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 리뷰를 작성하는 것 같다. 일단 최근에 한국 영화들이 계속 상영하고 있고, 좋은 성과들을 얻고 있는 것에 축하를 보내며 1~2달 전부터 봐 왔던 한국 영화들에 대한 리뷰를 간단히 적어보고자 한다. 필자는 막연히 <고지전>부터 쓰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이어리를 주욱 보니(필자는 영화티켓을 다이어리에 다 붙여둔다), 6월 말에 <모비딕>을 봤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로부터 한달 전에는 <헤드>를 봤고.(물론 그 사이에도 영화를 꾸준히 봤지만, 모두 헐리웃 영화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헤드>의 경우, 그닥 재밌게 봤다는 생각은 안 들어서(굳이 별을 주면 5개 중에서 3개 반 정도), <모비딕>부터 간략하게 리뷰를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모비딕>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다룬 음모론 영화다. 음모론(conspiracy theory)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10174). 뭐 대표적인 예로 9.11 테러 미국 정부 자작설, 예수 결혼설,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설, 히틀러 생존설 등등부터 해서 프리 메이슨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아주 널리 알려진 것들을 음모론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을 수 있겠다. 더불어 음모론의 영문 단어 그대로, 그러한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 <컨스피러시>가 떠올랐다(97년도 작품인데,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영화이며, 처음에는 무슨 내용이야? 이랬다가 볼수록 몰입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에는 이 제목의 뜻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더욱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 이런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음모론? 그럼 우리나라에도 그런 배후 세력이라는게 있단 말인가? 만약 있다면? 이라는 흥미로운 의문에서 영화는 출발한다(아마 제작진도 그러한 흥미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이미 오래전 영화이므로 스포가 아닐 듯 싶다. ^^;)
때는 1994년 11월 20일, 서울 근교 발암교에서 의문의 폭발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을 추적하던 열혈 사회부 기자 이방우 앞에 어느 날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고향 후배 윤혁이 나타난다. 그는 일련의 자료들을 건네며 발암교 사건이 보여지는 것과 달리, 조작된 사건임을 알린다. 발암교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이방우는 동료 기자 손진기, 성효관과 특별 취재팀을 꾸리지만 취재를 방해하는 의문의 일당들로 인해 그들은 계속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점점 정부 위의 정부, 검은 그림자 조직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회부 기자다. 물론 윤혁은 보안사 소속이라서 약간 다르지만. 일단 스릴러라고 하면 잘 생긴 남자 주인공과 미모의 여자 주인공이 등장해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라인을 전개한다는 설정이 가능할 테지만, 여기에서 그런 것은 없다. 주인공이 싸움을 잘 하는 것도, 특출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주인공들은 이런저런 단서를 통해서 사건을 파헤치려고 뛰어드는 평범한 기자들일 뿐이다. 기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거대 세력과 맞서 싸우면서 뭔가를 파헤친다는 설정이 괜찮았던 것 같다.
또한, 과거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양심선언 실제사건과 발암교 폭발이라는 가상사건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렇기에 어찌보면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들을 하게끔 해준다.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지만, 평소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소재라는 점에서 일단 친근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1994년으로 잡은 것은 좀 의아했다. 1994년이라면 필자가 중학교때로 '지존파'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해이다. 그것 말고는 뭐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데, 왜 하필 1994년을 영화의 시작점으로 잡았는지가 의아했다. 북한과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시기도 아니고, 폭탄테러라고 하는 요소와 딱히 상관도 없던 시기 같았는데(최근이야 국군의 해외파병이 잦아지면서 우리나라 역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는지, 폭탄테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왜 그랬을까? 차라리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이나 KAL기 폭파사건이 벌어진 1983년을 기점으로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차라리 최근의 천안함 폭침 사건을 한번 다뤄보든가. 암튼, 그런 의아함을 떠나 보이지 않은 검은 세력이 늘 사회를 좌지우지 흔들었다~는 설정이 중요한 것이니깐 일단 시기 문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앞서 얘기했지만 일반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다 보니깐 액션씬이나 멋있는 장면 등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화면 전환이라든가, 내용 전개에 있어 박진감이 넘친다는 느낌도 없다. 그리고 황정민이라든가, 김상호와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긴장감이나 스릴러적인 분위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도 같았다. 아마 스토리 자체에서 오는 약점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스토리에서 몇몇 빈약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먼저 발암교 폭파 사건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검은 손이 이끌어내려고 한 목표가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었다. 분명 영화의 첫 시작을 알리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그 폭파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앞으로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 것이다~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발암교 폭파 사건으로 죽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누명을 벗겨주고, 그들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 있어서도 극적 효과는 거의 없었다. 뻔하게 예상된 스토리라고나 해야 할까? 중간중간 거대한 고래가 나오는 꿈을 황정민이 꾸는 장면이 몇번 나오는데 이는 아마 소설 <백경>에 나오는 어마어마한 거대 존재를 묘사하고자 했던 의도 같다(영화 제목도 그래서 모비딕이고. ㅋ 지금 생각났는데 한 후배가 이를 모네딕으로 읽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정작 거대 존재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면모가 없다. 물론 정부 위의 정부, 거대한 검은 조직이니까 영화에 낱낱히 소개되면 재미가 없겠지만, 너무 신비주의 전략으로 일관한 듯한 느낌도 강하게 들었다. 그러면서 꿈 속에서 고래는 계속 보여주고 있으니 다소 김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되니깐 이경영과 그들의 수하가 갖는 뚜렷한 정체성 혹은 소속이 밝혀지지 않아 다소 엉성한 설정인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불어 마지막에 비행기 폭파를 막기 위해 이방우 기자는 혼자 비행기를 타는데, 정작 이경영은 그 비행기를 폭파시키지 않았다. 영화의 내용을 엔딩으로 치달려야 하는 상황이므로 그렇게 끝맺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지만, 이럼으로써 그 보이지 않는 검은 조직의 정체성에 대한 청중의 생각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갖고 온 것은 아닐까 싶다. 과연 우리나라의 검은 조직은 저렇게 쉽게 모든 일들을 처리할까? <컨스피러시>에서 보이는 뭔가 확실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검은 조직과 그런 그들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컨트롤러>에서 나타난 것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神과 같은 입장에서 '부처님 손바닥 위의 주인공들'을 좌지우지 하는 내용도 아니다. 적의 존재가 불분명하다보니 그런 적을 상대하는 주인공들의 행동 패턴과 인식도 불분명하다. 뭐 제작진에서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그것을 노렸다면 할 수 없지만, 영화에서 그런 대립 관계 등을 좀 더 분명히 해주지 못 한 점은 아쉬웠다.
이상이다.
뭔가 각 부분마다 2%씩 모자란 내용이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음모론을 다뤘다는 점에서 일단 높은 점수(별 5개 중 4개!)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