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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감탄할 수밖에 없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작가와 독자의 승부라고 한다면, 난 완패했다. 평범한 반전을 예상하고 '별거 아니네'했다가, 결말을 접하고는 말을 잃었다. '반전'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의 이르는 병>이다. 두 작품의 반전은 약간 억지스러운 면이 있고, 반전을 위한 반전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통곡>은 아니다. 반전의 억지스러움이 없다. 소중한 것을 잃은 인간의 슬픔, 부모의 사랑등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바탕에 깔려 있다. 논리적으로 따진다 해도 완벽하다. (p.457이하 찬찬히 읽어보시길)
연쇄 유아 살인사건을 추격하는 '제1형사과장 사에키'와 신흥종교 '백광의 우주교단'에 빠진 '마쓰모토'의 이야기가 번갈아 서술된다. 전형적인 A-B-A-B식 구성인데, 아비코 다케마루의 <미륵의 손바닥>과 연관성을 따져 볼 수 있다. <미륵의 손바닥>역시 형사 에비하라와 교사 쓰지의 시점이 번갈아 서술되고, 신흥종교가 중요소재란 점도 같다. '신본격의 기수'라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인지라 일정부분 공유할 요소가 있는 것이리라.
[사에키] 전 법무대신 오시카와 히데요시의 사생아이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그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경찰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하지만, 주변 시선은 곱지 않다. 아버지의 후광 덕에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하직원 오카모토 시게오 경부보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에키 주위로 오해와 편견이 충만해 있다. 그럼에는 그는 해소 하려 들지 않았다.'(p.85)라고. 오로지 오카모토만이 마음속으로 사에키를 이해하는 상황.
유아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가 모두 4~6살사이 여아라는 점, 행방불명 시점이 월요일이란 공통점이 있다. 사에키를 중심으로 경찰은 총력을 다하지만 수사에 진전은 없다.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건은 계속되고, 수사 책임자인 사에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데…
[마쓰모토] 상실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살풍경한 방, 따분한 일상, 그를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일까? 초반 제시되는 사내의 모습은 흐릿하고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다. ('마쓰모토'란 이름도 p.104에서야 겨우 언급된다.) 길거리에서 뜻밖의 경험을 한다. 젊은 여자가 다가와 "당신의 행복을 기도하게 해 주세요"(p.18)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신선한 충격을 받는 사내. 이것이 신흥종교와의 첫 만남이었다.
'백광의 우주교단'에 입회한 사내는 점점 교단에 빠져 재산까지 기부(p.212)한다. 교단내 위치(필로소푸스, 젤라토르 같은 독특한 지위가 있음)는 점점 올라가고, 비밀 종교의식(p.224이하, p.266이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뭔가 희망을 본다.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고, 간절한 소망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을.
중반 이후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하게 된다. 아니, 예상했다고 믿게 된다. 바로 시마가 '카발라의 비의'를 설명하는 장면(p.286이하)에서. "그렇구나, 둘의 접점은 저거구나. 간단한 구조네. 별거 아냐"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작가와 작품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통곡>의 반전은 지금까지 읽은 미스터리 작품 중 가장 완벽하고, 충격적이다.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의 이르는 병>을 읽고 코웃음 쳤던 분들께 권하고 싶다. 진정한 반전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정녕 데뷔작이란 말인가? 누쿠이 도쿠로, 대단한 작가다.
* 작품의 묘미인 반전을 강조했지만, 다른 부분도 좋다. 매스컴의 지나친 보도경쟁, 매스컴과 수사당국의 미묘한 관계, 신흥종교의 행태, 경찰 내 엘리트(국가고시출신) 비엘리트(말단 순경출신)간 갈등 등.
* 통곡의 사전적 의미는 '소리를 높여 슬피 욺'이다. 하지만 작품에는 소리 높여 우는 장면은 없다. 그럼 왜 '통곡'인가? p.453,454를 읽어 보시길. 그럼 아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