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사 : 사상과 이론
브루스 트리거 지음, 성춘택 옮김 / 학연문화사 / 1997년 12월
평점 :
절판


고고학史.
어떤 학문이든 그 학문이 현재까지 걸어온 학사(學史)를 연구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때 상당히 어려운 작업일 뿐더러 그 작업을 해냈다는 것은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학사를 왜 연구하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어떤 학문에 대해서 공부하고 그 학문을 전공삼아 연구한다고 했을때 그 의미는 그 학문 자체로서의 연구이자 공부이지, 그 학문이 어떻게 형성되서 어떻게 변화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는지, 그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그럴까? 어느 분야를 공부하든지 그 학문이 어떤 학문이고, 어떤 변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알 필요는 없는 것일까?

학문은 인류가 문명을 창출해내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사상과 정신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분야든지 학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또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다. 고고학의 경우, 전공공부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인 학부생때 고고학사에 대해 각 대학마다 수업을 개설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특히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회과학의 경계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학문이 고고학임을 상기한다면 고고학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특히나 더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뭐 말은 이렇게 거창하게 했지만 보다 실질적으로 살펴본다면 학사를 배움으로써 그 학문이 지니는 기본적인 의미나 방법론, 접근하는 시각 등에 대한 기본 개념을 성립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책 하나를 추천하고자 한다.

고고학사(A History of Archaeological Thought)

이 책의 원제목이다. 단순히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역사가 아니라 '고고학 사상'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주 목적이다.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분명 차이가 있다. 사상적인 측면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보다 고고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본질에 접근해서 학사를 공부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그 학문이 걸어온 길을 되짚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길을 걸어오게 됐는지를 되짚어 볼 것이며 당연히 이해하는데 있어 상당히 난해한 부분들이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케임브리지대학의 콜린 렌프류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것은 현재 구할 수 있는 고고학사 가운데 가장 좋고 최신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필독서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 한다.

주인장이 이 책을 산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고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마음먹은 것이 군대에서니까 3년 전쯤일 것이다. 그때 책을 사서 조금씩 읽어봤지만 역시나 어려웠다. 한때 학문의 본질적인 부분을 파악하고자 하는 마음에 인류학, 고고학, 역사학의 유명한 이론서적들을 살펴본 적이 있었다. 황금가지, 역사란 무엇인가, 고고학이란 무엇인가, 역사철학의 이해, 역사의 이해, 역사는 어떻게 쓰는가 등등. 그리고 같이 읽었던 책이 바로 고고학사였는데 이번에 전공수업 교과서로 채택된 김에 본격적으로 읽었으니, 책한테는 상당히 미안한 일이겠지만 사놓고 잘 안 봤던 것이 사실이다.

책은 고고학의 시작과 끝을 총망라하고 있다. 고전고고학과 고물애호주의부터 시작해서 북구에서의 본격적인 고고학의 학문으로서의 출발, 제국주의와 연결된 식민고고학, 인류학과 사회학 등과 연계된 문화사 고고학, 신진화론 이후의 신고고학과 후기(탈)과정주의 고고학까지 고고학이 걸어온 길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어렵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재미있기도 하다.

일단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들은 이런 개설서가 한국에서는 나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외국에서, 특히 외국에서 일본을 거쳐 들어온 학문이고 1930년대 여러 서양학문과 같이 한국에 들어왔을때는 그 초보적인 수준때문에 당시 미술사학도(고유섭 같은...)들에게 우습게 취급받던 학문이기도 했다. 그런 한국 고고학계가 오늘날의 수준으로 성장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으며 현단계에서 한국고고학계가 이론적인 성장을 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상황에서 비록 외국인이 쓴, 고고학사지만 고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든,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봤으면 하는 책이 이 책이다. 한국에서 차후에 고고학사 혹은 한국고고학사가 나온다면야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말이다.

특히 책을 보면 당시의 사회적 환경의 변화, 그 흐름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기타 학문과 사상의 변화를 언급하면서 그것과 결부시켜 고고학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고고학이 왜 그런 변화들을 겪어야만 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이 책을 보고 후배 한명은 고고학과 서양 철학이나 사상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하면서 전역하면 그 부분에 대해 공부할 소모임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말까지 할 정도다. 누가 고고학을 단순히 땅만 파고 유물만 캐내는 학문이라고 했는가. 고고학이야말로 인류의 역사와 길을 같이 해온,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책 맨 뒤를 보면 저자가 이 책 1권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연구서적를 참고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모두 영어로 되어 있는 것이며, 초기 고고학이 모두 서양인에 의해 주도된만큼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모든 고고학 전공자들이 유창하게 영어를 사용해서 서양의 모든 연구서적을 참고할 수 없는 이상, 이같은 번역서를 통해서 고고학을 공부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렵지만 꼭 읽어봐야만 할 책, 조심스럽게 한번 추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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