 이 외에도 웃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여럿 있다. 치요가 부엌에서 육포, 칼피스, 주먹밥등을 몰래 먹는 장면(p.25), AV비디오를 보다 치요를 눈치채고 당혹스러워 하는 장면(p.42), TV를 보면서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치요의 천진난만함등.

아쉬웠던 것은, 치요의 정체나 죽음의 내력등이 지나치게 흐릿하다는 것, 치요와 게이타간 에피소드내지 정신적 교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편이라는 한계때문에. 역자는 '단편으로 끝나기엔 아쉬울 정도'(p.331)라 했는데, 공감이다. '치요와 게이타간 다양한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게이타의 고민인 재취업문제 내지 애인 준코와의 관계등을 보충해, 장편으로 선보였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다.

<벽장속의 치요> 흥미로운 작품이다. 수록된 9편의 단편 모두 오기와라 히로시만의 색을 느낄 수 있었다. 느낌이 무척 좋다.


* 표지 그림 절묘하다. 이야기속 치요 외양묘사와 완전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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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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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일본소설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던) 국내에 소개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으며, 그를 다시 보게 됐다. 지금까지 접하던 그의 작품세계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백야행>을 읽으며 느꼈던 흥분, 이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스릴, 대단하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제목처럼 젊은 남녀의 유괴 자작극이 핵심 축이다. 광고 프로듀서인 '사쿠마 슌스케', 닛세이 자동차 부사장 가쓰라기 가쓰토시의 딸 '가쓰라기 주리', 이들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결국 돈을 손에 넣는 과정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엄청난 몰입력.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유괴자작극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숨겨져 있던 충격적 진실, 음모…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닛세이 자동차의 오토모빌 파크 기획안을 책임지던 슌스케, 하지만 가쓰라기의 말한마디에 기획안은 물 건너간다. 더군다나, 그에 대한 가쓰라기의 혹평은 슌스케의 회사내 지위까지 송두리채 흔들고…술로 시름을 달래던 슌스케는 뭔가에 이끌려 가쓰라기의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보게 된다. 가쓰라기 저택의 담을 넘고 나오는 어떤 여성을.(p.24참조) 슌스케와 '주리'(치하루)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마지막 반전을 고려한다면 이 부분은 약간 의문이다. 주리(치하루)는 왜 담을 넘어 나와야 했을까? '일'을 저질렀다 해도 그냥 문으로 나오는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문을 통해서 나오면 안됐던 이유를 난 발견하지 못했다. 말이 나온김에, 슌스케가 무료 이메일계정을 만들어 범행에 이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p.154) '접속IP 추적등으로 주소같은게 드러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야기전개상 무리는 없지만 저자는 저런 점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다.

슌스케와 주리(치하루)의 자작 유괴극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겠다. 이 작품은 나카마 유키에 주연으로 영화화 되었다는데, 빨리 찾아 봐야겠다. 소설과는 다른 결말을 선택했다고 하니, 기대된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 이야기전개도 빠르고 흥미진진하다. 거기다 놀라운 반전까지.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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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품은 <유대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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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1-1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부럽습니다.ㅠ_ㅠ 네이버 책이벤트는 또 어찌...^^흐흐..

쥬베이 2008-01-18 23:10   좋아요 0 | URL
^^ 사실 이벤트서평이었는데, 운좋게 다른 이벤트에 당첨되었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