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왕의 꿈 - 고구려 중흥의 군주 미천왕 평전
이성재 지음 / 혜안 / 201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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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 한권 소개하고자 한다. 읽은지는 좀 됐는데, 어쩐 일인지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야 서평을 쓴다. 

이 책은 미천왕, 즉 고구려 초중기에 왕좌에 있었던 한 군주에 대한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미천왕이라고 하면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혔으며, 전연의 모용씨와 끊임없이 대립했던 인물로 알고 있다(잘 기억은 안 나는데 어떤 이는 광개토태왕때보다 미천왕때 고구려의 영토가 더 넓었다고도 했다. 출처는 불분명!). 그러다가 아들인 고국원왕대에 고구려가 전연에게 크게 패하고 그 무덤이 파헤쳐져 죽어서 적국의 볼모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여담이지만, 이때 모용씨는 무덤을 파헤쳐 관을 가져갔을텐데, 그 시신을 전연에 가져가서 어떻게 관리했는지가 의문이다. 다시 땅 속에 묻어놨는지 혹은 그냥 썩은채로 방치했는지...솔직히 고구려 입장에서는 당시 시신이 뒤바껴도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테니 말이다. 암튼 이건 여기서 그만). 

이 책에 대한 간략한 얘기를 하자면, 이 책은 일단 연구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개설서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저자가 연구한 내용이 책 안에 담겨있기는 하지만, 논문이나 전공서적처럼 딱딱하고 재미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상당히 순화된(?) 느낌이 난다랄까? 암튼, 그렇다. 그래서 미천왕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서 부담없이 알아갈 수 있게끔 해 준다. 

책의 첫부분에는 고구려 역대왕계와 모용선비(전연)의 역대왕계가 있고, 미천왕 시절의 고구려 관직 및 관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미천왕 시절의 고구려 영토 및 요동~요서를 둘러싼 고구려 역대 주요 원정을 표시한 지도가 1장씩 실려 있다. 이 당시 고구려가 요하를 기점으로 요동반도를 완벽하게 차지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학계 대부분의 의견도 그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지도를 표시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해 고구려 역대 주요 원정을 표시한 지도는 괜찮았다. 요서~요동을 두고 고구려가 끊임없이 진출하려고 했다는 것이 잘 표현되었다고나 할까? 지도라는 녀석이 어떤 내용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지도가 그러했다. 시기별로 고구려의 원정 진출경로를 표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실제로 고-수, 고-당 전쟁의 경우에는 시기별로 그러한 원정로라든가 주요 전장이 잘 표시되어 있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그러한 지도를 많이 못 본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그리고 프롤르그 격으로 광개토태왕이 연군을 침략한 내용을 책의 첫머리에 싣고 있는 것도 괜찮았다. 딱딱한 연구서적이 아니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구성 때문이었다. 광개토태왕이 갑작스럽게 연군 일대를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두고 기존에 여러 견해들이 있었다. 원정군의 규모에 착오가 있다, 잘못된 기록이다, 어떤 사실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등등. 그런데 이에 대해 지배선 선생님은 광개토태왕이 모용황의 사당을 파괴하려고 했다는 의견을 제시하셨고, 필자 역시 상당히 설득력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모용황의 사당이 훗날 복구되었는지, 다른 곳으로 옮겨졌는지 여부는 모르지만, 아마도 고구려인이 보기에 그 사건은 이전에 당했던 치욕을 앙갚음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책은 증손자의 복수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왜 증손자가 복수를 했는지 말이다. 

여기까지는 다 좋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뭔가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평전(評傳)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평론을 곁들여 적은 전기'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한국 고대사 속의 인물들은 남아있는 문헌자료 혹은 금석문이 소략하기 때문에 이러한 평전을 작성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유독 평전의 형식을 띤 책들은 별로 출간되지 않았다. 그나마 꼽자면 이도학 선생님이 쓰신『백제장군 흑치상지 평전』과 김용만 선생님이 쓰신『인물로 보는 고구려사』과『새로 쓰는 연개소문전정도가 있을 것이다. 먼저 이도학 선생님의 저서는 소략한 사료를 갖고 쓴 평전의 한계점을 잘 보여준 책이었다. 분명 그 적은 사료를 갖고 뭔가 새로운 내용들을 언급해보려고 노력은 한 것 같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힌 책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이 책을 보면서 딱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뭐 책을 쓸 주제가 적절치 않았다고도 볼 수 있겠고(어느 정도 분량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기 힘든 주제이니), 뭔가 새로운 접근법으로 그 인물을 해석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암튼, 그리고 김용만 선생님의 2권의 저서 중 전자는 엄밀히 말해 인물에 대해서 서술하고는 있지만 평전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후자가 그나마 현재까지 나온 가장 제대로 된 평전이 아닐까 싶다. 특히 기존 학계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부분, 놓쳤던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정리한 부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즉, 이 책에서는 사료들을 정리하고, 당시의 상황들을 재구성했다는 면에서 흠잡을 것은 없다. 다만, 인물 평전이기 때문에 인물 자체에 대한 고민이 책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좀 미흡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 인물 자체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아느냐? 라고 반문한다면야 필자도 할말은 없지만, 평전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책을 쓴 저자가 그 정도 노력의 흔적을 책에 묻어나오게 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 아닐까 싶다. 

또한, 저자는 189~196쪽에 걸쳐 고구려 태왕호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데,『수서』에 고국원왕을 두고 '소열제'라고 기록한 것을 그대로 신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이 부분은 사료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오기가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인데, 저자는 그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구려가 실제 칭제를 했다고 보는 것은 아니고, 미천왕 시기부터 고구려가 태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그 태왕이라는 칭호가 황제와 동급으로 쓰였기 때문에 중국측에서 그러한 사실을 기재한 것이 아닌가~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국측에서 고구려의 군주가 황제와 동급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고구려 군주의 지위를 인정해서 황제로 기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구려 군주가 미천왕 이후 꾸준히 태왕호를 사용했고, 그 권위는 광개토태왕-장수태왕 시절을 거치면서 더욱 높아지고 공고해졌는데 그 뒤로 고구려 군주에 대해 칭제한 중국측 문헌이 없는 것 또한 의심해볼 필요가 있겠다.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 특수한 경우 하나가 확인될때 그 특수한 경우에 대해 재고해보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나 싶다. 

뭐 이런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는 책 내용 자체에 큰 문제는 없다. 또한, 전체적인 논지 전개과정 또한 무리가 없다. 

하지만 뭔가 미천왕에 대해 새롭게 내놓은 내용이 없다는 점, 미천왕에 대한 최초의 평전이라는 기대치에 못 미치는 점, 인물 자체에 대한 고뇌 혹은 고심까지 가지 못 하고 주변 정황만 정리하고 그친 점 등은 필자에게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별 3.5개를 주고 싶은데 관련 이모티콘이 없으니 반올림해서 별 4개를 책정했다. 4세기 당시 고구려와 주변 국가의 정세를 파악하는데 있어 부담스럽지 않게 읽힐 수는 있는 책이지만, 그러한 격동의 4세기에 미천왕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행동한 인물이었는지까지는 알 수 없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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