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저편에서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7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그네 저편에서>는 지금까지 읽은 플라시보 시리즈 17권까지에서 가장 특이하고 이질적인 작품이다. 일단 시점이 다르다. 이제껏 봐오던 3인칭이 아니라, "~했어, ~하더라"하는 1인칭이다. 또한, 형식면에서 '연작'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히 충격적이다. 새벽에 편안하게 읽다 놀라서 '제대로 읽고 있나'하고 계속 돌아봤다. 아무튼 호시 신이치를 처음 접한다면, 이 작품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일반적인 작품이 아니므로.

목차는 쇼트-쇼트 작품집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연작'임을 알고 더욱 놀랐는지 모른다. 총 14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어느 날]부터 [그리고]까지가 연작이다. 마지막 4편은 일반적인 쇼트-쇼트.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플라시보 시리즈의 수록작품이 일본 원서와 같은가' 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형식의 연작 10편과 일반적인 쇼트-쇼트 4편이 나란히 묶여 있는 건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원서는 연작 10편만으로 구성되어 있는게 아닐까?

연작의 주제는 한마디로 '꿈의 나라 모험기'이다. 한 소년이 우연히 '꿈의 나라'로 가게 되고 엄청난 모험을 하는 이야기. 시작인 [어느 날]은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발견하고 '꿈의 나라'로 휘말려 버리는 발단이다. 이야기는 이어져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들판으로 공간이동한 소년은 할아버지를 만나고([할아버지]), 동화의 세계에서 '피로 왕자'를 만나 우정을 쌓고([성의 왕자]), 자신을 마리오라 부르는 정체불명의 여자와 맞닥뜨리기도 한다.([쓸쓸한 거리]). [황제만세]에서는 처형 위기까지 몰리는 소년, 과연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호시 신이치의 장편이 보고 싶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어느 정도 한풀이 했다. 하지만 또 독특한게, 연작이긴 하지만 에피소드 별로 이야기가 나뉘어 있어 쇼트-쇼트로도 읽을 수 있다는 거다. 복잡하지 않은가? 대단히 미묘한 작품이다.

<그네 저편에서>를 재미있게 읽으려면, 1인칭 시점에 적응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호시 신이치가 어떤 의도로 1인칭 연작을 탄생시켰는지 궁금하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는 없고, <안전카드>에 시점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 이를 인용한다. "이 책(안전카드)을 문고판으로 만드느라 다시 읽다가, 1인칭 작품이 몇 개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가능한 한 3인칭으로 쓰려고 한다. 번역 출간된 외국 단편집을 많이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하지만 왜 이 시기에 이렇게 할 생각을 많이 했을까? 이 역시 오로지 신만이 알 일이다." <그네 저편에서>에 왜 1인칭 연작이 있는지도 아마 마찬가지겠지.

 

* 호시 신이치와 관련된 생생한 일화를 여럿 소개하고 있는 '마유무라 타쿠'의 해설은 인상적이다. 몇몇 일화를 소개할까 했는데 하지 않겠다. 대신 마유무라 타쿠가 실어 둔 '호시 어록'의 하나를 소개하겠다. "SF작가는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쓰기 때문에 상식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오산이다. 항상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쓰기 위해서는 상식이란 어떤 것인지 상식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SF작가는 진정한 의미의 상식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줌의 미래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6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일본작가 몇 명의 인터뷰를 봤다. '어린 시절 즐겨 읽던 책'내지 '좋아하던 작가'란 항목이 공통으로 있었는데, 전부 호시 신이치의 이름이 있었다. 그 유명한 작가들이 코흘리개 시절에 호시 신이치를 읽으며 자랐구나 생각하니, 새삼 호시 신이치의 명성이랄까, 문학계에서의 위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 같은 존재 아닌가? 한마디로 요즘 작가들과 호시 신이치는 레벨이 다른 존재인 것이다.

