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기군 1
박혁문 지음 / 늘봄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들은 대학교에 처음 들어가서 읽은 역사소설 중 하나였다. 얼마전 책장 정리를 하다가 먼지묻은 책들 속에 있길래 기억을 되살려 서평을 간단하게 쓰고자 한다.

먼저 팔기군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만주족의 군사-행정조직을 의미한다. 본래 만주팔기만 존재했다가 후에 몽고, 거란 등 주변 부족민들을 통합하여 팔기군을 늘려갔고 결국 십여만의 팔기군은 수십만의 명나라 대군을 격퇴하고 중원대륙을 정복하게 된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만주족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리고 만주족하면, 청나라를 떠올릴 수 있고 청나라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을 것이다. 바로 조-청 전쟁, 흔히들 병자호란이라고 일컫는 전쟁을 말이다. 병자호란으로 인해서 허약한 국방력을 지니고 있던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이야기의 시공간적 배경은 바로 그 전후의 조선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주인장은 조선사를 상당히 싫어한다. 지금이야 그나마 그런 생각이 약간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주인장은 조선사를 '한국사의 이단아'라고 칭하며 싫어한다. 그만큼 조선이 차지하고 있던 국제적 위상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왕조보다도 못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정은 조-일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과 조-청 전쟁(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다. 수차례 이어지는 국난 속에서도 계속되는 당쟁과 국력분열은 추악한 위정자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시대에 무수히 많은 인재들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날리지 못한 것은 조선이 망국으로 치닫고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요, 금, 청 등이 동북방 만주 일대에서 흥기한 집단임을 이유로 이들이 우리 민족과 동일한 민족성을 지니고 있었고 알고보면 그 뿌리는 고구려, 더 나아가 고조선과 이어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때 청 황실의 성인 '애신각라'가 마의태자를 비롯한 신라말기사나 고려사와 연관되어 주목받기까지 하였다. 이 책은 그런 시대적 상황에 부합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만주족은 고구려를 계승한 민족으로서 조선과 한족속이고 중국과 대응하기 위해서 조선과 만주족은 힘을 합쳐야만 했다, 는 식의 논지 전개가 소설 전반적으로 흐른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이 가능한 실존 인물들이다. 그리고 저자 역시 실존인물들을 극화시켜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살리면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첫장면에서 인조가 청 태종에게 굴욕적인 화친 의식을 치루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실존인물인 마부태를 조선인으로 묘사한 것이 흥미로웠다. 즉, 조선 내에서 명나라 말기에 친 여진파가 생겨나게 됐는데 당쟁에 휩싸여 몇몇 중신들이 희생되고 그 희생된 중신의 후손이 만주족에게 투항하여 결국 병자호란때 조선에 대해 복수를 한다는 식의 이야기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이런 식의 스토리를 가진 역사 소설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내용 중에는 조선의 대외정책과 대내의 혼란한 상황이 잘 드러나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실제 이것이 역사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흡입력있는 작품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다시 책을 펼쳐봤을때도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만주족의 역사적 귀속 문제였다. 그 당시만해도 동북공정이 국가적 문제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동북공정이 중요한 사안이 된만큼 이 소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한다. 만주족이 여진족의 후신이고, 여진족이 말갈족의 후신이라면 말갈족과 한국사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만큼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실제 만주족은 '만주원류고'라는 책을 남겨 숙신, 부여, 읍루, 삼한, 물길, 백제, 신라, 말갈, 발해 등에 대한 기록을 남겨뒀기 때문이다. 이들이 완완부와 건주여진의 역사와 같이 실린 것은 단순히 만주 일대에 이들 국가의 흔적들이 남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는 현재 그 후손들에 의해 어디로 귀속되어지는지가 결정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로마사가 이탈리아로 귀속되고, 신성로마제국의 역사가 독일사로 귀속되고, 고구려사가 대한민국으로 귀속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 현상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그런 것들을 악용하고 있어 영토 분쟁뿐만 아니라 역사 분쟁까지도 서슴없이 일으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학술적인 부분은 약하지만 정말로 그럴법한 내용을 서술한 이 책을 한번쯤은 읽혔으면 한다. 그리고 단순히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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