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탑
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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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문단을 위해 많은 시간 고민했다. 쓰고, 지우고, 고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표현하고 싶던 것은 '전아리란 이름을 처음 어떻게 알게 됐고, 읽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전아리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였다. 결국 다 지워 버렸다. 애당초 불가능하고 쓸데없는 짓이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대단한지는 남의 말보다 직접 읽고 판단하는게 나으니까.

<시계탑>은 성장소설이다. 당찬 소녀 '최연'이 11세부터 19세까지 보고, 느끼고, 겪게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무척 재미있다. 잘 읽히는데다 순식간에 이야기속으로 녹아든다. 근래 읽은 국내소설중 이런 작품은 없었다.

저자는 생생한 등장인물 형상화에 성공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해, '차별화 된 생동감'을 창조한다. 밝고 당차지만 도벽이 있는 연이, 어리숙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가끔 개짓는 흉내를 내는 정육집 아들 병욱, 너무 일찍 이성에 눈을 떠버런 3층소녀 소영, 화장 1cm 미장원언니 희정등등, 공감할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들이다.

연이가 처한 상황(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가출, 가난)은 암울하고 답답하지만, 이야기는 밝고 생기넘친다. 연이부터 좌절하고 슬퍼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같은 반 반장네 생일파티에 가서 고급시계를 훔치고(p.15), 훔친 물건을 능청스럽게 팔아치운다. 심지어 희정언니가 신었던 스타킹을 비싼 값에 팔기도(p.26) 한다. 또한 기발하고 톡톡튀는 표현이 이어지는 것도 밝은 분위기를 가능케한 원동력이다. 몇 부분을 보자. '오지랖 넓게 굴지 말고, 집 안에 큼직한 바늘이 있다면 학생 입부터 꿰매고 오세요."(p.60)라던가, '볼펜 잉크 속에는 똥파리라도 한 마리 헤엄치고 있는지, 쓸 때마다 잉크 똥이 쉴새없이 나왔다.'(p.78) '미지근한 녹차는 녹차 이파리가 잠깐 반신욕을 하다가 나간 물처럼 싱겁다.'(p.129)등등.

<시계탑>처럼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에 뭐가 아쉬운게 있으랴만, 두가지 점이 약간 아쉬웠다. 99점인 작품의 부족한 1점이라고나 할까? 배부른 투정쯤으로 봐주시길. 초반 배가 아파 병원에 간 연이에게 의사는 까마귀가 살고 있다(p.17)고 한다. 이는 단순한 농담차원을 넘어 어떤 상징성을 가진다. (표지 그림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연이가 품은 까마귀와 그 상징성은 더 이상 부각되지 않는다. 까마귀의 상징성을 좀 더 구체화했으면 어땠을까? 또한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간 연이의 어머니. 그녀 역시 중반 이후 전혀 등장하지 않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소식을 알린다. 어머니와 연이의 관계등 좀 더 심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시계탑>, 오랜만에 보는 멋진 국내소설이다. 연이, 병욱, 소영이 펼쳐가는 우정과 감동의 스토리는 정말 아름답다. 거기다 재미까지. 86년생 어린 작가의 작품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이렇게 완벽한데. 전아리 작가는 한국문학을 이끌 보석같은 존재다. <시계탑>을 읽는다면 왜 그녀가 문학천재로 불리는지, 왜 청소년문학상을 석권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꼭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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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16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지 않을수 없게 만드는 리뷰예요... 저도 꼭 천재의 매력을 경험해보고 싶군요.

쥬베이 2008-06-16 18:16   좋아요 0 | URL
전아리 작가 정말 최고에요^^ 분량도 적절하고 아주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