'한 줌의 미래'란 제목을 보고 짐작은 했겠지만,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적인 작품이 많다. 인상적인 작품은 [폭발](p.90), [장거리 통근시대](p.85), [감사의 나날](p.136)이다. [폭발]은 폭발적인 인구증가 때문에 좁디좁은 공간에 살게 된 미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단추를 누르면 벽에서 나온 판이 방을 상하로 나누는 것'(p.92)처럼 효율적으로 공간이 활용되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다. 묘사되는 미래의 삶은 이상하게 '현실적'이다. 머지않아 현실화 될 것만 같은 느낌. 마지막에 인상적인 반전도 있다. [장거리 통근시대]와 [감사의 나날]은 비슷한 느낌이다. 미래의 통근모습과 자동조정되는 차량을 소재로 하는데, 상상의 이야기임에도 역시 오싹한 현실감이 있다.

[탑](p.24) 비무장지대를 맞대고 있는 두 나라의 이야기인데, 자연히 우리의 현실이 떠올랐다. 비무장지대에 탑 형태의 정체불명 건축물이 들어서자, 두 나라는 서로를 의심한다. 결국 전쟁이 벌어져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국제사회는 중재에 나선다. 정체불명의 탑은 무엇인가? 탑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에 주목하시길.

[기다리세요](p.41)와 [제1부 제1과장](p.110)은 주제의식이 유사하다. [기다리세요]. '미지의 행성을 찾아 탐험하고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주민이 있으면 교류'하는 임무의 우주탐험대, 문명을 가진 별을 찾는다. 교류를 위해 우호의 뜻을 전하지만, 그 별의 생명체는 '기다려 달라'고 한다. 배경은 우주지만 복잡하고 느린 관료집단에 대한 비판의식이 숨어있다. [제1부 제1과장]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관청을 찾은 남자의 이야기로, 직설적으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두 작품을 비교해 가며 읽는 것도 좋은 듯.

호시 신이치의 선지자적 혜안에 다시금 감탄한 작품이 있다. 바로 [번호를 불러주세요](p.163). 휴가를 이용, 홀로 산 속 호수를 찾은 남자. 보트를 타다 그만 호수에 빠져 버린다. 겨우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옷이 물에 젖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용카드 같은 것이 모두 빠져 버렸다. 자동화된 시스탬에 익숙해져서 카드번호, 통장번호 같은 걸 기억하지 않던 남자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남자가 처한 곤란한 상황은 상당히 흥미진진함.) 결국 남자는 한가지 해결책을 생각해 낸다. 뭘까?^^ 이건 오늘날 우리의 모습 아닌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다. 로봇과 인간의 사랑, 일본인의 놀라운 경제관념을 보여주는 [사랑의 작용](p.59), 도둑 3명의 갈등상황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풍자적으로 다룬 [성숙](p.65), 직설적인 사회풍자극 [우리 아이만은](p.100)등. [이상한 귀신](p.141)과 [불쌍한 증상](p.173)은 그냥(^^) 재미있었다.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은신처](p.127)와 [범죄무대](p.186)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흥미진진함이 절묘하게 어울린 좋은 작품. [은신처] 항상 감시당하는 느낌이 든다며 의사를 찾은 청년, 의사는 그가 범죄를 저질렀단 걸 간파한다. 자수를 권하지만, 청년은 거부하고, 도리어 구해달라고 매달린다. 의사는 은신처 비슷한 어떤 곳은 소개해 준다. 엄청난 반전이 있다. [범죄무대]는 방송 촬영을 가장한 은행강도의 이야기로 재미있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프리카 2 - 최후의 결전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파프리카> 1권 '사라진 DC 미니'를 읽으며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결말이다. 흥미롭게 잘 진행되던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후속편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보통 후속편이 있다면, 끝부분에 '2권에 계속'이라던가 책날개에 '근간 <파프리카> 2권'하는 식으로 소개하는 것이 보통인데,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미리 소개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지 않나. 오해의 소지도 줄이고 말이지. 후속편의 존재를 모른 상태에서 저런 결말을 내가 어떻게 평했는지 인용해 보겠다.

