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탑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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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문단을 위해 많은 시간 고민했다. 쓰고, 지우고, 고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표현하고 싶던 것은 '전아리란 이름을 처음 어떻게 알게 됐고, 읽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전아리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였다. 결국 다 지워 버렸다. 애당초 불가능하고 쓸데없는 짓이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대단한지는 남의 말보다 직접 읽고 판단하는게 나으니까.

<시계탑>은 성장소설이다. 당찬 소녀 '최연'이 11세부터 19세까지 보고, 느끼고, 겪게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무척 재미있다. 잘 읽히는데다 순식간에 이야기속으로 녹아든다. 근래 읽은 국내소설중 이런 작품은 없었다.

저자는 생생한 등장인물 형상화에 성공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해, '차별화 된 생동감'을 창조한다. 밝고 당차지만 도벽이 있는 연이, 어리숙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가끔 개짓는 흉내를 내는 정육집 아들 병욱, 너무 일찍 이성에 눈을 떠버런 3층소녀 소영, 화장 1cm 미장원언니 희정등등, 공감할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들이다.

연이가 처한 상황(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가출, 가난)은 암울하고 답답하지만, 이야기는 밝고 생기넘친다. 연이부터 좌절하고 슬퍼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같은 반 반장네 생일파티에 가서 고급시계를 훔치고(p.15), 훔친 물건을 능청스럽게 팔아치운다. 심지어 희정언니가 신었던 스타킹을 비싼 값에 팔기도(p.26) 한다. 또한 기발하고 톡톡튀는 표현이 이어지는 것도 밝은 분위기를 가능케한 원동력이다. 몇 부분을 보자. '오지랖 넓게 굴지 말고, 집 안에 큼직한 바늘이 있다면 학생 입부터 꿰매고 오세요."(p.60)라던가, '볼펜 잉크 속에는 똥파리라도 한 마리 헤엄치고 있는지, 쓸 때마다 잉크 똥이 쉴새없이 나왔다.'(p.78) '미지근한 녹차는 녹차 이파리가 잠깐 반신욕을 하다가 나간 물처럼 싱겁다.'(p.129)등등.

<시계탑>처럼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에 뭐가 아쉬운게 있으랴만, 두가지 점이 약간 아쉬웠다. 99점인 작품의 부족한 1점이라고나 할까? 배부른 투정쯤으로 봐주시길. 초반 배가 아파 병원에 간 연이에게 의사는 까마귀가 살고 있다(p.17)고 한다. 이는 단순한 농담차원을 넘어 어떤 상징성을 가진다. (표지 그림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연이가 품은 까마귀와 그 상징성은 더 이상 부각되지 않는다. 까마귀의 상징성을 좀 더 구체화했으면 어땠을까? 또한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간 연이의 어머니. 그녀 역시 중반 이후 전혀 등장하지 않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소식을 알린다. 어머니와 연이의 관계등 좀 더 심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시계탑>, 오랜만에 보는 멋진 국내소설이다. 연이, 병욱, 소영이 펼쳐가는 우정과 감동의 스토리는 정말 아름답다. 거기다 재미까지. 86년생 어린 작가의 작품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이렇게 완벽한데. 전아리 작가는 한국문학을 이끌 보석같은 존재다. <시계탑>을 읽는다면 왜 그녀가 문학천재로 불리는지, 왜 청소년문학상을 석권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꼭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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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16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지 않을수 없게 만드는 리뷰예요... 저도 꼭 천재의 매력을 경험해보고 싶군요.

쥬베이 2008-06-16 18:16   좋아요 0 | URL
전아리 작가 정말 최고에요^^ 분량도 적절하고 아주 재미있습니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도널드 맥카이그 지음, 박아람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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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마거릿 미첼 위원회'의 공식승인을 받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공식 속편이다.(p.690참조) 원작과 속편의 미묘한 차이와 관계양상을 분석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알지 못하는 내겐 무리다. 일단 원작과 속편를 비교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지금은 오직 이 작품에만 집중하겠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면 레트 버틀러와 스칼렛 오하라의 뜨거운 사랑 아니던가? 자연히 두 사람의 만남, 갈등, 사랑이 시작부터 이어질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아니다. 소설은 레트 버틀러의 어린시절 이야기, 결투신청을 받고 대응하는 그의 성격묘사에 우선 주목한다. 초반부 비중있게 등장하는 '결투문화'는 놀라웠다. 서부극에서나 볼법한 결투가 공공연하게 행해졌다니…아무튼, 섀드 워틀링은 레트가 자신의 여동생을 임신시켰다고 주장하며 결투를 신청한다.(p.26참조) 이에 결투입회인 역할을 맡게된 존 헤인즈등 여러사람이 중재노력을 하지만, 총알을 발사되고야 만다.

