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 인간의 잔인한 본성에 관한 에피소드 172
기류 미사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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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심도있게 살펴보거나, 머리 아픈 얘기를 늘어놓는 게 목적이 아니다.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는 세계사 속, 기묘하고 잔혹한 에피소드를 맛깔스럽게 엮은 책이다. 대개 한 두페이지 정도의 짧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는 것보다는 짜투리 시간에 몇 꼭지씩 읽어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소개된 에피소드는 무려 172가지다. 자칫 산만할 수도 있지만, 소주제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제4장 '불가사의하게 살아간 사람들'에서는 '독, 죽음, 민간요법, 인육, 유행 등'의 소주제가 있고, 소주제별로 관련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 식이다.

'잔혹'이란 단어가 무색하지 않은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초반부터 이어진다. '처형'의 장엔 유방 도려내기, 온 몸의 구멍 꿰매 죽이기, 화형, 꼬챙이형 같은 끔찍한 형이 등장한다. 온 몸의 구멍을 꿰매 죽인다니, 정말 충격이다. 이야기는 13세기 몽골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력자의 비호아래 영향력을 행사하던 '파티마'란 무녀가 있었는데, 권력 변동기에 밀려나 사형에 처해진다. 사형집행인은 먼저 '양쪽 눈꺼풀과 입을 꿰매고, 양쪽 귀는 접어서 꿰맸다. 또한 항문과 질까지 꿰매 대소변도 볼 수 없게 만들었다.'(p.48참조) 결국 그 상태에서 죽임을 당하는 파티마. 잔혹하기로 따지만 꼬챙이형도 엄청나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드라큘라의 모델인 루마니아 백작 이야기라 따로 언급하진 않겠다.

잔혹함을 즐기며(?) 뜻밖의 세계사 지식까지 얻을 수 있다. 단두대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기요틴의 유래가 나온다.(p.70) 기요틴은 파리대학 해부학 교수이자 정치가인 '조제프 기요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칼이나 도끼로 참수했을 때, 한 번에 잘리지 않아서 사형수가 고통에 빠지는 것을 본 기요탱이 단두대의 사용을 제안했기 때문에. 또한 중세 유럽에 마녀사냥이 성행했던 이유(p.80)도 나온다. 진짜 이유는 마녀로 몰린 이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신성로마제국에서 마녀의 재산몰수를 금지하자 마녀적발이 급격히 감소한 것을 그 증거로 든다.

중간 중간 사진이나 그림이 실려 있다. 이는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제거하고 신뢰감을 높혀 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진 하나를 꼽겠다. 바로 '엘리스 리델'(p.240)의 사진. 사진 속 소녀는 꽃이 만발한 화단에서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다. 굉장히 예쁘지만 표정은 싸늘하다. 계속 보면 왠지 오싹하기까지 하다. 이 소녀를 위해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썼다. 저자는 루이스 캐럴을 둘러싼 의혹을 제기한다. 어떤 의혹일까? 정말 놀라웠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달리 보였음.

혹시 '피 튀는 끔찍한 이야기만 잔뜩 있는 거 아냐?'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진 않다. 이형(난쟁이나 몸이 두 개인 여자 등)여자를 좋아했다는 중국 현종 이야기(p.153), 종을 만드는 아버지를 위해 희생한 딸 이야기(p.155) 같이 기괴하거나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다소 황당하고 쓴웃음 짓게 하는 것도 있다. 처녀성을 확인하는 기상천외(?)한 방법(p.181)이 그것인데, 스폐인에선 결혼 다음 날 손님들에게 핏자국을 보여주며 "처녀였어요!"라고 외쳤다고 하니…참.