'흥미진진하고, 놀랍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결말에 가서 무너져 버린다. 저자는 갑자기 허둥지둥대며 엉성하게 끝내버린다. 어이가 없다.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분량문제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 대충 수습하고 끝내버렸다는 것이다. (초중반 저자가 깔아둔 이야기를 제대로 끝마치려면 한 권 분량으로는 도저히 어려운 게 사실) 아니면, 쓰다가 그냥 지쳐서 관뒀거나, 건강이나 외부적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대충 끝마쳤을지도 모르고. 이건 아닌 거 같지만, 후속편을 염두에 두고 그랬을지도.'

아무튼, 후속편은 존재했고 난 행복하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최고 걸작, <파프리카>의 묘미를 제대로 느꼈기에. <파프리카> 2권 '최후의 결전'의 스케일과 재미는 1권의 10배 이상이라고 단언한다. 당연하다. 1권이 등장인물 간 역학관계를 정리하고, DC미니와 파프리카를 소개하는데 중점이 있는 반면, 2권부터는 본격적인 권력암투, 선과 악의 흥미진진한 대결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파프리카>는 1권과 2권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런걸 1권이 끝인 줄 알고 투덜투덜 댔으니…

'이누이 세이지로' 부이사장과 오사나이 일파는 음모가 본격적으로 부각된다. 시마 소장과 아쓰코등을 축출하고, 연구성과를 가로 채기 위해, 이들은 DC미니를 손에 넣어 시마 소장과 도키타를 발병(p.13참조)시키고, 아츠코를 고립무원의 처지로 만든다. 이들에 맞서 고분분투하는 아츠코. 다행히 파프리카에게 치료받던 회사중역 '노세 류오', 경찰 간부 '고나카와 도시미'가 여러모로 아츠코를 돕는다. 이후는 DC미니 확보를 위해 꿈속을 넘나드는 파프리카와 오사나이 일파의 대격돌이다.

거대한 일본인형이 등장(p.123)하고, 히무로의 꿈이 현실을 침범하는 이후부터는 가히 충격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인간의 상상력과 묘사력을 뛰어넘는다. 음모의 음모, 꿈과 현실, 현실과 꿈을 거듭하는 현란한 전개에 넋이 나갈 정도이다. 이런 작품은 처음이다. 요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저걸 어떻게 정리한단 말인가? 아무튼 이누이일파와의 갈등구조는 꿈속에서 온갖 괴물이 현실로 튀어나오는 부분에서 절정에 달한다. 파프리카는 과연 이들의 음모를 막을 수 있을까? <파프리카>는 단순한 소설차원을 넘는, 우리 세기의 뛰어난 보물이다. <파프리카>가 고전의 지위를 차지함에는 오로지 시간의 경과만이 문제될 뿐이다. 츠츠이 야스타카는 정말 위대한 작가였다. 마냥 감탄할 따름이다. 

 

* 1권을 읽고, 2권을 접하기 전에 <파프리카> 애니메이션을 봤다. 소설 속 장면이 애니메이션과 오버랩 되면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애니메이션도 원작에 누가 되지 않는 수준. (소설 뒷부분에 등장하는 파괴의 마신 '아스모테'p.193나 노벨상 수상과 관련된 부분은 애니메이션엔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azydevil 2008-08-3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읽어보려 했던 작품입니다. 저도 쥬베이님처럼 '1권->애니->2권' 순으로 볼려구요.^^

쥬베이 2008-08-31 20:24   좋아요 0 | URL
ㅋㅋㅋ이거 애니도 재밌고, 소설도 좋아요^^
꼭 읽어 보세요! 강추!^^
 
지구씨 안녕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5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많다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1961년, 세계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이 우주여행을 한 것을 즈음해 '주간 아사히'에서 우주를 특집으로 다루었고, 여기에 호시 신이치의 작품이 <지구씨 안녕>이란 타이틀로 실린 것(저자 후기 참조)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었기에 자연히 범우주적인 이야기가 많아진 것. 호시 신이치는 '지구씨 안녕'이란 제목에 대해서도 코멘트한다. '처음에는 <어서 오세요, 우주입니다>라는 제목을 붙였었는데 편집부에서 목차에 우주라는 단어가 너무 많아 곤란하다고 했다. 그래서 의논 끝에 <지구씨 안녕>이라는 제목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더 산뜻한 제목이 되었다.'(저자 후기)