저자는 레트의 캐릭터성을 부각할 수 있는 어린시절 에피소드를 곳곳에 배치한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인권적인 반노예적 태도'다. 자신의 아내를 노예란 이유로 강간하려는 주인에 반발한 '윌'이 채찍질을 당하자, 어린 레트는 반발한다. "그럼 윌은 죽을거에요. 말도 안 돼요. 아저씨, 그건 살인이에요."(p.39) 또한 노예들이 자기에게 '도련님, 도련님'하자 멋진 말을 한다. "저는 도련님이 아니에요. 제 이름은 레트입니다."(p.42) 멋지다. 레트의 이런 멋진 성격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레트가 성장함에 따라, 더욱 빛을 발한다.

이어, 여동생 로즈메리와 주고받는 편지(p.73이하)내용이 비중있게 등장한다. 오빠와 여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 끈끈한 정이 느껴져 가슴이 따뜻해 졌다. 이처럼 초반부는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성장소설'같은 느낌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도련님'이란 호칭으로 대변되는 지위를 거부하고, 평등과 인도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는 레트. 이는 반항과 가족갈등으로 연결되며, 그는 일종의 가출을 감행한다. 한마디로 초반부는 성장소설 관점으로 바라봐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제1부 '만남'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장소설적 느낌이라면, 제2부 '전쟁'은 전쟁소설적 느낌이다. 남북전쟁이야기가 주가 되기 때문이다. 레트와 테즈 워틀링등이 전쟁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은 물론, 레트와 스칼렛의 사랑에 관련되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특히 주목한 것은 '테즈(테이즈웰) 워틀링'이다. 매음굴 사포루즈를 운영하는 벨 워틀링의 아들인 테즈, 그는 어린나이에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레트는 그의 후견인으로 아들처럼 보살펴 준다. 두사람의 돈독한 신뢰관계는 이야기의 한 축이다.

전쟁이 끝나고(p.339), 기대했던 레트와 스칼렛의 사랑이 조금씩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상상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레트는 스칼렛을 사랑하지만, 스칼렛은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애슐리를 그리고 있다. 이들의 관계가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장면을 소개한다. 전쟁이 끝나고 레트는 두니스 보노 살해혐의와 국고횡령혐의 투옥된다. 이에 스칼렛은 면회를 온다. 기뻐하는 레트. 하지만, 하지만, 스칼렛의 목적이 무었인지 아는가? 돈이었다. "나만큼 절실히 원했던 여자가 없었다면서요. 지금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럼 저를 가지세요. 레트, 뭐든지 해줄게요. 지불명령서 한 장만 써주면……."(p.407) 충격이다. 고작 300달러에 스칼렛은 몸을 팔려 했다. 레트를 향한 스칼렛의 마음은 저 정도였던 것이다. 결국, 돈을 쫒아 프랭크 케너디와 도망가는 스칼렛.

결혼이 사랑의 형식적인 완성이라면, 레트와 스칼렛은 외견적인 완성을 이룬다.(p.446) 하지만 이들의 만남과 사랑은 결코 순탄치 않다. 스칼렛을 향한 레트의 사랑은 진정한 완성을 이룰 것인가? 스칼렛의 마음은?

