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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구텐베르크의 조선>을 읽으며 확신했다. 역사소설에 있어 오세영 작가님을 따라갈 작가는 없다는 것, 근래 주목받는 역사팩션의 개척자는 오세영 작가님이란 것. 오세영 작가님 하면 슈퍼 베스트셀러 <베니스의 개성상인>아닌가? 이미 우리는 뛰어난 역사팩션을 접해왔던 것이다. 그간 잊고 있었다.
쿠자누스 신부의 소개장을 들고 마인츠의 구텐베르크를 찾는 석주원과 이레네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장영실의 수제자인 야금장 석주원과 사마르칸트 출신 미모의 여인 이레네. 이들은 어떻게 동행하게 된걸까? 석주원은 왜 머나먼 이역 땅에 와 있는걸까? 미모의 여인 이레네의 비밀은? 이처럼 저자는 동서양의 극적인 만남을 초반부에 배치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시선을 집중시킨다. 저자의 노련한 구성력이 시작부터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후는 석주원이 회상하는 형식(…하는 생각이 들자 석주원의 기억은 멀리 떨어진 조선의 경복궁 주자소로 날아갔다. p.28)으로 파란만장했던 여정이 펼쳐진다. 석주원의 스승, 장영실은 어가를 부실하게 만들었다는 불경혐의를 뒤집어 쓰고 행적이 묘연한 상태다. 주자소는 중심을 잃고 표류하고 석주원은 어린 나이에 주자소 야장이 된다. 한편, 훈민정은 반포에 반대하는 최만리등 유학자들은 주자소를 장악하려는 음모(p.44)를 꾸미는데…
<구텐베르크의 조선>이 흥미진진한 이유중 하나는 속도감 있는 이야기전개이다. 미스터리했던 장영실의 행방(p.53), 석주원이 명나라로 가게 되는 과정(p.57), 명나라의 권력투쟁에 휘말린 두 사람(p.107이하), 티무르 제국으로 향하는 석주원(p.122), 로마 교황청으로 향하는 석주원(p.166)등등 굵직굵직한 중심사건이 아주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한순간도 시선을 팔 수 없었고 완벽하게 이야기속으로 몰입했다. 이런 방대한 스케일의 작품은 자칫 잘못하면 늘어질 수 있는데, 저자는 능수능란한 전개로 이야기의 중심을 꽉 잡고 있다. 역시 역사소설의 대가답다.
다른 하나는 생생한 등장인물 형상화이다. 저자는 장영실, 성삼문, 최만리, 구텐베르크등 실존인물을 개성 넘치는 인물로 재창조한다. 특히 성실하고 장인정신 넘치는 장영실의 모습은 주목할 만하다. 어가를 부서뜨렸다는 혐의로 벌을 받은 역사적 사실을 세종과 그의 자작극(?)으로 재해석한 부분, 나아가 그가 세종의 특명을 받고 훈민정음의 위한 활자제조를 위해 중국으로 밀입국하는 설정등은 대단히 놀랍다. 구텐베르크를 열정적이지만, 다소 거친 인물로 묘사한 것도 인상적이다. 또한, 핵심인물인 석주원, 이레네 같은 가상인물을 적절하게 창조해 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여정을 함께하는 석주원과 이레네의 은근한 애정모드(^^)와 결국 이뤄지는 사랑, 장영실의 제자로 세종의 밀명을 받는 석주원의 열정등, 정말 대단하다.
저자는 꼼꼼하게 관련 사료를 분석하고 정리한 것 같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과정, 특히 해탄 관련 내용, 구텐베르크와 얽힌 세계사적 내용등은 역사소설의 대가 오세영 작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조선>은 <베니스의 개성상인>의 뒤를 잊는 또하나의 신화다. 금속활자를 중심으로 조선과 유럽을 넘나드는 장대한 스케일, 한순간도 눈을 돌릴 수 없는 흥미진진함, 정말 멋진 작품이다. 역사를 바탕으로 한 대작을 꾸준하게 선보여 주시는 오세영 작가님께 진심어린 경의를 표한다. 고구려나 발해 같은 민족자존심이 걸린 소재도 많이 다뤄 주시길. <구텐베르크의 조선>,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