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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미래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6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일본작가 몇 명의 인터뷰를 봤다. '어린 시절 즐겨 읽던 책'내지 '좋아하던 작가'란 항목이 공통으로 있었는데, 전부 호시 신이치의 이름이 있었다. 그 유명한 작가들이 코흘리개 시절에 호시 신이치를 읽으며 자랐구나 생각하니, 새삼 호시 신이치의 명성이랄까, 문학계에서의 위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 같은 존재 아닌가? 한마디로 요즘 작가들과 호시 신이치는 레벨이 다른 존재인 것이다.
'한 줌의 미래'란 제목을 보고 짐작은 했겠지만,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적인 작품이 많다. 인상적인 작품은 [폭발](p.90), [장거리 통근시대](p.85), [감사의 나날](p.136)이다. [폭발]은 폭발적인 인구증가 때문에 좁디좁은 공간에 살게 된 미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단추를 누르면 벽에서 나온 판이 방을 상하로 나누는 것'(p.92)처럼 효율적으로 공간이 활용되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다. 묘사되는 미래의 삶은 이상하게 '현실적'이다. 머지않아 현실화 될 것만 같은 느낌. 마지막에 인상적인 반전도 있다. [장거리 통근시대]와 [감사의 나날]은 비슷한 느낌이다. 미래의 통근모습과 자동조정되는 차량을 소재로 하는데, 상상의 이야기임에도 역시 오싹한 현실감이 있다.
[탑](p.24) 비무장지대를 맞대고 있는 두 나라의 이야기인데, 자연히 우리의 현실이 떠올랐다. 비무장지대에 탑 형태의 정체불명 건축물이 들어서자, 두 나라는 서로를 의심한다. 결국 전쟁이 벌어져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국제사회는 중재에 나선다. 정체불명의 탑은 무엇인가? 탑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에 주목하시길.
[기다리세요](p.41)와 [제1부 제1과장](p.110)은 주제의식이 유사하다. [기다리세요]. '미지의 행성을 찾아 탐험하고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주민이 있으면 교류'하는 임무의 우주탐험대, 문명을 가진 별을 찾는다. 교류를 위해 우호의 뜻을 전하지만, 그 별의 생명체는 '기다려 달라'고 한다. 배경은 우주지만 복잡하고 느린 관료집단에 대한 비판의식이 숨어있다. [제1부 제1과장]은 사업을 시작하려고 관청을 찾은 남자의 이야기로, 직설적으로 비판의식을 드러낸다. 두 작품을 비교해 가며 읽는 것도 좋은 듯.
호시 신이치의 선지자적 혜안에 다시금 감탄한 작품이 있다. 바로 [번호를 불러주세요](p.163). 휴가를 이용, 홀로 산 속 호수를 찾은 남자. 보트를 타다 그만 호수에 빠져 버린다. 겨우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옷이 물에 젖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용카드 같은 것이 모두 빠져 버렸다. 자동화된 시스탬에 익숙해져서 카드번호, 통장번호 같은 걸 기억하지 않던 남자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남자가 처한 곤란한 상황은 상당히 흥미진진함.) 결국 남자는 한가지 해결책을 생각해 낸다. 뭘까?^^ 이건 오늘날 우리의 모습 아닌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듯.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너무 많다. 로봇과 인간의 사랑, 일본인의 놀라운 경제관념을 보여주는 [사랑의 작용](p.59), 도둑 3명의 갈등상황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풍자적으로 다룬 [성숙](p.65), 직설적인 사회풍자극 [우리 아이만은](p.100)등. [이상한 귀신](p.141)과 [불쌍한 증상](p.173)은 그냥(^^) 재미있었다.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은신처](p.127)와 [범죄무대](p.186)이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흥미진진함이 절묘하게 어울린 좋은 작품. [은신처] 항상 감시당하는 느낌이 든다며 의사를 찾은 청년, 의사는 그가 범죄를 저질렀단 걸 간파한다. 자수를 권하지만, 청년은 거부하고, 도리어 구해달라고 매달린다. 의사는 은신처 비슷한 어떤 곳은 소개해 준다. 엄청난 반전이 있다. [범죄무대]는 방송 촬영을 가장한 은행강도의 이야기로 재미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