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인류학 혹은 신화학 관련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라 한다. 처음에 주인장은 이런 책이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어느날 동생이 이 책을 샀다고 혹시 볼 생각이 있으면 부대로 보내주겠다고 해서 보게 됐을 뿐이다. 동생과 전화상으로 얘기했을때는 분량이 어쩌느니, 내용이 어쩌느니, 어떤 책이느니 뭐 이런 얘기를 하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봤는데 알고보니 상당한 고전이 아니겠는가. 마침 '문명'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서 인류학 관련 저서를 한권 정도 필요로 했던 터였기 때문에 더욱 주인장에게 필요로 했던 책이기도 했다. 일단, 보면 알겠지만 분량이 상당하다. 원래의 책은 1890년 초판이 2권, 1900년 재판은 3권, 1906~1915년에 나온 3판이 12권이으로서 상당한 양이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은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방대한 사례나 자료를 대폭 줄이고 이론적 원리를 살려 편집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도 주변에서는 900페이지가 넘는 책 자체가 엄청난 양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한다.)

늘 그렇지만 책의 순서를 보면서 주인장은 뭐랄까, 알수 없는 희열감이라든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해냈다는 그런 짜릿한 기분을 맛볼수가 있었다. 이 책은 그동안 주인장이 갖고 있던 시야를 몇단계나 넓혀준 책이었으며 단지 그 순서만 보고 이 책의 구성이 어떠한가만을 살펴봤을 뿐인데도 주인장에게 많은 지적 영감을 일깨워준 셈이었다. 대강의 순서를 적어보자면 '제 1권 숲의 왕' '제 2권 신의 살해' '제 3권 속죄양' '제 4권 황금가지' 이렇게 이뤄져있는데 대부분이 주술과 신학, 종교, 사상적인 부분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었다.

이 책을 보기전 주인장이 문명에 관련된 글을 하나 쓰고 있다는 얘기를 했을 것이다. 그 글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면 주인장은 어떤 문명이든, 또 어떤 시대에든 대부분의 문명 집단은 보편적인 특징이 강했으며 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대부분 비슷했다는 생각을 그 글에 담아보려고 하고 있다. 즉, 1,000년전 로마의 시민이나 1,000년후 조선의 백성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소리다. 즉, 인류 문명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화하고 발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삶의 양태만 변천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인장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이 책을 봤을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주인장에게 좋은 자료도 제공했지만 사상적으로도 좋은 토대를 마련해줬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제 1권의 주된 내용은 숲의 왕으로 대표되는 사제왕, 즉 제정일치된 사회에서 볼수 있는 지도자에 대한 내용이다. 네미숲의 사제왕부터 시작해서 천년제국 로마의 황제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정치적 지배자에 대한 서술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는데 책을 보면서 주인장이 떠올렸던 것은 바로 부여의 왕에 대한 기록이었다. 가뭄이나 국가적 재해의 피해를 입고 죽임을 당했던 부여의 왕, 그 기록을 두고 우리는 지금까지 부여의 왕권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으며 정치적인 입지도 약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과 연관시켜 본다면 부여의 왕은 제정일치된 사회의 강력한 지배자였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내용은 제 2권으로 이어지면서 보다 확실해지는데 이런 제정일치 사회의 지배자들은 잘못을 했거나 일정 기간이 흐르면 하나의 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즉, 기존의 실력자를 죽이고 새 사람을 앉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했고 대리 왕을 임명해 며칠간 무한한 권위를 부여했다가 그 사람을 대신 죽인다거나, 아니면 아들에게 대신 왕위를 물려줬다고 그 아들이 죽으면 다시 왕위에 오르는 행위 등으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물론 더 시간이 지나면 실제 희생양은 사람에게서 무생물 혹은 다른 동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인장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부여왕에 대한 기록이나 고대 한국사에서 볼수 있는 국가적 제천 의식들(동맹, 영고 등)에 대한 새로운 의식 전환을 꾀할 수 있었다. 짜릿한 흥분감과 함께 말이다.

이런 인류의 사상적 변화가 주술-종교-철학으로 발전해나간다는 그의 지론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너무 심한 비약같지만 '천사와 악마'라는 베스트셀러를 가지고 추측한다면 종교와 철학에서 과학이 파생됐다고 해도 그다지 무리가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이처럼 프레이저 경은 수많은 사례와 추론 등을 제시해가면서 그의 의견을 피력해나가는데 하나같이 충격적이고 또한 획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이하게 생각되었던 미신이나 문화 전통, 자연과 인간 삶의 비밀들까지 드러내어 이 책이 발간되던 19세기에는 금서(禁書)가 될 정도로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지도 않을 정도이다.

특히나 주인장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참신한 해석과 신성한 매춘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은 '다빈치코드'를 보면서 한껏 고조되었는데 그 책에서 그리스도를 두고 다윗왕의 후손, 즉 왕가의 후손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면 프레이저경은 그를 두고 앞서 말했던 의식에서 쓰였던 일종의 속죄양, 희생양이라는 의견을 나타내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가 실제 왕가의 후손이 아니라 어떤 신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던 종교 의식의 제물로서 죽었다는 사실이다. 이 내용은 '역사 속의 영웅들(Heroes of History )'에서 윌 듀런트가 그리스도를 파격적인 정치적 혁명가로 묘사한 내용과 또 다른 의견이어서 더욱 주인장에게 와 닿았다. 그리고 프레이저경은 매춘을 통해 신에게 도달하는 창녀나 금욕을 통해 신에게 도달하는 수녀나 다를 것이 무엇이냐는 파격적인 메세지를 우리에게 남긴다. 그 모습은 비록 극과 극이지만 그 추구하는 사상적인 목표는 같지 않냐는 것이다. 신성한 매춘은 '그리스 로마 신화 2권'에서 이윤기가 묘사한 내용들과도 상당히 밀접하기 때문에 한번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주인장이 특히 놀랐던 것은 19세기 서구문명 중심주의가 한껏 고조되어 있을 그 시기에 프레이저 경이 이 책을 써서 인류 사상과 문명의 보편성과 획기적인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 내용들은 하나같이 지금 우리가 봐도 상당히 진보적이면서도 참신한 내용들이 대부분인데 무려 140여년 전에는 어떠했겠는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주인장이 인류학이라는 분야에 더욱 빠져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군대에서 봤던 최고의 책 중 하나로 더 꼽힌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책을 볼때마다 늘 느끼는 거지만 '나는 나중에 저런 명저를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자아비판이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주인장이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여담이지만 중간중간에 한국에 대한 언급도 나와있어서 흥미를 끈다. 예를 들면 아기가 태어나면 삼칠일(21일)이 지날때까지 조심해야 한다는 등의 미신적 풍습 말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들부터 유럽 농촌의 농민들에까지 그가 제시하는 정말 엄청난 분량의 실례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책 분량은 정말 엄청나게 많은 편이지만 정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주인장이 책임지고 보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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