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영화 2편이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악마를 보았다’이다. 이미 ‘장화 ․홍련전’, ‘달콤한 인생’ 등으로 필자에게 익숙한 김지운 감독의 작품인지라 개봉 전부터 보려고 기다렸던 영화였다. 물론 연기력하면 두말할 필요 없는 최민식과 최근 강한 이미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병헌이 라이벌로 등장하고 있어 그 부분도 기다려졌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휴가를 맞이하여 친구들과 대거 영화 관람을 했는데...결과는 ‘Good’이었다.

일단 필자는 영화를 장르 구분 없이 다 보는 편이다. 물론 전쟁영화나 시대극, 액션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안 그런 분이 있다면 죄송~),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혹은 로맨스), 다큐멘터리, 스릴러, 예술, 스포츠 등등 다 보는 편이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후한 편이어서(책에 대한 평가도 그렇듯이), 필자 기준의 ‘재미있다’와 ‘재미없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닥 객관적인 신뢰성을 많이 주지는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그나마 먹히는 장르가 있다면 ‘하드고어’ 혹은 ‘호러’ 분야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좀비영화나 잔인한 호러물, 다소 징그럽거나 역겨울 수도 있는 하드고어를 즐겨 보게 되었고(여기에는 일반적인 공포영화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의 내공이 쌓인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보니 필자에게 있어 이번 영화는 상당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온 ‘하드고어 스릴러’(뭐 영화 분류는 일단 범죄, 스릴러로 되어 있는 것 같지만 암튼...)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도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장면(사체를 절단해 박스에 던진다거나, 인육을 먹는다거나, 냉장고에 토막 낸 사체를 넣는 장면 등등) 때문에 두 차례 상영이 연기되었고, 결국 많은 부분을(감독이 본인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리만치) 잘라낸 다음에야 겨우겨우 상영되었다. 얼마 전 TV 인터뷰(어느 방송인지는 모르겠다)를 보니 이병헌이 나와서 하는 말이 “사회적으로 이렇게 큰 이슈가 될지 몰랐다. 그렇게 이슈가 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뭐 이런 거였다. 필자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든, 영화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기기 위해서든 어쨌든 이 영화는 한국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영화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일 테니 말이다.

그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 역시 극과 극을 치달리고 있다.

정말 잘 만들었다, 소름끼치는 연기력에 혀를 내둘렀다,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나오는구나 등등의 평가를 받는가 하면, 너무 잔인하다, 스토리가 없다, 그냥 의미 없는 복수만 계속될 뿐이다 등등의 평가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CGV에서 제공하는 박스오피스 상에서는 3위에 랭크되었지만, 전체 평점은 그리 높지 않다(단연 1위는 압도적으로 원빈 주연의 ‘아저씨’). 이런 난항 속에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는 등(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4&c1=04&c2=04&c3=00&nkey=201008231915523&mode=sub_view) 해외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 왜 그럴까? 단순히 한국 영화계가 보수적이라서? 아니면 외국 관람객의 눈에는 이런 하드고어물이나 잔혹한 스릴러가 흔해 빠져서? 글쎄. 그에 대한 판단은 각자 하는 것이 좋겠다.

뭐 영화 주변 얘기를 간단하게 했으니, 이제는 본인의 생각을 몇자 적어보도록 하자.

본인은 일단 이런 장르의 영화를 즐겨 본다. 그런데 이런 영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잔인하고, 이유 없는 살인이 계속되는 경우가 잦다. 그 유명한 ‘13일 밤의 금요일’이나 한때 큰 이슈가 되었던 ‘쏘우’ 시리즈(1~6편),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얼마 전 필자가 봤던 ‘콜렉터’와 같은 영화들이 그렇다. 갑자기 악인이 등장하고 그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고 동강낸다. 이런 류의 영화는 ‘세븐데이즈’, ‘백야행’, ‘시크릿’과 같은 인기를 끌었던 범죄 스릴러와는 다르다. 반드시 범행의 이유가 등장해야만 하고, 범인의 행동 패턴이 분석 가능하며, 예측 가능하여 잡힐 듯 말 듯 긴장감을 줄 필요가 없다. 그냥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자르고 부수면 된다. 물론 일반적인 좀비 영화와는 다르다. 인간 대 인간이기에 이런 류의 영화는 더욱 더 소름끼치게 하는 것이다(좀비 영화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언급하자).