또한 후기엔 [탐험대](p.215)에 대한 코멘트도 있다. 독자는 별 생각 없이 읽을지 몰라도 작품 하나하나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숨겨진 탄생 비화라고 해야 하나. 신기한 건, 호시 신이치가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 알고 읽었음에도, 명쾌하게 '그렇구나'하며 납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호시 신이치의 작법이 얼마나 심오한지 보여준다. 그는 '일본 남극탐험대와 사할린견 사건'(자세한 건 저자 후기를 참조하시길)을 접하고, 역으로 팽귄의 입장이 되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탐험대]를 썼다고 한다.(저자 후기 참조) 하지만 막상 저 작품을 읽으면 팽귄은 등장하지 않는다. 배경이 우주로 전화되었고, 등장인물도 은유적으로 바뀌었다. 전혀 감 잡을 수 없다. 만약 저자의 코멘트를 몰랐다면 이 작품이 어떤 이유로 쓰였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다. 호시 신이치는 말한다. '당시에는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이런 설명을 곁들이지 않으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시대 유행과 밀접한 소재는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저자 후기)라고.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꼽아보자. [우주통신](p.32), [무릉도원](p.37), [불만](p.81), [너무나 멋진 혹성](p.97),[우주에서 온 손님](p.123), [대기](p.129), [안개별에서](p.165), [우호사절](p.185), [최고의 작전](p.219)등. 대부분의 작품은 일정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불만]은 '누군가'에게 학대당하다 외계인에게 구출된 '다른 누군가' 대한 이야기인데, 서술트릭이 사용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안개별에서]는 다소 통속적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젊고 아름다운 스튜어디스와 단둘이 외딴 혹성에 불시착한 남자의 이야기.

[대기]는 자원확보를 위해 우주탐사를 하는 탐사대의 이야기이다.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작품이 품고 있는 메시지만 따진다면 이 작품을 능가할 다른 작품은 없다. 탐사대는 어떤 별을 발견하고 자원확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러자 그 별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이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옮겨 보겠다. "우리는 어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참 신기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다시 온 겁니다." / "도대체 어떤 점이 신기하다는 겁니까?" / "자신의 별을 위해서 다른 별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지고 나가려는 점이요."(p.136)

충격이다. 저 탐사대의 사고방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열강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식민지확보에 혈안이었던 그들의 모습. 어떤 말을 하는지 더 들어보자. "당신네는 철학을 좋아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우리는 생활을 더욱더 향상시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과 식민지가 필요하고, 지구는 그렇게 발전해 왔습니다."(p.137) 굉장히 위험한 말이다. 지금까지 플라시보 시리즈를 읽으며, SF적인 작품에서 드러나는 호시 신이치의 사상을 충분히 살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가 '다른 별 사람들'의 입장 역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발견한 게 도리어 안도가 되기도 한다. 이는 대단히 민감한 부분이기에 각자 냉철하게 생각해 보시길.

[너무나 멋진 혹성] 갑자기 사라진 우주선의 실종원인을 밝히고자 지구를 출발한 대원들. 그들은 미지의 별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레 조사작업에 착수한다. 하나씩 밝혀지는 별의 비밀, 그리고 실종자들의 행방, 과연 이들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반전도 인상적인 재미있는 작품. [섹스트라](p.105)라는 독특한 제목의 작품이 있는데, 구성 역시 독특하다. 기사, 편지, 사설, 평론, 관광안내서등이 총동원되어 이야기를 끌어가는 파격적인 구성.