작품이 남북전쟁 당시 사회상을 바탕으로 펼쳐내는 삶과 애증의 드라마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금껏 읽은 다른 대작이 자연스레 오버랩 되었다. 방대한 스케일과 전쟁의 혼란상은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일부분과 유사한 느낌이며, 기존 악습에 대항하는 어린시절 레트의 모습은 <홍루몽>의 보옥을 연상시킨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같은 명작을 완벽한 장정으로 만나게 된 것은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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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8-06-09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오..안 읽으면 안 될 듯한 멋진 리뷰..^^

쥬베이 2008-06-09 16:41   좋아요 0 | URL
ㅋㅋㅋ 감사합니다^^
두툼한 책인데도 잘 읽히고,재미있어요. 명작의 향취도 있고...읽어보세요^^

조아해 2025-06-0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트 띄워주려고 스칼렛 까는 여적여줌마ㅉ
 
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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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구텐베르크의 조선>을 읽으며 확신했다. 역사소설에 있어 오세영 작가님을 따라갈 작가는 없다는 것, 근래 주목받는 역사팩션의 개척자는 오세영 작가님이란 것. 오세영 작가님 하면 슈퍼 베스트셀러 <베니스의 개성상인>아닌가? 이미 우리는 뛰어난 역사팩션을 접해왔던 것이다. 그간 잊고 있었다.

쿠자누스 신부의 소개장을 들고 마인츠의 구텐베르크를 찾는 석주원과 이레네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장영실의 수제자인 야금장 석주원과 사마르칸트 출신 미모의 여인 이레네. 이들은 어떻게 동행하게 된걸까? 석주원은 왜 머나먼 이역 땅에 와 있는걸까? 미모의 여인 이레네의 비밀은? 이처럼 저자는 동서양의 극적인 만남을 초반부에 배치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시선을 집중시킨다. 저자의 노련한 구성력이 시작부터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후는 석주원이 회상하는 형식(…하는 생각이 들자 석주원의 기억은 멀리 떨어진 조선의 경복궁 주자소로 날아갔다. p.28)으로 파란만장했던 여정이 펼쳐진다. 석주원의 스승, 장영실은 어가를 부실하게 만들었다는 불경혐의를 뒤집어 쓰고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주자소는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석주원은 어린 나이에 주자소 야장이 된다. 한편, 훈민정은 반포에 반대하는 최만리등 유학자들은 주자소를 장악하려는 음모(p.44)를 꾸미는데…

<구텐베르크의 조선>이 흥미진진한 이유중 하나는 속도감 있는 이야기전개이다. 미스터리했던 장영실의 행방(p.53), 석주원이 명나라로 가게 되는 과정(p.57), 명나라의 권력투쟁에 휘말린 두 사람(p.107이하), 티무르 제국으로 향하는 석주원(p.122), 로마 교황청으로 향하는 석주원(p.166)등등 굵직굵직한 중심사건이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한순간도 시선을 팔 수 없었고 완벽하게 이야기속으로 몰입했다. 이런 방대한 스케일의 작품은 자칫 잘못하면 늘어질 수 있는데, 저자는 능수능란한 전개로 이야기의 중심을 꽉 잡고 있다. 역시 역사소설의 대가답다.

다른 하나는 생생한 등장인물 형상화이다. 저자는 장영실, 성삼문, 최만리, 구텐베르크등 실존인물을 개성 넘치는 인물로 재창조한다. 특히 성실하고 장인정신 넘치는 장영실의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어가를 부서뜨렸다는 혐의로 벌을 받은 역사적 사실을 세종과 그의 자작극(?)으로 재해석한 부분, 나아가 그가 세종의 특명을 받고 훈민정음의 위한 활자제조를 위해 중국으로 밀입국하는 설정등은 대단히 놀랍다. 구텐베르크를 열정적이지만, 다소 거친 인물로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다. 또한, 핵심인물인 석주원, 이레네 같은 가상인물을 적절하게 창조해 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여정을 함께하는 석주원과 이레네의 은근한 애정모드(^^)와 결국 이뤄지는 사랑, 장영실의 제자로 세종의 밀명을 받는 석주원의 열정등, 정말 대단하다.

