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씨 안녕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5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많다 했는데, 이유가 있었다. 1961년, 세계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이 우주여행을 한 것을 즈음해 '주간 아사히'에서 우주를 특집으로 다루었고, 여기에 호시 신이치의 작품이 <지구씨 안녕>이란 타이틀로 실린 것(저자 후기 참조)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었기에 자연히 범우주적인 이야기가 많아진 것. 호시 신이치는 '지구씨 안녕'이란 제목에 대해서도 코멘트한다. '처음에는 <어서 오세요, 우주입니다>라는 제목을 붙였었는데 편집부에서 목차에 우주라는 단어가 너무 많아 곤란하다고 했다. 그래서 의논 끝에 <지구씨 안녕>이라는 제목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더 산뜻한 제목이 되었다.'(저자 후기)

또한 후기엔 [탐험대](p.215)에 대한 코멘트도 있다. 독자는 별 생각 없이 읽을지 몰라도 작품 하나하나엔 깊은 사연이 있었다. 숨겨진 탄생 비화라고 해야 하나. 신기한 건, 호시 신이치가 어떤 생각으로 썼는지 알고 읽었음에도, 명쾌하게 '그렇구나'하며 납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건 호시 신이치의 작법이 얼마나 심오한지 보여준다. 그는 '일본 남극탐험대와 사할린견 사건'(자세한 건 저자 후기를 참조하시길)을 접하고, 역으로 팽귄의 입장이 되어보자 하는 생각으로 [탐험대]를 썼다고 한다.(저자 후기 참조) 하지만 막상 저 작품을 읽으면 팽귄은 등장하지 않는다. 배경이 우주로 전화되었고, 등장인물도 은유적으로 바뀌었다. 전혀 감 잡을 수 없다. 만약 저자의 코멘트를 몰랐다면 이 작품이 어떤 이유로 쓰였는지 전혀 알 도리가 없다. 호시 신이치는 말한다. '당시에는 읽으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이런 설명을 곁들이지 않으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시대 유행과 밀접한 소재는 이처럼 덧없는 것이다.'(저자 후기)라고.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꼽아보자. [우주통신](p.32), [무릉도원](p.37), [불만](p.81), [너무나 멋진 혹성](p.97),[우주에서 온 손님](p.123), [대기](p.129), [안개별에서](p.165), [우호사절](p.185), [최고의 작전](p.219)등. 대부분의 작품은 일정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불만]은 '누군가'에게 학대당하다 외계인에게 구출된 '다른 누군가' 대한 이야기인데, 서술트릭이 사용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안개별에서]는 다소 통속적이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젊고 아름다운 스튜어디스와 단둘이 외딴 혹성에 불시착한 남자의 이야기.

[대기]는 자원확보를 위해 우주탐사를 하는 탐사대의 이야기이다.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작품이 품고 있는 메시지만 따진다면 이 작품을 능가할 다른 작품은 없다. 탐사대는 어떤 별을 발견하고 자원확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러자 그 별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이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옮겨 보겠다. "우리는 어제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참 신기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다시 온 겁니다." / "도대체 어떤 점이 신기하다는 겁니까?" / "자신의 별을 위해서 다른 별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지고 나가려는 점이요."(p.136)

충격이다. 저 탐사대의 사고방식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열강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식민지확보에 혈안이었던 그들의 모습. 어떤 말을 하는지 더 들어보자. "당신네는 철학을 좋아하는 것 같군요. 하지만 우리는 생활을 더욱더 향상시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원과 식민지가 필요하고, 지구는 그렇게 발전해 왔습니다."(p.137) 굉장히 위험한 말이다. 지금까지 플라시보 시리즈를 읽으며, SF적인 작품에서 드러나는 호시 신이치의 사상을 충분히 살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다. 그가 '다른 별 사람들'의 입장 역시 생각하고 있다는 걸 발견한 게 도리어 안도가 되기도 한다. 이는 대단히 민감한 부분이기에 각자 냉철하게 생각해 보시길.

[너무나 멋진 혹성] 갑자기 사라진 우주선의 실종원인을 밝히고자 지구를 출발한 대원들. 그들은 미지의 별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레 조사작업에 착수한다. 하나씩 밝혀지는 별의 비밀, 그리고 실종자들의 행방, 과연 이들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반전도 인상적인 재미있는 작품. [섹스트라](p.105)라는 독특한 제목의 작품이 있는데, 구성 역시 독특하다. 기사, 편지, 사설, 평론, 관광안내서등이 총동원되어 이야기를 끌어가는 파격적인 구성.

<지구씨 안녕>은 뒤에 실린 '저자 후기'와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이다. 호시 신이치와 플라시보 시리즈에 대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간 느낌. SF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뭐니뭐니해도 호시 신이치하면 SF 아닌가? 어서 오세요, 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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