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안 - 야만인 혹은 정복자
리처드 루드글리 지음, 우혜령 옮김 / 뜨인돌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제목이 눈에 확 띄어서 바로 구입한 책이다. 바바리안(Babarians), 제목만 보더라도 야만인이라고 불리던 종족들에 대해서 쓴 책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을 것이다. 책의 서문을 보면서 느낀 점은 이 책이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의 유럽판이라는 것이다. 흔히 북방사 혹은 변방사로 불리며 소외받고 중국사에 종속되어 취급받던 역사, 유목민족사가 독립적인 주제를 가지고 거론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렀으며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영국 왕립지리연구학회의 특별연구원으로서 '석기시대의 잃어버린 문명'이라는 글을 집필해 큰 명성을 얻은 저자는 유럽 역사에서 잊혀져 왔던 변방사를 역사의 중심으로 끌어다겼다. 이 책의 소제목은 '야만인 혹은 정복자'인데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켈트족, 게르만족, 노르만족, 훈족 등등 유럽에서 대제국을 건설한 유일한 문명인으로 취굽받던 로마족 이외의 모든 민족들에 대해서 이 책은 지극히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으며, 그 평가들은 하나같이 정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바~바' 하고 소리치는 외부인들을 두고 쓰기 시작한 단어 '바바리안'.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흔히 아는 야만족이 아니었다. 씻지도 않는 더러운 곳에서 지저분하게 살아가는, 동물의 가죽 따위로 몸 중요 부위만 대강 가린 원시인들, 바바리안의 이미지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중화인들이 추운 겨울, 값비싼 모피로 몸을 두른 유목민들을 두고 냄새가 나며 동물과도 같은 삶을 영위한다고 했지만 정작 그들은 추위를 그보다 효과적으로 막을만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 했다. 또한 우수한 갑옷과 무기를 보유하고 세력을 넓히던 치우천왕을 두고 동두철액의 괴물로 표현한 것만 봐도 선진 문물을 지닌 강력한 존재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저자는 그런 세태를 비판하고 있따. 과연 그들이 야만인이었을까? 물론 대답은 'No'다. 그들은 당당한 정복자였다. 아니, 대단히 문명화된 정복자였다.

인구 증가, 기후 변화, 세력 확장, 상업 활동 등 이유야 어쨌든 변방에 머무르던 그들은 중심 지대로 모여들었다. 지중해와 중부 유럽으로 말이다. 상당히 조직화된 정예군을 이끌고 탐욕스런 눈길로 유럽의 지배자 로마의 세력권 내로 넘어온 그들은 곧 정복자가 되기 이전, 동조자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탐욕과 야욕의 영토인 중원 - 흔히 말하는 황하 일대 - 으로 넘어온 이민족들은 곧 그 중원 문명에 동화되어 버렸다. 흔히 말하는 정복 5왕조인 요, 금, 서하, 원, 청 왕조들은 하나같이 중원으로 넘어와 지배자, 정복자로서의 위엄을 지켰지만 결국은 중화 문명에 빠져 그들 스스로의 모습을 버리고 말았다. 북위의 건국자인 도무제가 선비족의 변질된 모습을 보고 개탄한 사료만 보더라도 그런 현상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거란, 서하 모두 자기 민족 고유의 문자를 만들어 썼으며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를 지켜내려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용두사미에 불과해 얼마가지 못 했다. 정복 왕조는 하나같이 소박하고 강건한 무사의 기백을 잃어버리고 그들의 삶을 중화의 품에 맡겨버렸다. 그나마 청나라가 그런 문화를 양위할 수 있어서 오래도록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바리안이라고 불리던 이 야만인들은 달랐다. 목조 기술, 직조술, 금속공예술 등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명을 그대로 유지한채 - 아니, 오히려 더 발전시킨채 - 유럽 중심부로 서서히 스며들었다. '멜팅 포트(Melting Pot - 인종이나 문화 등 여러 다른 요소가 융합, 동화되어 있는 장소)'처럼 기존 문명국인 로마 속에서 사라질까봐 두려웠지만 그들 고유의 문화가 그들 족속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기에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해왔던 방식을 결코 버리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글쎄, 중화 문명이 로마 문명에 비해 워낙 뛰어났고 화려했기에 동방 유목민족은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에 파묻혀 버렸으며, 서방 유목민족은 헤어나올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동방 유목민은 서방 유목민에 비해 자존심이 약했거나 문명적 힘이 약했던 것일까? 주인장은 양측 다 환경의 차이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서방 유목민족들, 흔히 게르만족으로 통칭되는 - 동방 유목민족들이 흔히 흉노나 몽골로 통칭되었듯 - 야만족들은 강력한 돌파력으로 유럽 각국에 침투해 로마 붕괴후 그들만의 왕국을 세워 나갔다. 저자는 그들이 보여줬던 뛰어난 문명과 각종 역사의 발자취가 오늘날까지 남아있으며 오늘날의 유럽은 기존에 주류로 취급되던 그리스-로마 문명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비주류였던 야만족들의 문명의 혜택을 입고 있다고 결론내리고 있는 것이다.