저자는 꼼꼼하게 관련 사료를 분석하고 정리한 것 같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과정, 특히 해탄 관련 내용, 구텐베르크와 얽힌 세계사적 내용등은 역사소설의 대가 오세영 작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조선>은 <베니스의 개성상인>의 뒤를 잊는 또하나의 신화다. 금속활자를 중심으로 조선과 유럽을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 한순간도 눈을 돌릴 수 없는 흥미진진함, 정말 멋진 작품이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대작을 꾸준하게 선보여 주시는 오세영 작가님께 진심어린 경의를 표한다. 고구려나 발해 같은 민족자존심이 걸린 소재도 많이 다뤄 주시길. <구텐베르크의 조선>,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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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끽연자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8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을 읽으면 당신도 츠츠이스트가 됩니다.' 띠지에 적힌 저 말은 공연한 홍보문구가 아니었다. 감탄했다. '난 츠츠이스트(츠츠이 야스타카의 열혈 팬)이다! 정말 대단한 작가야'라며 떠들고 싶을 정도로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대를 앞서간 천재성은 충격이었다. 사실, 그의 작품은 처음이 아니다. <파프리카>를 읽었다. <파프리카> 역시 좋은 작품이지만 장편이다 보니 그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부각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 작품은 어떤가? <최후의 끽연자>는 작가가 직접 선별한 자선 단편집이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작품세계를 근접해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혹시 아직 그의 작품을 읽지 못한 분이라면, 꼭 이 작품으로 츠츠이 야스타카를 접하시길.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자선 단편집답게 작품의 완성도가 고르다.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유형은, SF적 상상력이 넘치는 단편이다. [급류], [혹천재], [평행세계]. SF분야에서 뭐낙 유명한 작가아니던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저 작품을 쓴 시기가 70년대라는 것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고, 근래 출간된 작품이라 속인다 할지라도 믿을 수밖에 없다. 정말 대단하다. 역자의 말을 인용한다. "[최후의 끽연자](1987)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모두 1970년대 작품이지만, 그 블랙유머는 조금도 무디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그것이 발표된 연도를 확인하고 앞날개에 있는 작가 사진을 쳐다 보곤 했다. 이게 정말 삼십 년 전애 쓴 것이 맞나, 하면서."(p.258)

두번째 유형은, 블랙유머적 단편이다. [최후의 끽연자], [노경의 타잔]. 금연운동이 널리 퍼지고 공공의 적이 된 흡연자들의 투쟁(?)을 담은 표제작 [최후의 끽연자]는 오늘날 절절히 공감할 수 있다. 여기도 저기도 금연구역, 내몰리는 흡연자들. 끽연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흡연자들의 모습이 떠오른건 비단 나뿐이 아닐 것이다. [혹천재]역시 이와 유사한 느낌이다. 일부 부모들의 무시무시한 교육열, 일그러진 인격, 츠츠이 야스타카의 혜안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세번째 유형은, 일본 역사를 재해석한 단편이다. [야마자키], [망엔 원년의 럭비]. 처음 접할땐 약간 의외였다. 이 작가 역사에도 관심이 있구나. 일본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정확히 알지 못해 아쉬웠다. 배경 사건을 제대로 안다면, 작가의 패러디내지 블랙유머를 깊게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생생해 일본 역사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로웠다. ('기묘한 이야기' 극장판 에피소드와 유사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규원 역자님께서도 그걸 느끼셨나보다. 후기에 언급된다^^ 역자님 빙고!ㅋㅋ) 세가지 유형으로 나눠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분류일 뿐이다. 블랙유머, SF적 상상력등은 모든 작품에 고루 녹아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주가 되느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후의 끽연자>, 츠츠이 야스타카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는 충격적인 단편집이다. 모든 단편이 작품성과 흥미를 겸비했다. 확인해 보시라. 내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SF라는 소외된 장르를 꿋꿋하게 선보여 온 천재작가 츠츠이 야스타카, 정말 존경스럽다.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부럽다. <최후의 끽연자>의 충격적 세계에 빠져 보시길.

 

* 표지 뒤, 남자표정에 주목하시라. 하하하

* [망엔 원년의 럭비]란 제목이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 원년의 풋볼>를 패러디한 듯하다.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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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계절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쓰네카와 고타로의 데뷔작 <야시>를 여러번 읽었다. 독서기록장을 보니 3번이나 읽었더라. 그의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작품세계는 충격 그 자체였고, 어린시절 꿈꾸던 만화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런 쓰네카와 고타로가 돌아왔다! 그것도 장편소설을 가지고.

소설외적 이야기부터 하자면, <천둥의 계절>의 표지 정말 마음에 든다. 기본적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같은 작가의 작품은 표지, 장정, 편집등에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시>와 <천둥의 계절> 표지를 살펴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통일성이 있는데다 책의 미묘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고 있다. 도서관에서 3번이나 읽은 <야시>를 굳이 구입하려는 이유는 바로 저것이다. 이런걸 시너지 효과라고 하나. 그런고로 조만간 출간될 <가을의 감옥>의 표지와 장정도 통일성있었음 하는 바램이다.