필자가 이런 하드고어물 중에서 秀作으로 꼽는 것은 ‘호스텔’이라는 영화다. 1~2편과 함께 속편으로 볼만한 작품도 하나 나왔는데, 단순히 죽이고 베고 찌르는 것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배경이 언급되어 있어 볼 만하다. 또한 사회 풍자적인 메시지도 전하고 있고 말이다. 사회 엘리트층으로 구성된 특수한 집단이 있고, 그들은 기업형 조직을 꾸려 전문적으로 죽일 사람을 사고판다. 인간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폭력과 살인이라는 狂氣가 잘 표현된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자가 이 영화들을 꼽는 것이다. 물론 ‘쏘우’ 시리즈도 비슷한 분위기이긴 하다. 죽어가는 한 미치광이(?)가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 숨 쉬는 것을 행복해하지 않는다. 그걸 내가 일깨워 주겠어~”라고 외치며 사람들을(불특정 다수) 죽음의 게임 속으로 초대한다. 1~6편까지 일관된 스토리를 유지하기가 힘들 텐데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큰 점수를 주고 싶지만, 1편에 나오는 본래의 취지나 의미에서 벗어나 점점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려고 억지를 썼다는 느낌이 강해서 일단은 패스! 즉,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같은 하드고어 스릴러물이라도 級이 다르다는 것이다. 속칭 A급, B급, C급 등으로 서열을 매긴다기 보다는 유형이 다르다고나 해야 할까? 이유가 있는 살인과 이유가 없는 살인? 뭐 이런 거?

그렇게 봤을 때 김지운 감독의 이번 영화는 이유가 없는 살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최민식은 연쇄살인범이면서 이유 없이 죽이고 싶을 때 죽이는 스타일이다(그냥 그런 캐릭터인 거다. 왜 그러냐고 따질 필요가 없이). 그리고 우연히 최민식이 사는 동네 주변에서 타이어가 펑크가 난 한 여성이 있었고(이 역시 이유를 따질 필요 없이, 설정이 그런 거다), 그 여성의 약혼자는 하필이면 국정원에서 알아주는 요원이다. 그리고 그 여성의 아버지는 30년 넘게 근속한 전직 강력계 형사반장이고(이런 설정도 마찬가지고). 자~한번 따져보자.

‘최민식은 왜 그 여자를 죽였을까?’
‘하필이면 죽은 여자의 애인이 어떻게 국정원 요원이야?’
‘왜 이병헌은 빨리 복수를 안 해서 최민식이 자꾸 살인을 하게 해?’

이런 질문은 이런 류의 영화를 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길거리를 가다가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라는 말이다. 이 영화는 그렇게 생각하며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마치 여러 종류의 가수가 있는데 ‘넌 왜 퍼포먼스만 화려하게 하냐? 네 노래의 가사에는 별 의미가 없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보니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뭐 별 스토리가 없어. 왜 갑자기 죽이기 시작하는 거야?”
“이병헌은 왜 빨리 안 죽여서, 최민식이 결국 집안사람 다 죽이게 하는 거야?”
“연쇄 살인범이 뭐 저래? 그냥 내키는 대로 죽이고...”

그런 고민이 왜 필요할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자아~이렇게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갖춰진 다음에 다시 한 번 영화를 살펴보자. 그럼 뭐만 남을까? 그렇다. 스토리가 전개되는데 있어서 “왜?” “왜?” “왜?”가 상당 부분 지워졌음을 알 수 있다.

“최민식의 과거사가 어쨌길래 집안사람들과(심지어 아들과도) 담쌓고 살았나?”
“최민식은 살인을 그렇게 하는데 왜 안 걸리고 그 동네에서 학원버스까지 운영하며 살까?”
“최민식은 봉고차 안에서 피가 튈 정도로 여자를 두들겨 패는데 핏자국이 쉽게 지워지나?”
“이병헌이 용의자로 꼽은 4명 중 앞의 2명은 범인이 아닌데도 왜 그렇게 반 죽여 놨나?”
“최민식의 살인자 친구는 갑자기 왜 등장했으며, 그가 강간하는 여자는 왜 나왔나?”
“최민식의 살인자 친구는 왜 그 큰 집에 가게 됐으며, 결국 그 집안사람들을 다 죽였나?”
“최민식은 이병헌 만나고 한 번도 큰 볼일을 안 봤나? 꼭 설사를 해야만 캡슐이 빠지나?”

