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까치글방 132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서성철 옮김 / 까치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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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영상으로 본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라는 수업을 들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라틴문화권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는데 실제로 어려울 수도 있는, 일반적으로 쉽게 접하기 힘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쉽게 배울 수 있었다. 하루에 3시간 가량의 수업 시간 중 1시간 가량은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나머지 2시간 동안은 비디오나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보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분야는 역사와 지리, 문화, 생활 등 전반적인 것에 해당된다.

이 책은 그때 읽었던 책이다. 기말고사 시험범위가 책 전부(?)라고 하는 다소 황당한 선생님의 말씀이 있어서 억지로라도 읽어야만 했기에 책을 읽었지만 다 읽은 뒤에는 '재밌다'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이 책을 쓴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라틴아메리카계를 대표하는 유명한 작가로서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체에 있어서 딱딱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글을 읽을 수가 있다. 거기다가 내용면에서 라틴아메리카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전혀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주인장은 이 책 1권을 읽음으로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개괄적인 틀을 잡을 수가 있었다.

책은 먼저 스페인, 보다 크게 말하면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언급한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는 이후 로마시대를 지나서 중세시대까지 죽 서술되는데 마치 재미있는 세계사 책을 읽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주인장이 지금까지 대강이나마 알고 있는 세계사에 대한 것, 그리고 수업 시간에 들었던 부분들이 머릿속에 있기에 책의 내용이 보다 쉽게 와닿는 것일 수도 있지만 책의 내용이 전문적인 내용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보다는 전문적인 내용을 부담없이 읽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 구체적으로 스페인의 역사가 다양성을 가진 역사, 개방성을 지닌 역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지방색이 강하고 개인주의가 심화된 존재임을 역설한다. 어느 나라가 안 그렇겠느냐마는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를 보면 오늘날까지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저자의 그런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을 듯 싶다. 저자 스스로가 라틴 아메리카인으로서 자신의 역사를 자신이 쓰다보니 주관적이면서 열정적인 필체가 엿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것만도 아니다. 그래서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서구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용어일 뿐이다. 그래서 최근에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양대륙의 만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스페인인들이 그들의 정복자이면서도 어머니인 독특한 혈통을 가진 사람들, 유럽인들이 신대륙이라고 불러야만 했던 곳에 살던 사람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의 후손이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부터 언급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역사를 가지고 있던 한국사인만큼 우리들도 한국사를 배우기 위해서는 한반도 안에서의 역사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역시 라틴아메리카의 지역사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뿐만 아니라 유럽의 역사 역시 봐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를 언급하고 마찬가지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언급한 다음에, 양자가 융합되어가는 그 과정을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것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정복자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피정복자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스페인은 신대륙에 기독교와 유럽의 새로운 문화를 전수했지만 반대로 원주민을 억압하고 그들을 강간했으며 그들의 토착 문화를 억압하기도 하였다. 물론 원주민들은 기독교라는 탈을 쓰고 그들의 토착 문화를 잃지 않고 보존해내는데 성공했다. 싱크레티즘(syncretism)이 바로 그것이다. 잉카와 마야 제국이 멸망당하고 그 과정에서 최초의 혼혈인이 탄생하고, 기독교를 통해 원주민들은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라틴 아메리카는 만드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간의 대립, 즉 어머니와 원치 않았던 자식간의 대립에 대해서 묘사한 뒤에 저자는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사로 촛점을 바꾼다. 나폴레옹의 유럽 정복전에 의해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식민지들은 주인을 잃어버린다. 그 와중에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적인 국민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부강, 멕시코의 발전 등 격동적인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역사책이 아님을 알게 해준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역사책이라면 대부분 정치사에 치중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문화사와 생활사에 대한 부분까지도 언급하고 있어 전반적인 라틴 아메리카 역사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게 해놨다. 음악과 미술, 종교와 예술, 음식과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잘 모르는 라틴 아메리카의 세부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균형잡힌 시각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끔 해 놨던 것이다. 일반적인 역사책에서 문화나 생활과 같은 오히려 사실적인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안 하는데 그런 단점을 무리없이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를 언급하면서 히스패닉 계열이 아메리카 전역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역설한다. 제국주의의 횡포와 라틴 아메리카의 저력을 언급하려는 듯 하는데 이 부분에서 특히 저자의 열정적인 저작 의도가 엿보이는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역사를 언급함으로써 역사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진정한 민족주의자이자 진정한 애국자이어야만 자신의 민족과 국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분명히 진정한 민족주의자이자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애국적인 저자가 쓴 아주 재밌는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책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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