<사랑과 잔혹의 세계사>, 놀랍고 충격적이며 재미까지 있다. 한여름, 공포물에 열광하듯 잔혹함 뒤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나 할까. 기류 미사오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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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9-21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류 미사오는 이런 책 정말 주구장창 잘도 써내네요..^^;; 기류미사오 책중에 잔혹함이라던가 악녀에 대한 이야기 굉장히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겹치는 이야기도 많을듯;; 확실히 이런 주제의 책이 자극적이라 흥미도 자아내고 많이 팔리기도 하기 때문일지...
아무튼 저도 보고싶네요.^^ 아무리 봐도 이런 책들은 왜이리 재밌는지...=_=

근데 앨리스 리델 이야기가 여기 왜 들어있나요?ㅇ.,ㅇ 루이스 캐럴은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해서, 평생 아이들에게 책이나 읽어주면서 살고싶다고 했다던데, 확실히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롤리타 컴플렉스를 떠올리지 않을수 없지요.
정말 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확실히 뭔가(?) 있었는지는 본인만 알수 있겠지요.^^;
이전에 읽었던 기류 미사오 책들을 떠올려보면, 의혹만으로 억측하는 부분들도 좀 있었던것같애요. 하지만 이런 의혹들이 사실 자극적이라 재밌긴 하지요...^^음모론처럼...

쥬베이 2012-03-13 13: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잔혹동화>도 그렇고, <처형대 세계사>도 그렇고, 작가가 저런 얘기를 좋아한데요ㅎㅎㅎ

우와 역시 시즈님 예리하시다^^ 기류 미사오는 루이스 캐럴이 로리콘이라고 주장합니다ㅋㅋㅋ 내용을 보면 '정말 그런가보다'하게 되더라고요. 근데 시즈님 댓글을 보니, 반드시 진실이라곤 할 수 없겠네요. 아 앨리스 리델, 이쁘더라고요ㅋㅋㅋ 그냥 부담없이 읽기 좋은 책이었습니다^^

Apple 2008-09-22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쁘기도 하고, 애인데 참 묘하게 생기지 않았나요?^^; 애인데 어른처럼...
루이스 캐럴얘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해서 그런 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아이들 사진을 참 많이 찍었엇는데, 사진들이 참 묘해요. 애들을 애들같이 찍어놓은게 아니라 애들을 어른같이 찍어놓은 느낌이랄까...그래서 로리콘을 떠오르게 만드는 것 같기도..^^

쥬베이 2008-09-22 02:31   좋아요 0 | URL
헉!! 시즈님!!! 어쩜 저리 잘아세요??
맞아요. 애인데 꼭 어른처럼 생겼어요. 저도 저런 생각했어요...
시즈님 사진 보신건가요?? 놀랐어요 정말 우와ㅋㅋㅋㅋㅋ
 
당신이 사랑한 게 나였을까
빈첸초 체라미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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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한 게 나였을까>는 구성도 까다롭고 주제의식도 심오하다. 술술 읽히는 책에 익숙한 독자라면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게 이 책의 매력이다. 독특한 구성, 빼어난 대화체,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든다.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으면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제1악장'부터 제4악장'까지 4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은 '모레나'를 중심으로 두 남자 '클라우디오', '조르고'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 장의 구성, 시점, 핵심내용 등이 전부 다른데다,  모레나는 이름을 바꾸어 등장하기에 각기 독립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묘미는, 각 장의 관계를 분석하고 4개의 장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옴베르토 에코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이 책이 4악장의 소나타 리듬으로 이뤄진 독특한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1악장] 클라우디오를 떠나는 안젤라(모레나)의 이야기(A), 다신교 전통을 붕괴시키려는 종교지도자 무함마드의 이야기(B)가 번갈아 제시된다. 구성이 독특하다. B는 클라우디오가 쓴 영화 시나리오(p.73참조)이고, 안젤라가 이를 읽고 있다.(p.28) 즉, 안젤라가 읽고 있는 시나리오 내용이 B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유사한 구성이다. 민요섭을 쫓는 남경사 이야기(C), 예수와 추종자들에 의문을 품는 아하스페르츠의 이야기(D)가 번갈아 제시되고, 남경사가 읽는 민요섭의 글이 D로 제시되는 구조. 또한 액자속 B와 D의 핵심인물인 무함마드와 아하스페르츠가 기존 종교에 대항하는 인물이란 점도 같다.