이런 질문들이 영화를 관람하는데 필요가 없어진 거다. 아~여기서 잠깐. 김지운 감독이 애초에 영화를 어떤 의도로, 어떤 생각을 갖고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감독 입장에서 필자의 이런 비평이 듣기 싫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은 더 의미 있는, 더 잘난 영화를 만들었는데 고작 이런 식으로밖에 볼 줄 모른다고 신경 안 쓸지도 모르고 말이다. 암튼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라고 마저 얘기하도록 하겠다. 몇 가지 기본적인 설정(연쇄살인범과 국정원 요원, 죽은 여자와 계속되는 복수 등등)만 갖춰놓고 난 다음 영화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할 일을 수행한다. 그건 바로 ‘악마’의 등장과 ‘복수’의 반복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악마와 복수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럼 이 영화를 진정으로 즐겼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병헌은 아주 냉정하면서도 사리 분별이 정확한, 이지적인 상황판단 능력과 뛰어난 실력까지 골고루 갖춘 ‘훈련받은’ 킬러다(물론 처음부터 킬러는 아니었지만 킬러化되었다). 그에 반해 최민식은 본능에 충실하며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한 대처능력이 뛰어난데다가, 육감이라고 할 만한 이성 이외의 본성이 돋보이는 ‘정글속의’ 킬러다. 마치 戰士와 軍人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영화 포스터 속의 두 인물은 아주 적절한 설정이었으며, 아주 적절한 대비를 이루는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노린 것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면 아주 적절했다고 평하고 싶다. 당연히 이병헌은 손바닥 위에 최민식을 놓고 갖고 논다. 하지만 동물적 감각을 발휘하며 최민식이 조금씩 저항하더니, 미처 계산하지 못한 변수에 이병헌은 당황한다. 물론 궁극적으로 여러 대안을 마련해놓은 이병헌이 승리하지만, 그걸 과연 승리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필자는 보는 내내 잔인하거나 징그러운 장면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며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그건 당연히 기대했었고, 오히려 좀 더 강한 것을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잘리지 않은 장면은 나중에 감독판 DVD 등이 발매되면 볼 수 있을 것이기에, 뭐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단, 나중에 무삭제판을 보고 나서 감독이 얘기했던 것처럼 그 장면이 이번 영화를 보고 쓴 비평에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 한다면 그 장면은 삭제되어도 상관이 없었다고 생각하련다. 뭐 나중 일이겠지만. 어쨌든, 필자는 두 배우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 표정 하나 하나에 주목하면서 영화를 관람했다. 역시나 두 배우는 차갑고, 뜨거운 복수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두 배우의 차갑고 뜨거운 복수를 표현하는 중간 중간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최민식은 본능적인 녀석이며, 동물 같은(나쁘게 말하면 짐승 같은) 놈이다. 그렇기에 앞뒤 안 재고 학원버스에서 자고 있던 여학생을 데리고 가 강간하려고 했다. 아주 좋은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다친 손목을 고치기 위해 갔던 병원에서 그는 간호원을 상대로 또 강간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뭐가 좀 다르다. 그는 천천히 여유를 갖고 즐기며, 간호원을 강간하려다가 최민식에게 아킬레스건이 뜯긴다. 차라리 최민식이 거기서 그냥 간호원을 덮치며 동물 같은 본능을 해소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이병헌과의 접촉을 위해 시간적 공백기를 둔 것은 별로 좋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영화 후반부를 한번 보라. 설사약을 먹고(그 와중에 약국 약사 한번 죽여주고) 캡슐을 빼내 지나가는 택시기사 기절시켜 그거 먹이고, 바로 이병헌에게 복수하려고 서울로 향하는 모습을...정말 동물 같은 상황 판단 능력과 행동 아닌가. 한편, 이병헌이 영화 초반부 너무 쉽게 최민식을 몰아붙이다가 후배 동료의 실수(캡슐의 비밀 누설)로 영화 후반부 너무 쉽게 최민식에게 카운터를 얻어맞은 것은 조금 아쉬운 설정이었다. 뭐 주고받는 맛이 있어야 영화겠지만, 영화 전체적인 캐릭터 설정에서 조금 못 미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암튼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봤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이런 류의 영화가 한국에 처음 나왔고, 보다 의미 있고 괜찮은 하드고어 스릴러물이 앞으로 더 자주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최고의 명배우 2명을 데려다가 최악의 B급 영화를 만들었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그 B급이라는 것은 누구의 잣대란 말인가. 하드고어물은 하드고어물의 시각에서 한번 봐주자. 필자가 보기에 하드고어물로서는 이 영화는 이후 한국 영화계에 나올 여러 영화들의 前身으로 꼽힐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설픈 복수 영화(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 3부작)보다 차라리 확실한 하드고어물이 더 낫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하드고어 무비(Hardgore Movie)

영화를 보는 사람이 공포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호러(Horror)영화의 일종으로, 호러 영화들 중에서도 그 잔인함의 정도가 진한 영화를 말한다. 전기톱이나 잔디깎는 기계로 사람을 절단한다거나, 피가 사방팔방으로 튀고, 배에서 창자와 온갖 알 수 없는 것들이 튀어나오는 장면들이 나오는 영화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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