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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벽장속의 치요>는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표지속 빨간 기모노('후리소데'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음)를 입은 여자아이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또한 '백수청년과 꼬마유령의 기묘한 동거'라는 설정도 끌렸다. 설정만으로도 재밌을거 같은 느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재미있게 읽었다. 유일하게 어긋난 건 이 책이 장편이 아닌 단편집이란거 정도.
직장을 그만둔 '다무라 게이타'가 쓰키가오카 맨션으로 이사하면서 기묘한 동거는 시작된다. 쓰키가오카 맨션은 작은 3층건물로, '벽은 여기저기 금이가고 거뭇거뭇하게 그을린 자국에다 그 추레함을 숨기듯 사방팔방으로 뻗은 담쟁이 덤굴로 덮혀 있는 곳'(p.13참조)이다. 외양부터 유령출몰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 게이타는 열악한 자금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니 어쩌면 운명적으로 이 곳을 선택했다.
게이타가 살게 된 방은 3층 한가운데인 302호, 우선 양 옆집에 인사부터 간다. 303호엔 미소녀 애니메이션 포스터와 '와세다대학 입시까지 앞으로 150일'이라고 붙여놓은 수험생인 듯한 음울한 남자, 301호엔 동남아계 외국인 요만씨가 살고 있다. 이 사람은 게이타에게 의문의 한마디를 던지는데, "그런데 당신, 큰일이야. 옆집은 부다의 까마르(악령의 방)야"(p.17) 약령이란 치요를 가리키는 걸까?
치요와의 만남은 코믹하다. 샤워하던 중 치요가 갑자기 나타나자, 게이타는 황급히 주전자로 사타구니를 가리고 줄행랑을 친다. 하하. 이 외에도 웃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여럿 있다. 치요가 부엌에서 육포, 칼피스, 주먹밥등을 몰래 먹는 장면(p.25), AV비디오를 보다 치요를 눈치채고 당혹스러워 하는 장면(p.42), TV를 보면서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치요의 천진난만함등.
아쉬웠던 것은, 치요의 정체나 죽음의 내력등이 지나치게 흐릿하다는 것, 치요와 게이타간 에피소드내지 정신적 교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편이라는 한계때문에. 역자는 '단편으로 끝나기엔 아쉬울 정도'(p.331)라 했는데, 공감이다. '치요와 게이타간 다양한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게이타의 고민인 재취업문제 내지 애인 준코와의 관계등을 보충해, 장편으로 선보였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다.
<벽장속의 치요> 흥미로운 작품이다. 수록된 9편의 단편 모두 오기와라 히로시만의 색을 느낄 수 있었다. 느낌이 무척 좋다.
* 표지 그림 절묘하다. 이야기속 치요 외양묘사와 완전 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