<천둥의 계절>은 처음 접하는 쓰네카와 고타로의 장편이다. <야시>에서 선보였던 작품세계는 한층 확장, 심화되었다. 저자는 먼저 '온'이란 가상세계를 설정한다. '온'은 바깥세계(우리가 존재하는 곳)에서 벗어난 공간에 존재하며 독자적인 문화체계를 발전시켜 온 곳이다. 두 세계는 다른 영역에 존재하기에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온'을 벗어나게 되면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다고 한다.(p.21,22참조) 다른 차원의 세상이라고 이해하면 무난할 듯.

주인공 '겐야'는 '가미쿠라'라는 성을 쓰는 노부부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겐야는 왠지 온에 완전히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듯한 느낌이다. 친부모가 아닌 이에게 양육된다는 점부터, 괴로운 학창생활까지, 뭔가 어긋나 있다. 설상가상으로 천둥계절에 누나마저 사라져 버리고(p.29), 겐야는 '뭔가'('바람 와이와이'라 불리는 새귀신)에 씌였다. 겐야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은 미스터리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겐야는 아주 외톨이는 아니었다. 친구 '호다카'와 '묘운', 온의 문지기 '오도'가 있었다. 조금은 쓸쓸하게 때론 즐겁게, 겐야의 학창시절은 흘러간다.

겐야에게 들어온 바람와이와이는 충격적인 말을 건넨다.(p.64이하) 겐야의 비밀에 대해. 왠지 겉도는 듯한 모습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호다카의 오빠 '나기히사'와, 그의 친구 '히나'가 등장한다. 이들은 겐야가 온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의 당사자들이다.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이정도만 이야기하겠다. 결국 겐야는 온을 떠나게 되고, 누명을 뒤집어 쓴 겐야는 귀신조에게 추격당한다.

이쯤에서 구성을 살펴보자. <천둥의 계절>의 목차는 [겐야]온, [도바 무네키]유령의 세월, [나기히사]동자귀신, [아카네]도시 바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 이름은 해당목차의 화자로 총 4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즉, <천둥의 계절>은 4번의 시점변화를 거쳐 하나로 수렴되는 구성인 것이다. 겐야, 호다카 / 아카네, 도바 무네키등의 시간적 간극과 숨겨진 비밀은 좋았지만, 무려 4명의 화자를 등장시켜 이야기흐름을 끊어버린 것은 아쉽다. 특히 나기히사와 도바 무네키의 시점은 달랑 한단락이다. 이런 무리한 구성은 장편은 처음인 저자의 고육지계이자 한계다.

아무튼, 도바 무네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유령의 세월'(p.330이하)과 에필로그에서 미스터리했던 모든 의문이 해소된다. 겐야가 온에 가게된 이유, 겐야와 사라진 누나의 관계, 누나가 사라졌던 이유, 도바 무네키의 정체, 겐야에게 씌였던 바람와이와이의 정체등등.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몇몇 사실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초반부 진행되던 겐야쪽의 이야기에 비해 아카네쪽 이야기는 밀도가 조밀하지 못하고, 양자의 접점이 너무 거칠며 갑작스럽다.

<천둥의 계절>, 쓰네카와 고타로의 환상적인 작품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몇몇 부분 아쉬운 점도 있다. 하지만 장편이 처음이란 것을 감안하자. 그의 무한한 상상력 앞에서 저런 아쉬움은 뒤로 할 수 있다. <야시>에 감탄했던 독자라면, 분명 이 작품도 좋아할 것이다. 
 

* 바람와이와이와 겐야의 관계를 보며, 어릴때 봤던 외화가 떠올랐다. SBS에서 했던 [타임트랙스]. 음모에 맞서기 위해 미래에서 온 주인공은 최첨단 인공지능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 신용카드에 내장되어 있는 이 인공지능 컴퓨터의 이름은 '셀마'. '셀마'는 알라딘램프 요정처럼 주인공이 부르면 나타나 주인공을 도왔다. 바람와이와이와 겐야의 만남이 타율적이었단 점만 제외하면 상당히 유사한 관계다. 저 외화를 아는 분이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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