<지구씨 안녕>은 뒤에 실린 '저자 후기'와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이다. 호시 신이치와 플라시보 시리즈에 대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간 느낌. SF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뭐니뭐니해도 호시 신이치하면 SF 아닌가? 어서 오세요, 우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
김이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일단 놀랐다. 국내작가의 환상문학이 단편집으로 묶여 나올 정도가 되었다는 것, 유수의 출판사에서 출간했다는 것에. 우리의 환상문학도 알게 모르게 발전하고 있던 것이다. 척박한 현실을 돌아보면,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의 작가와 출판사가 얼마나 대단한 도전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들의 발걸음은 언젠가 제대로 평가 받을 날이 올 것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작품성이 고르지는 않다. 감탄하며 읽은 것도 있고, 읽기 민망할 정도의 작품도 있었다. 가장 앞에 실린 [미소녀 대통령]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작품이다. 문근영 대통령, 다코다 패닝 경호원을 등장시킨 용기는 가상하지만, 평행우주개념 같은 설정과 스토리 전개가 진부하다. 또한 착취당하는 소녀, 착취하는 어른이란 대립구조를 통해 사회비판의식을 드러낸 부분도 투박한 서술때문에 우습게 되어 버렸다. 마지막 부분(p.26이하)에서 지나치게 많은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도 거슬렸다.

[크레바스 보험사]와 [마산 앞바다]도 별로였다. [크레바스 보험사]의 문제는 거친 문장이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무감각했던 영현은 그런 사건 속에서 찰나의 죽음을 선사하는 위험 요소가 세상에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지 몸서리치도록 명확하게 깨달았다.'(p.38) 어떤 의미로 썼는지는 알겠지만, 답답하고 늘어진다. 전체 문장이 그렇다. '원래 스타일이 그렇거든?'이라고 한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작가 10명의 문체를 한번에 접하기 때문에 쉽게 비교된다. [마산 앞바다]의 경우 느낌은 괜찮지만 이야기가 어수선하고 임팩트도 약하다.

[문신] 미야베 미유키의 <브레이브 스토리>, <이코 안개의 성>, 쓰네카와 고타로의 <야시>와 비슷한 느낌이다. 환상적인 분위기도 잘 살렸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결말은 조금 아쉽다. 밋밋하다고나 할까. [월리엄 준 씨의 보고서]는 괜찮았다. 세계 아동문학의 거장 '머랫W.E.프라이러리'의 갑작스런 죽음과 담당 편집자 월리엄의 모험(?)이 축인데, 플롯이 살아있고 흥미진진하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반전이다. 너무나 통속적이고 뻔한 반전이라 차라리 없는게 나았다.

[할머니 나무]와 [몽중몽]에 대해선 코멘트 하지 않겠다. 기억에 남는게 없다.

[서로 가다], [초록연필], [콘도르 날개] 이 세 작품은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의 최고 명작이다. 짧은 분량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서로 가다]의 배경은 쿠빌라이 칸이 몽골대제국을 건설하던 시기이다. 서쪽에 있다던 어머니의 고향과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그리며,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일대기가 핵심이다. 역사물의 묘미와 종교적 향취까지 만끽할 수 있는 멋진 작품.

[초록연필] 세계적으로 희귀한 명품연필 'LAPIZ VERDE'(초록연필)을 둘러싸고 직장동료 양홍과 은경이 벌어는 에피소드, 'LAPIZ VERDE'를 만든 루까스 베르데의 일대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이질적인 두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조화되는데다, 루까스 베르데의 삶이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읽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하지만 양홍과 은경의 플러스펜 100개 실험(p.210)은 옥의 티다. 안에다 칩을 심고 이동상황을 모니터링한다니…평범한 직장인이 저런 게 가능할 거 같은가? 황당한 군더더기.

[콘도르 날개] 기대하지 않고 읽다 놀란 작품이다. 평범한 직장인인 주인공은 심야 케이블TV에서 <콘도르 눈동자와 예언대소동>란 제목의 3류 영화를 본다. 이후 그의 삶은 저 영화의 장면과 묘하게 엉키며 뒤죽박죽이 된다. 도대체 남자에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저 이상한 제목의 영화는 뭐란 말인가? 읽어 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