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옛날에 본 영화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외계인 수용구역을 다룬 조금 독특한 영화인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지 잠시 소개하자. 

이 영화를 본지는 꽤 됐는데, 뭐 그 당시만 해도 영화 감상평 하나 쓰자~고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TV에서 남아공의 관광 명소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나온 단어가 '디스트릭스 6'였다. 엉??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 봤더니 이 영화의 제목이 떠올랐던 것이다. 분명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디스트릭트 6라는 것을 차용하여 영화 제목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밥 먹고 들어와서 한번 검색해봤다. 

오호~역시나 뭐가 있었다. 디스트릭트 6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내에 있었던 주거구역의 명칭으로서 1970년대 6만명이 넘는 거주민들의 강제 이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라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마르군님 블로그를 참고하시라(http://amarese.tistory.com/10). 그랬구나~방송에도 뭐 강제이주 이런 내용이 나온 것 같긴 했었다. 전염병이 돌자, 백인들이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 항구에서 주로 활동하는 흑인 등을 멀리 강제이주시켜 격리시켰다...뭐 이런 내용이 나왔는데...암튼 이제 좀 이해가 됐다.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때 왜 외계인 수용구역이 하필이면 남아공에 있을까? 뭐 이런 의문을 가졌었는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내용을 좀 더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몇몇 블로그에 이 영화와 디스트릭트 6의 연관성, 그리고 이를 비판한 영화에 대한 대략의 포스팅이 올라와 있었다.  

마이즈님의 블로그 - MAIZ STACCATO 

사자왕님의 블로그 - Sci-Fi 스테이션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지만(외계에서 외계인이 지구로 넘어왔다? ^^;), 결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외계인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해 벌써 30여년 동안 인간과 접촉하며 지내고 있다(영화의 시작부터 독특하지 않은가? 최근에 나온 '스카이 라인'이나 톰 크루즈의 父情이 돋보이는 '우주전쟁', 외계인과의 한판전이 볼만한 '인디펜던스 데이'만 봐도 외계인은 지구에 오자마자 지구인을 몰살시키고, 지구를 정복하려고 했다). 그런데 유명한 미드 'V'에서처럼 지구인과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지구인에게 격리당하고, 감시받으면서, 인간(외계인?) 이하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것도, 격리 수용소와 같은 곳에서 말이다. 즉, 그들은 지구인이 갖지 못한 첨단과학기술을 갖춘 존재이기는 했지만(로봇형 전투기계나, 엄청난 레이저파를 이용한 무기, 거대한 우주선 등), 그것을 이용해 지구를 정복하러 온 존재들이 아니었다(분명 기술력만 보면 프레데터급의 기술을 갖춘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고향을 떠난 이주민 정도로 보일라나? 

어쨌든 각국의 윗대가리들은 협의 끝에 그들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위치한 ‘9구역(District 9)’에 격리시키고, 인간들과의 접촉을 통제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던 것이다. 그리고 외계인들의 통제를 담당할 계약을 맺은 것은 민간 회사인 ‘MNU (Multi-National United)’인데 문제는 이 회사가 외계인들의 복지보다는 그들의 진보한 무기기술을 습득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외계인의 무기 기술은 외계인의 DNA가 있어야만 작동할 수 있는 까닭에 무기만 입수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MNU 직원인 비커스 메르바가 외계인의 새로운 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DNA 변이를 일으키게 되고, 그런 그를 중심으로 장인(MNU 최고경영자)과 부인, 정부와 외계인들이 서로 긴장감을 형성한다. 정부와 MNU측은 주인공을 새로운 무기 개발의 실험체로 인식하게 되고, 그런 그와 부인과의 애절한 심리 묘사가 영화 후반부에 돋보인다. 그는 살기 위해 디스트릭트 9으로 숨어 들어가고, 거기에서 외계인 父子를 탈출시키는데 협력한다. 나중에 돌아와 자신을 치료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이 말은 곧 주인공이 외계인으로 변해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으로 영화가 일단 끝맺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대강의 내용만 봐도 기존의 헐리웃식 SF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당시에는 그냥 참신하다, 독특하다(영화 초반부에 MNU 직원과 요원들이 디스트릭트 9에 사는 외계인들에게 강제 이주를 강요하는 장면을 다큐멘터리처럼 찍어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렸다) 뭐 이런 생각은 했었다. 그리고 3천만불 밖에 들이지 않았음에도 상당히 완성도 높은 CG가 돋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데 그때에는 왜 외계인이 하필 남아공에 격리됐는지, 디스트릭트 9이 무슨 의미인지 등등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봤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감흥도가 좀 떨어졌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왜 당시 영화가 개봉됐을 때는 디스트릭트 6와의 연관성, 감독의 어떤 비판적인 부분 이런 것들이 이슈화가 안 됐나 모르겠다. 영화 소개하고 이럴때 이런 부분들이 대개 소개되지 않나?? 어쨌든...). 그런데 오늘 우연히 밥을 먹다가 TV에서 흘려들은 내용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고, 그때는 미처 못 느끼고 스쳐 지나갔던 내용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영화를 보면 디스트릭트 9을 지배하는 것은 흑인 갱단이다. 그들은 외계인들이 깡통으로 된 고양이밥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이를 매점매석해서 팔거나, 외계인을 납치해 죽인 다음 그 시체를 먹는다거나(강한 적의 시체를 먹으면 그 힘이 나에게 전해진다~는 원시적 신앙이 여기에 스며있다)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DNA 변이를 일으켜 팔 한쪽이 외계인처럼 변한 것을 알고는 주인공의 팔 한쪽을 잘라 먹을라고도 했던 것이고~그런 것만 봐도 영화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열렬히 비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외계인이 과거의 흑인 및 말레이, 중국, 인도인 등으로 바뀌고 영화 속 흑인이 백인으로 바뀌면 과거의 상황을 영화 속에 그대로 재연한 것이니 말이다.  

또한 애초부터 좀 우유부단하고 맹한 캐릭터로 나온 주인공이 DNA 변이를 일으켜 외계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인간 군상에 대해서 잘 묘사하고 있었다. 같은 인간이지만, 그가 돈벌이가 되고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 순간, 장인은 그를 더 이상 사위가 아닌 실험체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서도 결국 그를 지탱하는 것은 부인과의 사랑이었다(그는 영화 말미 외계인이 되었음에도 부인에게 매번 접어주는 인조 꽃을 계속 접고 있었다). 그리고 외계인과 정말로 진실하게 대화하면서, 서로의 느낌을 이해하고 서로를 위해 헌신하게 된 것이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을 통한 스토리의 전개를 보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외계인, 외계인보다 더 에일리언같은 인간에 대한 군상을 적절한 역사적 사건, 적절한 시 · 공간적 배경과 잘 연결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인터넷을 보니 후속작이 나온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기대가 큰 영화가 되어 버렸다. 한번 시간남을때 감상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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