또하나 구성상 독특한 게 있다. B는 영화 시나리오답게 속도감있고, 시각적 이미지가 풍성하다. 그런데 중간중간 안젤라에게 말을 건네는 클라우디오의 독백(p.15,35,66등)이 있다. 자칫 흐름을 끊을 수도 있는 독백의 존재의의는 무엇일까? A와 B는 상호 관련성이 있다. 클라우디오는 자신을 모함마드에 비교하고 있으며, B에 등장하는 하디자, 아이샤는 안젤라를 모델로 한 것이다. 독백은 양자의 관련성(시나리오의 상징)을 해석하는 단초가 되는 동시에, B의 내용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제2악장] 2악장을 처음 읽으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갑작스런 등장, 모레나를 향한 병적집착을 이해할 수 없고, 내용 대부분이 발리아니 박사에게 털어놓는 알렉산드리아의 독백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왜 저리도 모레나에 분노하는 걸까? 모레나와 조르조가 주고받은 편지(p.137이하)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고, 결국은 4악장이 완성되는 순간에서야 제대로 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제3악장] 촐리 교수와 가브리엘라의 대화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용실에서 모레나가 '가브리엘라'란 가상인물을 상상하는 장면(p.57이하)이 있기에, '가브리엘라=모레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출판업자가 가브리엘라를 찾는 장면(p.252이하)에서 가브리엘라가 모레나임이 확실하게 밝혀짐) 핵심내용은 윗층 마르타부인 일가와의 기묘한 에피소드, 촐리 교수의 이중생활이다. 촐리 교수의 모습은 마치 미스터리의 반전처럼 충격적이다. 갑작스런 촐리 교수의 등장과 존재의의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 (가브리엘라가 촐리 교수를 통해 자신을 돌아 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듯)

[제4악장] '조르조 젠느'의 어린시절 이야기, 음악스승 코스탄치와 조르조의 관계가 이어진다. 모레나가 자취를 감추고, 갑자기 조르조의 어린시절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의아하다. 하지만 곧 둘의 접점이 밝혀진다.(p.312이하 참조) 이어 4개의 장을 포괄할 수 있는 단서가 속속 제시된다. 알렉산드리아의 정체, 조르조와 모레나의 관계, 모레나가 이름까지 바꾸며 방황(?)했던 이유까지. 이전 장과는 전혀 다른, 모레나의 지고지순한 면모엔 크게 놀랐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당신이 사랑한 게 나였을까>의 묘미를 발견해 낸다면 이제껏 느끼지 못한 감동에 전율할 것이고, 아니라면 그냥 그렇겠지. 빈첸초 체라미는 최선을 다했고 남은 건 독자의 몫이다.


* 빈첸초 체라미는 말솜씨가 탁월하거나 수다스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긴 호흡의 생생한 대화체는 아무나 쓸 수 없는 것인데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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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큰 놀이터다 -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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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큰 놀이터다>는 화랑세기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초대 풍월주 '위화'를 중심으로, 마복칠성의 맏이 원종(법흥왕), 벽화 오도 옥진 등 여인들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역시 김정산!'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고, 삶의 교훈까지 얻을 수 있었다.

'삶의 교훈'이라,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상의 가치를 갖는 작품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권력의 흐름, 사랑, 좌절등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특히 고승 '법화'를 주목해야 한다. 법화와 그의 제자들은 여러 일화를 돌아보고 의미를 논하는데, 마치 공자와 그의 제자를 보는 듯하다. (수상쩍은 부제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은 바로 이 점에서 정당화 된다.)

