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저편에서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7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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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네 저편에서>는 지금까지 읽은 플라시보 시리즈 17권까지에서 가장 특이하고 이질적인 작품이다. 일단 시점이 다르다. 이제껏 봐오던 3인칭이 아니라, "~했어, ~하더라"하는 1인칭이다. 또한, 형식면에서 '연작'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히 충격적이다. 새벽에 편안하게 읽다 놀라서 '제대로 읽고 있나'하고 계속 돌아봤다. 아무튼 호시 신이치를 처음 접한다면, 이 작품은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일반적인 작품이 아니므로.

목차는 쇼트-쇼트 작품집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연작'임을 알고 더욱 놀랐는지 모른다. 총 14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어느 날]부터 [그리고]까지가 연작이다. 마지막 4편은 일반적인 쇼트-쇼트.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플라시보 시리즈의 수록작품이 일본 원서와 같은가' 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형식의 연작 10편과 일반적인 쇼트-쇼트 4편이 나란히 묶여 있는 건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원서는 연작 10편만으로 구성되어 있는게 아닐까?

연작의 주제는 한마디로 '꿈의 나라 모험기'이다. 한 소년이 우연히 '꿈의 나라'로 가게 되고 엄청난 모험을 하는 이야기. 시작인 [어느 날]은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발견하고 '꿈의 나라'로 휘말려 버리는 발단이다. 이야기는 이어져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들판으로 공간이동한 소년은 할아버지를 만나고([할아버지]), 동화의 세계에서 '피로 왕자'를 만나 우정을 쌓고([성의 왕자]), 자신을 마리오라 부르는 정체불명의 여자와 맞닥뜨리기도 한다.([쓸쓸한 거리]). [황제만세]에서는 처형 위기까지 몰리는 소년, 과연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호시 신이치의 장편이 보고 싶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어느 정도 한풀이 했다. 하지만 또 독특한게, 연작이긴 하지만 에피소드 별로 이야기가 나뉘어 있어 쇼트-쇼트로도 읽을 수 있다는 거다. 복잡하지 않은가? 대단히 미묘한 작품이다.

<그네 저편에서>를 재미있게 읽으려면, 1인칭 시점에 적응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호시 신이치가 어떤 의도로 1인칭 연작을 탄생시켰는지 궁금하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는 없고, <안전카드>에 시점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 이를 인용한다. "이 책(안전카드)을 문고판으로 만드느라 다시 읽다가, 1인칭 작품이 몇 개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가능한 한 3인칭으로 쓰려고 한다. 번역 출간된 외국 단편집을 많이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하지만 왜 이 시기에 이렇게 할 생각을 많이 했을까? 이 역시 오로지 신만이 알 일이다." <그네 저편에서>에 왜 1인칭 연작이 있는지도 아마 마찬가지겠지.

 

* 호시 신이치와 관련된 생생한 일화를 여럿 소개하고 있는 '마유무라 타쿠'의 해설은 인상적이다. 몇몇 일화를 소개할까 했는데 하지 않겠다. 대신 마유무라 타쿠가 실어 둔 '호시 어록'의 하나를 소개하겠다. "SF작가는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쓰기 때문에 상식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오산이다. 항상 상식을 뛰어넘는 일을 쓰기 위해서는 상식이란 어떤 것인지 상식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SF작가는 진정한 의미의 상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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