즉, 이분법적 사고와 로마로부터 비롯된 비주류 세력에 대한 편견이 커다란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뛰어난 문명과 더불어 논하는 것이 바로 종교, 즉 기독교였다. 종교라는 형이상학적인 부분에 있어서 야만족이라고 불리는 그들이 주류로서 재등장해 화려하게 변신을 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저기 북쪽의 오지에서 나타난 노르만족, 바이킹족의 해상 활동, 멀리 아랍 세계에까지 뻗쳤던 그들의 저력은 오늘날 유럽을 이끈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들이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재인식 말이다.

특히 이 종교라는 부분에 있어서 동-서양의 큰 차이가 생긴 것은 아닐까? 종교라고 불릴만한 정신적 제재가 없었던 만큼, 동방에서는 유목민과 중원인들 간에 이어질 수 있는 끈이 그만큼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본다. 정신적인 면에 있어 야만족들이 적절히 중화(中化)할만한 부분이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 물질적인 면이 방대할 정도로 물량 공세를 취함으로서 야만족들은 그 공세를 당해내지 못 했던 것은 아닐까? 선비족들이나 흉노족이 적석목곽분과 각종 황금 장신구들을 남겼지만 그것들을 중원에서도 볼 수 있는가? 그들은 만리장성을 넘는 순간, 어떠한 문화적 매개체나 방어막 없이 거대한 문화 충격을 접하면서 그들만의 고유 문화를 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서양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있어 항상 그들 문명 최후의 보루로 작용했다. 천년제국 로마를 버티게 한 것도 교황과 기독교요, 게르만의 일파인 프랑크족을 문명화시켜 그들의 수호자로 삼은 것도 교황과 기독교요, 가공할만한 잔인함과 무서움을 지닌 훈족의 서진을 저지한 것도 결국은 교황과 기독교였다. 그 기독교라는 뿌리는 게르만을 비롯한 야만족의 문화라는 양념까지 곁들여 오늘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의 유럽, 프랑스, 독일, 영국인 것이다.

불교나 도교가 동방에서 그런 역할을 담당했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 했다. 교황이라고 하는 국가나 정치를 초월한 일인지배적인 종교로 거듭할 수 없었기에 - 동방에서는 밀교적 성격을 띈 티벳 불교가 유일하다 - 불교 역시 중화 문명의 한 축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여진다. 훗날 선비족이라고 불리는 북방 민족은 경주 일대에 정착해 그들만의 화려한 북방 문화를 퍼뜨린다. 그리고 100년이라는 접촉기-과도기를 거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오늘날의 유럽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잘못된 인식을 파헤치기 위해 20세기에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럽 각지의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접한 칼과 선박, 화려한 무덤 등을 통해 이들의 수준 높은 사회상과 문화를 하나씩 추적했다. 가령 해적과 약탈자의 대명사로 알려진 북게르만족 - 바이킹족 - 은 섬세한 기술을 발달시켜 유럽 항해사를 이끌어 나갔고, 로마인들이 처음 접촉할 때부터 무시한 켈트족의 언어는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웨일스어와 아일랜드어 등의 뿌리가 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바바리안들도 로마 못지않은 사회를 건설하고 문화유산을 전해준 것이 확인되기에 서양사에서 암흑기로 기록된 야만 사회도 오늘날의 역사를 만드는 토양이 됐다고 평가한다. 일방적 시각에 의해서 쓰인 왜곡된 역사는 다름 아닌 강자의 논리라는 주장이다. 역사는 흑백논리로 기록돼서는 안 되며 중립을 지켜야 하는 대상이라는 저자의 메시지는 그래서 가슴에 와닿는다. 문명화된 로마인은 눈과 같이 순결한 것으로 묘사하고, 바바리안은 암흑과 무지의 상징으로 표현하려는 유혹을 극복하는 계기를 발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진가는 발휘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한국사의 범주를 너무 좁게 보고 있다. 예전에 혹자는 선비족의 역사도 우리의 것으로 같이 봐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여진족의 것도, 만주족의 것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유럽인들은 변방 게르만족들은 물론, 이슬람 문명도 유럽 문명의 틀에 녹이고 있다. 더 이상 바이킹족, 노르만족, 고트족, 반달족 등은 비유럽 족속이 아니다. 이미 고대 유럽 민족의 하나로서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역시 동북공정이라는 미명 아래 변방사를 본격적으로, 노골적으로 강탈해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우리의 것을 말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야 말할 것도 없는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유목민족사는 그들만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마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럼 그것을 두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고구려, 백제, 신라는 제국적 요소를 測?왕조들이었다. 다원적이고 개방적인 국가였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주체는 한국이다. 그런 그들에 대해서 주체있게 서술할 책이 필요하다. 아직 우리가 없는 그런 책 말이다. 우리에게 흉노, 거란, 선비, 여진족 등은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야만족? 중국 변방족? 정복자? 아니면 우리들과 피가 섞인 선조? 한번 생각해보자. 이 책은 주인장에게 다시 한번 뭔가를 깨우치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런 책이 한권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