한 상황을 보자. 딸 벽화를 비처제에게 바쳤던 섬신은 그가 죽자, 지증제에게 다시 바치려고 한다. 벽화는 "저는 싫습니다. 당연히 싫지요. 이제는 저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한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색을 바쳐 지위를 사는 추하고 천박한 일을 제발 그만두었으면 좋겠어요!"(p.84)라 하지만 아버지의 엄명에 답답하기만 하다. 이에 오빠 위화는 '멋진 조언'(p.84,84 직접 읽어보시길.)을 해주고 벽화가 자신의 인생을 살게 돕는다. 나중에 법화와 위화는 대화를 나눈다. "이미 황실에 들어간 여인으로 황가에 색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어찌 한사코 이를 막았는가?" / "저는 오직 제 누이의 뜻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 "하면 날이에서는(처음 벽화가 비처제에 바쳐질 때 살던 지역명)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 그때는 저도 보고 배운 바가 일천하여 세상 사는 묘리를 잘 몰랐습니다." 나중에 벽화는 제자들에게 말한다. "섬신과 위화는 같은 실수를 범했으나, 위화는 한 번 실수에 그쳤고 섬신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이처럼 사람은 같은 일을 겪고도 배우고 느끼는 바가 다 다르고, 같은 구덩이에 빠졌지만 헤쳐 나오는 길도 제각각이다. 위화처럼 한 번 실수로 대오의 경지에 이른다면 먼저 한 냥을 잃고 뒤에 열 냥을 얻은 셈이지만, 섬신처럼 꼭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먼저 한 냥을 잃고 뒤에 다시 열냥을 잃는 격이다."(p.87) 이어 한 제자가 질문한다. "그럼 처음부터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의 셈은 어떻게 됩니까?" 벽화가 답하길, "평생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먼저 한 냥을 잃지도 않겠지만 뒤에 열 냥을 얻을 까닭도 없다."

목차만 보면, 짧은 이야기가 모여 있는 단편 같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야기가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다. 예를 들어, [옳은 인생도 없고 그른 인생도 없다](p.203)는 오도의 두 딸(즉, 위화의 딸) 옥진과 금진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어지는 [먼저 겪은 일은 뒷일에 편견이 되기 쉽다](p.214)에선 옥진과 영실의 결혼이 주요 에피소드로 등장하고, [새옹지마](p.224)에선 옥진과 영실의 불화와 옥진을 취하는 원종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옥진 금진 -> 옥진 영실 -> 옥진 원종' 식으로 이어지는 것. 이런 절묘한 구성은 터키의 국민작가 '이흐산 옥타이 아나르'의 <안개 낀 대륙의 아틀라스>와도 접점이 있다.

<세상은 큰 놀이터다>의 핵심인물 위화는 한평생 풍류를 즐기던 괘남아였다. 온 백성이 그를 사랑했고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였다. 오늘날로 따진다면 인기스타, 국민배우와 같지 않았을까? 그는 비처제에게 후궁으로 들어간 누이 벽화덕에 권력의 심층에 다가 간다. 그 후 마복칠성과 어울리며 승승장구하지만, 오도를 둘러싸고 원종의 질투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나중에 지소와 삼맥종(진흥왕), 옥진과 비대가 차기 왕위다툼을 벌이자, 자기 딸이 아닌 지소를 지지하는 놀라운 모습(p.281)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 삼맥종을 섭정한 지소태후는 위화를 우두머리 삼아 화랑제도의 기틀을 만든다.

<세상은 큰 놀이터다>는 명작중의 명작 <삼한지>의 감동을 이어가는 작품이다. 재미도 재미거니와 삶의 교훈까지 얻을 수 있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역사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은 김정산 작가님을 따라갈 자가 없는 것 같다. 정말 멋진 작품.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이란 부제는 후속편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후속편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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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9-16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사 시름잊고 싶을때 역사속으로 빠져들어 위화의 풍류에 취해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여전히 건재하신 쥬베이님!

쥬베이 2008-09-16 22:59   좋아요 0 | URL
우와 칼리님!! 오래간만이에요^^
추석은 잘 보내셨죠? 이 책 강추합니다!ㅋㅋㅋ
 
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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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할 수밖에 없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작가와 독자의 승부라고 한다면, 난 완패했다. 평범한 반전을 예상하고 '별거 아니네'했다가, 결말을 접하고는 말을 잃었다. '반전'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의 이르는 병>이다. 두 작품의 반전은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고, 반전을 위한 반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통곡>은 아니다. 반전의 억지스러움이 없다. 소중한 것을 잃은 인간의 슬픔, 부모의 사랑등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바탕에 깔려 있다. 논리적으로 따진다 해도 완벽하다. (p.457이하 찬찬히 읽어보시길)

연쇄 유아 살인사건을 추격하는 '제1형사과장 사에키'와 신흥종교 '백광의 우주교단'에 빠진 '마쓰모토'의 이야기가 번갈아 서술된다. 전형적인 A-B-A-B식 구성인데, 아비코 다케마루의 <미륵의 손바닥>과 연관성을 따져 볼 수 있다. <미륵의 손바닥>역시 형사 에비하라와 교사 쓰지의 시점이 번갈아 서술되고, 신흥종교가 중요소재란 점도 같다. '신본격의 기수'라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인지라 일정부분 공유할 요소가 있는 것이리라.

[사에키] 전 법무대신 오시카와 히데요시의 사생아이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그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경찰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하지만, 주변 시선은 곱지 않다. 아버지의 후광 덕에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하직원 오카모토 시게오 경부보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에키 주위로 오해와 편견이 충만해 있다. 그럼에는 그는 해소 하려 들지 않았다.'(p.85)라고. 오로지 오카모토만이 마음속으로 사에키를 이해하는 상황.

유아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가 모두 4~6살사이 여아라는 점, 행방불명 시점이 월요일이란 공통점이 있다. 사에키를 중심으로 경찰은 총력을 다하지만 수사에 진전은 없다.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건은 계속되고, 수사 책임자인 사에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데…

[마쓰모토] 상실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살풍경한 방, 따분한 일상, 그를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일까? 초반 제시되는 사내의 모습은 흐릿하고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다. ('마쓰모토'란 이름도  p.104에서야 겨우 언급된다.) 길거리에서 뜻밖의 경험을 한다. 젊은 여자가 다가와 "당신의 행복을 기도하게 해 주세요"(p.18)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신선한 충격을 받는 사내. 이것이 신흥종교와의 첫 만남이었다.

'백광의 우주교단'에 입회한 사내는 점점 교단에 빠져 재산까지 기부(p.212)한다. 교단내 위치(필로소푸스, 젤라토르 같은 독특한 지위가 있음)는 점점 올라가고, 비밀 종교의식(p.224이하, p.266이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뭔가 희망을 본다.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간절한 소망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을.

중반 이후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하게 된다. 아니, 예상했다고 믿게 된다. 바로 시마가 '카발라의 비의'를 설명하는 장면(p.286이하)에서. "그렇구나, 둘의 접점은 저거구나. 간단한 구조네. 별거 아냐"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작가와 작품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통곡>의 반전은 지금까지 읽은 미스터리 작품 중 가장 완벽하고, 충격적이다.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의 이르는 병>을 읽고 코웃음 쳤던 분들께 권하고 싶다. 진정한 반전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정녕 데뷔작이란 말인가? 누쿠이 도쿠로, 대단한 작가다.

 


* 작품의 묘미인 반전을 강조했지만, 다른 부분도 좋다. 매스컴의 지나친 보도경쟁, 매스컴과 수사당국의 미묘한 관계, 신흥종교의 행태, 경찰 내 엘리트(국가고시출신) 비엘리트(말단 순경출신)간 갈등 등.

* 통곡의 사전적 의미는 '소리를 높여 슬피 욺'이다. 하지만 작품에는 소리 높여 우는 장면은 없다. 그럼 왜 '통곡'인가? p.453,454를 읽어 보시길. 그럼 아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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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9-1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비채책들은 너무 제 취향이 아니어서 별로 관심갖지 않았었는데, 이책은 왠지 읽어보고싶네요..^^흐흐...
근데 왠지 어린아이들하고 관련된 사건들을 다룬 소설들을 읽고 있으면, 호기심 생기고 푹 빠져드는 반면에 왠지 이런 호기심이 죄책감처럼 느껴질때가 있어요..-_ㅜ

쥬베이 2008-09-13 10:56   좋아요 0 | URL
읽다 놀란 게,중간에 예슬이사건과 똑같은 상황이 나와요ㅜ.ㅜ
범인이 강아지가 아프다고 돌봐달라고 하고 데려갔잖아요.
유사한 장면이 있어요. 어찌나 놀랐던지...
 



비채 '블랙 & 화이트' 8번째 작품. 표지가 정말 근사합니다.



  뒷모습. "인간은 참을 수 없는 슬픔에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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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9-1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정신이 없어서 자주 못들렸네요. 벌써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쥬베이 2008-09-12 16:37   좋아요 0 | URL
lazydevil도 추석 잘 보내세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세요 저는 벼르고 있답니다ㅋㅋㅋ
뭐뭐 먹을까 하고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